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63화 (63/150)

#63. 4장 입맹(3)

쩌저적! 콰쾅!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청강석.

감독관과 지원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차시험의 합격 기준은 세 치 이상의 흠집을 새기라는 거였다. 그만큼 청강석의 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앞서서 시험을 먼저 치렀던 지원자들이 직접 체감한 사실이었고, 감독관으로선 과거부터 치러진 시험을 통해 입증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시험용인 만큼 높이와 두께를 여유 있게 잡았다. 사람만 한 크기에 두께는 거목의 기둥 못지않다.

그런 청강석을 아예 두 동강 내버리다니.

감독관인 자신조차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빛살 같은 궤적의 발검술이라고만 여겼다. 빠르지만 청강석에 흠집을 낼 위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룡단의 일원이었다고 해도 이제 고작 약관의 나이대인 사내여서 다소 방심한 것이다. 풍기는 기세도 딱 그 정도의 수준이었고.

만일 상대가 청강석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감독관은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다가 흠칫 놀랐다. 막거나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두 가지만 놓고 봤을 때…….

조금 전처럼 방심했다면 큰 낭패를 봤을 테고, 얕보지 않고 제대로 상대한다고 해도 마냥 쉽지는 않을 거란 판단이 섰다.

절정고수인 자신을 상대로 그 정도라니.

“합격입니까?”

유진휘의 물음에 감독관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만한 후기지수가 정천맹의 무사가 되겠다고 맹시에 지원해 주었으니 감사는 오히려 자신과 맹이 해야 할 판이었다.

“좀 전에 펼쳐 보였던 초식은 정말 대단했네. 쾌속에 숨겨진 강의 묘리라. 방심한 나머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어. 감독관으로서 크나큰 실수로군.”

감독관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휘는 덤덤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상은 적당히 내력을 실어 검을 뽑아 청강석을 베고 다시 검을 집어넣은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 행동 자체가 감독관이나 지원자들에겐 마치 하나의 엄청난 초식처럼 보였을 터였다.

의도적으로 기도를 조절해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으니까.

슬쩍 시선을 내려 지원자들 사이에 서 있는 양이소를 바라보자 그가 혀를 차고 있는 게 보였다.

차라리 자신도 절초를 펼쳐 보였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승부를 겨룬 건 아니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소호단원과 소룡단원의 경쟁은 소룡단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합격자는 내일 이차시험을 치르러 오도록!”

***

이번 맹시의 지원자는 대략 오백여 명.

그중 팔 할에 가까운 숫자가 일차시험에서 걸러졌다. 청강석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 어중이떠중이가 반 이상. 나머지는 기준치 미달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 지원자들이 이제는 구경꾼으로 변모하여 맹시의 합격자는 누가 유력하고 그 숫자가 몇이나 될까 하는 추측을 하며 설전을 벌였다.

그 덕에 맹 주변의 객잔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특히 육 연무장에서 펼쳐진 시험과 지원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자네, 그 얘기 들었나? 이번 지원자 중에 청강석을 아예 반으로 쪼개버린 인물이 있다는군.”

“뭐? 청강석을 반으로 쪼개? 에이,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정말이래도! 육 연무장에서 시험을 치른 조에 속한 인물이라고 하던데.”

“흠흠. 내가 바로 그 육 연무장의 지원자 중 하나였지.”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객잔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 당시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호단원이었던 양가장의 양이소.

소룡단원이었던 유씨세가의 유진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퍼지면서 알게 모르게 경쟁이 이뤄졌고 마지막 순번이었던 유가의 소가주가 엄청난 초식을 펼쳐 기세를 꺾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양 공자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유 공자가 하필 마지막에 청강석을 반으로 잘라버려서 결국 우세를 점했지.”

“허어. 소룡단의 유일한 생존자가 유씨세가의 소가주였다니. 그건 몰랐군.”

“게다가 소호단의 부단주였던 양가장의 둘째까지?”

“두 후기지수 모두 합격은 하겠지만, 실력만큼은 소룡단의 일원이었던 유 공자가 더 높다는 건가?”

“직접 실력을 겨룬 건 아니지만, 일차시험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렇지 않겠나?”

“하하. 역시 소룡단이로군.”

육 연무장의 지원자였던 사내 덕에 객잔 손님들은 소룡단원이었던 유씨세가의 유진휘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소문이 꽤 퍼지겠는데.’

그리고 나는, 객잔 구석에 등을 지고 앉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술을 기울이면서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는 중이었다.

유씨세가와 유진휘. 그리고 소룡단의 명성을 지켜주기 위해 조금 진지하게 시험에 임했다.

그로 인해 나에 대한 소문이 정천맹이 있는 하남을 시작으로 적잖이 퍼져나갈 것 같았다.

‘뭐, 딱히 상관은 없나.’

월영련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기 위해 입맹을 계획한 건 맞지만 그 과정에서 딱히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이미 놈들은 내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테니.

게다가 본 실력을 내보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정도는 되어야 놈들의 관심이 제대로 나에게 쏠릴 수 있고 그럴수록 태산파의 거동은 자유로워질 것이며 산서를 향한 주의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애초에 놈들이 먼저 나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어 모습을 드러내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

다음 날에 나는 이차시험을 치르러 맹에 도착했다.

백여 명의 합격자들은 다시 다섯 개의 조로 나뉘었고 이번에는 새로운 관리관과 감독관들에 의해 비무시험이 치러졌다.

정천맹에 소속된 절정급 고수와 싸워 백초 이상을 버티면 합격.

시험 내용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았던 만큼 이번에도 많은 탈락자가 발생했다.

기존에도 정천맹의 맹시가 엄격한 기준이었던 건 맞지만 이번 해는 유독 높아졌다. 새로운 맹주의 취임 이후 치러지는 첫 맹시인 만큼 제대로 된 사람을 뽑겠다는 취지인가.

독고세가주 독고태문(獨孤泰聞).

전생엔 정천맹의 장로 중 한 명으로서 검법만큼은 검신 백도천 다음 가는 실력자라고 알려진 인물.

정마대전 당시엔 전쟁의 승리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시 여겼고 잔챙이들만 상대하며 중요한 전투엔 쏙 빠졌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던 자였다.

무공은 뛰어나지만 교활한 늙은이.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지만, 현 강호에서는 그를 나름 훌륭한 맹주라며 칭송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에 대한 내 기억이 어떻든 간에 나는 그가 강호의 평가대로 훌륭한 맹주이길 바랐다. 월영련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만일 인지하고 있다면 부디 정천맹을 이끌며 버티고 대항해 주길 바랄 뿐이다.

과거엔 독고세가의 가주로서 교활하고 소극적이었다면 적어도 현재엔 가주이기 이전에 맹주로서 버팀목이 되어줘야 했다.

나는 맹주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관리관의 호명에 시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

“금월보주의 소식이 더는 전해지지 않는 걸 보면 이미 죽었나 보군.”

산 정상에 지어진 작은 정자. 그곳에 앉아 그늘 속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는 중년인 하나가 눈을 빛냈다.

“산동 함락은 물 건너갔군요.”

산동을 대표하는 문파인 태산파.

금월보의 목표는 태산파를 무너트리거나 장악하는 거였다.

그리고 마천섭혼술을 변형한 사술로 동악검선을 현혹해 태산파 자체를 집어삼키려던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들었다.

한데 눈앞에서 계획이 송두리째 틀어지고 도리어 역풍을 맞다니.

“역풍의 중심이 백의문주와 유씨세가의 소가주라지?”

“그렇습니다, 각주님.”

수하의 대답에 화월각주(火月閣主)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중 하나가 이번 정천맹의 맹시에 지원까지 했고.”

“놈이 과거 소룡단의 단원이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아, 그 유명한 소룡단의 유일한 생존자?”

“예.”

“과거부터 범상치 않은 놈이었네. 그만큼 거슬리기도 하고.”

“어떻게 처리할까요?”

“련주님의 명령은?”

“딱히 없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알아서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화월각주가 수긍했다.

“금월보주. 어린 데다 무공도 버러지 같은 놈이 우리와 같은 지위에 놓여 있다는 점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마지막까지 뒤치다꺼리나 하게 만드는구먼.”

“그래도 금월보주의 희생 덕분에 미리 련주님의 대계에 걸림돌이 될 뻔했던 자를 걸러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수하가 피식 웃자 화월각주가 대소를 터뜨렸다.

“하긴. 놈의 역할은 그 정도가 딱 맞았지. 어쨌든. 유진휘라는 녀석은 맹시에 합격했다던가?”

“이차시험을 통과했으니 합격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삼차인 면접을 통해 어느 소속으로 갈지가 정해질 테고요.”

“한천자가 있는 집형당으로 가게 된다면 처리하기가 좀 수월할 텐데.”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머지 합격자들에 대한 정보도 파악해두고. 맹주께서 이번 맹시로 자신의 검이 되어줄 자들을 선별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고작 맹시의 합격자들을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조심해야지. 궁지에 몰린 자의 발악은 무서운 법이야.”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화월각주의 시선은 정천맹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내리꽂혔다.

***

이차시험을 통과한 다음 날.

삼차는 면접시험이었다. 삼차까지 도달했다면 맹시의 합격은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면접시험은 그저 지원자의 각오를 살피고 소속을 정해주는 자리였으니까.

그런 만큼 내 앞에는 복룡추호대의 대주인 설표(偰豹)가 앉아 있었다.

“유진휘. 산서 유씨세가의 소가주로군.”

“예. 그렇습니다.”

“일차시험에선 청강석을 두 동강 내고. 이차시험에선 난상검(亂想劍)이라 불리는 절정고수를 상대로 큰 상처 없이 백초를 버텨냈다지?”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을 뿐입니다.”

“좋았다는 말로 끝내기엔 아쉽지. 그 나이대에 이 정도의 실력이면, 어느 소속으로 지원하든 환영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습니까?”

내가 짐짓 상기된 표정을 짓자 설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파의 장문인께 따로 언질을 받긴 했네만. 정말 자네가 장문인과 인연이 있었나?”

그 말에 나는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보여주었다. 동악검선이 직접 작성한 서찰이고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단지 내 무위가 범상치 않고 소룡단원이었던 만큼 의협심이 투철해 자신이 직접 복룡추호대를 추천했다는 간단한 내용.

동악검선은 내개 서찰을 건네주면서 설표는 믿을 만한 인물이니 곁에서 살펴본 후 신뢰가 간다면, 월영련에 대한 존재를 알려주고 도움을 받아도 좋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나는 그런 동악검선의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설표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는 모를 것이다.

이 자리의 면접관이 그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전생엔 천영검대와 복룡추호대가 달리 접점이 없어서 내게는 낯선 존재였다.

해서 직접 복룡추호대의 대원이 되어 그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만약 동악검선의 말대로 그가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면 또 하나의 아군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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