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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26화 (26/150)

1장 협력[1] -2권 시작-

1장 협력[1]

내가 이자청과 담을 넘어 표국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종화설은 놀란 얼굴이었고 만금상단의 인물들은 크게 경계했다. 표국주라던 석웅은 이 와중에 또 누구냐며 울상을 지었다.

나를 살펴보던 그들은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발견하자 눈을 빛냈다.

“백면공자?”

“엇?”

백사각주를 비롯한 백사각을 단신으로 쓸어버린 신진고수이자 노주 무향(茂香)현에 문파를 세운 백의문의 문주.

산서의 다른 지역은 몰라도 노주에서 백면공자의 명성을 모르는 강호인들은 없었다. 일반인들조차 백면공자는 협을 추구하는 협객이라며 찬양하고 나섰다.

덕분인지 가장 먼저 나를 알아봤던 석웅을 비롯해 종화설과 반세곤도 내 정체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상인들도 싸울 때는 칼을 쓰나 보네. 당장 싸울 게 아니라면 검은 잠깐 내려놓지?”

내 말에, 반세곤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던 종화설이 어정쩡하게 물러섰다. 반세곤도 험악한 기세를 풍기던 수하들을 잠시 물렸다. 석웅은 여전히 내가 왜 이곳에 나타났나 의아해하고 있었다.

세 사람 중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던 사람은 아무래도 반세곤이었던지라, 그가 내 앞으로 나섰다.

“백의문주님에 대한 명성은 익히 전해 들어 언젠가 한 번은 만나 뵙길 갈망하고 있었는데, 오늘 여기서 바람이 이루어지는군요.”

경계심과 여유가 조화를 이루는 상인다운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저는 만금상단의 둘째인 반세곤이라고 합니다.”

“만금상단. 나도 들어는 봤지. 산서에서 돈이 제일 많다며?”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직설적이긴 해도 만금상단을 제일이라고 평가해줬다. 반세곤은 순순히 평가를 받아들였다.

그런 그가 나와 이자청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본론을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백의문주께서 이곳에 찾아오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외원의 중앙으로 걸어가며 의도를 밝혔다.

“산서 삼대상단 중 두 곳이 노주에 나타났다길래 한번 찾아와봤지.”

중앙에 멈춰서자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문파를 세우고 운영하다 보니, 가장 필요한 게 돈이더군. 그리고 보통 이름있는 문파들은 지역의 상단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상부상조하며 지낸다고 들었다.”

말과 함께 종화설과 반세곤을 한 번씩 쳐다봤다. 두 사람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깨달았을 것이다. 여기서 잘만하면 백면공자와 백의문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다는 걸. 백면공자의 명성과 실력이면 노주에서 여러 사업을 주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그런 일이라면 만금상단으로 언질만 해주셨어도 저희가 직접 찾아뵀을 겁니다. 아니, 그러기 전에 저희가 먼저 나서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만금상단과 함께하신다면 백의문이 노주 제일, 아니 나아가 산서 제일로 번영하실 수 있도록 아낌없는···.”

반세곤은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사실 백의문에는 큰 관심 따위 없겠지만, 그렇다고 백의문이 성화상단과 손잡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겠지.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어주다가 종화설을 바라봤다.

“성화상단은?”

내가 묻자, 종화설은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작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만 백의문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기엔 장소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백리표국이고, 지금 저희는 석 국주님과의 계약을 의논하는 중이라···. 허락해주신다면 다음에 제가 백의문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으로 문주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내 제안은 그녀에게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당장은 표국주인 석웅을 존중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런가? 하긴. 남의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실례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석웅을 불러세웠다. 반세곤 주변에 서 있는 것보다는 내 옆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석웅이 후다닥 달려왔다.

“실례가 많았소. 중요한 계약을 치르는 날인데, 내가 끼어들었군.”

내가 정중히 사과하자 석웅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문주님. 실례는 무슨.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뭔 영광씩이나. 나는 계속 물었다.

“그래서. 석 국주는 어느 상단과 계약할 생각이오?”

“예?”

“만금상단과 성화상단. 두 상단 중 어느 곳에 표국을 넘기고 싶냐는 뜻이오.”

“그것이···.”

석웅이 당황하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반세곤과 그의 수하들이 짐짓 살벌한 기세로 쳐다보고 있었다. 종화설은 초조한지 그저 한숨만을 내쉬었다.

나는 석웅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곳과 계약하시오. 그럼 나도 석 국주가 계약한 상단을 도와 뒤처리를 해주겠소.”

“그게 정말입니까?”

석웅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시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석웅은 침을 꿀컥 삼키더니 결심을 세웠다.

“저는.”

반세곤과 종화설이 석웅을 주시했다.

*

“아, 그전에.”

석웅이 막 입을 열려던 차에, 나는 이번에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백의문 또한 석 국주가 선택하는 상단과 협력관계를 맺고 싶은데. 오랜 기간 표국을 이끌어왔던 그의 안목이라면 믿을 만하겠지.”

내 발언에 종화설과 반세곤이 깜짝 놀랐다. 석웅의 결정에 따라 백리표국과 백의문의 거취가 동시에 정해지는 것이니 당연했다.

“그럼 마저 이야기하시오.”

고개를 끄덕이자 석웅이 말을 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애써 반세곤의 시선을 무시하며 종화설을 바라봤다.

“저는 백리표국을 성화상단에 인계하길 원합니다.”

석웅의 결정에 종화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대로 반세곤은 인상을 구기며 살기를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석 국주.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주겠습니다. 잘 생각해보고 다시 결정하시죠?”

반세곤이 이를 갈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석웅이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봤다. 결정을 내렸으니 도와달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석웅의 앞으로 나서면서 반세곤의 시선을 가로챘다.

“이미 결정된 일이니까 관계없는 놈들은 이만 빠져.”

반세곤과 그의 수하들을 향한 축객령이었다. 물론 놈들이 순순이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문주.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만금상단과 척이라도 지시게요?”

반세곤이 분노를 억지로 눌러 삼키면서 물어왔다. 멍청한 놈 같진 않으니 슬슬 알아차렸으려나.

“척 지면 안 되는 이유라도?”

내가 조소를 짓자, 반세곤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애초에 성화상단을 도우려고 찾아온 거였나.”

더 이상 예의 따위 차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은 것 같았다.

“설마 내가 벌레 새끼들을 도우려고 왔을까?”

“...노주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네가 무슨 대단한 인물씩이나 되는 줄 아나 본데. 살고 싶으면 더 이상 끼어들지 마라.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다.”

그놈 참. 마지막이란 말을 더럽게 좋아하나 보네.

“얼마 썼지?”

“뭐?”

“태산파에 얼마나 갖다 바쳤냐고. 그래도 산서 제일 상단이니까 상당한 액수를 내줬을 텐데.”

태산파의 이름이 거론되자 반세곤이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자부심이 흘러넘치겠지.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조용히 꺼져라. 그럼 살려는 주마.”

나는 놈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나이를 보면 속가제자로 수련한 기간은 길지 않을 테고. 태산십육검(泰山十六劍)까진 익혔겠네?”

과거 정천맹에서 태산파의 제자들 몇몇과 교류한 경험이 있다. 놈과 달리 그들은 진신제자들이었고 그들과 무공에 대해 논하다가 속가제자들이 익히는 검법에 대해서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중 태산십육검은 속가제자 중에서도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는, 그러니까 돈을 가장 많이 내놓는 제자들을 위해 창안한 검법.

익히기 쉽고, 화려하며 태산파의 진수도 나름 녹여낸 보여주기식 무공 중 하나였다.

추측이 들어맞았는지, 반세곤이 살짝 놀라는 게 보였다.

“그 정도면.”

그래도 태산파는 태산파다. 태산십육검과 충분한 내공이 뒷받침되면 일류는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껏 묵묵히 곁을 지키고 서 있던 이자청을 바라봤다.

“자청아.”

“네, 문주님.”

“저 벌레는 네가 치워라. 수련 상대로 괜찮을 거다.”

이자청은 반세곤을 슬쩍 보더니 픽 웃어 보였다.

“저 새끼 처리하면 절정고수 될 수 있는 겁니까?”

지난 두 달간 이자청은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했다. 열다섯 명의 백의검대원들이 모두 일류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자청 자신도 두 달 전보다 실력이 꽤 성장했다. 지금도 이미 절정의 문턱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저놈은 시작이고. 나머진 백의문으로 돌아가서 알려주마.”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놈들은···.”

“나머진 내가.”

“네.”

이자청이 대답과 함께 어깨와 목을 비틀며 몸을 풀었다. 반세곤은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주인 내가 아니고 고작 수하 놈 따위가? 라는 같잖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는데.

쉭!

이자청이 서 있던 자리에서 촛불 꺼지듯 사라졌다가 반세곤의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일검에 반세곤은 급하게 검을 뽑아 막아냈고,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큭, 이 새끼가!”

분노한 반세곤이 이를 악물며 반격했다. 이자청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며 몰아붙였다.

“상인이면 곱게 장사나 하며 살지. 무공은 괜히 배워서 죽음을 자초하냐, 병신같은 새끼야.”

검만큼이나 입담도 날카로웠고 그 덕에 전세가 이자청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나는 잠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반세곤의 수하들이 주인을 돕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일대일인데 끼어들면 안 되지.”

내 기세에 움찔 놀란 일곱 명의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저놈부터 처리하고 공자님을 돕는다!”

“예!”

놈들은 단번에 내 주변으로 날아들어 포위했다. 꽤 많은 월봉을 받고 있는지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내 기준이 아닌,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만큼 제 실력에 대한 자존심도 높아 보였다.

“백면공자 따위가 감히 만금상단의 둘째 공자님···.”

싸움을 앞두고 저따위 말이나 내뱉고 있을 정도로.

쉭- 푹!

슬쩍 날려 보낸 비도가 말을 하던 놈의 벌어진 입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도는 놈의 목덜미를 뚫고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기습 아닌 기습에 동료 한 명을 잃은 놈들이 분노하면서 달려들었다.

촤악!

고개를 비틀자 검날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딸려오는 상대의 팔을 휘감아 꺾은 다음 고통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리는 놈의 턱을 후려 찼다. 붕, 날아가는 놈은 턱뼈가 부서져 절명했을 것이다.

쐐액!

동시에 몸을 휘돌려 뒤에서 찔러오는 검을 피했다. 공격했던 놈의 뒤로 돌아들어 간 나는 양팔로 놈의 정수리와 턱을 부여잡았다.

콰드득!

목뼈가 끊어진 채 허물어지는 놈까지 셋.

순식간에 동료 셋을 잃은 놈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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