440화. 아홉 개의 재앙, 네 개의 행운. (1)
쿠구구궁!
후공과 주란의 공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바닥이 흔들리며 상승했고, 천장은 급격히 낮아졌다.
콰콰콰콰콰!
바닥에서 수많은 벽이 솟구쳤다.
두 사람 사이에도 벽이 급격히 솟아올랐다. 분리되기 전 주란이 전음을 보냈다.
- 후공, 부디 견뎌내세요.
두 사람의 분리는 필연.
만상은혼로에서 만상은 지났고, 지금은 은혼.
은혼이 발동하면 한 공간에 두 사람이 머무를 순 없다.
그것이 은혼의 묘용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분리를 받아들였다.
각각 분리된 공간에서 은혼의 아홉 재앙을 맞이하게 되니 주란은 후공을 걱정했다.
자신은 천롱삭이 있으나, 후공은 아닌 것이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솟아오르는 벽 너머로 주란이 본 건 후공의 오만한 시선이었다. 입가에 비웃음이 떠오른 것도 같았다.
너나 잘해라, 라는 목소리를 들은 느낌.
하지만 주란은 기분이 좋았다.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쿠웅!
이내 서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주란이 천롱삭 안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방 크기였고, 정사면체의 공간이었다.
순간 천장과 벽면, 바닥에서 금빛 글자와 도형이 번쩍이며 나타났다가 가라앉으며 사라져갔다.
이어, 구구구구궁!
방이 이동했다.
주란은 자신의 석실이 좌측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공도 이동하고 있겠지?’
주란은 나아가 전면의 벽을 어루만졌다.
손바닥을 통해 벽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진동은 이동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벽이 스스로 진동하고 있기도 했다.
‘반탄.’
주란은 의미를 이해했다.
이 벽은 부서지지 않는다.
장력이나 검강이든 모든 걸 튕겨낸다.
후공도 눈치챘겠지.
후공이라면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이 몇 개인가?’
‘서른여섯.’
후공도 이동하고 있었다. 후공은 아래쪽이었다. 그리고 천향의 선을 통해 방을 숫자를 파악하기도 했다.
수천 가닥의 천향의 선이 많은 정보를 알려오고 있었다.
서른여섯 개의 방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 마치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이동하듯 정교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주란의 위치도 파악했다. 멀어져간다.
벽의 반탄은 진즉에 간파했다.
만져본 건 아니었다. 사방에 나타났던 금빛 글자와 도형이 번쩍이며 나타났을 때, 이미 해석.
어디를 가격하든 기운은 반탄된다.
그래도 시험은 해봐야 했다.
어느 정도인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마음으로 결정한 순간,
그 의식의 흐름에.
크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앙!
번과 쾌가 자줏빛 광채가 되어 벽을 강타했다.
벽에 부딪힌 순간,
번쩍!
금빛이 벽 전체에 나타났고, 기음이 터졌다.
번과 쾌가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나와 검집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번과 쾌가 내뿜었던 검강까지 검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더 강맹해져 후공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몰려왔다.
후공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두 줄기 기운을 흘려보냈다. 기운은 허공을 지났고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그 벽에서 다시 반탄했다.
각도가 틀어졌고, 되돌아오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위력이 배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후공도 다시금 흐릿한 형체로 벗어났다.
각도는 계속 바뀌었고, 천장에 부딪히기도 했고, 바닥에 닿아 반탄되면서 두 줄기는 네 줄기가 되고, 네 줄기가 순식간에 여덟 줄기, 이내 열여섯 줄기가 되었다.
그 사이를 후공은 현란한 움직임으로 벗어났다. 마치 연기가 흐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위로, 아래로, 좌우로. 처음 두 줄기 자줏빛 검강은 고작 두 번의 호흡 만에 수백 개의 자줏빛 광채로 후공을 쫓았다.
그리고 세 번째 호흡에는,
후공이 멈춰 우수를 내밀었다.
빨려들듯 수백 개의 자줏빛 검강들이 후공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원래 자신의 기운이다.
흡수할 수 있는 건 당연했다.
회피한 건 반탄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
후공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증폭된 기운을 흡수하면서 도리어 충만해진 것이다.
그때 석실에 변화가 일었다.
벽의 모서리 쪽이 시작이었다. 녹색 연기가 스며들었다. 스멀스멀 벽을 타고 흐르더니 굳어지며 형체를 띠었다.
그건 후공의 눈에 넝쿨처럼 보였다.
‘목(木)의 정화.’
오행 중 목극.
단예령이 자신의 위치를 찾은 것이다.
단예령은 후공만 찾은 것이 아니었다.
단혼각주인 주란도 찾았다.
‘둘만 남았구나.’
한 명은 나의 제자일 테고,
다른 한 명은 누구일까?
풍제일지도.
그런 생각 속에서 단예령이 입술을 달싹였다.
“벗어난 이들이 있다. 너희는 밖으로 나가 그들을 죽여라.”
“존명!”
세 사람이 답했다.
회영부 일 호법, 이 호법, 삼 호법이었다.
그들도 각각 작은 방과 같은 석실에 있었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각각 대답한 순간,
구구구궁.
전면의 석벽이 열리면서 그들은 그 너머의 석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석벽은 위쪽이 열리기도 하고, 아래쪽이 열리기도 했다.
운부산은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요동쳤다.
운부산을 벗어난 일행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원래 운부산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데 지금은 볼 수 있었다. 원래라면 진법의 묘용으로 허공으로 보일 뿐인데, 지금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다.
의미는 알고 있었다.
“은혼. 혼돈의 겁화가 시작되었군.”
검선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분명 말이었는데도 마치 한숨처럼 들려왔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감춰진 혼돈. 그 혼돈 속에 아홉 개의 지옥 같은 겁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회영일존의 기억을 흡수한 섬악이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무엇인지까지는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일겁이라 함은 영원같은 시간.
수십억 년의 세월. 그렇게 느낄 정도의 재앙을 만나게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둘만 남았다.
천화서고 대공자와 단혼각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남는다.
대공자의 결정이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다리고, 약점이 될 부분은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대공자의 방식.
하지만 대공자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마음에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공자를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으로만 떠올렸다.
불안이 현실로 나타날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당명은 그런 불안을 잠재우고 싶었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지 않군.”
차갑게 뇌까렸다.
다들 당명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봤다.
왜 이 와중에 불안한 말을 하는가?
현실이 되면 어쩌려고! 그렇게 힐난하는 눈빛이 많았다.
당명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대공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말이야. 그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나는구만.”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는 주제에 다른 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후후, 재수없긴 하지.”
“대공자의 표정이 묘하긴 하죠. 중독성도 있고요.”
검선과 현음이 웃으며 답했다.
현이신녀와 풍제도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어느샌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누가 오는군요.”
현이가 말했고,
풍제는 회영부의 세 호법이란 걸 파악했다.
“누구 하나 죽이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읽었나 보군.”
말을 끝맺기도 전에 마기를 뿜어냈다.
다른 이들도 같았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건 답답했던 차였기에 미소로 환영했다.
‘누가 남았을까?’
쿠구구궁.
이동하는 석실 안에서 단예령이 미소를 떠올렸다.
잔인한 미소였다.
“제자야, 네가 온 것이겠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제자의 석실은 멀리 있었고, 지금은 위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단예령은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오행의 목극은 이미 서른여섯 개 모든 석실에 닿아있다. 닿아있음으로 그녀는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고, 그 안의 상황도 그녀는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목극의 성취가 한계를 돌파했기 때문.
각인의 경지.
혼에 각인되었다.
그로 인해 환혼 후에도 목극은 남았다.
두 번의 환혼에도 목극은 남는다.
“하아…….”
주란은 들었다.
한숨으로 답했다.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단예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대답이 흡족했다.
저 한숨은 조만간 비명과 절규로 바뀌게 될 테니.
이어 단예령이 의식을 전환했다.
목극의 이어짐을 따라 다른 석실에 목소리를 전했다.
“너는 누구냐?”
그 목소리가 울린 건 후공의 석실.
후공이 무심히 답했다.
“너를 죽일 사람.”
“호호호호!”
단예령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이 뜻밖이었고, 재밌었다.
또한 알 수 있었다. 예상을 벗어난 인물.
“천화서고 대공자라……. 의외로군.”
젊은 목소리가 돌아왔기에 단예령은 다른 이를 떠올릴 수 없었다.
“대공자여, 부디 살아남아라.”
너의 얼굴을 보고 싶으니.
하지만 어렵겠지.
찢겨나갈 테고, 불타오르게 될 테고, 녹아내리게 될 테니.
그렇게 은혼이 시작 되었다.
스으으응!
기음과 함께 주란의 석실에 금빛이 번쩍이며 도형이 나타난 순간, 빛이 쇄도했다.
주란의 안광에 빛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암기.’
환영이 아닌 실체.
회피한다면 반대편 벽에 부딪히며 반탄될 것이다.
반탄될수록 위력은 커질 터.
그러니,
‘그저 맞이한다.’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천롱삭이 반응했다.
스르륵.
움직여 드러난 눈을 감싸고, 입도 가렸다.
가히 사방에서 수만 개의 쏟아지는 암기를 천롱삭은 그대로 받아냈다.
스스스스스스스.
파바바박.
튕겨내지 않고 그대로 박히도록 두었다.
박힌 순간, 천롱삭이 암기를 붙들었다.
삽시간에 주란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후공도 회피하지 않았다.
튕겨내지도 않았다.
대신 열두 겹의 환명을 띄워 몸을 둘렀다.
스으으으응.
암기들이 환명을 거침없이 뚫고 들어왔다가 환명에 갇혔다. 어떤 것은 다섯 번째 환명에 갇혔고, 어떤 것은 일곱 번째 환명에 갇혔다.
튕겨나갈 수도, 더 전진할 수도 없었다.
‘시작이 좋군.’
그 결과를 단예령이 흡족히 여겼다.
아직 생기가 유지되고 있고, 요란함도 없으니 제자도 천화서고 대공자도 멈춰세웠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작일 뿐이지.’
쿠구구구궁!
투두득.
암기가 멈추고 천롱삭이 암기를 떨쳐냈을 때. 주란이 머리를 들었다.
석실의 천장이 열린 것이다.
동시에 무언가 쏟아져내렸다.
‘화골산?’
매캐하고 시큼한 냄새가 따라온 것이다.
‘아니, 화골산 그 이상이다.’
한 방울만으로 쇠를 녹이는 화골산보다 더한 산.
그 위력이 몇 배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쏟아져 닿기 전 천롱삭이 다시 반응했다.
그때 후공은 이미 그 액체에 뒤덮였다.
녹아내리진 않았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오행 중 금극이 반응했다.
금극이 미칠 듯이 폭주했다.
후공의 옷을 녹이기도 전에, 머리에 닿기 전에 수만 개의 푸른 번개를 치며 요동쳤다.
‘선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