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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8화 (48/150)

7장 검선[2]

7장 검선[2]

“흑선마저 배후조직의 인물이라니. 그 말은···.”

담자명이 참담한 심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호법당주 곽양개(郭良价). 장문인의 호위를 책임지는 인물이자 무공실력이 곽자배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담자명이 그나마 믿었던 장로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장문인이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흑선을 데려온 게 곽양개였으니, 그의 배신은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담자명에게 말했다.

“내가 볼 때 어르신은 병으로 쓰러진 게 아니야.”

동악검선의 거처에서 목도한 그 광경을 상세히 설명해주자 담자명이 이를 갈았다.

“인위적으로 장문인의 몸에 마기를 심으려 했다는 말이오? 대체 왜?”

정순한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정파인의 몸에 마기를 심으면 주화입마에 빠져 폭주하거나, 폐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놈들은 동악검선이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마기를 주입했다.

“왜일까.”

대답 대신 나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마기. 마교. 교주. 천마. 의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연스레 전생에 마주했던 천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지사방을 마기로 물들이며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교의 마인들은 좌우로 갈라져 그를 우러러봤다. 추앙을 넘어 숭배에 가까운 태도였고 그 숫자는 무려 십만에 달했다.

아무리 마교가 천마를 추종하는 종교이자 강자존에 의거해 움직이는 집단이라지만 십만 교도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뇌라도 당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정마대전 기간 동안 수많은 강호인이 의심하던 부분이었고, 그 의심은 정마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해소됐었다.

“마천섭혼술.”

마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비술이자 신공.

내 중얼거림에 담자명이 반응했다.

“마천섭혼술?”

“뭔지 알지?”

“이름은 당연히 들어봤소. 마교주였던 천마가 마인들을 지배할 때 사용했다는···.”

말을 하던 담자명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천마가 살아있다거나, 마교가 부활했다거나 하는 억측은 하지 말고.”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천마는 내 손으로 죽였고 검신 영감과 정천맹은 마인들을 확실하게 소탕했으니까.

담자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지워버렸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마교는 아니겠지만 마천섭혼술과 같은 부류의 사술이 아닐까 싶은데.”

마천섭혼술일 리는 없다. 그건 천마만이 익힐 수 있는 신공이었다.

“장문인을 해하는 게 아니라 세뇌하려고 했다는 말이오?”

아귀는 들어맞았다.

동악검선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태산파의 제자들이 모르게 할 수만 있다면 놈들은 태산파를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을 테니까.

“곽윤. 곽양개. 이 개자식들이···.”

담자명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당장에라도 장문인을, 나아가 태산을 팔아먹은 두 장로를 찾아가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침착하고 앉아.”

내가 만류하자 담자명이 입술을 깨물며 쾅, 탁자를 내려쳤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어쩌긴?”

일단 동악검선은 무사히 빼냈다. 선우유란에게 보냈으니 회복시킬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테고.

지금은 잠시 숨을 죽일 때였다.

“어르신이 사라진 걸 알게 되면 놈들이 반응을 보일 거야.”

무려 태산파를 집어삼키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마무리 단계에 놓여있던 그 계획이 갑자기 틀어진 걸 알게 되면 놈들은 크게 당황하고 흥분할 게 분명했다.

흑선. 곽윤과 곽양개. 세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동악검선을 찾아 헤매겠지. 아마 놈들의 윗선 혹은 배후조직에도 그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나는 담자명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신뢰할 수 있는 일대제자들을 추려서 은밀히 모아봐.”

“일대제자들을 말이오?”

“그래. 태산삼검의 첫째이니 가능하겠지?”

담자명은 담자배의 사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다.

“물론이오.”

일대제자는 그에게 맡기면 될 것 같고. 나는 이대제자인 임평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음날에 나는 아침 일찍부터 혜어각에서 빠져나와 태산파의 장원으로 이동했다. 이대제자들이 머무는 전각에 도착하자 우렁찬 기합 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합!”

“합!”

전각 입구 너머로 연무장이 보였고 그곳엔 수십 명의 이대제자들이 줄지어 늘어선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수십 개의 검날이 햇살을 가르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삼검!”

그때, 연무장 상단에서 임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임평의 주도하에 수련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사검!”

“타아앗!”

권룡 장진악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더니. 나는 연무장 뒤쪽, 그늘진 자리로 이동해 가만히 수련을 지켜봤다.

“육검!”

“하아압!”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였고 날카로운 검초였다.

“...착검!”

착!

반 시진가량 이어진 수련이 끝나고, 이대제자들이 검을 회수했다.

“오전 수련은 여기까지!”

“예, 대사형!”

임평의 외침에 제자들은 대답과 함께 삼삼오오 흩어졌다. 정해진 수련 시간 외에는 저렇게 자율적으로 단련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다.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날 발견한 임평이 다가왔다.

“유 형!”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마주 바라봤다.

“이대제자들의 대사형다운 면모였어.”

“그랬습니까?”

임평이 멋쩍다는 듯 실실 웃었다.

그는 하남에서 태산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장진악을 따라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선언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야막의 살수들을 처리하고 나서부터였다.

그전까진 장진악이 왜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날을 기점으로 나를 우러러보듯 하기 시작했다.

“잠시 할 얘기가 있다.”

“예. 말씀하세요.”

나는 그런 임평에게도 지난밤의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호법당주가 재경각주와 같은 배신자이고, 흑선이 배후조직의 인물이라는 얘길 듣자 그는 경악했고 장문인을 몰래 빼냈다는 말에는 크게 안도했다.

“장문인은 그럼 무사하신 겁니까?”

“일단은. 나머진 선우 소저에게 달렸지.”

“다행입니다. 유 형이 아니었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입에도 담기 싫다는 듯.

“어쩌면 너와 이대제자들이 나서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입니다.”

임평이 각오를 다지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사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겠다는 기세여서 나는 만족했다.

수련을 지켜본바, 태산파의 이대제자들은 이류를 넘어 일류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제자들을 임평이 이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곽자배의 장로 중 또 누가 배신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태산파의 일대와 이대제자들 뿐이었다.

*

쾅!

“이런 미친!”

흑선이 크게 분노하며 문을 걷어찼다. 지난밤까지도 침상 위에 곤히 잠들어 있던 동악검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반쯤 부서진 문을 박차고 나와 일갈했다.

“곽양개-!”

그의 고함에 중년인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요?”

“무슨 일? 무슨 일?”

흑선이 붉어진 얼굴로 노기를 토해내자 호법당주 곽양개가 진땀을 흘렸다. 이어 그는 장문인의 처소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했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곽양개가 문밖으로 빠져나와 묻자 흑선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씨불이는 게냐? 이곳을 지키는 게 네놈의 일이거늘?”

“하지만 분명···.”

곽양개가 말을 잇지 못했다. 흑선의 말대로 장문인의 처소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건 자신의 임무였다.

해서 호법당의 제자들을 모두 동원하여 매일같이 장문인의 처소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했다. 자신 또한 틈날 때마다 주변을 순찰했고.

“분명 흑선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없었소. 침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감히 누가 호법당의 경계를 뚫고 들어온단 말이오?”

그 말에 흑선은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호법당의 경계는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야왕쯤 되는 인물이나 들락날락할 수 있을 정도여서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느꼈었던 희미한 인기척이 설마···.’

착각이라 여기고 그러려니 넘어갔었다. 만일 그게 착각이 아니었다면. 야왕과 같은 잠행술을 펼칠 수 있는 자가 잠입했던 거라면.

“곽윤을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흑선의 명령에 곽양개가 잠시 자리를 떠났다. 재경각에 있을 곽윤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에 흑선은 다시 처소 안으로 들어가 유심히 방안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법의 정중앙에 꽂혀 있는 검 한 자루를 발견했다. 흥분한 나머지 처음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제기랄!’

그제야 흑선은 확신할 수 있었다. 침입자의 존재를. 자신의 기감마저 속인 채 잠입해 대법을 깨부수고 동악검선을 빼내 간 것이다.

‘대체 누가?’

야왕일리는 없고, 곽윤이나 곽양개가 계획이 마무리 단계까지 진행된 마당에 죄책감을 느꼈다거나 정신을 차려서 장문인을 구해냈을 리도 없다.

두 사람은 이미 철저하게 태산파를 배신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태산삼검은, 자신의 기감을 속일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태산검존이라면 모를까.

‘태산검존이 돌아온 것인가?’

흑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태산검존의 행적은 이미 금월보주가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는 여전히 중원 전역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와중에 곽양개와 곽윤이 헐레벌떡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곽양개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곽윤은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로 흑선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르신.”

흑선은 여전히 진법 중앙에 꽂혀 있는 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심 가는 인물이 없느냐?”

“...현재로선 없습니다. 아, 혹시.”

“혹시?”

“유씨세가의 소가주라는 놈이 본문에 머물고 있긴 합니다만.”

“유씨세가?”

“알아보니 산서 지역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무가라고 합니다.”

“그놈 실력이 이곳의 경계를 뚫을 만하더냐?”

흑선의 질문에 곽윤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인물은 아닙니다. 높게 쳐 줘봐야 일류수준···.”

“됐다.”

흑선이 말을 끊으며 인상을 구겼다. 엄한 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네놈들은 곧장 침입자를 추적해라.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게야.”

“알겠습니다. 그럼 어르신께서는···.”

“금월보주께 보고를 올려야겠다.”

연락책을 겸하던 야왕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라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건물을 빠져나와 각자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뒤에, 나는 세 사람이 서 있던 자리로 걸어 나왔다.

‘금월보주?’

그 이름을 되뇌며 나는 은밀하게 흑선의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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