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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6화 (46/150)

6장 태산[5]

6장 태산[5]

“손님들을 배웅하거라. 해상이는 따라 들어오고.”

재경각주 곽윤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의 명령에 태산파의 제자들은 조심스레 나를 포함한 일행들을 배웅했고, 담해상은 한숨과 함께 씁쓸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선우유란을 태산파로 데리고 오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곽윤으로 인해 허사가 돼버렸으니.

장문인과 장문인 대리마저 없는 지금, 장로의 명령은 지고했기에 일행들은 할 수 없이 물러났다.

나는 그런 일행들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희는 일단 산을 내려가. 옥황봉 초입의 그 객잔에서 대기하고 있고.”

내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식사를 위해 들렀던 객잔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 장진악이 속삭이듯 물어왔다.

“형님은 어쩌시려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날 순 없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설마. 태산파에 몰래 잠입이라도 하시게요?”

내가 야막의 살수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장진악은 내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는 진심으로 나를 형님 대하듯 모시고 있었고.

“잠입은··· 대안이 없으면 고려해봐야지.”

내 말에 일행들이 당황스러워했다. 장진악도 마찬가지였다. 내 실력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내던져본 말이라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천하오주의 하나인 태산파에 잠입해 들어갈 생각을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내 실력이라면. 거기다 동악검선과 태산검존이 부재중인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그건 최후에나 고려해 볼 방법이었다.

“아무튼, 나중에 객잔에서 보자.”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무리하지 마세요, 유 공자.”

결국, 일행들은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일행들과 달리 내가 떠나지 않고 남아있자 태산파의 제자들이 당황했고 담해상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재경각주 곽윤이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넌 함께 돌아가지 않고 뭐 하는 게야?”

나는 피식 웃으면서 태산파의 정문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유씨세가의 소가주인 유진휘라고 합니다.”

“유씨세가?”

곽윤은 처음 들어보는 가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군지는 잘 알겠다. 다시 물으마. 용건이 뭐길래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것이냐?”

“저는 함께 왔던 일행들과 달리 담자명 대협을 뵙기 위해 태산파에 방문했습니다.”

“무슨 일로?”

무슨 일? 목적이야 명확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되는대로 씨불였다.

“태산검존 장로님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서요.”

태산검존이라는 말에 곽윤이 움찔 놀라는 게 보였다. 같은 배분의 장로이지만 엄연히 태산검존은 장문인 대리 신분이었고 동악검선의 뒤를 이을 차기 장문인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재경각주나 여타 장로들보다 지위가 높다는 뜻이다.

다만 수련을 핑계로 중원을 떠돌아다니는 그의 행적은 태산파로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행방이 묘연한 그의 전언이라는 말에 곽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네가? 곽명(郭明)을 만났다고?”

“네.”

“어디서?”

“산서에서요.”

“산서?”

물론 거짓이고 헛소리지만 내 눈빛과 표정은 진실을 연기했고 곽윤은 그런 나를 말 없이 응시하다가 혀를 찼다.

“곽명이 뭐가 아쉬워서 유씨세가의 소가주를 만나고, 그런 너에게 전언을 전했단 말이냐? 너는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

거짓말은 진실과 허구를 섞을 때 극적인 형태를 보인다. 지금까지가 허구였다면 이제는 진실을 섞어줄 때였다.

“태산의 검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

“지난 수백 년간 태산파의 장문인들은 나머지 반쪽을 찾아 태산의 검을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전생에 동악검선이 술에 취해 검신 영감에게 주정을 부리듯 이야기해주는 걸 옆에서 함께 들었었다.

태산파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태산만허검결(泰山滿許劍決). 동악검선을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한 그 검법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말에 나는 매우 놀랐었다.

“듣기로는 태산만허검결이 제 위력을 내기 위해선···.”

“그만!”

곽윤이 더는 듣기 싫다는 듯 나를 저지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사실은 태산파의 장문인과 윗선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중대한 기밀 중 하나였다.

동시에 곽윤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씨세가 소가주에 불과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태산검존과 만났다는 걸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태산파의 기밀이자 치부를 고작 나 따위에게 털어놓은 태산검존에게 분노가 치미는 듯싶었다.

“그래서. 곽명의 전언이 무엇이더냐?”

“그건 장문인이나 태산검존 장로님의 첫째 제자이신 담자명 대협에게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뭐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태산검존 장로님께 그렇게 부탁받았습니다. 문제라도?”

내가 웃자, 곽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가 더욱 화를 내며 분노를 표출하려 할 때였다.

“스승님의 전언이라고?”

태산파 안에서 담자명이 뒤늦게 달려와 모습을 드러냈다.

*

태산삼검의 첫째이자 태산파의 일대제자인 담자명. 정문 밖으로 달려오는 그는 아차 싶은 얼굴이었다.

담해상이 선우유란을 데려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하필 재경각주 곽윤이 먼저 나서서 그녀를 돌려보낸 상황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살벌한 눈빛을 교환했다.

“재경각주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짓? 짓이라고 했느냐?”

가뜩이나 나로 인해 화가 치밀어오른 곽윤이었다. 그는 담자명을 씹어먹을 듯이 쳐다보며 노기를 터트렸다.

“선우약가의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시킨 게 너였더냐?”

“예. 제 손님이었습니다.”

“본문의 상황이 어떤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감히’라고 하셨습니까? 그 아이는 장문인을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아이였습니다. 그것도 선우약가의 후계자 중 하나인 삼녀가요. 장문인의 병세를 살펴보게 하진 못해도 이렇게 문전박대할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감히’라는 말은 저희에게나 어울리는 말이겠지요.”

“네놈이···.”

이야. 말 잘하네.

나는 윗사람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가는 담해상을 바라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런 담해상이 슬쩍 나를 쳐다봤다.

“저 아이도 마찬가집니다. 스승님이 보내신 제 손님입니다. 재경각주께서 관여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곽윤이 주변을 살폈다. 정문 앞에서 소란이 일자 태산파 제자들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었다.

제자들 모두 담해상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곽윤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유진휘라고 했던가? 저 아이의 방문까진 막지 않겠다. 마음대로 해라. 대신, 전언을 전한 뒤에는 곧장 떠나야 한다는 걸 명심하도록. 장문인의 처소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고.”

곽윤은 선심 썼다는 듯 경고를 내뱉고는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지자 담해상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담자명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네가 스승님을 만났다고?”

담자명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는 내가 일전에 만났던 백의문주인 줄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나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기세를 키워 오로지 내 앞에 서 있는 담자명만을 압박했다.

“헉!”

순간 담자명은 내 기세에 대항하려다가 실패한 듯 비틀거리면서 헛숨을 들이켰다. 무형의 기운에 몸이 짓눌리면서도 그는 간신히 자세를 유지한 채 나를 올려다봤다.

“다, 당신은?”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맞아. 나야.”

*

만금상단주와 함께 성화상단으로 쳐들어왔던 태산파의 장로 곽현. 그를 죽인 게 백의문주일 때의 나였다. 곁에서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본 게 담자명이었고.

담자명쯤 되는 고수가 그런 내 기세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백의문주의 정체가···.”

다만 그는 백의문주가 유씨세가의 소가주일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 내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 본모습을 봤을 땐 다들 그런 표정을 짓더군.”

내가 피식 웃자 담자명이 나를 따라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런 젊은 나이에 그런 무위라니.”

직접 사실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는 믿기 어렵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사이에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담자명의 안내를 받아 혜어각(慧語閣)이라 불린다는 건물에 도착한 나였다.

태산파의 장원 내부에서 다시 뒷문을 통해 이어진 산길을 좀 더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태산검존의 거처이자 그의 제자들인 태산삼검이 머무는 장소였다.

기본적인 가구를 제외하곤 텅 비어있다시피 한 건물이고 방이어서 초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방안에는 나와 담자명 둘뿐이었다.

“백의문주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소.”

“당연히 와야지.”

“한데 선우약가의 삼녀와는 어떻게 함께 오시게 된 거요? 스승님의 전언은 또 무엇이고.”

담자명의 질문에 나는 차분하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태산검존의 전언에 대해서는 단지 재경각주를 속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소. 스승님의 행방을 모르니 재경각주도 쉽사리 진위를 파악할 수 없었겠지.”

“태산삼검의 셋째가 찾으러 갔다며?”

“그렇소. 사제 녀석을 보내두긴 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소. 대신 선우약가의 삼녀. 그 아이가 오기만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담자명이 낙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워하지 마. 산 밑에서 대기하라고 말해두었으니까.”

“하지만 재경각주가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장문인의 병세를 살펴볼 기회가 없지 않겠소?”

당장은 그렇지만 기회야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전에 나는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물었다.

“흑선이라는 의원은 누구지?”

“흑선 어르신 말이오? 호법당주께서 모셔온 자요. 몇 달 전부터 장문인의 병세를 치료하고 있소.”

흑선이라. 태산파 장문인을 돌볼 정도면 꽤 명성이 높을 듯싶었는데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장문인의 병세는?”

“그게···.”

담자명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흑선 어르신께서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 며칠 뒤에 큰 시술을 하기로 하셨소. 장문인의 병세가 꽤 좋아졌다는 말도 들었고.”

“태산파 입장에선 환영할 일 아닌가?”

“좀 이상하지 않소? 사실 몇몇 장로를 제외하곤 장문인의 상태를 직접 살펴본 사람이 없어서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오. 게다가 본문을 배신한 재경각주마저 흑선 어르신을 돕는 상황이고. 배후조직 놈들이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말이요.”

“이상하지. 확실히 이상해.”

내가 가진 의문과 동일했다. 동악검선의 병세가 호전된다는데도 배후조직 놈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직접 봐야겠군. 그러기 위해서 온 거니까.”

“뭘 어쩌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담자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기대되면서도 불안하다는 심정이 묻어나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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