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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49화 (49/150)

7장 검선[3]

7장 검선[3]

‘금월보주께 보고를 올려야겠다.’

흑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금월보의 주인. 산서에서부터 뒤쫓아온 배후조직의 정체를 마침내 밝혀냈다는 생각에 나는 눈을 빛냈다.

쉭!

나는 태산파를 벗어난 흑선을 은밀하게 추격했다.

흑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적이 없는 방향을 골라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밀하고 신중하지만, 속도는 빨랐다.

옥황봉의 정상에서부터 하산하는 데 불과 반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무공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이어서 나는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또 숨겼다. 그 상태로 다시 한참을 뒤따라 도착한 곳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대숲이었다.

흑선은 주변을 살피면서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숲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개 속을 거닐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거리로 보나 위치로 보나, 이곳이 놈들의 본거지 그러니까 금월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흑선이 낡은 움막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움막 안에서 복면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고 두 사람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내공을 끌어올려 청각을 키우자 놈들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대부분 흑선의 것이었다.

‘...동악검선이 사라졌네. 정체를 모르는 조력자···.’

‘...곽윤과 곽양개가 침입자를 추적하고 있지만, 놈들만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네. 하필 대법을 펼치기 직전이었는지라 동악검선의 상태가 불안정···.’

‘...내 실수인 건 인정한다고 전해주게. 하나 당장은 잘잘못을 따질 떼가 아니니 일단 누구든 도움이 될만한 자들을 좀 보내···.’

연락책과의 접선 장소였나.

나는 흑선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복면인의 행색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얄팍한 몸집에 비해 두 다리가 튼튼한 걸 보니 확실히 놈은 경공에 특화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흑선의 보고가 끝나면 놈은 곧장 금월보로 이동할 게 분명했다.

‘여기서부턴 저놈을···.’

속으로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네놈이더냐.”

등을 지고 서 있던 흑선이 정확히 나를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

“정말로 야왕에 버금가는 잠행술이로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따라붙을 줄이야.”

흑선은 말과 함께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이번에도 정확히 내가 은신해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나는 쯧, 혀를 차면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나와 흑선은 잠시 안개 너머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어 그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보다 젊은 놈이로군.”

“늙은 놈보단 젊은 놈이 낫지.”

내가 웃자 흑선도 나를 따라 조소를 머금었다.

실없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상태지만, 동시에 나와 흑선은 복면인에게 집중하고 있기도 했다.

복면인을 살려 보내야 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상반된 기세가 허공에서 맞부딪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동악검선은 어디에 있지?”

“궁금한가?”

“물론일세. 아무래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지라.”

작품이라는 말이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놈을 이 자리에서 죽이진 않겠지만 팔 한 짝 정도는 잘라내도 되겠다고.

일단 그전에.

“장문인의 거처에서 느껴지던 마기가 마천섭혼술을 떠오르게 하던데. 맞나?”

떠보는 말투로 묻자 흑선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거기까지 알아냈더냐?”

“아니. 더 있지. 곽윤과 곽양개. 야왕. 구근활력초. 금월보. 태산파를 집어삼키려는 네놈들의 계략.”

내가 말을 이어갈 때마다 흑선의 표정이 점차 가라앉았다. 짐작에 불과했던 게 확신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다.

“어리석구나. 알아챘어도 모른 척 지나갔어야지. 주절주절 나불대는 꼴이 이 자리에서 죽여달라는 행동이나 다름없다는 걸 모르는 게냐?”

“죽일 수는 있고?”

“건방진 놈이···.”

흑선이 빠득, 이를 가는 그때.

쉭!

내가 쏘아낸 비도 하나가 복면인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끄악!”

놈은 뒤로 벌러덩 넘어진 자세 그대로 울부짖었고, 흑선은 놀람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품속에서 철선(鐵扇)을 꺼내 쥐었다.

부챗살이 통째로 철로 이루어져 있고 각 마디에 뾰족한 날이 솟아있는 무기였다.

촤라락!

그가 철선을 펼쳐 내게 짓쳐들어올 때까지도 나는 복면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바닥을 기어 어떻게든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기에, 비도 하나를 더 날려 보냈다.

쉬익!

“끅!”

나머지 다리 한 짝마저 쓸 수 없게 만들었으니 멀리 도망가진 못할 터.

나는 안심하고 코앞에서 호선을 그리는 철선을 피해낸 뒤 검을 뽑았다.

극쾌를 추구하는 발검술인 제일초식 일섬단세.

슁- 번쩍!

한줄기 섬광이 시야를 반으로 갈랐다. 찰나의 순간을 두고 터져 나온 검기는 갈라진 틈을 한 번 더 가로질렀다.

내공을 가득 실은 최대한의 위력으로 펼쳐 낸 초식이었는데.

“흡!”

흑선은 철선을 아래로 내리찍어 내 검을 쳐냈고 이어 철선을 다시 위로 올려쳐서 검기를 퉁겨냈다.

촤-악!

그리곤 그 충격을 흘려내기 위해 몸을 두어 바퀴 회전시키며 뒤로 물러났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자세를 바로잡은 흑선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 역시도 조금 놀란 상태였다. 일격에 제압할 순 없어도 피해 정도는 입힐 줄 알았으니까.

인극고수인 홍야보다 좀 더 강한 수준.

흑선이 이 정도라면.

“금월보주가 그쪽보다 강한가?”

내가 묻자, 흑선이 피식하는 웃음을 흘렸다.

“서로 궁금한 게 많은 상황이로구나.”

그는 말을 잇는 대신에 다시금 철선을 앞세운 채 날아들었다. 이번엔 나도 기다리지 않고 지면을 박찼다.

파파팡!

검과 철선이 뒤엉키며 쇳소리가 터져 나왔고.

콰쾅!

검기와 선기가 충돌하며 굉음을 만들어냈다.

공방이 백여 합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서로의 무기에 강기를 덧씌웠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히는 여파에 안개가 휘몰아치고 대숲이 나부꼈다.

그 소란 속에서, 점차 흑선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만큼 앞으로 몰아붙이며 기세를 잡았다.

“크윽!”

어느덧 그는 내 공격을 하나하나 막아내기가 벅차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도 철선은 촤르륵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하며 현란한 초식을 뿜어냈다.

한없이 밀려나다가 패배할 바엔 차라리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촤아악!

예상대로 내가 그의 어깨를 베어가는 순간이었다.

틱.

흑선이 쥐고 있던 철선에 실금이 그어졌다. 이어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철선이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났다.

촤라라라락!

조각 난 수백 개의 파편은 강기를 머금은 채로 암기처럼 분출됐다.

흑선이 숨겨 둔 비장의 한 수였다.

무기를 버리는 만큼 뒤가 없는 필살(必殺)의 위력이 담긴 한 수이기도 했다.

쏘아지는 파편 너머로 그가 승리를 확신하고 히죽 웃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나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나는 검을 휘두르던 자세에서 그대로 쭉 물러났다. 괘월선보를 통한 이형환위였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잔상이 피어올랐다.

그 찰나의 순간에 이형환위를 펼쳐 피해낼 거란 예상은 못 했는지, 흑선은 여전히 내 잔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잔상은 수백 개의 파편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다.

그사이에 나는 내공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제사초식 진광결인(振光結刃)을 펼쳤다.

검기와 달리 인극의 경지에 도달해야 발현시킬 수 있는 검강은 그 형태를 유지하는 데만 극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런 검강을 검기처럼 발출시킨다는 개념은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진광결인은 그 경지를 내포한 초식이자 쏘아지는 검강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기운이었다.

쉬이이이잉!

허공을 가로지른 무형의 강기가 흑선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잘려나간 팔이 바닥 위로 떨어지고 나서야 흑선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네놈은 대체···.”

연기처럼 흩어지는 잔상 너머로 나를 응시하는 그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

콰직!

“끅···.”

복부에 일격을 허용한 흑선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단전을 부술 생각으로 내지른 일격이어서 쓰러지는 그의 얼굴에는 허망함이 깃들어 있었다.

팔이 잘려나간 고통과 단전이 부서졌다는 충격에 그는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를 무심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두 다리에 비도가 틀어박혔던 복면인이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져 간 상태였다.

나는 바닥 위로 길게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대숲을 가로질렀고 얼마 가지 않아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은 기어가던 상태에서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휙 쳐들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저, 정말입니까?”

“물론.”

진심이었다. 지금 당장은 캐내야 할 정보가 많았으니까. 나는 놈의 혈을 짚어 제압한 뒤 어깨에 둘러멨다.

이어 왔던 길로 되돌아와 쓰러져있는 흑선까지 챙겨서 다시금 옥황봉으로 향했다.

흑선의 무공실력을 미루어볼 때 금월보와 금월보주는 만만한 세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당장 위치를 알아낸다고 해서 나 혼자 쳐들어간다거나 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대신 흑선과 복면인을 사로잡았으니 두 사람을 통해 최대한 정보를 캐내고 훗날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물론 태산파부터 제대로 정리해야지. 놈들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금월보주가 알아차리기 전에. 게다가 야왕마저 구근활력초를 구하러 간다고 자리를 비운 상황. 곽윤과 곽양개를 비롯한 배신자들을 색출해 정리할 수 있는 적기였다.

옥황봉의 정상에 도착한 나는 태산파의 담을 넘어 혜어각 쪽으로 내달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담자명과 임평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 두 사람 앞에 흑선과 복면인을 짐짝처럼 내던지듯 내려놨다.

그 광경에 임평은 깜짝 놀라고 담자명은 진중한 얼굴로 복면인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 자는···?”

“흑선과 배후조직 사이의 연락책.”

“정말이오?”

담자명에게 흑선과 복면인을 사로잡은 경과와 배후조직의 이름이 금월보라는 사실까지 전해주었다.

반대로 담자명은 내게 곽윤과 곽양개의 행적을 전해줬다.

동악검선을 빼내 간 침입자를 추적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각각 재경각과 호법당의 제자들을 이끌고 태산파를 나섰다고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겠지.

더불어 두 사람 외에 곽자배의 장로가 한 명 더 뒤따르듯 출타했다는 사실까지.

“그럼 그놈까지 총 세 명인 건가?”

태산파를 배신한 장로가 세 명. 산서에서 죽었던 곽현을 포함하면 총 네 명이었다.

담자명과 임평은 더는 분노할 여력도 없다는 듯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오?”

담자명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 그 결정은 내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해야지.”

내 말에 두 사람은 결의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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