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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7화 (7/150)

3장 시비[1]

3장 시비[1]

고작 며칠을 밖에 있다 돌아온 것뿐인데 집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나 싶었다.

두 분은 정문 앞까지 나와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휘야!”

나와 왕삼을 발견한 어머니가 부산스럽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이런 따스한 느낌이 어색했던지라 나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은? 몸은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그녀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걱정을 쏟아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없을 정도로 질문이 쏟아져나왔다.

“다친 곳 없이 멀쩡해요.”

나는 어머니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아무렇지 않게 웃어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이번엔 아버지가 나를 살폈다.

내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표정을 보니 내가 복귀하기 전에 거악부에 대한 소식이 먼저 전해진 것 같았다.

“상행에 함께했던 상단의 무인들이 다들 대단한 고수였습니다.”

“그래도 그자가 백대악인에 속했었던 악명높은 자라고 들었다.”

“화설이가 먼저 상대하던 걸 제가 이어받아 싸웠을 뿐입니다.”

“그랬구나.”

사실을 토대로 차분히 둘러대자 아버지가 표정을 풀었다. 그의 얼굴엔 이제 나를 향한 대견함과 뿌듯함이 자리 잡았다.

내 기준에 거악부는 사실 별것 아닌 놈이었다. 그러나 두 분의 자식인 유진휘의 기준으로 거악부를 쓰러트렸다는 건 대단한 업적이었을 것이다.

“그자의 현상금이 무려 은자 사백 냥이었습니다, 가주님.”

왕삼이 분위기를 읽고 손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놀라고 아버지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평범한 무가의 자식으로서 내디딘 첫걸음은 이 정도면 적당히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고생 많았다. 얼른 들어가자. 돌아왔으니 푹 쉬어야지.”

“네.”

나는 왕삼과 함께 두 분의 뒤를 따랐다. 이어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불러세웠다.

“진휘는 잠깐 집무실에 들렀다 가거라.”

“네.”

따로 할 말이라도 있는 거 같았기에 나는 묵묵히 그의 집무실로 함께 걸었다. 생각해보니 환생한 이후 수련한답시고 내 건물과 뒷산에만 처박혀있었던 지라 집무실은 처음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뭔지 모를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정도여서 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는 그런 탁자의 뒤편으로 걸어가 잠시 무언갈 꺼내는가 싶더니 나를 불렀다. 내가 탁자 앞으로 다가갔고 그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일견하기에도 명검이라는 게 느껴졌다.

“청로검이다. 기억하느냐?”

청로검(靑路劍). 기억할 리가 없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아버지의 기세 또한 진중해서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했고.

“유씨세가의 소가주가 지녀야 할 검이자, 너의 검이기도 하며 네가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검이기도 하지.”

이런 명검을 창고에? 그래, 어디 공방에다 팔아먹지 않은 게 어디냐. 나는 대답 대신 청로검을 응시했다. 아버지도 그런 나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진휘야.”

“네.”

“나는 네가 다시 청로검을 쥐었으면 한다.”

“그럴게요.”

“다시 버리지도 않았으면 한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나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버지도 그걸 느꼈는지 청로검을 내게 넘겨주었다.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명검이라는 건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무인에게 있어서 명검이란 무공과 내공 다음으로 중요한 조건이었다.

엄청난 고수들은 명검이든 싸구려 철검이든 구애받지 않는다고? 그딴 말을 내뱉는 놈들은 뒤통수를 후려쳐야 한다.

무려 검신 백도천이 했던 말이다. 나 또한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고.

내가 청로검을 허리춤에 메는 사이 아버지가 다음 용건을 꺼냈다.

“며칠 쉬다가 시간을 내서 성화상단에 가보거라.”

“또요?”

“네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구나. 보답도 따로 직접 해주고 싶다고 하더군. 자신이 직접 본가로 와야 하는 게 맞지만 처리할 일이 많아서 이해를 바란다고 하더라.”

고맙다는 말만 몇 번을 되뇌던 종화설을 보면 종승재의 성정도 짐작이 갔다. 상단의 주인이 직접 보답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는데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럴게요.”

“그래. 너무 오래 붙잡아뒀구나. 가서 쉬거라.”

“네.”

나는 대답과 함께 조용히 물러났다. 내가 문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며칠 쉬었다가 가는 거 아니었어요?”

나와 함께 저잣거리를 걷던 왕삼이 의아해했다. 며칠 뒤에 종승재의 초대로 다시 한번 성화상단에 갈 거라고 얘기해두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음날 바로 움직였다. 딱히 피로하지도 않았고 이왕 가기로 했으니 빠르게 다녀와서 다시 수련에 매진하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나 또한 종승재에게 물어볼 것이 생겼다.

‘산서 삼대상단 중 하나인데 영약 정도는 구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과거에 복용했던 수준의 영약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천일백야검법을 익히기 위한 최소한의 내공.

현재 나의 내공이 십 년을 넘어서 십일 년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도 말고 십 년만 더 늘릴 수 있을 수준의 영약이면 충분했다.

구할 수 있다고만 한다면 그에 필요한 돈 정도는 어떻게든 마련해봐야지.

이십 년 내공이면 운류검법은 대성에 이를 것이고 천일백야검법의 일초식과 이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만 되어도 거악부 정도는 열 명이 와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약관인 내 나이를 고려해봤을 땐 놀라운 수준이었다.

나는 옅은 기대감과 함께 계속 이동했다. 그러다가 왕삼과 함께 식사를 위해 객잔에 들렀다.

아직 몸을 만들고 체력을 기르는 데 신경을 써야 했던 터라 식사도 그만큼 확실하게 챙겨줘야 했다.

“도련님 식성이 날이 갈수록 대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왕삼은 내가 주문한 음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육류 위주에 채소 몇 가지를 곁들인 음식이 족히 삼 인분은 넘어갔으니 그럴 만하지.

“하긴. 도련님처럼 수련하려면 이렇게 먹어도 모자랄 것 같지만요.”

“너도 같이하자니까?”

“저, 저요?”

왕삼이 지난날 내가 수련하던 모습을 떠올리더니 기겁했다.

“그랬다간 도련님을 지켜드리긴커녕 제가 먼저 하직하겠는데요.”

“강해지고 싶다며?”

“...네.”

상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왕삼은 그렇게 말했었다. 내가 거악부와 싸우고 있었을 때 지독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도련님이 거악부였나. 그놈을 압도적으로 이기셨잖아요.”

“그랬지.”

“그때 정말 기뻤거든요.”

“그러냐?”

“근데 그 기쁨이, 도련님이 이겨서이기도 하지만 도련님이 이겨서, 제가 나서지 않아도 돼서 기뻤던 부분도 있었어요. 도련님의 호위무사가요.”

나는 아무 말 않고 음식을 먹었다. 왕삼도 맞은편에서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왕삼은 아이처럼 밝으면서도 내면엔 어른스러움이 가득한 녀석이었다.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인정할 수 있다는 점부터가 그랬다. 이런 녀석이었으니 아버지도 내 호위를 맡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우린 한동안 말없이 음식을 비웠다. 그러길 한참.

“어?”

객잔으로 들어선 손님 하나가 나를 보곤 눈을 치떴다.

“이게 누구야?”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우리가 앉은 자리로 다가서는 얼굴엔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반가움. 그 뒤에 숨겨진 뚜렷한 악의와 경멸. 나는 의아함에 그를 바라봤고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다.

“여기서 뭐 하냐?”

청년은 히죽거리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면 모르나?”

밥 먹는데 왜 면상을 들이밀고 지랄이야. 그 말까지 내뱉으려 했는데 왕삼의 표정을 보고 참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왕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때 청년이 다시 이죽거렸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나한테 처맞고 돌아가서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놈이 여기서 뭐 하냐고 묻는 거잖아.”

처맞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환생했던 날, 병상에 누워있던 게 눈앞에 있는 청년 때문이었단 걸.

내가 무공수련을 시작할 때 왕삼과 어머니가 복수 때문에 그러는 거냐며 걱정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근데 왜? 눈앞에서 건들거리고 있는 청년은 무공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종화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딱 그녀 정도의 수준?

실력이 아니라면.

나는 청년의 뒤로 그를 보필하듯 서 있는 세 명의 무사들을 바라봤다. 기세가 청년과는 남달랐다. 저 정도의 무사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걸 보면 역시나 배경이 썩 대단한가보다 싶었다.

“가던 길 가라.”

쯧. 나는 혀를 차면서 마저 식사에 집중했다. 분위기를 보니 우리 가문과도 어떻게든 얽혀있을 것 같았다.

내가 신경을 끄는 모습이 꼬리를 내린 것처럼 보였는지 청년은 흡족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왕삼에게로 향했다.

“이 종놈 새끼야. 너는 인사 안 하냐?”

왕삼은 다급히 인사했다.

“마종태 공자님을 뵙습니다.”

“오냐.”

마종태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이쯤 했으면 물러나겠지 싶었으나 그는 이미 이 상황에 취해 있었다.

“근데 종놈 새끼가 건방지게 웬 검을 차고 있지?”

“이, 이건···.”

“이건 뭐? 대답해. 콱 팔 한 짝 베어버리기 전에.”

마종태가 자신의 검 손잡이에 손까지 가져다 대며 경고했다.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왕삼은 충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하.”

그래서 나는 웃었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됐다.

“웃어?”

마종태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왕삼에게 물었다.

“왕삼아.”

“네, 도련님.”

“지금 네가 두려운 게 저 새끼 때문이야?”

“...아닙니다.”

“그러면?”

“...도련님이 나설까 봐요. 아니죠? 참으실 거죠?”

그래.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역시 넌 어른스럽게 상황을 다 꿰뚫고 있었구나. 하지만 내가 어른스럽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는 마종태를 지나쳐 그의 뒤에 서 있던 무사들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에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종놈 새끼들은 왜 인사 안 하지?”

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이 눈치를 살피며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대답해. 콱 팔 한 짝 부러트려 버리기 전에.”

내가 경고하자 벙쪄 있던 마종태가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놈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겁대가리를 상실했어? 다시 한번 그때처럼 처맞아야 정신을···.”

하지만 놈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내가 내 어깨에 올라온 팔을 슬쩍 잡아 휘돌려 꺾은 뒤 무릎으로 찍어버렸으니까.

“끄아악!”

마종태는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고통에 울부짖었다. 나는 그런 놈을 바라보며 웃었다.

“종태야. 너한테 물어본 거였어.”

나는 웃고 있었지만, 나를 제외한 이들은 아무도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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