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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64화 (64/150)

#64. 5장 임무(1)

“발표는 삼 일 후네.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니 마음 편히 가지고 기다리게.”

“감사합니다.”

면접을 담당했던 복룡추호대주 설표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동악검선의 언질도 있었고 설표와의 면접을 통해 썩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분위기를 봐도 입맹 이후 나는 복룡추호대로 가는 게 확실시되는 것 같았다.

면접실에서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천영검대주로서 살아왔음에도 면접장이 있는 외원의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언제나 내가 있어야 했던 곳은 맹주의 곁인 내원과 내원에서 곧장 외부로 이어지는 천영검대의 비밀통로, 그리고 마교와의 전장이었으니까.

이번엔 그때와는 다르겠지.

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정천맹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객잔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가문에 서찰 하나를 보냈다.

면접시험까지 잘 끝마쳐 결과가 좋을 거라는 내용. 입맹을 결심하고 떠난 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께 전하는 서찰이었다.

다시 삼 일 뒤에 나는 합격자를 발표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발표를 위해 맹시의 총감독관이 걸어 나왔다.

“다들 고생 많았다. 그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지.”

결과를 듣기 위해 늘어서 있는 서른여 명의 무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삼차인 면접시험까지 통과했다면 합격은 기정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삼차를 통과하고도 불합격하는 이들이 종종 생긴다고 들었다.

“…유진휘. 이상 스물다섯 명이다. 축하한다.”

마지막에 호명된 내 이름을 끝으로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탈락한 몇 명은 크게 아쉬워하며 맹을 떠났고 합격자들은 조용히 각오와 결의를 다잡아갔다.

그중에는 힐끗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양이소도 함께였다. 아직도 내게 경쟁의식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동안 나를 째려보다가 감독관이 다시 입을 여는 소리에 정면을 주시했다.

“앞으로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정천맹의 무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정의를 실현하고 강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앞으로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관의 독려에 합격자들이 일제히 고함을 내질렀다.

***

나를 포함한 합격자들은 열흘 동안 외원의 임시숙소에서 대기하며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정천맹의 무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율과 도리는 무엇인지 인식하고 조직도를 암기해야 했으며 기초 군사훈련도 진행됐다.

맹의 무인으로 거듭난 이상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전투에도 익숙해져야 했으니까.

열흘 동안 합격자들은 서로 친분을 쌓아갔다. 나 또한 동기들과 적당히 안면을 텄다.

오래 볼 사이도 아니고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리고 양이소는, 의외로 내게 더는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사고를 쳤다간 맹에서 쫓겨나게 될 수도 있으니 잠잠히 지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후 열흘간의 기본 교육이 끝나고 나서부턴 합격자들이 하나둘씩 차출되어 떠나가기 시작했다.

각 조직에서 미리 점찍어둔 이들이 가장 먼저 차출되었는데 그중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진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숙소 입구에 여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입고 있는 무복을 보아 복룡추호대에 소속된 무인인 것 같았다.

“예. 접니다.”

짐을 챙겨 여인의 앞으로 걸어가자 그녀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대주님께서 엄청난 인재를 뽑게 됐다고 기뻐하시던데. 기대가 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좋아. 아, 나는 복룡추호대의 일 조장 손유수(孫柳洙)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 넌 앞으로 일조의 조원으로서 활동하게 될 테니까.”

“네.”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일(一)이란 숫자는 정예를 의미했다. 나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었다.

“가자. 복룡각으로. 우리가 어디 소속인지는 알지?”

“집형당 소속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 대주님이 집형당주님께 너에 대해 보고를 올리고 계셔. 당주님은 워낙 바쁘셔서 당장은 뵈기 어려울 거야. 나중에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 인사드리면 돼.”

집형당주 한천자 도경수.

계획대로 배신자임이 확실시되는 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당장은 아니어도 조만간 만나긴 해야지.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뒤따랐다.

복룡각에 도착하자 중앙의 연무장을 기준으로 좌우에 여러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한 조에 이십 명씩, 총 네 개의 조로 구성된 복룡추호대가 기거하는 건물들이었다. 가장 안쪽 건물은 대주인 설표의 거처라고 했다.

“일조는 이쪽 건물. 같은 복룡추호대이긴 하지만 각 조는 개별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서 다른 조들과 큰 교류는 없을 거야. 그래도 각 조장과 대원들의 이름이랑 얼굴 정도는 익혀두라고.”

“알겠습니다.”

“일단은 우리 일조 애들부터. 어이, 다들 내려와! 새내기다!”

여인이면서도 당당한 무인의 기세를 내뿜는 우렁찬 외침이었다. 이어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방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오오! 드디어 막내 탈출이다!”

“왔구나!”

“소룡단원이었다던 엄청난 실력자?”

스무 명의 조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에 불을 켜며 나를 주시했다. 반짝이는 시선에선 기대감이 가득했고 간질거리는 입꼬리엔 웃음기가 피어올라 있었다.

나는 그런 조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복룡추호대 일조로 배치를 명받은 유씨세가의 유진휘라고 합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선배들의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받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당당하고도 우렁찬 목소리에 나를 주시하던 조원들이 활짝 웃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막내의 패기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자신들도 처음엔 저랬지, 하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정천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천영검대주가 아닌 복룡추호대의 막내로서.

***

집형당주의 집무실.

“이번 맹시에서 신입 한 명을 차출해 왔다지?”

한천자 도경수가 탁자에 앉아 서류를 내려다봤다.

그의 맞은편에 서 있는 설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조의 결번을 채우기 위해 제가 직접 면접까지 담당했습니다.”

“유씨세가의 유진휘?”

도경수가 서류를 살펴보는 사이 설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시험에서 보여준 무위가 뛰어나고 과거 소룡단의 단원으로서 활동했던 경력도 있어서 정천맹 생활에 금방 익숙해질 아이입니다.”

“그런가? 시험을 감독했던 자들도 다들 칭찬 일색이로군.”

서류에 적힌 평가는 모두 극찬에 가까웠다. 도경수가 눈을 빛내자 설표는 그가 만족해하는 것 같아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쯤 일조장이 그 아이를 복룡각으로 데려왔을 겁니다.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괜찮다.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지. 자네가 가서 잘 챙겨주고 교육도 확실히 하게. 복룡추호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예. 그럼.”

설표가 대답과 함께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사이 한천자의 안색은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유씨세가의 유진휘.

태산파를 집어삼키려던 금월보의 계략을 방해한 주요인물 중 하나라고 들었다.

앞으로의 대계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지.’

며칠 전 만났던 화월각주의 낯짝이 떠올라 한천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새부턴가 그는 자신을 은근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중한 어조와 말투 속에 그런 의중이 듬뿍 담겨 있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자와는 나중에 따로 담판을 지어야겠구나.’

월영련주도 아닌 고작 각주인 놈이 감히 자신을 발아래에 두려 하다니. 최소한 동등한 지위는 보장해주는 게 옳았다. 그간 자신이 해준 게 얼만데.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이 또한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청강석을 두 동강 내어 큰 인상을 심어주고 이차시험에선 절정고수를 상대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무위를 선보였다더니, 최근 그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이미 정천맹 주변 일대에도 유씨세가 소가주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소룡단이었던 과거와 맹시에서 활약한 무위로 인해 그를 뛰어난 후기지수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놈을 조용히 처리하라니.’

내외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놈에게 직접 손을 썼다간 후환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복룡추호대의 대주인 설표는 아직 월영련의 존재나 자신이 월영련을 따르기로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집형당을 제대로 장악하려면 먼저 설표를 구워삶아야 하는데, 성정이 올곧아 회유하기는 어렵고 없애버리자니 아까운 인재여서 여전히 혼자만의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설표. 미안하네.’

아무리 봐도 그는 자신을 따라 정천맹을 배신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유진휘와 설표를 한데 섞어 처리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더불어 설표의 충실한 수하인 복룡추호대의 일조 모두를 함께.

그 과정에서 자신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천자가 손에 쥔 서류를 와락 구기면서 설표가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

내가 복룡추호대에 들어온 지 대략 이 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일 조장인 손유수를 비롯한 조원들과 함께 훈련에 매진했다.

훈련 목적은 물론 신입인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다시 내가 복룡추호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목적이었다.

나는 적당히 실력을 내보이며 수련을 통해 조원들과 서로 친분을 쌓아갔다. 그 과정에서 일조인 우리의 임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내외적인 악인척결.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무인이나 인사를 조사하고 잡아들이는 거였고 외부적으로는 악명 높은 사파인들을 처단하는 거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조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의 대가리인 집형당주 한천자가 배신자라니. 복룡추호대의 입장에선 가장 먼저 잡아들여야 할 놈이 바로 한천자가 아니던가.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어서 나는 묵묵히 복룡추호대에 녹아들었다.

와중에 설표가 나를 찾았다.

“힘든 점은 없나?”

그의 질문에 나는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예.”

“다행이군. 일조장인 손유수는 여인답지 않게 매사에 적당히가 없는 이라서.”

“아닙니다. 조장의 훌륭한 지도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내 말에 설표는 미소와 함께 내 허리춤의 검을 바라봤다.

“지난 면접 때도 물었지만 한 번 더 물어보고 싶네. 자네는 왜 이곳에 지원했나?”

“이곳이라면. 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복룡추호대를?”

“굳이 구분 지을 필요는 없네. 복룡추호대는 맹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럼 제게도 굳이 물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맹을 위해서. 나아가 강호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서 있는 거니까요.”

“그렇군. 동악검선 어르신께서 왜 자네를 높이 평가하셨는지 알겠어.”

설표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가 눈을 빛냈다.

“조만간 임무가 내려올 것 같은데. 자네로선 첫 임무가 되겠지?”

“어떤 임무입니까?”

“정확한 건 아직. 다만 내가 직접 일조를 이끌고 맹 밖으로 나서게 될 것 같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너무 무리하진 말게. 이번 임무는 그저 복룡추호대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차원으로 임해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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