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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9화 (9/150)

3장 시비[3]

3장 시비[3]

삼류에서 일류. 그다음이 절정 고수. 강호에서는 절정 고수만 되어도 한 지역에서 큰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단적으로 유씨세가의 가주이자 내 아버지인 유운호가 바로 절정 고수였다.

같은 경지 내에서도 실력 차는 존재하겠지만, 절정만 되어도 흔히 말하는 대협 소리를 듣기엔 충분했다.

그런 절정의 경지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요소가 필요하나 크게 두 가지가 가장 요구됐다. 깨달음. 중단전(中丹田)의 개방을 위해 필요한 내공.

중단전이 개방되면 먼저 오감이 크게 상승한다. 다음으로는 운용하는 내공의 수준이 질적으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신체가 무공을 발휘하기 위한 최적화된 몸으로 탈바꿈된다.

오룡봉성(五龍奉省).

내기심화(內氣深化).

환골탈태(換骨奪胎).

충분한 깨달음과 내공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중단전이 열려 세 가지의 현상을 경험하고 나면 비로소 인극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일영청심공과 천일백야검법을 얻게 되는 기연을 겪었을 때 인극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리고 지금은 한번 걸어봤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가기 위해 매일같이 오던 뒷산에 올랐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한참 물색한 끝에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정상 근처 산세가 험한 곳에 있는 동굴이라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없어 보였다.

‘여기가 좋겠다.’

나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어 목함에서 칠엽설삼을 꺼내 손에 쥐었다.

동굴 안은 금세 설삼이 내뿜는 영험한 향기로 가득 차올랐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십일 년의 가까운 내공에 이십 년 내공이 더해지면 총 삼십일 년.

중단전을 개방하기엔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나는 일영청심공을 믿었다. 지극의 경지까지 도달했던 깨달음을 믿었다. 검신이 인정했던 나의 재능을 믿었다.

물론 긴장되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내쉰 뒤 망설이지 않고 칠엽설삼을 입으로 가져갔다.

최대한 집중해서 잘근잘근 씹을 때마다 북해의 한기마저 넘보지 못한 양기가 입안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나는 멈추지 않고 모든 기운이 흘러나올 때까지 칠엽설삼을 계속 씹었다. 그러다 때가 됐다 싶은 순간 그 기운을 한 번에 꿀꺽 삼켰다.

‘흡.’

열기가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가 몸 곳곳을 휩쓸기 시작했다. 나는 일영청심공을 발휘해 신중하게 기운을 갈무리했다.

한데 모은 기운으로 먼저 혼탁한 혈맥을 모두 정화했다. 혈맥 곳곳에 쌓여있던 탁기는 뜨거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전부 타버렸고 그제야 나는 기운을 단전으로 인도했다.

칠엽설삼의 기운과 내가 가지고 있던 내공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다행히 이십 년 내공 전부를 흡수할 수 있었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삼십일 년의 내공을 다시 단전에서 끄집어냈다.

혈맥은 깨끗해졌고 신체는 신경을 써서 단련해둔 덕에 버틸 만할 것이다.

나는 계획대로 내공을 일주천 시킨 뒤 하단전이 아닌 중단전으로 가는 길로 이끌었다. 몸 안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니만큼 그에 따른 고통은 극심했다.

‘이 정도였었나.’

과거에 한 번 경험해 본 고통인데도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버텼다.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 사이에도 내공은 막혀있던 벽을 깨부수기 위해 계속해서 두들기고 있었다.

쿵! 쿵!

수십 번. 수백 번. 엄청난 고통과 함께 계속 벽을 두들길 때마다 하나둘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 틈을 파고들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고작 삼십일 년의 내공으로 자신을 넘보냐는 듯 굳건히 버텼으나 일영청심공의 묘리가 뒤를 받치자 이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콰과광!

마침내 벽이 무너지고 길이 보였다. 극심한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고 내공이 질주해나가는 길 끝에서 새로운 그릇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유진휘의 몸에 중단전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짙은 미소와 함께 환희를 느꼈다.

눈을 감고 있지만 저 멀리 동굴 밖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중단전과 하단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내공이 한층 질적으로 강해졌다는 것도 깨달았다. 동시에 전신의 피부가 갈라져 떨어져 나갔고 뼈가 뒤틀리면서 원래 있었어야 할 자리를 되찾았다는 듯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만의 시간이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인극의 경지에 올라선 나는 동굴 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

‘드디어.’

나는 동굴 밖으로 나와 검 손잡이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인극의 경지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천일백야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내공이 삼십일 년밖에 되지 않아 전반부 삼초식까지만 발휘할 수 있으나 천일백야검법을 펼칠 수 있는 나와 그렇지 않은 나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총 여덟 가지 초식으로 이뤄진 천일백야검법의 전반부 삼초식은.

제일초식 일섬단세(一暹斷世).

제이초식 팔섬관혼(八暹貫魂).

제삼초식 천섬멸지(天暹滅地).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발검술로 시작되는 제일초식은 극쾌(極快)를 추구한다.

단순히 빠른 발검술이 아닌, 섬광처럼 뽑혀 나온 첫 일격(一擊) 뒤로 찰나의 차이를 두고 궤적을 따라 터져 나오는 검기가 숨겨진 이격(二擊)이다.

상대방으로선 첫 일격을 막거나 피해도 섬광처럼 빠르게 이어지는 검기를 보지도 못하고 몸통이 반으로 갈라질 것이다.

검기는 사람의 몸통뿐만 아니라 집채만 한 바위도 가를 만한 위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과거엔 마교의 십장로 중 하나였던 자가 나를 상대로 방심하다가 일초식에 당해 몸이 쪼개졌다.

슁- 번쩍!

나는 눈앞의 거목을 향해 제일초식을 펼쳤다. 내 검은 단숨에 거목을 잘라 쓰러트렸고 그 궤적을 따라 쏘아진 검기가 다시 그 뒤에 있던 거목들을 여러 차례 베어버렸다.

쿠구구궁! 나는 거목 십여 그루가 차례대로 쓰러지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과거의 경지를 일부 되찾은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압!”

나는 차례대로 이초식과 삼초식을 연이어 펼치며 숲을 무너트렸다. 내공이 고갈되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일영청심공으로 내공을 회복하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천일백야검법이 새로운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나는 다시 며칠을 산에 머물며 수련에 매진했다.

*

“유씨세가라···.”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중년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마협문의 문주 마진탁이 바로 그였다. 그는 어젯밤 은밀하게 자신을 찾아온 복면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복면인이 가지고 온 제안을.

‘은자 이십만 냥. 유씨세가를 처리하는 대가로 그분께서 제시한 금액이오.’

‘개미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든 세력을 흡수하고 굴복시키든 방법은 상관없다고 하셨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 대가 또한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은자 이십만 냥. 마협문이 산서제일문으로 향하는 길에 비단길을 까는 것이나 다름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왜 마협문이냐고? 자제분의 일로 명분이 생겼잖소? 고작 그런 문제로 한 세가를 무너트리는 건 과하다? 그래서 이십만 냥이오.’

명분. 고작 사소한 시비에서 벌어진 애들 싸움이긴 하지만 분명 마협문에는 명분이 있었다. 작은 불씨라도 장작만 넣어주면 활활 타오를 수 있을 테니까.

한 가지 걸리는 건 ‘그분’이라는 자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알려고 하지 마시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금력이 엄청난 인물이라는 점. 동시에 은밀하고 교활하다.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문파를 알아보겠소. 마협문만큼은 아니겠지만 그에 준하는 문파는 많지. 은자 이십만 냥이면 그들 중 하나가 마협문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제안을 거절하면 산서제일문을 노리는 마협문의 경쟁 세력을 키우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였다.

마진탁은 하릴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십만 냥은 거절하기가 힘든 액수였다.

문파를 이끌고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돈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뒤에서 들려온 질문에 마진탁이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마협문의 총관 명승이 서 있었다.

“제안을 수락했으니 이행해야지. 선수금으로 은자 십만 냥을 놓고 가더군.”

“도대체 누구기에···.”

제안을 수락했다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십만 냥을 내놓고 가다니.

“이제 와서 정체를 따지기엔 늦었지.”

“그렇습니다.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말 유씨세가와 전면전이라도···?”

마진탁은 고개를 저었다. 유씨세가와의 전쟁은 승리를 자신할 순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부담스러운 문제기도 했다.

산서의 명가인 그들의 저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고 그런 그들과 전쟁이라도 벌이면 마협문 자신들의 전력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돈도 챙기고. 본문의 전력도 보존하는 쪽으로. 큰 유혈사태 없이 유씨세가를 굴복시켜야 한다.”

마진탁의 말에 명승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은밀히 흑사방과 접촉해보겠습니다.”

“흑사방?”

“예. 흑사방주가 소문주를 꽤 아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명분이 흑사방에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꼈다고 해도. 종태가 밖에 나가 두들겨 맞고 돌아왔으니 복수라도 해달라는 말을 들어준다?”

“소문을 먼저 내야죠. 소문주가 유씨세가의 소공자와 사소한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간악한 술수에 당했다. 위태로운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엔?”

“평소 개인적인 인연으로 소문주를 아꼈던 흑사방주는 이 사실에 분노해 유씨세가에 복수한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부분이고, 흑사방주는 돈에 환장한 미친놈입니다.”

“명분과 이십만 냥 중 일부를 주고 유씨세가를 치게 만든다. 하지만 유씨세가가 흑사방에 무너질 정도는 아닌데.”

“물론 흑사방 정도로 유씨세가를 멸문시키긴 어려울 겁니다. 대신 고전은 할 테고 큰 피해도 보겠지요. 그때 마협문이 나서서 중재해주는 겁니다.”

“그렇군. 중재해주는 대신에···.”

명승의 계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진탁은 뱀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

심신이 가벼운 채로 하산한 나는 썩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문으로 돌아오니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다들 무언가에 쫓기듯 표정이 어두웠다. 거기다 출가 중이던 금검대의 무인들이 돌아와 있었다.

가문의 경비(警備)를 위해 남겨 둔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강호에서 공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일단 왕삼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한 중년인과 마주쳤다.

“유공자.”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차렸다. 금검대의 대주 위사평(衛獅平). 가문에서 아버지 다음가는 실력자라고 평가받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출가 중일 때 유공자에 대한 소문을 여럿 들었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방황만 하던 그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고. 지독한 수련으로 예전 모습을 되찾아 거악부 같은 고수도 쓰러트릴 만큼 강해졌다지.”

위사평은 말을 하면서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소문이 진짜인지, 진짜라면 어느 정도인지 내 기세를 읽으려는 것 같았다.

“과장된 소문일 뿐입니다.”

나도 대답과 함께 슬쩍 기세를 흘려보냈다. 딱 위사평이 납득하고 이해할 정도의 기세였다. 인극의 경지에 오른 만큼 이 정도는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과장이 아니라는 건 알겠네. 정말 예전 모습, 아니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위사평은 내 인위적인 기세를 느끼곤 희미한 미소를 내보였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난 상투적인 말로 대답한 뒤 가문 분위기가 왜 이런 건지 물어봤다. 금검대주이니 자세히 알고 있겠지.

위사평은 순순히 알려주었다.

“마협문의 소문주가 위중하다고 하던데.”

“위중하다는 게 무슨?”

“말 그대로네. 병상에 누워 오늘내일한다는 소문이 퍼졌어.”

고작 그 정도로? 보기와는 다르게 허약한 놈이네.

“그 일 때문에 마협문과 마찰이 생긴 겁니까?”

“아니. 마협문주는 비록 자기 자식이 중상을 입긴 했지만 먼저 시비를 건 사실을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겠다고 공표했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내가 표정으로 묻자 위사평은 심각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문제는 흑사방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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