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벤치에서 많이 배워가라
“그나저나 오빠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까요?”
“강병훈 선수가 있으니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활약하는 리그 자체가 다르니까….”
“에이 자신감 좀 가져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축따의 멋진 부분 중 하나라구요!”
“…근거 있는 자신감처럼은 안 보였구나?”
“흠흠, 아무튼요!”
대표팀 소집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먼 길을 떠나기 전 나여름과 그동안의 영상들을 편집하기 위해 만난 유건이었다.
편집을 하면서 오늘 중간중간 디스가 약간 섞인 여름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서울에 숙소는 구하지 마. 어차피 나도 이주에 한 번 정도 가는 곳이라 불편하진 않을 거야.”
“나도 약 한 달 정도는 갈 일이 없지 않을까 해서 오디션 기간 동안은 거기서 지내는 걸로 해!”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럼 저야 너무 좋죠! 진짜 제가 오디션 통과하고 인기 배우가 되면, 이건 세 배로 갚아줄게요, 오빠!”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이미 네가 별튜브 관련해서 해주고 있는 일들을 내가 갚는다고 생각해줘.”
일일연속극의 조연 역할에 대한 1차 오디션을 통과한 여름은, 2차 오디션을 위해 서울에 숙소를 구하기 위해 유건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마침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흔쾌히 사용하라고 내어주는 유건이었다.
물론 깔끔한 성격은 아닌 탓에 여름이가 들어오기 전에 청소를 하러 갈 필요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여기서는, 바이올린 악보가 눈에 띄게 나오면 뭔가 더 멋있을 것 같은데….”
“어휴 오빠! 고마운 거랑은 별개로 그건 안 돼요. 전공자분들이 보시면 태클 걸기 딱 좋다구요.”
여름이가 기분 좋은 틈을 타, 별튜브에 다시 한번 전문적인 내용을 넣자는 걸 무참히 거절당하는 유건.
‘아! 저 부분에서는 내가 조금 더 빨리 리드했어야 되는구나.’
‘여기서는 내가 다른 악기들의 흐름을 못 보고 있었어.’
아쉬워하면서도 영상에 집중을 하던 유건은, 촬영된 자신의 지휘 모습을 보면서 고쳐야 할 부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있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부분에서 부족함이 꽤 많이 보였기에.
“그나저나 여름이 너 너무 유명해지면, 편집자 새롭게 또 어디서 구하냐.”
“걱정 마요 오빠. 저도 축따 별튜브에 지분 많거든요? 그리고 한 번에 빵! 하고 뜨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적어도 몇 년간은 제가 잘 보조할 테니 걱정 마시라구요.”
“내가 봤을 때는 그런 사람이 너일 것 같아서 그래!”
여름이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면서 그녀가 인기 있던 아역배우 출신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연기력은 사실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고 배역만 잘 받는다면 인기를 끄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고,
‘얼굴이 정도껏 이뻐야 말이지….’
또 한편으로는 웬만한 연예인을 옆에 두어도 여름이의 얼굴은 빛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또 쓰다듬고 있는 반질반질한 자신의 머리처럼 말이다.
***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용인 FC의 유건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1살이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다, 유건아. 대표팀은 처음이지?”
“연령 별 대표팀에 차출된 적은 있지만 경기를 직접 뛰어본 적은 없습니다!”
서울집 청소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나서, 마침내 유건은 대표팀 합숙이 진행되는 선수촌에 도착했다.
24살 이하의 선수들과 세 명의 와일드카드로 구성되는 올림픽 대표팀.
보통 22~24살의 나이로 리그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신예들이 포진되는 라인업 사이 21살의 막내가 등장했다.
김진용 감독의 주도하에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통성명의 시간을 가지는 선수단.
“내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을 맡게 된 김수영이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막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인 대표팀 발탁이 처음이었던 유건은 어린 시절 연령대 대표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뻣뻣하게 서 있었다.
김진용 감독이 긴장을 한번 가볍게 풀어주긴 했지만, 어떤 신입사원이 긴장을 한 번에 풀겠는가.
대표팀의 주장이자 지난 시즌 EPL 번리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던 김수영이 그 긴장을 한 번 더 풀어준다.
“별튜브 잘 보고 있다 막내야. 용인 FC 분위기 되게 좋아 보이던데?”
“감독님이나 다른 선배님들이 항상 좋은 분위기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래, 다음 시즌에는 1부리그에서 만나보자.”
“꼭 그러고 싶습니다!”
그 후에도 축따의 별튜브를 본 선배들이 하나둘씩 말을 걸어왔고, 입바른 소리로 첫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어디를 가게 되면 좋게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크크, 별튜버가 대표팀이라니! 어차피 같은 자리라 주전으로는 못 뛸 텐데 벤치에서 많이 배워가라. 뭐 사실 본다고 배워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초면에 이렇게 시비를 걸 줄은 몰랐는데.’
실력과 인성이 반비례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은 들어보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처음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자리에서 저따위 말을 할 줄 말이다.
사우스햄튼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지난 시즌 2골 6어시스트를 기록한 유망주.
중위권 팀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축구 유망주 중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대표팀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 강병훈이었다.
“별튜브는 축구에 지장 가지 않는 선에서 꾸준하게 팬들과의 소통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안 드시도록 한 발 더 뛰고 조금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들이받고 싶은 유건이었지만, 강병훈과 자신 사이에는 많은 조건들이 달랐다.
당장 오늘 시비가 싸움으로 번진다 하더라도 기사가 나면 댓글에는 자신의 욕이 대부분일 게 분명했기에.
“열심히 뛰어도 2부 수준이면 말 다 한 거 아냐? 그냥 벤치 달굴 사람 필요한 거니까 거기서 잘 지켜보라고! 그 자리에서 내 플레이를 배우면 혹시 1부로 올라갈 수 있을지 알아?
“…열심히 보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더 도발하는 강병훈이었지만, 그냥 무시한다.
이 정도는 한국 FC에서 수없이 들었던 비난과 비교해보면 새 발의 피 정도였기에.
웃어넘기며 막내답게 열심히 보고 배우겠다며 대충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 짓는 유건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가.
더러워서 피하지.
“병훈이 너 인마 그런 습관 좀 버리라니까. 너 잘하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적당히 하지?”
다행히도 주장인 김수영이 중재를 해줬고, 나머지 대표팀 멤버들과도 인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별튜브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 안 좋았지만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축구는 필드 위에서 하는 스포츠였으니까 말이다.
“오늘부터 간단한 훈련을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이란, 일본과의 평가전이 예정되어 있다.”
“유건이도 그렇고 새로운 멤버들은 최종 엔트리에 들기 위해 평가를 하는 무대니까, 다들 확실히 보여주도록.”
“병훈이도 팀원과의 불화가 만약 경기 중에도 나온다면 어떻게 될지는 알아서 생각하고.”
자리를 마무리하는 김진용 감독의 말.
그의 말이 맞았다.
유건으로서도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기보다는 경기에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면 되는 것.
‘…루이스, 형이 너 보기 위해 열심히 해보마.’
최종 엔트리에 들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다짐해보는 유건이었다.
이미 멀리서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고 있을 자신의 어린 시절 팀 동료이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
“건아!”
“조금 더 빠짝 붙어!”
“여기 비었다!”
“바로 붙는다. 다시 리턴!”
시작된 대표팀의 훈련에서 유건이 느낀 것은 확실히 개개인의 실력이 용인 FC와는 다르다는 점.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패스가 들어오고, 동료들이 미리 움직인다.
동료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들을 이끄는 마에스트로가 되어 가고 있는 유건에게 조금 더 적합한 환경이었다.
개인플레이를 추구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말이다.
“거기서는 슛 나가도 돼!”
“마무리 지었어야지!”
유건에게 들리는 말들도 달랐다.
K리그2를 지배하고 있는 용인 FC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전방 공격수 3인에게 향하는 마지막 패스를 뿌리는 유건.
대표팀은 확실한 상황이 생기면 마지막 선택지를 패스보다는 골을 못 넣더라도 슈팅을 통해 마무리 짓기를 원했다.
패스라는 선택지가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건 며칠째 훈련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날이 갈수록 슈팅 빈도는 많아지고 있었다.
“헤딩 같이 떠줘!”
그리고 조금 더 많은 활동량과 압박을 요구했다.
좋은 자리에서 공격이 오길 기다리는 것을 추구하는 리그 경기였다면, 여기서는 직접 공을 뺏으러 달려들기를 원했다.
이런 사소한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유건이었다.
“유건! 아까 일대일 상황에서 왜 패스를 선택했지?”
“앞에 골키퍼가 이미 나오고 있었고, 옆으로 동료가 뛰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골을 넣고 싶었습니다.”
“짜식, 역시 보고 준 거 맞네. 그래도 공격수 출신인데 골대 앞에서 욕심 자제할 줄도 알고 대단한데?”
김진용 감독의 스타일은 경기 중에 있었던 몇몇 장면들을 선수들과의 일대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감독이었다.
자신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조금 더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그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 유건이 고른 선택지는 다행히도 그의 마음에 들었기에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훈련장에서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프리미어리거답게 강병훈과 김수영이었지만.
유건이 한창 대표팀에 적응해가고 있을 그 시각, 여름도 마침내 서울에 있는 유건의 집에 짐을 챙겨 들어갔다.
‘…역시 엄청 깔끔하지는 않구나.’
남자 혼자 살던 집에 처음 와본 여름은 ‘과연 집은 깨끗하게 해놓고 살까?’, ‘남자 집은 어떤 냄새가 날까?’ 등 많은 궁금증이 있었는데,
역시나 유건의 스타일은 깔끔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대표팀 합숙을 가기 전에 열심히 치운 건데도 말이다.
‘후아, 이제 대충 짐 정리만 하고 쉬어볼까!’
눈에 보이는 먼지와 약간 끈적이는 느낌이 드는 바닥을 한 번 닦고 나서야 거실에 있는 소파에 털썩 앉는 여름.
습관적으로 별튜브의 댓글을 보러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제 자신의 별튜브보다 유건의 별튜브를 먼저 들어가서 확인하는 여름이었는데,
오늘따라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 축따도 부족한 게 하나는 있을 거임. 여자를 대할 때 센스라든가 집을 엄청 더럽게 쓴다든가
└ 축따는귀여워 : ㄴㄴ 축따 여자 대할 때 엄청 자상할 듯. 집도 깔끔할 거임! 관상학적으로 그래 보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반박 댓글을 다는 여름이었다.
‘우씨 이게 어디서 우리 오빠를!’
훈련하고 있을 유건을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