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3화 (3/150)

1장 환생[3]

1장 환생[3]

빗자루? 나는 왕삼을 빤히 쳐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 그는 검을 차고 있었다. 그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빗자루는 의외였다.

내가 쳐다보든 말든 왕삼은 내 건물의 앞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뭐하냐?”

나는 가부좌를 풀고 편하게 앉았다. 왕삼은 비질을 멈추지 않았다.

“뭐하긴요. 아침 청소하죠.”

“네가 왜?”

“그야. 제 일이니까요?”

확실히. 비질하는 모양새가 하루 이틀 한 솜씨가 아니었다.

“내 호위무사가 아니었어?”

“호위무사 겸 몸종이죠. 아니 몸종이 먼저였긴 하지만.”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삼은 청소를 이어가면서 덤덤하게 설명해주었다.

“원래 계셨던 무사분이 일 년 전쯤 그만두셨어요. 도련님이 전쟁에서 돌아오시고 나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드시다고.”

덤덤함 속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지켜 줄 가치가 없는 놈을 계속 지키고 있을 순 없었겠지.”

“앗. 그런 뜻이 아니라···.”

“괜찮아. 그게 맞는 거다.”

호위무사는 단순한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지는 일이다. 대신 싸우고 대신 다치고 대신 죽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아무나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왕삼이 빗자루를 검처럼 부여잡고 허공을 때렸다.

“이제는 제가 도련님을 지키겠다고 가주님께 말씀드렸죠. 가주님이 흔쾌히 허락하시고 몸종이었던 제게 무공도 가르쳐주셨어요.”

“무공을?”

솔직히 좀 놀랐다. 한 세가의 가주가 하인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자식을 맡긴다니. 꽤 파격적인 인사였다. 왕삼이 그저 그런 몸종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혹은 나를 지키려는 자가 없었거나.

“물론 수련은 대부분 금검대의 무사님들께서 가끔 봐주는 정도지만.”

왕삼은 빗자루로 검법을 펼치는 흉내를 냈다. 꽤 위협적인 검로였다. 금검대. 유씨세가의 무력 부대인가.

“먼지 날린다.”

내가 일침을 가하자 왕삼이 허우적거리다가 빗자루를 회수해 다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가려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왜. 할 말 있으면 빨리해라.”

“도련님. 혹시···.”

왕삼이 설마설마하는 음성으로 물어왔다.

“무공수련하시는 겁니까?”

“그래.”

“왜요?”

심장이라도 덜컹 내려앉은 건지 왕삼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무공수련을 하는 게 저런 표정을 지을 일인가?

“설마. 아니죠?”

“뭐가 아니야?”

“도련님을 두들겨 팬 놈한테 복수하러 가려고 한다거나···.”

지금의 내가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닌데 복수는 무슨. 게다가 복수는 지난 생에 원 없이 해봤다.

“아무 기억도 안 난다니까.”

도박장에서 시비라도 붙은 건가 싶었기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진짜 낯설긴 하네요. 도련님께서 수련이라니. 이게 몇 년 만인지.”

항상 붙어 지내며 살아왔을 왕삼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새삼 더 실감이 났다. 대체 얼마나 무공과 동떨어져 살았으면.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한 시진 조금 넘게 운기조식을 하고 나니 왕삼이 조식을 가지고 왔다. 썩 푸짐한 밥상이었다. 나는 게걸스레 찬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물렁물렁해진 근육과 균형 잃은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식사 이후에 가볍게 몸을 풀고 인근 뒷산을 뛰어 올라갔다. 내공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중턱쯤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혀왔다.

팔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틈날 때마다 포기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는 과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수련했으니까.

그때를 회상하며 정상에 도착한 나는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다시 체력 단련에 몰두했다. 쉬고 움직이고. 쉬고 움직이고. 쉬고, 다시 산을 뛰어 내려갔다.

마침내 내 방 앞마당으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중천에 떠오른 햇살이 내 전신을 비췄다.

내가 원하던 순간이었다.

일영청심공.

그 이름답게 중천의 햇살 밑에서 운기조식을 하면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크게 상승한다. 햇살이 없는 곳에서도 그 속도는 엄청났지만, 진짜는 바로 이 시간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던 햇빛은 어느새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처럼 내 전신을 넘나들었다. 나는 착실하게 그 모든 기운을 받아들였고 착실하게 단전으로 인도했다.

“도, 도련님. 몸에서 후광이 비쳐요.”

그리 중얼거린 왕삼은 염불이라도 외울 기세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순간 소이겸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주님. 머리라도 깎으면 영락없는 대승려의 모습인데요? 나무아미타불.’

내가 운기조식하는 모습을 보곤 종종 놀려대던 그였다. 한 대 쥐어박으려 주먹을 쥐면 파계의 길을 걷지 말라며 도망을 다녔는데.

다행히 왕삼은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

부웅.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촤악. 이어서 내질러지는 발차기가 바닥을 쓸었고 뒤따라서 휘돌린 몸에선 팔꿈치가 튀어나왔다. 그 상태로 내뻗은 손바닥은 다시 허공을 때렸고 부서진 공간 위에 손가락을 쑤셔 박았다.

“우와.”

보이지 않는 상대를 박살 내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왕삼이 감탄했다.

“그건 대체 무슨 무공이에요? 도련님이 그런 무공을 펼치는 건 처음 보는데.”

그럴 것이다. 지금 내가 펼치고 있는 건 사신무였다. 형식도 초식도 없이 전신이 흉기가 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패도적인 격투술.

내공을 밑바탕으로 탄탄한 근육, 신체의 균형과 유연성이 가미되어 상대의 공격을 흘리기도 부수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숨을 끊어버리는 실용적인 무공.

덕분에 지금 내 몸은 사신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혹사하는 중이었다.

이것 또한 수련의 일종으로 이후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내 신체는 사신무에 걸맞은 신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내가 천영검대 모두에게 사신무를 익히게 한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정천맹의 무공이야.”

한바탕 사신무를 펼쳐 보이고 나서 내가 말했다. 정천맹이란 말에 왕삼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천맹이요?”

“소룡단이었던 시절에 배운 거지.”

왕삼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계속 응시했다. 어딘가 감격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이냐?”

그때 뒤쪽에서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엄예화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상태였다. 그래서 약간 거짓을 보태 둘러댔던 것이고.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왕삼과 같은 얼굴로 나를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로 소룡단 시절 배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던 거야?”

“네. 어머니.”

내가 조금 서툴게 대답했다. 어머니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던 탓이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것이라 믿었다.

“아들.”

그녀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물어왔다.

“왜 다시 무공수련을 하는 거야? 설마 다시 도박장에 다니겠다거나 널 두들겨 팬 놈에게 복수하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그녀의 두 눈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소룡단이었던 과거로 인해 무너져버린 아들이, 지금 그 과거를 받아들이는 와중이었다. 그 계기가 부디 불순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함이었다.

“그냥.”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요. 평범하게 살 겁니다. 떳떳하게. 무가의 자식으로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처음 열흘은 온몸이 부서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병상에서 제대로 회복하지도 않고 수련을 시작한 덕에 그 고통은 더욱 컸다.

하지만 그 정도는 과거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때는 정말 복수심이 아니었다면 버티지도 못했을 정도로 가혹한 나날들이었으니까.

정확히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견줄 수는 있겠다 싶을 만큼 나는 혹독하게 수련했다.

열흘이 지났을 때. 몸이 적응했다. 젊어서 그런가. 아니면 왕삼이 말했던 대로 유진휘의 뛰어난 무재 덕분인가.

나는 만족하지 않고 수련량을 두 배로 늘렸다. 지켜보는 왕삼은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의원을 부르자고 했다.

어머니는 이건 당신이 바라던 평범한 수련이 아니라며 나를 말렸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나를 지켜봐 주셨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나는 무공수련에 흠뻑 빠져들었다. 복수를 위해 수련할 때는 괴로움을 이겨내야 했다. 이를 악물어야 했다. 복수심과 살기에 흠뻑 취해 버텨야 했다.

이번엔 달랐다. 이를 악물고 괴로움을 이겨내는 건 같았지만 지금은 성취감을 느꼈고 거기서 비롯된 즐거움이 나를 고무시켰다.

그래. 무공을 수련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워지는 그런 기분. 그에 맞춰 내 몸도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

내가 환생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도련님!”

왕삼이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새로운 맹주님이 취임하셨대요!”

“새로운 맹주?”

“네. 다들 난리가 났어요.”

그렇겠지. 정마대전이 끝나고 정천맹은 강호 제일의 단일세력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런 세력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으니 그야말로 강호의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죽던 날 만났던 영감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신 백도천. 그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영감님 탓이 아니라니까요.’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천마를 죽이는 건 내 일생일대의 염원이었으니까.

‘내가 갔어야 했다. 그곳에 널 보내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영감님도 그렇게 말했다. 그 또한 그의 진심이었다. 나는 그가 비통해하는 모습을 그날 처음 봤다. 그래서인지 그의 의지를 말릴 수 없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그 한마디를 내뱉는 것뿐이었다. 그의 성격상 앞으론 어디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검이나 수련하며 지낼 터.

그 모습을 떠올린 순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더 강해진다고?

강호인들은 천마를 죽인 나를 보고 천하제일인이라고 떠들어댔다. 소이겸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황당해하던 것도 영감 때문이었다.

검신 위에 서 있는 나를, 나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순간 뭔지 모를 열망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걸 상상해봤기 때문일까. 검신 위에 나. 진정한 천하제일인.

‘나쁘지 않은데.’

평범한 삶에서 조금 벗어나는 길일지라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복수심이 사라진 자리에 호승심이 깃들려 하고 있을 때였다.

“참. 도련님. 오늘 중요한 손님도 오신다고 합니다.”

“중요한 손님?”

왕삼의 표정이 진중해진 걸 보니 우리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는 손님인 듯싶었다. 그 정도면 나도 예외는 아닐 테고.

“누가 오는데?”

“성화상단의 상단주님이요.”

“성화상단?”

“상단주님의 금지옥엽이신 종소저도 함께 오신다고 들었는데. 기억나시죠? 어릴 적엔 두 분이 정말 친하셨었는데.”

기억날 리가.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왕삼은 침까지 튀겨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