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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5화 (45/150)

6장 태산[4]

6장 태산[4]

“칠일.”

금월보주가 씩 웃으며 그 말을 되뇌었다. 이번 계책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재력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 고지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마천섭혼술(魔天攝魂術).

섭혼술이라 함은 상대의 영혼과 정신력을 지배해 조종하는 사술의 일종이다. 말 그대로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상대의 무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섭혼술이 먹히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일류의 경지에만 도달해도 웬만한 섭혼술에 대항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마천섭혼술은 달랐다.

무려 천마신교의 비술이었고 그중에서도 교주에게만 전해지는 신공이 바로 마천섭혼술이었다. 천마의 마천섭혼술은 자신보다 무위가 낮은 자들에겐 기가 막힌 효과를 보였다.

십만 교도를 통치해야 했던 천마에겐 꽤 어울리는 비술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대단한 비술의 비급이 지금 금월보주의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이 비급을 손에 넣은 건 정마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쯤이었다. 전쟁의 승기가 정천맹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천마신교의 본거지 또한 무너지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천마의 무공들을 탐냈다.

물론 대부분은 소실되거나 정천맹 쪽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운 좋게 마천섭혼술의 비급을 빼내 올 수 있었다.

오직 자신과 금월보의 인물들 몇 명 그리고 련주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자 금월보의 입지를 견고히 다져줄 물건이기도 했다.

다만 마천섭혼술은 천마의 독문심법을 모르면 익힐 수가 없었고 익힐 수 있다 치더라도 시전자의 무위가 상대보다 높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해서 그동안 마천섭혼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술을 연구했다. 여기에만 금월보가 축적한 재산의 반 이상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

마천섭혼술을 직접 익히는 게 아닌, 하나의 대법(大法)으로 개조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름마저 정해지지 않은 대법이지만 금월보주는 성공을 확신했고 대법의 실험대상을 태산파의 장문인인 동악검선으로 결정지었다.

애초에 금월보의 임무 중 하나가 태산파를 무너트리거나 굴복시키는 거였기에 거리낄 게 없었다.

만일 대법을 성공시켜 동악검선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천하십대고수의 일인과 천하오주의 하나인 태산파를 발아래에 둘 수 있었다.

태산파를 멸문시키기보다 훨씬 쉽고 효과적인 계책이어서 련주 또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

계획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금월보주는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칠 일 후 마지막 날에 사용할 구근활력초가 필요하답니다.”

“구근활력초?”

금월보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영약 중에서도 상질에 속하는 영약이 구근활력초였다. 모르긴 몰라도 몇십만 냥은 거뜬히 넘어갈 것이다.

“꼭 구근활력초여야 하는 건가?”

“흑로가 이름까지 짚어 거론한 걸 보면 대법의 재료로 무조건 필요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야왕의 추측에 금월보주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계책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흑로.

태산파에선 흑선이란 이름의 의원으로 위장해 동악검선에게 대법을 펼치기 위한 사전 준비를 도맡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를 태산파에 잠입시키기 위해 태산파의 장로 몇 명을 회유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그 이전에 동악검선을 중독시켜 가사상태로 만드는 것부터가 고역이었지만.

이번 계획이 실패하면 솔직한 말로 금월보는 파산에 가까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당에 구근활력초쯤이야.

“어떻게든 구해봐. 돈을 쓰든, 피를 보든.”

“예.”

“선우약가의 삼녀는 어떻게 됐지?”

“보고는 아직···. 야막의 막주가 직접 나서기로 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막주가? 하긴, 야왕이라 불리던 네가 직접 의뢰를 맡겼으니 놈들도 가볍게 여기진 못하겠지. 넌 구근활력초를 확보하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예.”

금월보주의 명령에 야왕은 천천히 기척을 감추었다.

*

야막의 습격 이후, 나와 일행들은 여정을 최대한 서둘렀다. 습격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빠르게 태산에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배신한 게 확실시되는 태산파의 재경각주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태산파 안에서는 놈들도 대놓고 수를 쓰지 못할 테니까.

적어도 선우유란을 죽이겠다고 다시 검을 드는 짓 따윈 배제하겠지.

또, 야왕이라 불렸다던 살수의 존재도 거슬렸다. 만일 담해상의 말대로 실력이 대단한 살수라면 병상에 누워있는 동악검선이 위험했다.

배신한 인물들이 경계를 허물어주기만 한다면 야왕쯤 되는 살수가 의식이 없는 동악검선을 죽이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지?

배후조직이 노리는 게 태산파의 멸문이라면 지금이 기회가 아닌가. 장로 중 일부가 배신했고, 태산검존이 부재중인 상황에 동악검선마저 병상에 누워있었다.

나였다면 야막의 살수들을 선우유란이 아니라 동악검선에게 보냈을 것이다. 야왕까지 함께. 어떻게든 동악검선을 죽이는 게 놈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담 선배.”

태산의 옥황봉으로 향하는 길목을 내달리는 마차. 그 마차의 천장에 앉아있던 내가 부르자 마차 안에서 담해상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나는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잠시 마차에서 떨어져 둘만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로.

쉬쉭!

이어 나는 담해상과 함께 마차에서 떨어져나왔다. 대신 경공을 펼쳐 마차를 뒤따르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태산파의 재경각주말고 누가 또 배신했는지 알아낸 게 있습니까?”

“애석하게도 그 외엔 알아낸 사실이 없네. 의심 가는 인물이 몇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의심일 뿐이네. 사형과 함께 의논했음에도 말이야.”

“배신한 자들이 딱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그렇네. 그건 재경각주 또한 마찬가지였지. 배신한 게 확실시되는 사람이라기에 사형께서 주시하고 계시긴 하지만, 배신이라 할 만한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네. 그 덕에 내가 잠시 태산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고.”

담해상과 대화를 나눌수록 의문은 커져만 갔다. 정확히는 배후조직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가 불분명해진 상황이었다.

“이건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동악검선께서 쓰러지신 이후에 그분을 해하려는 낌새도 없었습니까?”

“없었네. 장문인의 처소를 제자들은 물론 호법당주께서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도 하고.”

“호법당주라면?”

“그분 또한 태산파의 장로 중 한 분일세. 현 상황에선 나와 사형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이네.”

“그렇습니까?”

“현재 장문인의 병세를 돌보고 있는 의원도 호법당주께서 데려온 인물일세.”

호법당주면 장문인의 호위를 책임지는 지위겠지. 그를 회유하지 못해서 암살을 획책하지 못한 건가?

의문이 해소되진 않았으나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선 뭔가를 더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어쨌든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선우유란을 데려가 동악검선을 치료하고 정체가 드러난 야왕과 재경각주를 통해 배후조직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 놈들의 목적은 그때 가서 파악해도 늦지 않을 터.

나와 담해상은 다시금 마차에 몸을 실으며 태산파를 향해 나아갔다.

*

최대한 서두른 덕에 나와 일행들은 이틀 만에 옥황봉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악 중 하나인 태산이라더니 역시나 경치가 대단했다. 더군다나 예로부터 신령한 봉우리라고 여겨지던 옥황봉이었다.

사방을 뒤덮은 운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산이 아니라 하늘 위에라도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태산파의 장원은 경치와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었는데, 그 대비가 오히려 묘한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태산파에 온걸 환영하네.”

장원을 향해 걸어가는 담해상이 일행을 이끌었다. 일행들은 표정이 다소 굳어있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단순한 방문 차원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담해상을 뒤따랐다. 주변 경치를 눈에 담다가 태산파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제자들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표정과 눈빛이 맑아 보는 이로 하여금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선한 인상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를 잠시 살피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일대제자인 담해상의 복귀를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렸다.

나와 일행들은 담해상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어 누군가가 안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는데, 담해상이 황급히 예를 표하는 게 보였다.

“일대제자 담해상이 재경각주님을 뵙습니다.”

‘재경각주’라는 말에 힘을 실은 걸 보아 담해상은 나를 의식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재경각주라 불린 중년인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여타 태산파의 제자들과 달리 그의 인상은 다소 고집 있는 얼굴이었다. 태산파의 재정을 담당하는 인물인 만큼 세속적인 면모도 드러났다.

그런 그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네가 출타했다는 소식은 자명이에게 전해 들어서 알게 됐지. 사문의 어른들께 직접 보고도 없이 어딜 다녀왔느냐?”

“그것이···.”

재경각주의 트집에 담해상이 당황했다. 태산파의 입구에서부터 그가 모습을 드러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배후조직에 가담한 장로 중 하나이기도 해서 담해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싶었다.

결국, 담해상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장문인께 도움이 될 인물을 데려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도움?”

“예.”

대답과 함께 담해상이 선우유란을 슬쩍 바라봤다. 뒤쪽에 서 있던 그녀가 담해상 옆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선우약가의 삼녀인 선우유란이라고 합니다. 곽윤(郭允) 장로님의 명성은 아버지를 통해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경각주 곽윤.

나는 담해상과 선우유란 덕에 파악하게 된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며 묵묵히 상황을 지켜봤다.

선우유란이 태산파에 방문하려는 걸 저지하기 위해 살수를 보냈던 놈들이다. 곽윤이 놈들과 같은 편이라면 이 상황이 탐탁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나오려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예상대로 곽윤이 코웃음을 쳤다.

“오냐. 세간에선 너를 사룡일화라 부른다지? 선우약가주의 의술과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가문의 명성 덕에 과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소녀로선 부끄러울 따름이지요.”

“그러더냐?”

선우유란의 겸손함에 곽윤의 조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부끄러운 실력으로 감히 태산파의 장문인을 살펴보겠다고?”

“그런 게 아니오라···.”

“그리고.”

곽윤의 시선이 다시 담해상에게로 꽂혔다.

“일대제자라는 놈이 사문의 기밀을 선우약가의 가주도 아닌 고작 후기지수에 불과한 아이에게 떠벌렸단 말이냐? 게다가 혹을 주렁주렁 달고 왔구나.”

그는 마치 태산파의 치부가 드러나 낯부끄럽다는 심정으로 분노를 토해냈다. 그의 본색을 몰랐다면 충분히 납득갈만한 분노였다.

담해상은 황급히 반박했다.

“고작 후기지수인 아이가 아닙니다. 이 아이의 의술은 명성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분명 장문인의 병세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시끄럽다. 이미 흑선 어르신께서 장문인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시거늘. 이 상황은 그분까지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그 또한 맞는 말이었기에 담해상은 반박을 이어가지 못했다.

곽윤은 기세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외부인을 함부로 출입시킬 수 없구나. 그래. 내가 요즘 예민해져 있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한 건 사과하마. 너희들이 본문을 돕기 위해 이곳까지 방문해준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환영해줄 수 처지가 아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거라.”

분노했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곽윤은 이번엔 공손한 어조로 사양했다.

“예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미안하구나. 여비는 내가 두둑이 챙겨주마. 선우약가의 가주께도 내 따로 안부와 감사를 전하겠다.”

곽윤이 선우유란을 포함한 일행들과 나를 한 차례씩 훑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의 언변에 순식간에 명분을 잃은 일행으로서는 하릴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축객령이었다.

나로서는 따를 이유가 없는 축객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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