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91화 (191/208)

191화. 이게 첫 번째다

“스미스가 나올 때마다 너무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클락도 이제 카마메니가 부상 당하더라도 충분히 그 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 같아.”

“묵묵히 제 역할을 해주고 있던 콜마저 지난 시즌부터 솔직히 발전하고 있어. 쿠아바가 많이 자극이 된 것 같은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홈팬들은 시작할 때만 해도 챔피언스리그에 주전으로 출전하는 마세코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로테이션 돌린 선발 라인업에 걱정을 표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C밀란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고 리드하는 상태로 마친 전반전이 끝난 이후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출전한 선수들의 경기력을 평가하면서 구단의 밝은 미래를 꿈꾸는 그들이었다.

“카마, 너 주전으로 뛰고 싶으면 진짜 계속 잘해야겠는데? 클락 폼이 장난 아니야.”

“자코는 어떻고 이자식아, 너도 안전하진 않다고 캐시!”

로테이션 멤버들의 좋은 경기력을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카마메니와 캐시도 뿌듯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괜히 서로를 놀려본다.

지금 이 순간은 확실하게 자신들이 주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프로의 세계, 그중에서도 프리미어리그는 냉혹한 곳이었다.

심지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개인 폼이 조금만 떨어지더라도 벤치에 앉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각 팀 감독의 성향상 개인 실력보다 전술에 얼마나 녹아드는지를 우선순위로 두기도 하지만 아르테타는 두 가지 모두를 요구했다.

그렇다 보니 어린 선수들 중 리그에서 손꼽히는 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마냥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항상 그런 장면을 지켜봐 왔었으니까.

‘확실히 이제 더블 스쿼드에 가까워지고 있어.’

하지만 후안 루이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유건은 사실 주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입단했을 때보다 두 시즌만에 스쿼드를 완전히 뒤집어엎으며 강해지게 만든 아르테타를 존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대다수가 직접 리빌딩을 한다면 ‘누구는 팔아버리고, 누구는 영입해야지’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팀에 대해 한 번쯤은 불만을 토한다.

그러나 말로는 쉬워 보여도 아르테타가 만들고 바꿔놓은 아스날의 리빌딩은 밤낮없이 그가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구단 감독의 역할을 즐기는 사커 매니저란 게임에서도 이 정도로 단기간에 리빌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수준이기도 하고 말이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아스날과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은 총 5:0의 스코어로 종료되었다.

도르트문트에게 네 골을 몰아치면서 승리를 거두었던 레알 마드리드를 뛰어넘어 가장 점수 차이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4강에 진출하면서 공식 경기 결과를 통해 아스날이 세계 최고 수준의 팀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했고.

***

“다들 리그컵은 떨어지더라도 ‘겨우 리그컵일 뿐이야’, ‘다른 대회에서 잘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면서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다 개소리다. 떨어져도 되는 대회가 있으면 그곳에 출전하는 이유가 없다.”

“나는 며칠 뒤에 웸블리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 패배하고 싶은 마음이 단 1도 없다.”

엄청난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약간의 축하를 즐기며 휴식을 취할 법도 한데, 아스날에 소속된 사람 중 단 한 명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 앞서서 끊임없는 도전과 승리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아르테타가 있었기에.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하는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위해 세션을 시작하기 전 회복훈련에서 또 한 번 집중을 요구했다.

“공격진은 기회가 날 때마다 최대한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골 승부보다는 골이 많이 터질 것을 예측해라”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보통 이렇게 일정이 바쁜 와중에는 회복 훈련을 오전에 진행하고 오후에는 간단하게 몸을 풀고 분석실에 모인다.

바로 다가오는 경기를 위한 세션이 다음날부터 진행되다 보니 그 전에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갈지와 상대 핵심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분석하는 시간이었다.

포백 보호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플레이 자체를 이끌어가는 토마스 에르난데스를 필두로 이번 시즌 강력해진 수비 라인까지.

리그 경기에서 아스날 공격진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며 무승부로 끌어간 그들을 생각하며 유건을 비롯한 공격 쪽의 선수들에게는 정확하게 득점할 것을 요구하는 아르테타.

“수비진은 당연히 클린 시트를 위해서 노력해라. 무실점으로 승리하는게 가장 완벽하니 이번에는 지역 방어 형태로 움직인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들의 공격진은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치고 들어온다기보다는 개인적 능력을 활용한 공격이 더 많았기에 맨투맨보다는 촘촘한 진형으로 수비를 하려는 아르테타였다.

아예 돌파를 시도하지 못하게 공간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중거리 슈팅을 보다 많이 활용하겠지만 공간을 내주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볼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이후에 이어지는 브리핑은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부분.

아스날 선수단이 매 경기 신기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들어맞는 아르테타의 경기 전 예상들.

선수 시절에도 축구를 보는 눈 자체가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를 받는 그였었는데 감독이 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한 수 앞을 읽는다는 게 맞는 표현일 정도로 예측이 뛰어났다.

‘미드필더를 지배하면⋯’

‘내 역할이 중요하다.’

‘더 많이 득점하는 팀이 어디냐에 따라⋯’

그런 분석 세션을 끝마칠 때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음 경기를 생각하며 자신의 역할을 떠올린다.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아르테타와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그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 정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번 시즌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아스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다들 늦지 않게 클락의 집으로 모일 수 있도록!”

오늘 예정된 모든 세션이 종료되자마자 빠르게 마무리를 준비하는 아르테타와 코치진이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곧바로 퇴근을 위해 집으로 달려갔을 선수들도 분주하게 다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장소에 없는 한 사람.

클락의 둘째가 태어난 지 일 년이 지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미리 초대를 해놓은 파티.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 신이시여! 스미스 너 저번에 클락 파티 때 못 왔지? 넥타이 당장 벗어라!”

“크크, 왜 말해주냐 멍청아! 너처럼 당하고 나면 우리가 알려줄 텐데 말이야!”

모든 것을 정리하고 클락의 집에 하나둘 도착하고 있는 그 시각, 유건과 쿠아바는 캐시와 카마메니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갑내기인 그들은 비슷하게 도착해서 함께 들어가자고 얘기를 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스미스가 셋업 수트에 넥타이를 매고 오자 단박에 달려가서 큰 소리로 외치는 쿠아바.

옆에서 큭큭 웃으며 그에게만 들리도록 만류하는 유건이었다.

‘넥타이를 왜⋯? 훗, 내 패션이 또 너무 멋졌나 본데 쿠아바 자식.’

“너무 잘 어울리냐?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라, 패션 테러리스트 자식아!”

그리고 그 선량한 의도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선수단 내에서 평소에 자주 옷을 못 입는다고 지적받는 쿠아바가 자신의 스타일을 괜히 부러워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스미스였으니까.

그가 그렇게 받아들인 이상 오늘 벌어질 일들을 대비할 수 없었다.

클락의 첫째가 넥타이만 보면 환장해서 지난 파티 때 쿠아바의 넥타이를 잡고 한 시간이 넘게 잡고 있었다는 그 사실을 몰랐던 상황이었기에.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 30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많은 팬분들께서 경기를 기다려주셨습니다!”

“이번 시즌 커뮤니티 실드와 슈퍼컵을 제외하면 정규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에 도전하는 거죠? 게다가 지난 시즌에는 카라바오컵에서 일찍 떨어지기도 했었구요!”

“맞습니다! 과연 오늘도 유건 선수의 결승전 전승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이 이어질지도 궁금해집니다!”

“사실 아스날이 로테이션 없이 베스트 라인업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라인업 상으로는 아스날이 유리해 보입니다!”

“다음 경기에 로테이션을 가져가도 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리그에서 맞붙을 토트넘은 현재 강등권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웸블리에서 펼쳐지는 카라바오컵 결승전.

상대가 상대였기도 하고 지난 시즌 우승을 하지 못한 대회였다 보니 아르테타는 가장 자신 있는 베스트 라인업을 내보냈다.

그런 우승 욕심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 일정상으로도 로테이션 타이밍이 차후에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선발 라인업에 있는 유건의 이름을 보고 안준성과 전지우가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용인 FC시절 FA컵, 헤타페 CF시절 코파 델 레이, 아스날에서의 지난 시즌.

모두 결승전에 진출했을 경우 그는 우승 트로피를 놓치지 않았던 기록이 있으니까.

“좋은 경기 해보자!”

“좋은 경기는 개뿔, 우리가 이길 거다!”

“이 자식은 또 이러네! 아무튼 잘 부탁한다고, 건.”

“그러자고, 둠바 진정하고 경기장에서 보여줘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터널 안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토마스 에르난데스와 얘기를 나누는 유건이 잡혔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중간에 뒤에 있던 둠바가 몸을 살짝 밀며 외치는 것도 잡혔는데 실상은 이런 장면.

맞붙을 때마다 항상 그와 마찰이 있었던 둠바가 그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인 것.

하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에르난데스였고 유건도 침착하게 중재한다.

어차피 경기를 시작하면 모두 날카로워질 게 분명한데 벌써부터 시비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삐이익-!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와서 준비가 된 이후,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려 퍼진다.

유럽 대항전과 리그, 국내 대회 중에서 그나마 가장 덜 중요하다고 평가받기에 떨어지더라도 유스, 로테이션 선수들 경험을 쌓았다고 위안 삼는 경우가 많은 대회.

그러나 오늘은 양 팀 모두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한 카라바오컵의 결승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 시즌에 우승컵을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에 비한다면 카라바오컵은 너무나 소중했으니까.

스윽-!

‘⋯이게 첫 번째다!’

그리고 주장 완장을 끌어 올리며 경기에 집중하는 유건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번 경기가 우승컵을 위해 버릴 수 없는 단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보다는 남은 대회에서도 모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고 있었다.

긍정적인 스타트가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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