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27화 (27/150)

1장 협력[2]

1장 협력[2]

싸움에서 기세를 잃고 주춤거리는 순간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가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 빈틈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지금은 내가 상대였다.

쉭!

나는 몸을 날렸다. 남은 숫자는 넷이었고, 그중 선두를 지나쳐 가장 후방에 자리 잡은 놈에게 짓쳐들어갔다.

굳이 뒤쪽에 서 있는 자신을 노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놈의 두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나로서는 빈틈 속의 또 다른 빈틈을 노린 행동이었다. 동시에 놈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위치 선점이기도 했다. 애석하지만 놈들을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지척까지 쇄도해 들어가자 상대가 반사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나는 검을 피하는 동시에 몸통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컥!”

자연스레 몸이 구부러진 놈의 안면에 무릎을 때려 박았다. 얼굴이 깊게 함몰된 채 숨이 끊어진 놈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이때 나는 놈이 쥐고 있던 검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인이었던 시체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하던 검의 손잡이를 발끝으로 퉁겼다.

쐐-엑!

화살처럼 쏘아진 검은 동료의 희생을 기회 삼아 내게 달려들고 있던 놈의 가슴을 관통했다.

남은 두 놈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다음 행동을 가져갔다.

퍽!

가슴이 꿰뚫린 시체를 장법으로 후려쳐 두 놈 중 한 놈에게 날려 보냈다. 엉겁결에 시체를 몸으로 받아낸 놈은 시체와 뒤엉켜 움직임이 봉쇄됐다. 그사이에 나는 나머지 한 놈의 목숨을 취했다.

“이, 이게 대체···.”

일곱이었던 숫자가 어느새 하나로 줄어들었다. 시체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놈은, 나와 주변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두 눈에는 짙은 원망과 회한이 묻어나왔다. 누굴 향한 원망이고 회한인지 궁금하지 않았기에 나는 무심히 놈의 마지막을 바라만 봤다.

“쿨럭!”

놈이 자세를 고쳐잡고 일어설 때는 내가 이미 비도를 날려 보낸 뒤였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놈의 복부에 그 비도가 틀어박혀 있었다.

놈을 끝으로 일곱 명의 무인들을 처리한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무공은 몰라도 외공을 기반으로 하는 격투술인 사신무(四神武)만큼은 과거의 무위를 되찾은 것이다.

유진휘의 젊고 뛰어난 신체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혹독한 수련도 한몫했을 테고.

내가 만족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반세곤을 처리한 이자청이 옆으로 다가왔다.

“문주님. 일곱 명을 때려죽여 놓고 그런 미소는 조금···.”

고개를 돌리자 이자청은 물론이고 석웅과 종화설 또한 눈만 끔뻑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반세곤과 수하들을 처리하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석웅과 종화설은 서로 만족하며 계약을 마무리 지었고 이로써 백리표국은 무사히 성화상단의 관리하에 운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나와 이자청은 객청으로 안내받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꽤 고전한 모양이네.”

내가 몸 곳곳의 상처 위에 금창약을 처바르고 있는 이자청에게 말했다. 녀석은 움찔하더니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고전이라뇨? 살짝 베였을 뿐입니다.”

살짝?

“조금 깊게 베였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질 않겠는데?”

“진짜 아닙니다. 아무래도 태산파의 검법이다 보니 중간에 잠깐, 아주 잠깐 고전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살짝 베인 겁니다.”

아무리 봐도 살짝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자청은 반세곤을 꽤 압도적으로 이겼다. 속가제자라도 어쨌든 태산파의 제자인 놈을.

때문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청아.”

“네.”

“네가 태산파의 제자를 죽였다.”

“그렇습니다. 진짜 별 볼 일 없는 놈이었어요.”

“그래. 별 볼 일 없는 놈이었지. 그럼 그다음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네?”

“그다음이요?”

“속가제자라도 제자가 죽었는데 태산파가 가만히 있을까?”

내 말에 이자청이 침묵에 빠졌다가 눈을 치떴다.

“씨팔, 좆됐네.”

“하하.”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한 것인데 이자청의 반응이 무척 격했다.

“태산파면 천하오주 아닙니까?”

“맞지.”

“고수가 득실거리겠죠?”

“절정고수가 짐을 나르고 마당을 쓸러 다니는 곳이다.”

“...그냥 하시는 소리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면 그리 생각해라. 게다가 태산파뿐이냐? 놈은 만금상단의 둘째야.”

“아···.”

이자청이 탄식하며 허공을 응시했다. 어느 정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나로서는 의도한 상황이었다.

만금상단.

처음엔 거악부를 이용해 성화상단을 무너트리려 했다. 그 거악부가 내 손에 죽자 마협문이 누군가의 시주를 받고 유씨세가를 장악하고자 나섰다. 그 과정에 흑사방이 함께했다.

그마저도 실패하자 만금상단은 반세곤을 앞세워 성화상단의 사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마협문의 배후는 아무래도 만금상단임이 틀림없었다.

‘외부인을 끌어드린 계획이 두 번이나 틀어졌으니 아무래도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만금상단이 노리는 건 성화상단. 놈들 처지에서 유씨세가는 목표로 하는 길에 놓인, 치워야 하는 방해물인 겁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백의문에 들렀을 때, 공손량 또한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해서 백면공자가 되어 백의문을 움직였다.

반세곤을 죽이고 성화상단에 힘을 실어주었으니 놈들의 관심과 칼날이 나와 백의문을 향할 것이다. 그 칼날을 하나하나 부러뜨리며 치고 나가다 보면 본체에 도달하겠지. 문제는 이자청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그 칼날의 예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태산파가 어느 수준까지 관여할지. 만금상단의 빈객으로 영입되었다던 엄청난 고수는 또 누구인지.

상념에 잠겨있는데 이자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왜.”

“살려주세요.”

“뭔 소리야?”

“빨리 단련시켜주세요. 절정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이자청의 두 눈을 바라봤다. 녀석은 진심이었다. 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인지 두 눈이 안광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문주님이 도움을 주셔서 계약이 잘 마무리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리표국을 나서서 백의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종화설이 잠시 함께했다. 원하던 계약은 물론, 백의문과 인연을 맺게 됐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았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니, 감사해할 필요는 없어.”

나는 덤덤하게 표면적인 사실을 말해주었다. 만금상단을 노린다는 의도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종화설에게 백의문은 그저 힘을 빌리고 대가를 주는 협력관계 정도면 충분했다.

“네. 그 부분은 아버지와 의논해보고 문주님께서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래도 도움을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 예전에도 겪어본 상황인 것 같은데. 그때는 백면공자가 아닌 유진휘였고 상행을 돕다 거악부를 쓰러트렸을 때였다.

“그렇게 해. 감사는 적당히 하고.”

내가 피식 웃자 종화설이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밝았던 표정에 어둠이 드리웠다.

“하지만 그 전에 문주님께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저희 상단과 함께하시겠다는 결정은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다시 고려해보시는 게···.”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뭘 염려하고 있는지, 무슨 이야길 하려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만금상단과의 마찰이 단순한 상권 다툼 때문에 빚어진 건 아니겠지.”

“...”

“감안하고 있는 부분이야. 백의문 또한 대가를 받는 만큼 제대로 도와주겠다.”

“하지만 만금상단은 산서 제일 상단이에요. 그런 상단의 둘째 공자가 죽었어요. 그렇게 쉽게 판단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 일로 태산파가 어떻게 나올지도···.”

“괜찮아. 그리고 만금상단의 둘째 공자는 이 녀석이 죽였어.”

나를 뒤따라 걷고 있던 이자청을 가리키자, 이자청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예. 제가 죽였죠.”

“그래. 덕분에 우리 백의문 또한 이번 일에 제대로 엮였다는 거고.”

“문주님이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난 처리하라는 말밖엔 안 했는데.”

“예. 맞습니다. 제 탓입니다, 제 탓.”

이자청과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자 종화설의 얼굴이 다소 풀어졌다. 그녀가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또 시작이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궁금해하던 걸 물어봤다.

“근데 정확히 만금상단이 성화상단을 노리는 이유가 뭐지?”

조금 전에도 말했듯 단순한 상권 다툼이라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종화설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만금상단은 산서의 상단들을 통합하여 상인연합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상인연합회?”

“네. 겉보기엔 상인들끼리 힘을 합치고 산서의 상권을 함께 이끌어가자는 취지이지만, 그들은 그 합쳐진 힘을 만금상단 아래에 놓으려는 계획인 것 같아요.”

“상권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거군.”

“그렇게 되면, 만금상단은 불법적인 일도 합법적인 일로 바꿀 수 있는 금력과 권력을 가지게 돼요. 고리대금업쯤은 손쉽게 상업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요.”

원대한 계획이네. 산서의 상권 장악이라니. 지금도 산서 제일의 부호라는 만금상단이었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겠다는 비틀린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의(道義)와 신의(信義)를 우선하는 종승재와 성화상단은 놈들에게는 눈엣가시일 테고.

“무서운 새끼들이었네요.”

종화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이자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흑사방의 청사각주였던 놈이 놀랄 정도라.

공손량에게도 얘길 해줘야겠군. 그는 여전히 만금상단의 행보를 주시하며 백의문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

“세곤이가 죽었다?”

화려한 장삼의 노인이 반문했다.

“예. 둘째 공자께서는 백리표국에서···.”

복면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뒷말을 흐렸다. 노인의 분노가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노인은 차분했고, 냉정했다.

“그런가. 아쉽군.”

아쉽다? 제 아들이 죽었다는데, 한다는 말이 고작.

복면인이 슬쩍 시선을 들자 노인은 잠시 상념에 빠진 듯 침묵하고 있었다. 만금상단주 반일소(潘溢昭).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신념을 가진 산서 제일 상단의 주인이 바로 노인이었다.

비록 반세곤이 혼외자였다고 하지만 복면인은 주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그 태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자식이 죽어도 저런 표정인데, 그저 충실한 개일 뿐인 자신이 죽으면 신경이나 쓸까.

“그래서. 계획이 두 번이나 틀어지게 만든 변수가 누구였지?”

반일소의 질문에 복면인이 잡념을 치워버리고 대답했다.

“백의문주입니다.”

“백의문주? 백면공자라 불린다던?”

“예.”

“그놈이 왜? 성화상단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놈 아니던가?”

“성화상단이 아니라 유씨세가 쪽인 것 같습니다.”

반일소는 뜻밖이라는 듯 눈을 빛냈다. 복면인이 말을 이었다.

“백의문주가 움직이기 이전에, 지난 두 달간 가문에 틀어박혀만 있던 유씨세가의 소공자가 외출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그놈이 백의문주와 인연이 있다?”

“그렇게 판단됩니다.”

반일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면공자가 느닷없이 노주에 출현해 백사각을 불태운 것도 유씨세가의 소공자를 돕기 위해서였다면 이해할 수 있는 행로였다.

“변수가 드러났으니, 치워야지.”

반일소의 결정에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를 보내겠습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