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66화 (66/150)

#66. 5장 임무(3)

색혼수사의 추적과 처단.

이번 임무를 위해 복룡추호대주 설표와 함께 나와 일조원 전원이 정천맹을 벗어나 호북으로 출발했다.

“놈의 마지막 행적이 호북 숭양(崇阳)현에서 발견됐다는군. 구궁산 인근 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했고 아직 그 근처에서 잠적 중이라는 정보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선두에 있는 설표는 이번 임무의 주요 정보들을 설명해 주었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라 후방에 있는 내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놈은 대체 왜 그렇게 살생을 해대는 거지?”

설표의 설명이 이어지던 와중에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나직이 치를 떨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내가 복룡추호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막내 조원이었던 모용진(慕容鎭)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약관인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그 또한 나름 유명한 후기지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에 의기도 왕성해 정파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모용진이었다.

분노가 서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했다.

“놈의 무공이 죽은 인간의 혼을 삼켜 성취를 쌓는 사공이라 그렇습니다.”

내 말에 모용진은 흠칫 놀랐다.

“인간의 혼을 삼켜?”

“저도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거라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 어딘가가 전생에 정천맹 총군사가 담당하는 정보세력인 비선당이었다.

그때에도 색혼수사의 악명은 자자했었다.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음에도 잡지 못했다고도 했고.

그러다 정마대전이 일어나면서 놈의 행방이 끊겼다고 들었다.

‘비선당에서도 잡지 못한 놈을 한천자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의문. 이번 임무는 역시나 미심쩍었다.

“빌어먹을 놈. 이번 임무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말겠어.”

모용진이 결의를 다지는 말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죠.”

색혼수사를 잡는 것이든, 아니면 임무 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들춰내는 것이든. 반드시 성공해야지.

***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최단 거리로 내달렸다. 말이 지칠 때가 오면 중간중간 정천맹 지부에 들러 말을 갈아탔고 숙식은 대부분 야영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나흘째가 되는 날엔 숭양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궁산이 가시거리에 들어오는 숲속. 날이 깊어져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다시 날이 밝는 대로 움직인다면 충분히 색혼수사가 살생을 자행했다는 마을에 도착할 거리였다.

그 때문인지 조원들의 분위기는 다소 굳어 있었다. 목적지가 코앞이었으니 다들 긴장하고 있는 거겠지.

타닥.

반대로 나는 덤덤히 모닥불 앞에서 겨울의 추위를 빗겨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손유수가 다가왔다.

“첫 임무인데. 긴장되지?”

“네.”

속마음과는 다르게 대답했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손유수는 그런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읽어냈는지 피식 웃어 보였다.

“표정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그런가요? 아무래도 대주님과 조장이 함께 계시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나 봅니다.”

내 말에 손유수의 시선이 반대편 모닥불 앞에서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설표에게로 향했다.

“방금 그 말을 대주님이 들으셨다면 썩 좋아하셨겠는걸. 우리 일조엔 너처럼 말을 이쁘게 하는 녀석들이 없다시피 해서 말이야. 할 줄 아는 거라곤 먹고 싸고 칼을 휘두르는 것밖엔 없지.”

“하하.”

조장으로서 굳어 있는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그녀는 조원들을 둘러보며 농을 던졌다.

그때 고주양이 끼어들었다.

“먹고 싸고 칼을 휘두르는 녀석엔 조장도 포함인 거죠?”

“이 새끼가?”

“억!”

손유수가 순식간에 머리통을 쥐어박자 고주양은 비명과 함께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두 사람 덕에 긴장이 풀린 조원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피로를 풀기 위해 선잠을 청했다.

나는 막내로서 피어오른 모닥불이 꺼지지 않게 돌아다니며 점검했고 마지막으로 설표가 앉아 있는 모닥불 앞에 도착했을 때 그가 나를 바라봤다.

“단체생활에도 익숙하군?”

“소룡단원이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네게 거는 기대가 아주 크다.”

설표가 말을 이으려는 것 같았기에 나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복룡추호대에 녹아들면서 그와의 사이도 어느 정도 편해진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조장과 부조장도 마찬가지더구나. 네 재능이 범상치 않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데.”

“뭘 하든 칭찬만 해주시니 걱정이 더 앞섭니다.”

“걱정은 무슨.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아.”

설표는 대주로서 막내 대원인 나를 다독였고 우린 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를 비롯해 수하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긴 조언들이 주를 이뤘다.

와중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만간 설표에게도 한천자의 배신과 월영련의 존재를 털어놓게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

경계를 서는 조원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나는 조용히 잠에서 깨어났다.

잠을 잘 때도 항상 기감을 확장해 두고 기습에 대비하는 건 기본이었고 그런 내 기감에 은밀한 움직임이 걸렸다.

시선을 돌리자 타고 남은 모닥불들의 잔해가 보였고 그 너머로 경계를 서고 있는 조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아직 움직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여전히 잠들어 있는 설표와 나머지 조원들도 마찬가지.

그만큼 놈들은 워낙 은밀했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대략 이십.

우리와 같은 숫자에 이쪽엔 설표가 있다지만 기습을 당한다면 낭패를 볼 게 뻔했다.

나는 놈들이 적당한 거리까지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에 맞춰 소리쳤다.

“적의 기습이다!”

내 고함에 모두가 튕기듯이 벌떡 일어섰다.

채채채챙!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나 설표와 경계를 서고 있던 조원들이었고 이어 손유수와 고주양이 놈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중 고주양은 재빠르게 품속으로 양손을 집어넣었다.

쉬쉭!

십영비도술이 발휘되며 두 자루의 비도가 열 개의 빛줄기로 화해 놈들에게 쏘아졌다.

“컥!”

“크악!”

수풀 너머로 단말마가 연이어 들려왔고 그곳을 향해 설표를 위시한 조원들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침착하게 대응해라!”

“숫자가 많지 않다! 이궁진(離穹陣)을 펼쳐라!”

설표와 손유수의 명령에 조원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나도 그 중간에 끼어들어 진법을 완성했고 고주양의 비도에 당한 놈들을 제외한 십여 명의 숫자가 순식간에 포위됐다.

기습 직전에 역습을 당한 놈들은 당혹스럽다는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두 놈만 살려두고 나머진 섬멸한다.”

설표가 명령 하나를 덧붙였다. 기습의 목적과 배후가 누구인지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 순간.

푸푸푹!

놈들이 각자 제 심장에 칼을 쑤셔 박으며 자결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우리로서는 대응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설표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놈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설표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하군.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색혼수사를 따르는 수하들일까요?”

손유수의 추측이었고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그 추측을 토대로 시체를 뒤져봤지만 아무런 증거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검과 암기들 또한 별다른 특징이 없는 보편적인 무기들이었다.

‘색혼수사의 수하가 아니다.’

전생에 들었던 비선당의 정보대로라면 놈은 세력을 꾸리지 않고 혼자 움직이는 걸 선호했다.

익힌 사공 탓인지 그를 진심으로 따르려는 자들도 존재하지 않다고 했고.

더군다나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놈들은 어떠한 조직에서 정예로 키운 자객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월영련 혹은 그 산하에 있을 조직이 가능성이 컸다.

“색혼수사의 수하로 보이지는 않는데, 왜 우리를 노렸지?”

설표 역시나 깨달았다는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엔 나뿐이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놈들이 칼날을 들이밀었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태산파를 집어삼키려던 금월보의 세력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조족지혈에 불과했으니까.

“혹시 모르니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야겠다. 어차피 곧 날이 밝을 테니 목적지를 향해 지금부터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설표의 판단에 조원들이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설표가 내게 다가왔다.

“네가 우리를 구했구나.”

그는 적의 출현을 알린 사람이 나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새벽에 우연히 잠에서 깼다가 발견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네 덕에 낭패를 면했다. 이번 일에 대한 성과는 임무를 마치고 맹으로 복귀해서 의논하겠다.”

“예.”

집단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신상필벌은 확실히 해두는 게 좋았기에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빠르게 구궁산 인근 마을로 이동했다. 또다시 습격이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기에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로.

다행히 마을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고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문제는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벌어졌다.

“예? 색혼수사의 살생이요? 그게 무슨 말인지…….”

마을은 대략 삼십여 가구로 구성된 촌락이었는데 마을을 대표하는 촌장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을은 평화로웠다. 색혼수사가 나타나 살생을 벌였다는 마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희의 정보가 잘못되었나 봅니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요.”

설표는 온화한 미소로 촌장을 대했다. 그의 말대로 색혼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건 그거대로 잘된 일이었다. 마을이 무사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잘못된 정보였다고 하더라도 귀하신 정천맹의 무사들께서 저희를 위해 먼 걸음을 하셨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요. 며칠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촌장의 정중한 제안에 설표 또한 정중히 거절했다.

마을은 무사하다지만 임무는 계속 이어갈 계획인 듯싶었다. 최소한 정보가 잘못됐다는 근거가 필요할 테니.

“아닙니다. 저희는 이 주변 일대를 수색한 뒤에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그럼 적어도 식사만이라도 하고 가시지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연신 이어지는 제안에 설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재차 거절하려 할 때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기감을 끌어올려 마을을 살펴본 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마을엔 아이들이 살지 않나 봅니다?”

내가 묻자 촌장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진지……?”

“무슨 소리긴. 연기는 그만하고 본색을 내보이라는 뜻이지.”

내 경고에 순간 설표를 비롯한 모든 인원의 안색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하고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들도 이제는 알아차린 듯 보였다.

오감을 집중해 마을 전체에 나도는 비릿한 혈향을 감지했을 테니.

“설마 함정……!”

말을 잇던 손유수가 눈을 치떴다.

평범해 보이던 촌장이 순간 어디서 꺼내 보였는지 모를 단검으로 설표를 찔러가고 있었으니까.

챙!

하지만 설표는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냈고 이어 촌장의 목에 검을 겨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고해라.”

씹어뱉듯 말하는 설표의 목소리에 촌장은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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