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77화 (77/150)

#77. 1장 단련(2)

“저는 목검을 사용하겠습니다.”

복룡각 연무장 중앙에 선 채로 내가 말했다. 나를 제외한 열아홉의 복룡추호대 일조 대원들은 맞은편.

그중 선두에 자리 잡은 손유수와 고주양은 안색이 살짝 굳어 있었다.

“진심이야?”

“예.”

손유수의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하자 그녀는 염려스럽다는 듯 계속 물어왔다.

“우리의 합공을 목검으로 상대하겠다고? 아무리 수련을 위한 비무라지만 전력을 다하라고 했다며?”

“조장님과 다른 선배님들을 무시하거나 제 실력에 자만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제게 꼭 필요한 수련이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사뭇 진지한 내 목소리에 손유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옆에 서 있는 고주양도 마찬가지였다.

“천재들의 심중을 저희 같은 평범한 무인들 어찌 알겠습니까? 생사를 오가는 전투 속에서 실력을 기르겠다, 뭐 그런 거겠죠. 막내의 부탁인데 해달라는 대로 해줍시다.”

고주양의 말에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자신을 평범한 무인이라고 칭했지만 가만 보면 그는 비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이 놀랄 만큼의 수준인 비도술을 창안한 점도 그렇고 이따금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했으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고주양은 고개를 돌려 일조 대원들을 바라봤다.

“들었지? 다들 최선을 다해라. 기대되지 않냐? 막내의 실력이 저기서 또 얼마나 강해질지.”

그가 웃자 조원들도 따라 웃었다.

이제는 다들 지금의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얼추 인지하고 있는 상태.

다만 아무리 나라도 목검을 들고 자신들을 상대하기엔 무리이지 않나 싶은 표정들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비무가 시작됐다.

“공전사멸진(公戰死滅陣)으로 상대한다.”

손유수의 명령에 일조 대원들이 흠칫 놀랐다. 공전사멸진. 공격 일변도의 검진으로서 상대를 찍어누르기 위해 펼치는 수법이었다.

검진을 구성하는 무인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물 흐르듯 이어져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동시에, 적의 숫자가 적을수록 더욱 큰 압박감을 전해줄 수 있는 검진이 공전사멸진이다.

“진짜 공전사멸진으로 상대합니까? 저희가 펼치는 공전사멸진이면 인극 고수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인데. 막내가 물론 인극 고수이긴 하지만 목검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일조 대원 중 하나가 의문을 품으며 망설였다. 아무리 고수라도 진검과 목검을 비교하면 실력 차이가 반 이상 났다.

나뭇가지를 들고 적들을 쓰러트리는, 오래된 설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경지는 다 허구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허구는 맞지만…….

쉭!

나는 서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벗어났다.

조원들의 눈에는 연무장 중앙에 서 있던 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엇?”

그들에게서 짤막한 탄성이 터져 나오는 사이에 나는 의문을 품었던 조원 앞으로 짓쳐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어 곧장 목검을 내리그었다.

터-엉!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공격을 막아낸 조원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간신히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와, 목검과 부딪쳤는데도 크게 진동하며 검날 한 곳에 금이 가버린 제 검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목검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보여준 한 수이자 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선공이었다.

“저도 전력을 다할 생각이니까, 다들 조심하세요.”

내 경고에 마침내 일조 대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

촤-악!

고개를 비틀자 검 한 자루가 내 볼살을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좌우 양쪽에서 또다시 공격이 이어졌고 나는 허공으로 튀어 올라 회전했다.

쉬쉬쉭!

두 조원의 검이 회전하는 내 몸을 빗겨나갔고 나는 그 상태에서 곧장 반격했다.

터텅!

목검과 진검이 부딪쳤지만 그들의 검에는 검기가, 반대로 내 검에는 검강이 실려 있는 만큼 위력 면에서는 내가 우위였다.

내 반격을 가까스로 튕겨낸 조원들이 몇 발자국씩 밀려났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어느새 다른 조원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공전사멸진의 무서움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공격을 피하고 쳐내고 반격하며 빈틈을 만들어내도 곧장 빈틈이 메워진다.

그런 과정이 쉬지 않고 반복되니 나 또한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스걱! 촤악! 팟!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을 피할 때마다 내 옷깃이 갈라졌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내는 와중이라 종이 한 장 차이로 검날이 살가죽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옅은 상처 또한 하나둘씩 늘어가는 상태. 상처 위로 튀어 오르는 핏방울을 보는 순간 나는 점차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어느샌가 일조 대원들은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살수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퍼-억!

“컥!”

내 목검을 막아 낸 조원 중 하나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검강이 실린 목검인지라 그의 검을 통째로 가르면서 가슴 위까지 가격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진검이었다면 절명했을 테지.

“망설이지 말고 계속 몰아붙여-! 녀석도 지쳐가고 있다! 게다가 되도록 우리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으니 그 부분을 공략해라!”

내가 다음 먹잇감을 노리는 사이에 손유수가 조원들을 북돋웠다. 그녀는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도 했다.

목검에 검강을 실었다고는 해도 목검 자체의 내구성이 약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해서 되도록 검을 쳐내고 막아내기보다는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경우는 내가 공격하는 상황에서만.

그런 제약 아닌 제약이 그들과 내 실력 차를 좁혀준 것이다.

덕분에 나는 마음껏 실력을 내보이며 그들과 비무를 이어갔다.

촤-악!

내 어깨 위로 상처 하나가 새겨졌지만.

“컥-!”

반대로 조원 중 하나는 여지없이 내 공격을 허용한 채 저만치로 날아가 의식을 잃었다.

이로써 두 명째.

검진에 결원이 발생하자 나로서도 슬슬 숨통이 트였다.

반대로 조원들은 이를 악물며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수련을 위한 비무라고는 했지만, 전력을 다했는데도 목검을 든 나를 상대로 패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

텅! 휘릭!

손유수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 나가 회전하다가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그사이에 나는 그녀의 목에 목검을 겨눈 채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비무의 끝을 알리는 말에 손유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만족할 만한 수련이었어?”

“예.”

그녀가 감탄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아직 목이 마른 상태였다.

‘자칫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몇 번 있긴 했지.’

그럴 때면 머리는 차가워지면서 반대로 몸은 달아올랐다. 그 느낌을 수십, 수백 번 더 마주해야 했다.

전생과 비교하면 그렇게 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손유수가 연무장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조원들을 둘러봤다.

“너뿐만 아니라 나와 저 녀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을 거야. 값진 시간이었어.”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기절해 있는 조원들을 하나하나 둘러업어 숙소에다 던져두었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알아서 의당으로 기어갈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의 손유수처럼.

그녀는 다른 조원들처럼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내 목검에 몸 곳곳을 두들겨 맞아 비틀거리고 있었다.

“난 의당으로 갈 건데. 같이 가보지?”

“전 괜찮습니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의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상처가 몇 개 보이긴 했으나 깊은 부상은 아니었다.

금창약만 발라도 금방 나을 터.

게다가 내가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조장.”

“왜?”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가끔 손 좀 봐주고 싶다고 생각해 둔 사람 좀 없습니까? 맹 내부에요.”

“…질문의 요지가 뭐야?”

“비무 좀 더 하려고요.”

***

“이거 참…….”

정천맹주 독고태문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총군사인 묵가후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하나같이 내 몸 상태를 위아래로 살피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 덕분에 요 며칠 사이에 의당이 환자들로 꽉 차버렸네.”

“…….”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나와 비무를 벌였다가 쓰러진 무인들이 백 명을 넘어갔다.

덕분에 의당주에게 쓴소리를 들었다가 지금은 독고태문과 묵가후에게 불려온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맹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야.”

“자중하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독고태문은 웃음을 터뜨렸다. 깊은 상처는 없지만, 백이 넘어가는 무인들과 비무를 벌여 몰골이 만신창이에 가까웠으니.

“강해지고자 하는 의욕이 너무 앞섰나 보군.”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얼마 남지 않았다? 설마?”

순간 독고태문은 내 얼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내 기세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이어 그가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 나이에 벌써 지극의 경지에 들어서려고 하다니…….”

지극의 경지라는 말에 묵가후가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지극이라면 맹주님과 같은 경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이리 놀라고 있는 게 아니겠나?”

“어찌 그럴 수가……. 하늘이 내린 무재라고 평가받던 전 천영검대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과거의 천 대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

전생의 내 이름이 튀어나왔지만 나는 덤덤했다. 단지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내가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던가?

“분명 약관의 나이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천 대주도 이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무공을 전해주었던 거겠지. 엄청난 재능이 천하제일의 검법을 만났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구나.”

나에 대해 제멋대로 정의를 내린 두 사람은 여전히 감탄하는 눈빛으로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런 만큼 수련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외부로 내돌릴 수도 없습니다. 자칫 월영련의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맹의 무인들이 아니라 외부의 사파 무인들을 처단하며 수련을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다만 월영련이 호시탐탐 내 목을 노리고 있을 테니 독고태문과 묵가후는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놈들에게 당할 내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동시에 월영련이라는 적에 대항하는 순간에 나 같은 실력자를 밖으로 내돌릴 수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현 맹주와 싸워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슬쩍 독고태문을 올려다봤다. 동악검선과 같은 지극 고수.

그와의 비무는 전생의 무공을 회복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게 자명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실전을 가장한 비무였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런 내 기세를 읽었는지 독고태문도 아쉬워했다.

“내가 맹주가 아니었다면 기꺼이 상대해줬을 텐데.”

말을 하던 그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렇군. 그분들이면 괜찮지 않겠나?”

독고태문이 묻자 묵가후도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원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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