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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35화 (35/150)

3장 선택[3]

3장 선택[3]

이틀 사이에 백의검대원 전원이 성화상단에 도착했다. 만금상단의 감시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당장 내일이면 만금상단주가 직접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태산파의 장로와 제자들은 물론 만금상단 소속의 무인들까지. 몇 명이나 끌고 올지 모르니 열다섯 전부를 불러들인 것이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언사룡을 필두로 한 백의검대원들이 나와 이자청 앞에 집결했다. 다들 일류고수로 성장해 나름 검대의 구색을 갖췄다. 물론 아직은 실전경험이 없는 햇병아리들이었다. 부족한 점도 많고.

내 눈엔 그렇게 보였는데,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종승재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들이 전부 네 수하라고?”

“예. 백의검대입니다.”

“허어. 다들 기세가 예사롭지 않구나. 비록 수는 적으나,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이 정도면 소수정예라 할 만하지.”

나는 굳이 부정하는 대신 미소만 지었다. 만금상단과 맞서고자 결의를 다졌다고 해도 종승재는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자청과 백의검대원들을 보며 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씻어내는 모습이었다.

이자청은 그런 종승재 앞에서 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이놈들을 단련시켰습니다. 불과 두 달 만에 이류에서 일류로. 제가 다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비록 당장은 세가 조금 기울었지만, 성화상단은 산서 삼대 상단 중 하나였다.

그런 성화상단의 주인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는 듯 이자청이 어깨를 세웠다.

“그런가? 역시 절정고수답군. 대단하네.”

“대단하긴요, 하하.”

거들먹거리는 녀석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오자 손이 근질거렸다. 후려칠까 싶다가, 종승재의 표정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놔뒀다.

그때였다.

“대단?”

허공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노인은 마치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의 기척을 알아차렸던 상태지만 나를 제외한 이들은 기겁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따위 실력으로 거들먹거릴 시간이 있으면 검이나 한 번 더 휘두르거라.”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홍야였다. 이자청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홍야를 힐끔 흘겼다.

“신수가 훤하신 걸 보니 이것저것 많이 주워 드셨나 봅니다.”

“문주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 불만 있느냐?”

“...없죠.”

홍야가 눈을 부라리자 이자청은 냉큼 꼬리를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승재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나직이 물어왔다.

“진휘야. 설마 저 어르신도···?”

“예. 백의문 사람입니다.”

“그, 그렇구나.”

종승재가 크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이자청을 압도하는 홍야의 기세에서 경외감을 느낀 듯싶었다. 보통 때엔 기세를 숨기며 지내는 나와 달리 홍야는 인극고수의 면모와 분위기를 대놓고 드러내며 다녔다.

게다가 나와 싸웠을 때 보다 조금은 더 강해진 것도 같다. 이자청의 말대로 만금상단에서 영약이라도 주워 먹었나.

그 생각에 피식 웃고 있는데 홍야가 나를 바라봤다. 이어 위아래로 살피더니 대뜸 혀를 찼다.

“노부가 아니라 문주께서 좋은 걸 주워 먹은 것 같네만.”

먹었지. 좋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걸.

침묵으로 긍정하자 홍야가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요양은 물론 몸보신까지 제대로 하고 야심 차게 돌아왔을 텐데 나와의 격차가 줄기는커녕 늘기만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쉽겠네?”

“아쉽다? 그래, 지금은 그렇다고 해두지. 대신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두게. 노부가 뇌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무공에 정진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백의문에서···.”

“알겠어. 영감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니까 그동안의 경과나 보고해.”

“...!”

내가 말을 끊자 홍야가 낙담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내 관심은 그가 가져왔을 증거를 향해 있었다.

*

홍야는 장담했던 대로 만금상단의 후계자를 납치해왔다. 만금상단의 첫째 공자 반세운. 만금상단 쪽에는 반세운이 출타한 것으로 상황을 꾸며 이목을 피했다고 했다.

“놈은 어디에 있지?”

“일단은 백의문의 창고에 놔뒀네.”

“정보는 빼냈어? 아니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하나?”

내가 묻자, 홍야가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입이 꽤 무겁더군. 오래 버티긴 했지만 결국 모두 털어놨네.”

낌새를 보니 심문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았다.

“살아는 있고?”

“간당간당하긴 하지만 숨은 붙어있을 게야. 수천뇌옥에 갇혔었던 경험이 도움이 될 줄은.”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님에도 홍야는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이어 그가 품속에서 돌돌 말린 서류뭉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글씨체를 보아 홍야가 정보를 캐내고 공손량이 옆에서 정보를 취합하여 보고서를 작성한 듯싶었다.

내용은 적나라했다. 만금상단이 연합회를 결성하려는 목적과 계획을 시작으로 그다음 행보들이 명명백백하게 적혀있었다.

상권을 장악한 뒤 여러 불법적인 일들이 진행될 것이며 그로 인한 이익은 만금상단이, 불이익은 모조리 연합회 산하의 상단들이 감수하게 될 거라는 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은 만금상단을 앞세운 배후세력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다는 정보도 함께였다.

게다가 서류마다 만금상단의 후계자인 반세운을 증명하는 서명이 날인되어있었다. 사실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공송량의 대처였다.

내용을 읽어가던 내가 마지막 장에서 눈을 빛냈다.

“태산파.”

내 중얼거림에 홍야가 반응했다.

“배후세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라더군.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이긴 했네. 하긴, 정천맹의 장로까지 매수한 놈들이니···.”

홍야 말대로였다.

태산파의 장로급 고수 일부가 배후세력 소속으로 추정된다는 정보가 마지막에 적혀있었다. 일부라고는 했지만, 대다수일지 혹은 전부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작 꼬리에 불과한 만금상단을 통해 드러난 정보가 이 정도라면 몸통과 머리는 어느 정도려나.

나는 일단 알아낸 정보들을 종승재에게 공유했다. 배후세력에 관한 것들은 빼고.

“이거라면 확실히 연합회를 장악할 수 있겠구나.”

종승재가 서류를 살펴보면서 확신했다.

산서의 대다수 상단이 만금상단을 따르고 있는 이유는 힘을 합쳐 상권을 함께 이끌어가자는 미망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각성할 것이고 성화상단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나로서는 상권과 연합회에 대한 일에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상단주님께서는 바로 움직여주세요.”

“바로?”

“예. 성화상단 사람들도 전부 안가로 피신시키시고요.”

“전부라면···.”

“말 그대로 전부요. 상단주님도 함께.”

내 의중을 알아차린 종승재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밤에 만금상단주 반일소가 방문했다. 약속한 시각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서른 명이 넘는 무인들을 이끌고 들이닥쳤다.

예의 따윈 없는 태도였고 성화상단과 종승재를 업신여기는 행동이었다. 애초에 방문 목적부터가 불순했으니 예견된 무례였다.

그런 반일소가 성화상단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입구조차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만.”

역시나 성화상단은 텅 비어있었다. 커다란 장원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야반도주라도 한 모양새였다. 만금상단을 따르느니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 싶었나.

반일소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지었다.

“대 성화상단의 주인이 야반도주라. 꼴이 우습구나.”

산서를 아예 떠났다면 몰라도, 산서 지역 내에 숨었다면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찾아서 어떻게 할지가 관건일 뿐.

죽이든 살리든,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었기에 반일소는 이만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였다.

“왜 말하지 않았소?”

반일소의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이 어딘가를 주시하며 물어왔다. 그의 물음에 반일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말입니까?”

“...”

“곽 장로님?”

반일소는 대답 없는 중년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텅 빈 허공이었다. 밤하늘의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태산파의 장로 곽현(郭賢)은 여전히 그곳을 응시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계시는 겁니까?”

반일소가 대답을 재촉하자 곽현이 이를 악물었다.

“성화상단에 저런 고수가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냔 말이오!”

곽현의 고함에 반일소는 물론이고 뒤편에 서 있던 무인들과 태산파의 제자들까지 깜짝 놀랐다. 대체 누가 있다고? 이제는 모두가 곽현의 시선을 따라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 끝에서, 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태산파의 장로라더니 다르긴 다르네.”

기둥 뒤편의 어둠 속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던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놈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반일소였다.

“너, 너는 백의문주!”

그는 삿대질까지 하며 놀라 자빠진 상태였다. 종승재가 나를 마주했을 때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놈이 어떻게 살아있느냐? 분명 어르신께서 네놈을 죽였다고···.”

“어르신?”

내가 말을 가로채며 피식 웃자 홍야가 내 옆으로 내려앉았다. 그 광경에 반일소가 헛숨을 들이켰다.

홍야에게 속았다는 걸 깨닫고 또다시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놀라는 대신 격노를 터뜨렸다.

“이 미친 노인네가 감히 나를 농락해?”

홍야로서는 같잖은 몰골일 뿐이었다.

“영약은 잘 먹었네. 별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말이야.”

홍야가 껄껄 대소를 터뜨리자 반일소의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그런 그가 금방 냉정함을 되찾았다. 옆에 서 있는 태산파의 장로와 뒤편의 무사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내 눈으로 네놈들의 사지가 찢겨나가는 걸 보게 되었으니. 그래. 그편이 더 확실하겠어.”

그럴 만하지.

태산파의 장로, 곽현. 옥검현로(玉劍賢勞)란 별호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직접 얼굴을 마주하니 기억이 났다.

“왼쪽 어깨의 상처는 다 나았나?”

내가 조소와 함께 묻자 곽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에게는 드러내기 싫은 치부였다.

정마대전 당시, 공을 세우는 것에 눈이 멀어 작전을 무시하고 진격하다가 죽을 위기에 놓였던 적이 있던 곽현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게 나와 천영검대였다.

그때는 살려야 하는 위치였는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그대는 누구요?”

“곧 죽을 놈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내 말에 곽현의 뒤쪽에서 버럭 고함이 터져 나왔다. 슬쩍 보니, 태산파의 제자들이 검을 반쯤 뽑아가고 있었다. 사문의 어른이 모욕당하는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그만-!”

곽현이 그런 제자들을 향해 일갈했다. 확실히 그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내 두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상단끼리의 이권 다툼일 뿐이외다. 본인이 여기서 물러나겠다면 그대는 우릴 보내줄 생각이 있으시오?”

그러자 반일소의 고개가 휙 꺾였다.

“곽 장로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닥치고 계시오.”

곽현의 으름장에 반일소가 입을 다물었다. 와중에도 곽현은 나를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조소가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이권 다툼 따위가 아니라는 건 대충 알고 있으니까 목숨 구걸하지 마.”

나는 안색이 굳어지는 곽현의 뒤쪽을 바라봤다.

“자청아!”

“예!”

“문 닫아라.”

내 명령에 담벼락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자청이 장원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어 백의검대원들 모두가 담벼락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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