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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57화 (57/150)

#57. 2장 합류(3)

“일리 있는 말이구나.”

태산파를 공격해 올 거라고 예상했던 금월보가 노선을 틀어 이대로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악검선은 부정하지 않았다.

놈들에게 있어서 태산검존과 동악검선의 복귀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게 분명했으니까.

“제자들을 추슬러 당장 오늘 밤에 출발하겠다.”

동악검선은 선뜻 내 의견을 받아들여 곧장 금월보를 정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의견은 받아들였으나 내 협력은 거절했다.

“너도 함께하겠다고?”

“물론입니다.”

“아니. 이번에는 내게 맡기거라.”

“하지만…….”

“지금까지 네게 입은 은혜를 갚으려면 천금으로도 모자랄 거 같구나. 본문을 파산시킬 작정인 게야?”

“그런 뜻이 아닌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르신.”

“잘 알지. 너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않느냐? 그런 몸으로 어딜 나서겠다고.”

그는 무복 밑으로 드러난 내 상처들과 상처 부위를 칭칭 동여매 붉게 물들어 있는 광목천을 힐끗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에도 중상에 가까운 상처긴 했다. 하지만 전생에 비하면 이런 상처쯤이야. 정마대전을 치르는 도중엔 이런 부상쯤은 일상으로 다가왔을 정도였다.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동악검선은 끝끝내 거절했다. 자신을 구하려다 입은 상처라는 걸 알기에 겸연함도 한몫했을 테고.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그의 말을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잘 생각했다. 대신 다녀온 후에 경과를 상세히 알려주마. 특별한 정보를 얻게 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네가 염려하는 건 금월보가 아니라 그 뒤에 있을 배후 세력의 본체가 아니더냐?”

“…예.”

대답과 함께 동악검선이 내 어깨를 다독이듯 두드렸다.

“너같이 젊은 나이에 그런 무위와 그에 걸맞은 사명감. 그리고 의협심을 가진 아이는 내 평생 보지 못했다. 너는 태산의 은인이고 나아가 강호를 구한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언젠가는…….”

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내 두 눈을 쳐다봤다. 마치 유진휘의 몸 안에 깃든 원래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천영검대주의 뒤를 이어 천하제일인을 넘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그런 인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음이야.”

“어르신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그래. 다녀와서 보자. 아직 너와 나누고 싶은 얘기들이 많구나. 본문에 머물고 싶다면 적당한 방이라도…….”

“아닙니다. 선우 소저에게 치료받는 도중에 도망치듯 빠져나온 거라.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허허. 하긴. 평소엔 얌전하기 그지없다가 환자를 살필 때가 되면 대쪽같이 변하더구나. 그럼 내 일을 마치고 그곳에 들르겠다.”

“그렇게 하시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준 뒤에, 제자들이 있을 태산파의 장원으로 내려가는 동악검선을 배웅했다. 곽명도 그의 뒤를 따랐고.

나는 두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걸 확인한 뒤에 혜어각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담자명과 담해상이 아직 그 안에 있었다.

***

산동 운성(郓城)현.

태산이 있는 중앙 산지와 달리 평야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도심을 벗어나면 대부분이 삼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다.

그 덕에 날짐승과 도적 떼가 들끓어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했다.

태산과도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여서 금월보가 자리를 잡기엔 적절한 장소였다.

‘삼림의 중앙을 기점으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동악검선이 모르게 담자명과 담해상에게 금월보의 위치를 전해 들었다.

그러곤 곧장 은신처로 돌아와 대기하고 있던 백의문원들을 이끌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왕삼과 공손량, 선우유란만 남겨두고.

“태산파의 장문인께서 직접 나서기로 하셨다면서요? 한데 저희까지 가세해야 할 만큼 놈들의 세력이 엄청난 겁니까?”

이자청이 거의 시야 끝에 보일락 말락 하는 금월보의 누각을 응시하며 물어왔다.

우거진 수풀과 거목에 에워싸여 저곳에 건물이 있다고 인지하고 있지 않다면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은밀한 위치였다.

나와 백의문원들은 그런 건물의 정문이 아닌 반대편. 후문 방향에서 기척이 걸리지 않게끔 거리를 벌린 채 포위하듯 대기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동악검선이 이끄는 태산파의 제자들. 거기다 태산검존 곽명까지. 금월보에 천하십대고수에 버금가는 인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정면으로 맞부딪친다면 그랬겠지만.

“혹시나 도망치는 놈들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놈들을 처리하는 거고.”

금월보를 이곳에서 일망타진할 심산이었다. 태산파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 성격상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니, 도움이 필요치 않더라도 직접 나서서 상황을 주시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모든 일에 방심을 배제하는 천영검대의 행동강령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탓인가 싶었다.

“전방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후방에서 쥐새끼를 몰이하는 맛도 나쁘지 않지.”

내 왼편에 서 있던 홍야가 낄낄 웃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항상 싸움을 앞둔 상황이 되면 사파 세력의 절대 고수였던 만검노수의 면모가 훤히 드러난다.

그러고 보면 언사룡과 공손량을 제외한 백의문원들은 태생부터가 사파 쪽 인물인 놈들이었다. 새로이 뽑은 스무 명의 백의검대원들도 주로 이자청의 추천으로 선발했다고 하고.

슬쩍 고개를 돌려 이자청과 백의검대원들을 살펴보자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게 보였다.

백의문에 틀어박혀 잠자는 시간도 줄이면서 수련에 매진했다고 하더니. 다들 자신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 굶주린 모양새였다.

나는 녀석들을 한 차례씩 훑다가 백색 가면을 뒤집어썼다. 백의문의 출사표는 백의문주로서 던져야 했으니까.

***

도착하고 나서 반나절쯤 흘렀을까.

‘감히 태산을 무너트리려던 놈들이다. 놈들에게 태산파가 왜 천하오주라 불리는지, 위상을 보여주거라-!’

반대편 정문 방향에서 동악검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한 거리였음에도 귀에 박히듯 똑똑히 들려오는 게 그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를 증명해 주었다.

“저게 천하십대고수…….”

이자청은 동악검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개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사룡과 백의검대원들도 마찬가지.

홍야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쯧, 혀를 찼다.

“부디 헛걸음이 아니기를 바라는데.”

검 손잡이를 쓰다듬는 모양새가 흡사 피에 굶주린 맹수와 같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덤덤히 금월보의 누각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무인들의 고함이 숲을 뒤흔들었고 수십 개의 날붙이가 뒤엉키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마, 막아라!”

“물러서지 마라!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대형을 구축해라!”

“뚫어라!”

“좌측부터……!”

수비하는 쪽과 공격하는 쪽. 양측의 충돌 속에서 슬슬 비릿한 혈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기감을 끌어올려 전세의 행방을 살폈다. 가장 커다란 존재감을 풍기는 동악검선은 최전방에서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고 그의 뒤로 곽명과 태산의 제자들이 뒤따랐다. 그 숫자가 대략 오십여 명.

반대로 금월보의 무인들은 백여 명에 육박했다. 그중 금월보주라 여겨지는 기세가 느껴졌고, 그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들도 존재했다.

그렇게 한창 살펴보는 와중에.

은밀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죽고 죽이는 격전 속에서, 금월보주를 비롯한 스무 명 정도의 인물들이 후방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화르륵!

금월보의 누각이 화마에 휩싸였다.

***

건물 전체가 일거에 불타오르면서 혈전이 이어지고 있는 전방의 전장과 후방으로 물러난 인물들 사이에 경계선이 그려졌다.

수하들이 죽든 말든, 그들의 희생을 방패 삼아 도주하려는 낌새였다.

“놈들이 도망친다!”

“놓치지 말… 큭!”

화마에 휩싸이고 그 안에서 다시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금월보의 무인들에게 태산파 모든 인물의 발이 묶였다.

그건 동악검선도 마찬가지. 그 한 명에게 이십 명 가까운 무인들이 합공을 펼치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에 당하지는 않겠으나 어느 정도 시간은 벌어줄 터.

그사이에 후방으로 물러났던 금월보주와 스무 명의 무인들은 뒷문으로 빠져나와 도주하기 시작했다.

“온다.”

내가 먼저 위치를 잡자, 주변으로 백의문원들이 촘촘하게 포위망을 펼쳤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그렇게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파삭!

오래지 않아 침묵이 깨졌다.

우거진 수풀과 거목 사이에서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놈을 시작으로 줄줄이 밀려오는 숫자는 정확히 스무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월보주.”

놈인 걸 단번에 알아차린 내 중얼거림에 금월보주가 움찔 멈추어 섰다.

놈은 나를 포함한 백의문원들을 훑어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백의문? 네놈들이 왜 여기에…….”

산서의 상권을 집어삼키려던 놈들의 계략을 무산시킨 게 나와 백의문이었으니 우리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터였다.

덕분에 놈 또한 가면을 쓴 내 모습을 통해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린 듯싶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백의문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쥐새끼가 한둘이 아닌데?”

“동료의 죽음을 방패 삼아 도망치는 놈들입니다. 쥐새끼와 비교하는 건 너무 과한데요. 벌레 새끼라면 모를까.”

이자청이 나를 따라 웃으며 검을 뽑았다.

채채채챙!

백의검대원들 또한 마찬가지.

“전부 죽여. 금월보주는 내가 맡지.”

“예!”

내 명령에 홍야와 이자청을 위시한 백의검대원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금월보주를 호위하듯 서 있던 스무 명의 무인들이 맞서기 시작했다.

수적 우세는 백의검대원들에게 있었으나 개인의 기량은 놈들이 조금 더 높았기에 충돌 이후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홍야가 날뛰기 시작하면 금방 깨어질 전세여서 나는 개의치 않고 금월보주에게만 집중했다.

놈 또한 마찬가지.

주변에서 비명과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와중에도 놈은 내 가면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백의문. 유씨세가. 둘 다 산서에서 활동하는 문파와 무가이니만큼 서로 모종의 관계라도 맺고 있었던 거냐.”

“왜 그렇게 생각하지?”

“금월보의 계획을 망친 게 바로 유가의 소가주니까. 놈이 태산을 도왔고, 그런 놈을 백의문이 돕는다. 애초에 산서를 먼저 제대로 정리했어야 했는데. 그게 내 패착이로군.”

“아니. 그거 또한 패착이지. 내가 판에 끼어든 이상 네놈한테 남은 건 모조리 악수(惡手)뿐이야.”

“후후.”

이런 상황에서도 쪼개는 꼴이라니.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꽤 여유로워 보이는데.”

내가 묻자 금월보주가 고개를 저었다.

“앞뒤로 나를 죽이려는 놈들이 가득한데 여유로울 리가? 다만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내 죽음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겠다고 여겨졌을 뿐이다.”

“무슨 뜻이지?”

“나와 금월보의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계획은 윗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일이다. 그 계획을 망쳤으니 나 또한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죽든, 돌아가서 죽든 마찬가지라는 뜻이지. 그리고…….”

놈은 비릿한 조소와 함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금월보의 행보를 제대로 가로막은 백의문과 유씨세가. 네놈들에 대해선 이미 윗선에 보고를 올려둔 상태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으나 두 곳 모두…….”

금월보주가 말을 하다 말고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촤-악!

“큭!”

내가 기습적으로 뽑아 내지른 검이 놈의 목덜미를 얕게 갈랐다.

“유언이 너무 길잖아.”

내가 픽 웃자, 반대로 놈은 인상을 구기며 자세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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