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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59화 (59/150)

#59. 3장 정리(2)

평균적으로 이십오 년 정도의 내공을 늘려주는 영약이 구근활력초였다. 그만큼 상질의 영약인 건 분명하지만 영약이란 걸 처음 복용하는 사람에 한해서나 그 정도.

나처럼 여러 종류의 영약으로 내공을 늘린 사람이나 몸 안의 내공이 이 갑자가 넘어가는 무인들에게는 영약 자체의 효용성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영약만으로는 무한정 내공을 늘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십오 년까진 아니어도 일영청심공이라면 이십 년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현재 내 내공은 백 년. 거기에 이십 년이 더해진다면 이 갑자.

전생에 지녔던 내공이 삼 갑자에 못 미치는 양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게 체감이 됐다.

물론 구근활력초 이후부터는 최소 그에 버금가는, 혹은 그보다 더욱 뛰어난 영약이 아니라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충분했다. 이 갑자라면.

인극의 경지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되는 거니까.

지극(地極).

사실상 현 강호인들이 꿈에 그리는 궁극의 목표이자 경지가 지극이었다.

당장 눈앞에 앉아 있는 동악검선이 그 경지의 초입을 넘어서는 단계였다.

그것만으로 천하십대고수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지극이 얼마나 지고한 경지인지를 증명해 주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전생의 나와 천마. 그리고 검신 영감까지도 그 지극의 경지 안에서 누가 한 발 더 앞서가느냐 마냐로 차이가 갈렸다.

그다음인 천극(天極)은 평범한 강호인들에겐 오래된 설화 속에나 존재하는 경지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분명 천극의 경지는 존재한다.

지극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그러나 닿기는커녕 닿을 수도 없는 그 문턱을 넘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기에 말이 사라졌느냐?”

마주 앉아 있던 동악검선의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공이 늘어날 생각에 설레서요.”

구근활력초가 담겨 있는 목함을 품속에 챙겨 넣은 나는 다시 동악검선에게 집중했다.

금월보와 그 배후 세력에 대한 대비는 지금단주라는 놈에게 정보를 캐낸 뒤에 해도 충분하다는 듯, 동악검선이 대화 주제를 바꿨다.

나누고 싶은 대화가 많다더니.

나는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이 됐다.

아마도 천영검대주와의 관계를 궁금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상대로.

“천영검대주 천우혁.”

동악검선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오자 새삼 나는 더 이상 천우혁이 아닌 유진휘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

내 죽음과 환생. 천우혁의 정신을 지닌 유진휘의 삶. 이 진실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유씨세가의 사람들. 정확히는 나를 여전히 당신의 자식으로 여기고 생전 몰랐던 부모의 마음을 아낌없이 건네주는 두 분 때문이었다.

진실을 밝히게 된다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사람도 그 두 분이었다.

나머지 가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겠지. 왕삼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이 삶의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진 몰라도 그때까진 최선을 다해서 유진휘의 삶을 빛내봐야지.

“천영검대주와는 어떤 관계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때문에 동악검선에게 무어라 둘러댈지 고민하다가 얼추 아귀가 들어맞는 선에서 정체를 꾸몄다.

“제가 소룡단의 단원이었던 시절에 그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소룡단? 마교의 장로였던 혈랑검과 혈랑대가 선우약가에 쳐들어왔을 때 소룡단이 그곳을 지키다가 전멸한 사건이 있었지. 하지만 생존자가 한 명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아이가?”

“예. 천영검대원분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허어.”

내가 소룡단의 생존자였단 얘기는 처음 들었는지 동악검선의 눈에서 안광이 솟아났다.

“그랬구나, 그랬어. 네가 바로 그 아이였구나. 소룡단은 누가 뭐래도 마교의 침략 속에서 선우약가를 지켜낸 영걸들이었다. 그런 네가 이번엔 태산을 구해주었구나.”

나는 그저 웃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그때의 만남을 통해 천영검대주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게냐?”

“당시엔 정마대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 직접적인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분께서 자신이 익힌 무공 비급을 건네주셨고 훗날 정마대전이 끝나면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주기로 하셨는데…….”

일부러 뒷말을 흐리자 동악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와의 혈전으로 양패구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천영검대주는 결국 죽고 말았으니까.

“그럼 오직 비급을 통해 그의 무공을 터득했다는 말이구나. 그것만으로도 실로 놀라운 재능이다. 스승도 없이 어찌…….”

“무공 자체가 뛰어났을 뿐입니다.”

“아니다. 그의 무공은 단연 천하제일을 논하는 위력이지만 그만큼 익히기가 쉽지 않았을 터. 너의 자질이 그에 버금간다는 뜻이겠지. 게다가 강호엔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고 말이다. 그의 유지가 너처럼 의협심 가득한 아이에게 이어지다니. 영웅이 영웅을 알아봤던 게야.”

적당히 둘러댈 생각으로 꾸며낸 얘기였는데, 동악검선의 반응은 예상외로 커다랬다. 운명이 어쩌고 인연이 어쩌고라는 말이 연신 터져 나왔으니까.

계속 듣고 있다간 낯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장문인으로서 아직 네게 보답조차 하지 못했구나.”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라지 않았더라도 은혜에 보답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동악검선은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품속에서 비급 한 권을 꺼내 들었다.

***

‘정마대전을 겪으며 마교 놈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창안한 장법이다. 천영검대주의 검법을 물려받았으니 내가 줄 건 이것뿐이로구나.’

태산항마장(泰山降魔掌).

수백, 수천에 달하는 적을 상대해야 하는 전쟁의 특성상 검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아 동악검선이 스스로 창안한 장법이라고 했다.

종전 이후 더욱 다듬고 발전시켜 탄생한 게 이 비급이고.

내용을 살펴본 바로 태산항마장은 충분히 강호의 일절이 될 무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미래에는 태산파의 절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 무공을 태산파의 제자도 아닌 내게 스스럼없이 건네준 것이다.

태산과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이라며, 나아가 천영검대주의 뒤를 이을 나를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하기에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동악검선이 창안한 무공인 만큼 태산의 묘리를 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계기여서 흥미롭기도 했고.

‘혼자 지낼 수 있는 적당한 장소? 내가 주로 사용하는 태허동(太虛洞)을 내어주마.’

영약을 복용하고 태산항마장을 수련할 장소를 요구하자 어르신은 이 동굴을 안내해 줬다.

사로잡은 금월보의 무인들을 심문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비는 시간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왕삼과 백의문원들은 미리 산서로 돌려보냈다.

‘금월보의 행보를 제대로 가로막은 백의문과 유씨세가. 네놈들에 대해선 이미 윗선에 보고를 올려둔 상태다.’

싸우기 직전에 금월보주는 분명 그리 말했었다. 당시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되짚어보면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발언이기도 했다.

해서 백의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동시에 은밀하게 유씨세가를 보호하라고 지시를 내려 둔 상태.

홍야가 있으니 놈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마지막으로 선우유란은 여전히 태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동악검선과 내 몸 상태가 완벽히 회복된 게 아니라며 선우약가로 복귀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유 공자께서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를 따돌린 채 은신처를 빠져나가셨잖아요. 거기다 직접 나서서 싸움까지 하고 와서는 이번엔 뭐? 수련이요?’

눈에 불을 켜고 쓴소리를 쏘아대기에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태허동에 들어오기 전에 이틀가량은 꼼짝없이 그녀에게 붙잡혀 있어야 하기도 했고.

덕분에 몸의 상처들은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

태산파의 지하 석실.

“월영련(月影聯).”

태산검존 곽명이 낯선 이름을 되뇌었다. 금월보의 지금단주라는 인물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이름이었다.

금월보는 월영련에 소속된 집단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그마저도 세력이 가장 약한 곳이어서 이번 계획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했다.

한데 그 계획이 월영련으로서는 고작 여러 교두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금월보의 계략 말고도 이미 여러 가지 대계(大計)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곽명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중 하나가 정천맹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허. 대체 어떤 세력이기에. 련주가 누구냐?”

“그게… 커억!”

“빌어먹을!”

심문을 이어가던 곽명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지금까지 열에 가까운 금월보의 무인들을 심문했다.

고문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캐낸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중요한 대목에 들어설 때면 모조리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지독한 금제여서 차라리 금제가 발동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렇게 알아낸 게 월영련이라는 놈들의 이름과 놈들이 정천맹을 포함한 중원 각지에서 또 다른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곽명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시체들을 내려다보다가 빠르게 지하 석실에서 빠져나왔다. 이어 동악검선이 있을 집무실로 이동해 파악한 정보들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월영련이라. 게다가 정말로 정천맹이…….”

동악검신이 침음을 흘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금월보주를 통해 마교의 무공이 드러난 시점에서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직접 진실을 확인하고 나니 가슴 한켠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정파 연합체. 아니, 이제는 무림 연합체라 할 수 있는 게 정천맹이다.

그런 정천맹을 노린다는 건 나아가 강호 전체를 노리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더욱 무서운 건 강호는 놈들의 정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 중원은 정마대전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정천맹 또한 아무런 문제 없이 무림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태산파 또한 유진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아무도 모르게 장악당했을 터였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동악검선은 한창 태허동 안에서 수련에 전념하고 있을 유진휘를 떠올렸다.

***

콰-앙!

동굴 안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한쪽 벽면은 손바닥 자국으로 패어나간 채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태산항마장을 통해 내뿜은 장력이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태허동에 들어온 지 열흘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내 단전엔 이 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쌓여 있었고 태산항마장은 대성에 도달했다.

일전에 어르신을 상대하면서 태산의 검을 엿봤던 경험 때문일까.

태산항마장을 익히는 데 막힘이 없었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적당히 힘을 실은 장력인데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제대로 펼쳤다면 동굴 자체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몰랐다.

사신무와도 궁합이 좋아 함께 펼친다면 그 위력이 배가 될 것 같았다.

‘수련은 여기까지.’

지금쯤 심문을 통해 배후 세력에 관한 정보가 드러났을 거란 생각에 나는 천천히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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