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8화 (8/150)

3장 시비[2]

3장 시비[2]

“이 개새끼야!”

마종태가 고통을 이기려 발악하듯 울부짖었다. 팔 하나가 부러지긴 했지만, 놈의 기세는 포악했고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놈은 내게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도 내 기세를 읽었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숨기지 않았으니까.

“소문주님! 괜찮으십니까?”

마종태의 수하 중 하나가 부축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마종태는 거칠게 뿌리친 뒤 고함을 내질렀다.

“뭐해! 저 새끼 당장 죽여버리지 않고!”

마종태의 명령에 수하 셋 중 두 명이 나를 노려봤다.

챙챙! 두 명 모두 검을 뽑았고 왕삼도 내 옆에서 마주 검을 뽑아 쥐었다. 한바탕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그들 또한 마종태처럼 선뜻 덤벼들지 못했다.

“보는 눈이 많지?”

내가 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냈다. 확실히, 객잔의 모든 이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저들 중 반 이상은 마종태를 알 것이고 나를 알 것이다. 그런 마종태가 나와 왕삼에게 도 넘는 시비를 거는 것을 목격했고 참지 못한 내가 마종태의 팔을 부러트리는 것을 봤다.

이런 상황에서 마종태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다? 가뜩이나 내 쪽으로 기울어진 민심이 완전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검 안 집어넣어?”

내가 툭툭 청로검의 손잡이를 두드렸다. 마종태의 수하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객잔 손님들의 시선도 시선이고 내 기세를 보아 자신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은 표정이었다.

스르릉! 결국 그들은 내 말대로 검을 집어넣고 한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소문주님. 지금은 이만 물러나시는 게···.”

“뭐라는 거야, 이 새끼야. 너부터 죽고 싶어?”

“소문주님, 부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수하들의 설득에 마종태는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지나칠 때마다 객잔 손님들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객잔을 한 바퀴 훑어본 마종태는 다시 나를 노려봤다.

“...너. 밤길 조심해라. 어느 날 네 뒤통수에 칼이 꽂히면 난 줄 알고.”

놈이 살기로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경고를 날렸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병신. 그 한마디를 나는 소리 없이 내뱉었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입 모양으로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똑똑히 그리고 천천히.

내 도발이 꽤 먹혀들었는지 마종태의 눈이 뒤집혔다. 놈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검을 뽑으면서 몸을 날렸다.

“죽어-!”

내공을 한가득 끌어올린 듯 짓쳐들어오는 속도가 빛살처럼 빨랐다. 그런 놈의 검 끝이 노리는 곳은 내 심장.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남들 눈에는 빛살처럼 보였을 놈의 일격이 내게는 선명했기 때문에 슬쩍 몸을 비틀어 검을 흘려보냈다. 자연스레 검을 쥔 놈의 팔이 내 겨드랑이 사이에 자리 잡았다.

나는 그 팔을 휘감은 다음 있는 힘껏 비틀어 꺾었다.

콰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크아아악!”

마종태가 남은 한쪽 팔마저 부러진 고통에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여전히 그를 붙잡아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놈의 다리를 후려쳐 무릎 꿇렸다. 그런 다음엔 놈의 후방으로 부드럽게 선회하여 머리와 턱을 양팔로 움켜쥐었다. 이대로 힘주어 꺾기만 하면 놈은 그대로 절명···.

“도련님!”

순간 왕삼의 외침이 나를 일깨웠다. 나도 모르게 사신무의 연속 동작들이 습관처럼 이어졌다. 과거의 내가 수천 번은 펼쳐봤던 동작이었다.

나는 내 품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마종태를 내려다보다가 슬쩍 풀어주었다. 목을 꺾는 대신 놈의 뒤통수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직!

안면이 뭉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다가 기절이라도 한 듯 뻗어버린 마종태를 걷어찼다.

“데리고 꺼져.”

수하들 곁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놈을 일별한 뒤엔 시선을 거뒀다.

그냥 죽여버렸어도 내게는 명분이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복잡해지는 부분도 분명 생길 테니 이 정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어서 나는 멀찌감치 피해 있는 객잔 주인을 찾아 은자 한 냥을 쥐여주었다. 음식값을 포함해 소란을 피운 대가였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객잔 주인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철저히 보는 눈을 신경 쓴 행동이었다.

이번 소란이 소문이 되어 퍼져나갈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귀에도 들어갈 텐데 조금이라도 내게 더 좋은 쪽으로 소문이 퍼지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을 마치는 사이 마종태와 놈의 수하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덤덤하게 내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마저 이어갔다. 왕삼은 무슨 심정인지 모를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마공자를 저렇게 패버려도요. 마협문에서 문제 삼지 않을까요?”

마협문(馬俠門).

마종태 같은 놈이 있는 문파치곤 협이라는 말이 들어간 게 거슬리긴 하지만 마협문은 최근 기세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이곳 산서에 있는 무가와 문파 중에선 최상위를 다투는 문파. 유씨세가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위권 정도.

“그런 문파의 소문주잖아요. 전쟁이라도 벌이면 어쩌죠?”

왕삼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에 담긴 음식을 삼킨 뒤 그럴 리 없다고 못 박았다.

“고작해야 애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야. 저번에 내가 두들겨 맞았을 때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그건 그렇죠.”

“그때 일도 있고. 오늘은 명백히 마종태가 시비를 걸어서 상대해준 것뿐이잖아. 지켜본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전쟁이란 건 절대 쉽게 벌어지지 않아.”

내 말에 왕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객잔의 대부분 사람이 우리를 주제로 속 시원한 싸움이었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왕삼의 시선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의 표정은 다소 풀어진 상태였다.

“사실 저도 그 자식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긴 했어요.”

“하하.”

그렇겠지. 버릇없는 놈들은 원래 매가 약이니까. 나는 왕삼과 함께 웃으며 식사를 마무리한 뒤 다시 성화상단으로 출발했다.

*

나는 성화상단에 도착해 접견실에서 종승재를 기다렸다. 이때까지도 나는 그가 내어줄 보상과 관련해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오직 영약을 향해 있었다. 성화상단을 통해 영약을 구매할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접견실 문이 열리고 종승재가 나타났다. 그는 일전에 보여주었던 호감 가득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다음은 예상대로 거악부를 쓰러트린 것에 대한 찬사와 이번 상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가 이어졌다.

끝으로는 종화설과 상단의 무인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건 전부 내 덕이라며 부담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나는 짐짓 겸손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종승재가 자신이 들고 온 목함을 내 앞에 들이밀고 그 목함을 여는 순간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건?”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일세.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해놓고 그런 상황에 빠지게 만든 잘못도 있고.”

종승재가 무어라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함 안에 들어있는 영약 때문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영약이라니.

“...그리고 사실 이건 자네 아버지가 부탁한 물건이기도 하네. 방황을 끝내고 다시 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자식에게 영약이라도 하나 먹이고 싶다며 값도 제대로 치렀어.”

아버지가? 내가 깜짝 놀라자 종승재가 씩 미소 지었다.

“물론 그 값보다 더욱 비싼 물건이네. 구하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자네가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무려 한 상단의 주인인 그가 장담하는 물건이다. 나는 영약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칠엽설삼이라고, 북해 쪽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영약인데 듣기로는 내공을 십 오 년 정도 늘려준다고 하더군.”

칠엽설삼(七葉雪蔘).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약이었다. 내공을 십오 년을 넘어 이십 년까지도 늘려주는 영약.

물론 복용자의 심법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지만 내가 익힌 일영청심공이면 영약의 모든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않고 진심을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자네가 이렇게 기뻐해 주니 내가 다 뿌듯해. 하하”

*

“엄청난 보물이라도 들었나 보죠? 근래 본 도련님 표정 중 가장 밝은 모습인데요.”

가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왕삼은 내가 들고 있는 목함에 관심을 가졌다. 거악부의 현상금으로 은자 사백 냥을 받았을 때도 이러진 않았다면서.

“그러냐?”

나는 머쓱하게 헛기침했다. 너무 티를 냈나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왕삼의 말대로 오늘 나는 환생한 이후 가장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이런 감정은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과거엔, 무공을 익히고 성장하는 데 있어서 복수에 초점을 뒀다.

영약을 먹고 내공이 늘어났을 때도 벽을 뛰어넘어 경지가 올라섰을 때도 이제 복수에 한 걸음 더 다가섰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삶은 달랐다. 강해질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순수한 열망이 피어올랐고 심장이 뛰었다. 하루라도 빨리 과거의 내 경지를 되찾고 싶었고 그 너머의 경지에 들어서고 싶었다.

‘가능할까?’

예전의 나는 천마와 검신 백도천, 그들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천하제일인의 가까운 무인이라 평가받던 자들.

비록 내가 천마를 죽였다고 하지만 결국 나 또한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나 대신 검신이 천마를 상대했다고 가정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셋의 경지는 큰 차이가 없었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차이야 있긴 하겠지만. 그런 우리가 넘보지 못한 경지가 존재했다.

절정의 경계를 부숴야 도달할 수 있는 인극(人極). 그 이후의 지극(地極)을 넘어선 천극(天極)의 경지.

천극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알려진 무인들은 기나긴 강호 역사 속에서도 몇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조차 흔히 대종사라 불리는 먼 과거의 인물들뿐.

‘은퇴했다고 했으니 영감도 그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려나.’

나는 맹주직에서 물러났다던 검신 백도천을 떠올렸다. 지극의 경지에서 정체된 지 삼십 년은 되었다고 했었나. 정천맹주가 되어 수련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지낸 탓도 있었을 테니.

만약 그가 예상대로 어딘가에 은거한 채 수련에 몰두하고 있다면 현 강호에서 천극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검신이 될 것이다. 물론 그다음은 바로 나였다.

“왕삼아.”

“네”

“너 먼저 본가로 돌아가 있어라.”

나는 가시거리에 들어오기 시작한 유씨세가의 건물을 바라봤다.

“어디 들를 곳이라도 있으세요? 그럼 저도···.”

“아냐. 혼자서 수련 좀 하려고 그런다. 맨날 가던 뒷산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언제쯤 오시는데요?”

“며칠 걸리겠지?”

나는 목함에 들어있는 칠엽설삼을 염두에 두었다. 북해에서도 잎을 피우는 양기 가득한 영약. 내가 익힌 일영청심공과 상성도 좋고 칠엽설삼이 지닌 이십 년의 내공을 제대로 흡수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꽤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했던 인극의 경지를 노려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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