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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3화 (43/150)

6장 태산[2]

6장 태산[2]

선우약가의 삼녀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은 지 열흘. 그동안 조여랑은 서른 명의 살수들을 이끌고 하남에서부터 목표물을 추적했다.

하남을 벗어나 산동에 접어들 때쯤 목표물을 발견했고 그때부터는 일정 간격을 두고 천천히 뒤쫓았다.

와중에 그 일행들의 숫자와 무위를 가늠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하남에서 태산까지는 긴 여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피로감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경계심이 무너져 빈틈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길었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놈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짐승을 사냥해 요리까지 해 먹으며 배를 채웠다. 긴장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죽여달라고 목을 내미는구나.”

조여랑은 시야에 들어오는 야산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움직일까요?”

일호의 물음에 조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서른 명의 살수들이 야산의 수풀 속으로 몸을 날렸다. 중앙의 목표물을 에워싸듯 조여 들어가는 야막의 살진이 펼쳐진 것이다.

서른 명의 살수가 펼치는 천라지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불어 살수 특유의 은밀함과 잠행술이 더해져 상대방에겐 어느 방향에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

조여랑은 후방에서 수하들의 포위망을 조율하며 천천히 목표물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놈들이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일호의 보고에 조여랑은 움찔 놀랐다.

이어지는 보고에선 놈들이 품(品)자 대형의 진법을 펼쳐 기습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릴 들었다.

“태산삼검의 둘째인 담해상. 그놈인가?”

태산삼검. 태산검존의 제자들이자 태산을 대표하는 검객들. 세 명 모두 인극의 경지에 근접한 절대고수였다.

그런 고수를 상대로 살기와 기척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강호는 이미 살수들의 세상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조여랑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 고수를 죽일 수 있어서 야막이고 지금은 야막의 모든 살수가 나선 상태였다.

“상관없어. 최대한 은밀하게 계속 전진해.”

조여랑의 명령에 살수들은 수풀 속에 녹아들 듯 신형을 감추었고 점차 포위망을 좁혀갔다.

태산삼검의 둘째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주변의 어중이떠중이들을 지켜줘야 하는 처지라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할 터.

쏴아아아-

야산을 스쳐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가 살수들의 발소리보다 더욱 크게 들렸다. 그만큼 살수들의 움직임은 은밀하고 고요했다.

마침내 조여랑의 시야에도 목표물의 모습이 보였다.

보고대로 담해상과 권룡, 그리고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선우유란을 중심으로 방진을 펼쳐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그 기세가 탄탄했다.

‘삼십호까지 전원을 끌고 오길 잘했군.’

거목의 나뭇가지 위에 은신한 채로 그들을 내려다보던 조여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무슨 방진인지는 모르겠으나 세 명씩 짝을 지어 등을 맞대 사각이 없고, 가장 강한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담해상과 권룡이 전방과 후방을 지키고 있다.

‘무턱대고 덮쳤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겠는데···.’

의뢰금액이 구만 냥이라는 소릴 들었을 때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 와서 보니 적절한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명의 수하 중 몇 명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하지만 이보다 더한 의뢰를 수도 없이 성공한 게 야막이었다.

조여랑은 숨어있는 자리에서 수신호만을 펼쳐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기습하기 전에 먼저 독을 살포하라는 명령이었다.

동시에 조여랑은 품속에서 복면을 하나 꺼내 원래 쓰고 있던 복면 위에 덧씌우듯 착용했다. 중화제가 내포되어있는 복면이었다.

수하들도 수신호를 보고 자신과 같은 복면을 착용했을 터. 이제 독을 다루는 하위 다섯 명의 살수들이 독을 뿌리기만을 기다리다가, 목표물이 중독됐을 때 기습을 시작하면···.

‘어?’

숨죽이고 있던 조여랑은 묘한 위화감에 각자 수하들이 은신해 있는 위치를 살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포위망의 한쪽이 텅 비어있었다. 독을 살포해야 할 놈들이 있던 자리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야막의 살수들이 익힌 잠행술은 물론 은밀하지만, 같은 잠행술을 익힌 자신과 수하들끼리는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한데 좀 전까지 명령을 기다리던 다섯 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할 놈들이 아니었기에 조여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조여랑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목표물들을 내려다봤다.

선우유란. 담해상과 권룡. 정확히 열두 명의 호위무사들까··· 열두 명?

숫자를 세던 조여랑이 눈을 치떴다. 기존에 파악했던 숫자에서 하나가 모자랐다.

‘그러고 보니 유씨가문인가의 소공자가 일행에 끼어있다고 했는데. 그놈은 어디에 있지?’

실수를 깨달은 순간 설마, 하는 심정이 전신을 휘어 감았고 뭔지 모를 불안감에 조여랑은 다시 수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씨팔!’

조여랑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과 함께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포위망의 구멍이 생겼다는 걸 발견했고, 이번에도 그 숫자가 정확히 다섯이라는 걸 깨달았다.

잠깐 사이에 서른 명의 살수 중 열 명이 흔적도 없이 증발한 것이다.

사냥하러 온 자신들이 오히려 사냥감으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에 조여랑은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뭔가 잘못됐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물러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조여랑의 머릿속으로 구만 냥이라는 금액과 권룡과 담해상을 죽였다는 명성을 얻을 기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그는 남은 수하들에게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척살(刺殺).

아직 자신이 남아있고 일호부터 십호까지의 상위 살수들이 건재했다. 독이고 뭐고 필요도 없이, 빠르게 목표물만 죽이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수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쉭!

마치 허공의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움직임과 함께 살수 하나가 목표물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긴장해라-!”

동시에 방진의 선두에 서 있던 담해상이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채-앵!

느닷없는 기습이었음에도 담해상은 확실하게 살수의 일격을 쳐냄과 동시에 살수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었다 뺐다.

푸확!

피를 뿜으며 허물어지는 시체. 그 시체의 그림자 속에서 새로운 살수가 튀어나와 담해상의 하체를 노렸다.

“큭!”

상처를 입긴 했지만, 담해상은 노련하게 공격을 피했고 이번에도 반격을 통해 살수의 숨을 끊었다.

“이 미친놈들이 감히!”

와중에 후방에서는 권룡이 살수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나머지 호위무사들은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선우유란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조여랑은 은신한 상태로 사태를 관망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방진의 중앙에 서 있는 선우유란을 향해 꽂혀 있었다.

아주 잠깐의 틈. 그 틈이 보이는 순간을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을 때였다.

“보아하니 네가 대가리구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순간 조여랑은 살수라는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기함하듯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야막의 잠행술은 가히 살수계에서도 유명한 측에 속했다. 태산삼검의 일인인 담해상마저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자신이 무방비 상태로 뒤를 잡히는 일은 감히 예상하지도 못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놀라긴 했지만, 와중에도 조여랑은 아주 천천히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비도의 손잡이가 잡히는 감촉이 왔다. 그는 그대로 몸을 휘돌리며 비도를 그었다.

촤-악!

살이 갈라지는 감촉과 함께 선혈이 터져 나오는 순간 조여랑은 안도했다. 하지만 곧바로 충격을 금치 못했다.

등 뒤의 인물을 베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벤 것은 일호의 목이었다. 등 뒤의 인물은 일호를 사로잡아온 상태였고 비도가 휘둘러지는 순간 일호를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야막 최고의 실력자이자 가장 총애하는 수하였던 일호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생각에 조여랑은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두려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눈길로 미소짓고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정체 따위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자신과 야막을 상대로 이런 신위를 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물어본 거였다.

그리고.

“누구긴.”

나는 피식 웃으면서 손에 붙들린 시체를 내던졌다.

“이미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묻자 놈이 침음을 흘렸다.

“안다. 아는데, 유씨세가의 소공자 따위가 어떻게···.”

“어떻게까지는 알 필요 없고. 여기서 야막 새끼들을 보게 될 줄이야.”

내 입에서 야막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놈이 흠칫 놀랐다. 어떻게 알아차렸냐는 눈빛이었다.

*

정마대전 당시 가장 큰 이득을 본 세력 중 하나가 바로 살수 단체였다. 놈들은 정과 마를 가리지 않고 의뢰를 받았고 돈만 된다면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의뢰를 수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했던 살수 단체가 바로 야막이었다.

정천맹의 수많은 인사와 고수가 놈들에게 죽어 나갔고 한때 나와 천영검대는 놈들을 뒤쫓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천맹과 천영검대의 주적은 마교였기에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마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야막 또한 활약에 비례해 살수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 활동을 중단했다고 들었다. 문파로 치면 봉문과도 같은.

정천맹이 나서서 조사한 사항이라 나는 막주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야야도(夜夜刀) 조여랑.”

이름을 부르자 조여랑이 또다시 흠칫했다.

“야막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걸 보니···. 복수심인가? 야막에선 유씨가문과 관련된 자들을 죽인 적은 없는데.”

“복수는 아니고.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 관심이 있었지.”

“정파의 젊은 놈들이 흔히 가진다는 의협심, 뭐 그런 걸 말하는 것이냐?”

“궁금한가?”

그 물음에 조여랑은 침묵했다.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생사가 더 중요하다는 듯 주춤거리며 도망칠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나도 궁금한 게 많아. 너한텐 다행인 부분이지.”

“무슨··· 뜻이지?”

“넌 죽이지 않고 잠시 살려두겠다는 뜻이야. 그러니.”

쉭! 콰득!

나는 말을 하는 동시에 오른팔을 뻗어 조여랑의 목줄을 틀어쥐었다. 내공이 실린 한 수이자 기습이어서 놈은 미처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에 힘을 주자 놈이 켁켁 거리며 발악하다가 축 늘어졌다. 나는 의식을 잃은 놈의 혈을 짚어두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런 다음 적당히 나뭇가지 위에 매달아 놓은 뒤 아직 살수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살수들의 숫자를 줄여뒀고 위험해 보이는 놈들 몇 명까지 미리 처리해둔 덕인지 일행은 담해상을 필두로 잘 버텨내고 있었다.

남은 숫자는 대략 여덟.

슁!

검을 뽑아 조여랑처럼 은신해 있는 놈들부터 차례대로 처리해나갔다.

일검에 한 놈씩.

일행들의 피해가 없는 건 아니어서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담해상과 왕삼을 제외한, 내 본 실력을 모르고 있던 일행들이 놀라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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