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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0화 (40/150)

5장 동행[2]

5장 동행[2]

하남장가(河南章家).

태산파와 선우약가와 같은 ‘천하오주’이자 권법으로 하남 일대를 일통한 무가였다. 정천맹 본단이 있는 하남인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인 권왕(拳王)이 가주인 데다가 슬하에 세 아들 모두 명성을 떨치는 고수였으니까. 거기엔 내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권룡 장진악도 포함됐다.

닮았네.

나는 장진악의 얼굴에서 권왕의 모습을 봤다. 전생에 봤던 권왕을 쏙 빼닮은 용모였다.

한낱 여인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치기 어린 행동은 제외하고.

같은 천하오주의 후계자라는 신분과 강호에서 함께 사룡일화라 불리는 사이이니 친분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일방이든 양방이든 친분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는 듯싶었다.

나로서는 애들끼리의 감정 문제에 휘말릴 이유가 없었다.

“제가 동행하는 부분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가 묻자, 장진악이 코웃음을 쳤다.

“유씨세가의 유진휘라고 했나?”

이 새끼가 초면에 반말은.

“그런데?”

똑같이 응수하자 장진악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이내 말투에 대해선 참고 넘어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우유란의 시선을 신경 쓴 태도이기도 했다.

그는 최대한 철부지 같은 행동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늦은 것도 모르고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거론한 담자명 대협은 태산삼검(泰山三劍)의 첫째이신 절대고수시다. 여기 계신 담해상 선배가 둘째시고.”

“그건 알고 있다. 그래서 본론은?”

“그런 담 대협께서 고작 너 같은 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난 믿지 못하겠는데.”

장진악이 증거라도 내놓아보라는 듯 나를 추궁했다. 물론 증거 따윈 없었고 해명 따위도 필요 없었다.

“네가 믿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인가?”

“뭐?”

“일행의 책임자이신 담 선배께서 이미 허락하신 일이다. 주체라 할 수 있는 선우 소저가 내 신분을 증명했고. 넌 이 두 분의 결정을 무시하고 불만을 품은 거야.”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장진악은 말을 잇지 못했다. 흥분한 나머지 미처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겠지.

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네가 일행에 끼어있는 게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뭐라고?”

“일행의 목적이 뭔지는 정확히 알고 함께 가는 거냐?”

“난···.”

이번에도 장진악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동악검선이 병상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태산파의 기밀이었다.

나야 담자명에게 백의문주로서 직접 들은 부분이고 선우유란에게는 그녀와 선우약가의 의술이 필요했기에 사실을 밝혔다고 해도 장진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남장가의 가주인 권왕도 아니고 고작 후기지수에 불과한 권룡에게 자세한 내막까진 알리지 않았을 터.

“난··· 유란이의 호위를 맡았다.”

그가 나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대답했다. 수긍이 가는 대답이었다.

선우약가는 무공보다는 의술로 유명한 가문. 선우유란만 봐도 호신용으로 기본적인 무공을 익혔지만, 근본적으로는 의원에 가까운 여인이었다.

친분이 있는 장진악이 안전을 위해 따라붙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걸고넘어지고자 한다면 충분히 따져 물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나는 마저 몰아붙였다.

“네가 말한 대로 일행의 책임자이신 담 선배께선 태산삼검이라 불리는 고수신데 너까지 필요할까? 게다가 선우 소저도 개인적으로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왔을 텐데. 담 선배와 호위무사들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가?”

“그, 그게 아니고···.”

장진악이 당황하면서 일행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당황스러움에 말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장진악의 심정을 이해했다. 처음 본 나조차도 그가 선우유란에게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정도로 티가 났으니.

그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선우유란을 쫓아온 것이다.

이쯤 할까 싶어 입을 열려는데, 담해상이 먼저 나섰다.

“둘 다 그만하게나. 서로 작은 오해가 있었지만 두 후배가 본문을 위해 동행해준다고 하니 나로선 고마울 뿐이네.”

옆에서 선우유란이 거들었다.

“맞아요. 두 분 모두 그만 하세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태산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인연 아니겠어요? 그게 소룡단에 계셨던 유 공자라니 저로서는 놀랍고도 기쁜 일이고요.”

내가 소룡단원이었다는 말에 담해상이 관심을 보였다.

“자네가 그 유일한 생존자로군?”

“그렇긴 합니다만 당시의 일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게. 소룡단은 강호의 영웅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기억에 관한 부분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정마대전은 나로서도 끔찍한 기억이 전부인 전쟁이었지.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일세. 자네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하지 않겠나?”

그의 진심 어린 조언에 나는 순간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니라, 유진휘의 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의 조언은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하하, 조언까지야.”

담해상 덕에 일행의 분위기가 금방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담자명이 믿고 일을 맡길 인물이라는 판단도 들었고.

말없이 술을 마시며 나를 힐끔거리는 장진악의 시선이 거슬리긴 했지만 나는 덤덤히 무시하고 시간을 보냈다.

이후엔 태산파로 출발하는 시기를 내일로 결정짓고 각자의 방으로 해산했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왕삼이 물속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심호흡을 터뜨렸다.

“왜 그래?”

“왜라뇨. 권룡과 해어화(解語花)라 불리는 선우 소저에, 태산삼검의 일인이신···.”

왕삼은 좀 전까지 함께 술을 마셨던 일행들의 면모를 떠올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평범한 강호인에게는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그들 모두가 천하오주의 인물들이었으니까.

왕삼은 그중 선우유란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명성대로 아름다우신 분이셨어요. 도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런가?”

딱히 관심 있게 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선우유란의 미모는 뛰어났다. 별호부터가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며 미모를 칭송하는 뜻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별호와 어울리는 미모이긴 했지.”

내가 말하자 왕삼이 씩 웃어 보였다.

“그 발언은 종 소저에게 꼭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녀석의 농을 맞받아쳤다.

“그러던지. 나도 하월이에게 네가 선우 소저의 미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

“악!”

예상대로 왕삼이 항복한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녀석은 가문의 시비인 하월이와 점점 관계가 발전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었으니까.

“이건 사내들끼리의 비밀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 하는 거 봐서.”

“저야 항상 잘하잖아요.”

“요샌 잘 모르겠는데.”

내가 피식 웃자 왕삼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언제부터인지 녀석과는 이렇게 격 없는 농을 자주 주고받았다.

전생의 나였다면 생각지도 못한 관계였다. 소이겸은 물론이고 기존의 천영검대원들과도 이 정도로 가깝게 지내진 못했으니까.

“아무튼. 도련님이 첫 강호행부터 저런 대단한 분들과 함께하시게 될 줄은 몰랐어요. 거기다 태산파라니. 항상 그랬지만 도련님이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그랬다고?”

“당연하죠. 도련님도 저분들만큼 대단한 분이시잖아요. 무려 소룡단의 일원이셨으니까요. 물론 도련님껜 안 좋은 기억이셨을 수도 있지만요.”

그래. 대단하지. 원래의 유진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조금 바뀌었으려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몸으로 환생했다면 원래의 유진휘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하는. 나는 그 의문을 부정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긴 했으나 내가 이 몸을 빌려 되살아났다면 유진휘가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만일 언젠가 그때가 온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대신 잘 살아가 봐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잠이나 자자.”

“예.”

나는 내일을 대비해 푹 쉴 생각으로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

잠에 빠져 든지 반 시진가량 지났을 때였다. 잠을 잘 때도 항상 기감을 확장해두고 기습에 대비하는 건 나는 물론이고 절정고수 이상이면 누구나 가지는 대비책이었다.

그런 내 기감에 옅은 적대심이 뒤섞인 인기척이 걸렸다.

눈을 뜬 나는 조소와 함께 침상에서 일어났다. 왕삼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기에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문 앞에 장진악이 서 있었다. 그가 일부러 나만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척을 내비친 것이다.

“그래도 실력이 조금은 있는 놈이었네? 이 정도도 못 알아차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가자.”

“어딜?”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그러려고 부른 거 아니냐?”

내가 앞장서자 장진악이 헛기침과 함께 나를 따라나섰다.

우린 객잔의 뒷문으로 빠져나와 인적이 없는 공터에서 멈춰 섰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마주 보는 와중이었다.

“괜찮겠어?”

장진악이 물어왔고 나는 하품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놈이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일행에서 빠져나가라. 그럼 후환은 없을 거다.”

“싫다면?”

“그럼 그전에 앞서서 적당히 두들겨 맞겠지.”

“그러니까. 네가 이기면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네?”

“말귀는 알아듣는구나.”

장진악이 몸을 풀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도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기면 넌 뭘 할거지?”

“뭐?”

“너도 조건을 걸었으니까. 뭐가 좋으려나?”

내가 고심하는 사이에 장진악은 두 눈을 깜빡이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소를 터뜨렸다.

“나를 이길 생각으로 따라나섰다고? 내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알지. 권룡이라며.”

“하하, 이 미친놈이.”

놈은 내가 객기를 부리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한참을 웃어대다가 뭐든 좋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네가 날 이기면···. 그래. 내가 너를 평생 형님으로 모시마.”

“잘 생각해서 말해. 네 운명이 걸린 일이니까.”

“운명 같은 소리 하시네. 천지신명께 다짐하겠다. 어떠냐?”

어떠냐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내가 만족한 얼굴을 하자 장진악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같은 표정이지만 서로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정반대일 것이다.

그때였다.

“이거, 내가 한발 늦었군.”

객잔이 있는 방향에서 담해상이 허공을 격하고 날아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또한 잠을 자다가 장진악의 기척을 느끼고 뒤늦게 쫓아온 것 같았다.

그런 담해상에게 장진악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시작된 내기비무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나도 들었네.”

“그렇다면 선배께서는···.”

담해상은 장진악의 말을 가로채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니 말리진 않겠네만, 참관은 해야겠네. 자네가 직접 비무라고 선언한 만큼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뜻이야.”

“예.”

담해상의 경고에도 장진악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안색이 밝아졌다. 어차피 적당한 선에서 두들겨 팰 생각이었는 데다가 일행의 책임자인 담해상이 참관자로 나섰으니까.

물론 나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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