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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68화 (68/150)

#68. 6장 집형(2)

“그렇군. 네가 그놈이로구나.”

색혼수사가 내 검을 쳐냈던 자기 오른손을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꽤 힘을 실었으니 지금도 손이 얼얼할 것이다.

놈의 뜻을 알아차린 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맞아. 내가 그놈이지.”

금월보의 계략을 저지하고 이번엔 정천맹에 발을 들이민, 놈들에게 있어선 척결 대상 중 하나.

“조금 당황스럽군. 한낱 애송이라고 들었는데 이 정도 실력이면…….”

말을 이어가던 색혼수사가 촌장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설표를 슬쩍 흘겼다.

인극 고수라더니 이미 내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새였다.

“가장 주의해야 할 건 복룡추호대주가 아니라 네놈이었구나.”

순간 색혼수사의 기세가 오롯이 내게로 집중됐다. 그전까진 여유와 함께 장내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나를 죽이는 데만 온 힘을 쏟겠다는 뜻이었다.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사특한 기운이 나를 에워싸려는 순간.

슁-!

내가 쏘아낸 검기가 놈의 귓불을 갈랐다.

목을 노렸는데 몸을 비틀어 피해낸 것이다.

기습적인 일격에 색혼수사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고작 이깟 공격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겠냐는 얼굴이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기세가 너무 역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살생을 통해 성취를 끌어올리는 무공이라지?”

“맞다. 강자든 약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지.”

“역겹네.”

“어쩌겠는가? 이게 내 운명인 것을.”

말본새는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고승의 그것과 같아도 표정은 살생에 취한 살귀(殺鬼)의 미소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나와 복룡추호대를 노린 이 함정은 분명 한천자가 계획한 덫이 분명했다.

색혼수사는 단순한 미끼였을 뿐이고 진짜는 촌장을 비롯해 오십이 넘어가는 숫자의 자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색혼수사가 나타나 자객들 편에 섰다.

그 말은 한천자가 색혼수사마저 매수했다는 뜻.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정천맹의 장로가 색혼수사를 회유할 수 있는 거지?’

색혼수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천맹에게 쫓기는 삶을 반평생이나 이어오던 그가 도리어 맹의 장로와 손을 잡다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가 뒤섞였다는 건.

“설마 당신도 월영련에 가담한 건가?”

내 질문에 색혼수사는 대답 대신 자줏빛으로 물든 손을 휘둘러왔다.

터-엉!

머리를 부술 기세로 날아드는 손을 검으로 쳐낸 나는 검이 튕겨 나오는 방향을 그대로 되짚어 놈의 허리를 갈랐다.

촤-악!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피해낸 놈이 쌍장을 들이밀었다.

각자 내 가슴과 복부를 노린 공격. 그 위력이 심상치 않아 정면으로 받아내는 대신 괴월선보를 발휘해 놈의 뒤로 돌아들어 갔다.

놈의 시선엔 마치 내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지난 수련을 통해 괴월선보의 성취가 팔 성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뒤를 잡은 나는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큭!”

색혼수사가 당혹스러운 신음을 흘렸고 뒤따라 갈라진 어깨의 상처 위로 핏물이 튀어 올랐다.

쾅!

발작하듯 튀어나온 놈의 손을 쳐내자 순간 거리가 벌어졌다.

“괴상한 보법을 쓰는구나.”

괴월선보를 의식해 근접전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거리를 벌린 모양이었다.

물론 잘못된 판단이다.

놈의 경지가 인극이라고 하지만 같은 인극고수인 태산검존 곽명과 비교해봤을 땐 한 수 정도 떨어지는 실력.

게다가 놈의 무공은 사공의 특성상 정교한 초식 대신 특유의 강대한 내력과 위력으로 찍어누르는 무공이다.

먹잇감을 찢어발기는 맹수를 연상케 하는 놈의 무공은 놈보다 강자인 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물며 나는 전생의 무공을 회복하기 위해 인극을 넘어 점차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

태산파에서보다 한층 더 강해진 만큼 인극 고수 정도는 더 이상 내 상대가 아니었다.

***

후-웅!

거리를 벌린 색혼수사가 근접전을 포기하고 양손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자줏빛 강기가 맺힌 쌍장.

“저, 저건 너무 위험해!”

“다들 대열을 유지하면서 열 걸음씩 물러나라!”

위기를 감지한 손유수와 고주양이 조원들과 함께 멀찍이 물러났다.

동시에 서른 명의 자객들도 포위망을 유지한 채 거리를 벌렸다.

그만큼 색혼수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의 한 수로 모든 걸 끝장내겠다는 듯 자줏빛 강기는 연신 불타오르며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저게 그대로 쏘아진다면 주변은 초토화가 될 게 분명했다.

“네놈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만 내공은 그렇지 않겠지?”

놈은 심중이 대번에 드러나는 말을 씨불이며 나를 노려봤다.

나이로만 따져도 놈은 수십 년간 내공을 쌓아온 고수. 게다가 사공을 익힌 탓에 평범한 무인보다 그 속도나 양이 배는 뛰어났을 터였다.

반대로 나는 약관의 사내인 유진휘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많아 봐야 일 갑자 정도의 내공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는 것 같았다.

더불어 놈의 한 수로 인해 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내력이 가득 실린 한 수인만큼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다는 피하는 게 효율적인데, 그렇게 되면 내 뒤쪽에 있는 조원들이 위험했다.

그건 서른 명의 자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색혼수사의 안중엔 놈들의 목숨은 보이지도 않겠지.

결국 조원들을 인질 삼아 나와 내력으로 정면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쩔 테냐? 혼자 살고자 피하겠느냐? 아니면 저놈들을 살리기 위해 네가 희생할 테냐?”

색혼수사가 낄낄거리며 조소를 던졌다.

나 또한 미소를 머금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색혼수사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무슨 짓이지?”

“나도 같은 장법으로 상대해 주려고.”

“뭣?”

순간 놈이 대소를 터뜨렸다. 내 말이 객기로 받아들여진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동악검선을 통해 익힌 태산항마장.

마교의 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창안된 장법으로 마기와 더불어 색혼수사와 같은 사공을 상대할 때도 효용을 보이는 무공이었다.

당시에 태산파에서 수련한 이후로 처음 사용해보는 태산항마장이지만 내공을 끌어올려 자세를 잡아가는 기수식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웠다.

후-웅!

태산의 기개가 가득 담긴 기운이 허공에서 피어올라 소용돌이치며 내 오른손으로 모여들었다.

“……!”

그 광경에 색혼수사의 웃음이 멎었다.

술렁거리던 장내의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표와 촌장도 어느샌가 혈전을 멈추고 소강상태에 빠져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모두 깨달은 것이다.

나와 색혼수사. 두 사람 중 승리하는 쪽이 승기를 잡는다는 것을.

“오냐. 어디 한번 상대해 보거라-!”

마침내 색혼수사가 쌍장을 내질렀다. 양손에서 터져 나온 자줏빛 강기가 내 좌우를 점하며 짓쳐들어왔다.

나도 마주 손을 뻗어 태산항마장의 장력을 정면으로 쏘았다.

이어 거대한 손바닥 형상의 강기가 자줏빛 강기와 충돌했고.

…….

찰나의 고요 속에 빛이 먼저 번쩍였다.

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음은 한발 늦게 울려 퍼지면서 장내에 태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촌락을 뒤덮은 태풍과 흙먼지가 잠잠해졌을 때 나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색혼수사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입속에서 피를 게워내고 있는 놈은 안색이 창백했다.

오른팔 한쪽과 어깨 부분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상처를 입었으니 목숨이 간당간당할 것이다.

나는 걸레짝이 된 놈의 상의를 찢어 상처를 압박한 뒤 지혈과 제압을 위해 놈의 혈을 짚었다.

이대로 죽이기보단 설표와 조원들에게 놈의 입으로 직접 한천자의 정체와 월영련의 존재를 실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색혼수사의 가슴께에 새겨진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멀지 않은 과거에 입은 검상의 흉터인 듯 보였는데 왠지 눈에 익었다.

“이 상처는 누구에게 당한 거지?”

눈짓으로 흉터를 가리키며 묻자 색혼수사가 핏물로 시뻘게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클클. 네놈 정도면 이 상처를 입힌 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겠지.”

놈의 말마따나 색혼수사의 가슴께에 새겨진 흉터는 한눈에 봐도 가공한 실력자가 단 일검에 놈을 제압한 모양새였다.

흉터를 보는 순간 그 광경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백의문주일 때에 쓰는 백색 가면 위에 새겨진 검상과 똑같다는 걸. 괘월선보의 기연을 얻으며 발견했던 망가진 호신갑의 검상과도 마찬가지.

‘그럴 리가?’

괴월선보를 창안한 고인은 먼 과거의 인물이었다. 가면에 새겨진 검상 또한 족히 백 년이 넘어가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같은 검상인데 시대가 다르다.

믿기 힘들지만 그게 가능해지려면 먼 과거의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말해. 누구야?”

머리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해 색혼수사의 목을 꺾었다.

“누구긴. 네놈은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

“…월영련주?”

“그분 정도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나를 거둘 수 있었겠느냐?”

놈의 대답에 나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가면에 검상을 새긴 자의 실력이 검신 영감 못지않다고 여기고 있던 와중이었으니까.

월영련주가 그 정도의 고수라니.

게다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월영련과 월영련주는 어디에 있어?”

“위치를 알게 된다고 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 네놈의 무위가 예상 밖이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네놈 혼자서 그분과 그분의 세력을 감당할 수 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해. 위치나 말해.”

“모른다.”

“모른다고?”

“그분을 만날 땐 이름도 모를 오지나 산속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그분은 항상 혼자였다.”

“그런 놈을 주인으로 모셨다?”

“강호에서 그만한 실력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건 오히려 영광이 아니더냐? 천마가 죽고 천마를 상대했던 천영검대주도 죽었다. 전대 맹주인 검신은 강호를 떠났지. 이제 천하제일은 바로 그분이다.”

월영련주를 찬양하는 놈의 목소리가 웃음기와 함께 장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내가 색혼수사를 제압한 뒤에 설표를 비롯한 조원들은 곧장 촌장과 자객을 사로잡아 처단했다.

처단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대동한 심문이 이뤄졌지만, 놈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지 않다가 죽어갔다. 지독한 수련으로 길러낸 정예의 자객들로 보여서 다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색혼수사는 순순히 아는 바를 털어놨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건 한정적이라 정보를 털어놔도 계획엔 지장이 없다는 듯. 혹은 우리가 무슨 발악을 해도 월영련주를 당해낼 수 없다고 여기는 걸 테지.

어쨌든 놈 덕분에 나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설표와 복룡추호대의 일조원 모두가 한천자의 배신을 인지했고 월영련의 존재를 깨달았다.

태산에서 있었던 일. 동악검산과의 논의 끝에 내가 직접 정천맹에 입맹을 결심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털어놓자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맹시에 합격해 복룡추호대에 입대한 막내 대원이라고 여기던 내가 실은 엄청난 실력자이고 뒤에서 유유히 적의 음모를 파헤치고 있는 인물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었다.

거기다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어색해하고 있었다. 고주양은 아예 나를 유 공자라 부르며 존대를 해왔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여전히 복룡추호대 일조의 막내입니다. 평소처럼 대해주시죠.”

내 말에 고주양은 활짝 웃었다.

“그, 그렇지? 그래. 너는 우리 막내다. 그저 실력이 조금, 아니. 실력이 엄청난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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