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84화 (84/150)

#84. 3장 신위(1)

쾅!

정문을 부수고 나자 매양문의 외원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불청객을 바라보는 무인들과 눈을 마주쳤다.

“뭐, 뭐야?”

“누구냐!”

“침입자다-!”

퍼뜩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앞다투어 고성을 내질렀고 단숨에 검을 뽑아 나를 에워쌌다.

나는 덤덤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 걸음에 맞춰 포위망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기세를 풍겨 분위기를 압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을 겨눈 채 경계하고는 있지만 누구 하나 내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외원 중앙에 멈춰 서자, 내 정면에 서 있던 중년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슬쩍 둘러보기에도 당장은 그가 가장 높은 지위의 인물인 듯 보였다.

“정체가 뭐냐? 용건은? 누구기에 감히 한 문파의 문을 부수고 당당히 걸어들어 온단 말이냐?”

목소리에서 분노와 살기가 느껴졌다. 다만 그 역시도 내 기세에 눌려 다소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나는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죽립을 벗고 망설임 없이 정체를 밝혔다.

“백의문주요.”

“백의문주?”

백의문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는 듯 중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의문의 명성은 산서 쪽에서나 유명했지 아직 섬서까진 도달하지 못했을 테니.

딱히 상관없는 일이어서 나는 계속 말했다.

“용건은 쥐새끼 하나가 이쪽으로 기어들어 가는 걸 발견해 직접 잡으러 왔소.”

매양문과 더불어 섬서 무림 연합회는 선우약가와 반대되는 세력이긴 하지만 어쨌든 같은 정파 세력이기도 했다.

해서 나는 나름 정중한 어조를 유지했다.

“쥐새끼?”

“장명객잔이라고 아시오?”

“장명객잔이라면…….”

“경양현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 아무튼 객잔에서 식사하는 와중에 웬 사내 하나가 선우약가에 대한 괴소문을 퍼트리고 있기에 뒤를 쫓았소. 그랬더니 장명객잔뿐만 아니라 그 근처의 객잔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고 부풀리고 있더군.”

“…….”

사실을 기반으로 한 상황 설명인지라 중년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조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매양문 전체가 관여된 일인 듯 보이는데.”

“무, 무슨 소릴!”

“아니라면.”

나는 시선을 옮겨 포위망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를 쳐다봤다.

장명객잔에서부터 뒤쫓던 그 사내였다.

“쥐새끼를 내놓던가.”

내 경고에 순간 장내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은 내원 쪽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로 인해 깨져나갔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년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물이었고 풍기는 기세로 보아 무위 또한 가장 높아 보였다.

누가 봐도 그가 매양문의 문주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매양문주 길벽산(吉碧山)이오.”

그는 정체를 밝히는 동시에 내 시야를 가로막듯이 정면에 멈춰 섰다. 그런 그가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백의문의 문주라고?”

“맞소.”

“다짜고짜 본문의 정문을 부수고 침입해온 건 선우약가에 관한 소문을 퍼트리던 인물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그것도 맞소.”

순순히 인정하자 길벽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섬서 무림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오?”

“모를 리가 있나.”

“알면서도 이런 짓을 벌인다는 건… 백의문이 마교의 무공에 손을 댄 선우약가를 돕겠다는 뜻을 밝힌 거라 여겨도 무방하겠소? 그게 섬서 무림 연합회와 척지는 일임에도?”

그는 은연중에 매양문이 섬서 무림 연합회 소속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 정도로 알아듣게 말했으면 알아서 물러나라는 투였다.

하지만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 여겨도 무방하오. 백의문은 선우약가의 진의를 지지하니까. 마교의 무공에 손을 댄 건 사실이나 그건 선우약가의 둘째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하던데. 그럼 그 둘째만 벌하면 될 일이 아니겠소?”

“허. 놈들의 그런 같잖은 변명을 믿는다고? 고작 선우약가의 둘째 혼자서 정천맹의 비고에 봉인되어 있던 무공 비급을 빼내 올 수 있었다? 증거라도 있소?”

“증거는 없지. 그럼 반대로. 섬서 무림 연합회 쪽엔 증거가 있소? 선우약가 전체가 이번 일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

내가 반문하자 길벽산은 입을 다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정확한 증거는 없었다.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으니까.

단순히 정황과 소문만을 앞세워 연합회를 구성했겠지.

“연합회주가 공동파의 장문인이라고 했던가? 내가 보기엔 그자가 이때다 싶어 섬서 무림을 장악해 선우약가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측을!”

“그런 게 아니라면 왜 굳이 소문을 퍼트려 여론을 조작하는 거요? 선우약가에게 해명할 시간이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아무리 봐도 의심스럽단 말이지.”

“허.”

내가 계속 선우약가를 두둔하자 길벽산은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소모적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을 테지.

“백의문의 뜻은 잘 알겠소. 다만 오늘 일은 연합회 쪽에 보고를 올릴 것이고 이후의 일을 감당하는 건 오로지 그쪽 몫이오.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오.”

그는 선우약가를 도우려는 백의문이 무사하지 못할 거란 말을 빙빙 돌려 충고했다. 동시에 내가 연합회라는 이름 앞에서 한발 물러설 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쥐새끼를 잡으러 온 거라니까?”

“…본문의 문도를 순순히 내어줄 성싶으냐? 정 데려가고 싶다면 본인을 포함한 매양문의 모두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길벽산이 짐짓 살기를 피워 올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의 태도에 힘입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무인들 또한 기세를 끌어올렸다.

나는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고 나서 덤덤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 대답에 길벽산은 그럼 그렇지 하는 미소를 짓다가.

“죽이진 않을 테니, 덤빌 놈은 덤벼.”

이어지는 말에 인상을 와락 구기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놈을 쫓아내라!”

길벽산의 명령에 매양문의 무인 중 세 명이 일거에 달려들었다.

내 기세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이곳은 매양문의 본진. 수십에 달하는 무인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문주인 길벽산과 간부들이 총집합해 있는 상태.

무위가 얼마나 강하든 혼자서는 자신들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 여기고 있는 듯싶었다.

“하압!”

고함과 함께 세 자루의 검날이 상, 중, 하단을 노리고 동시에 찔러져 왔다.

썩 훌륭해 보이는 합공이었으나.

카강! 팍!

검을 검집째로 휘둘러 두 놈의 검은 쳐내고 나머지 하나는 검날을 발로 짓이겨 붙잡아 두었다.

이어 붙잡힌 검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놈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킨 뒤 훌쩍 몸을 날렸다.

“억!”

내가 손쉽게 합공을 막아내고 그걸로도 모자라 순식간에 반격을 가하자 공격해온 무인들은 눈을 치떴다.

퍼퍽!

그런 두 놈 또한 각각 복부와 얼굴에 일격을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다음.”

내가 슬쩍 도발하자 다시 포위망 곳곳에서 신형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그 숫자가 다섯.

쉬쉬쉬쉭!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사방에서 합공을 이어오는 놈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내가 이번에도 당황하는 놈들의 빈틈을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하는 둔중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다시 다섯 명의 무인들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뭣들 하느냐! 한꺼번에 덮쳐라, 한꺼번에!”

길벽산이 악을 쓰며 분노하자 이제는 포위망 전체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내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범상치 않았음을 깨달았는지 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작정 달려들기보다는 수적 우세를 활용해 확실하게 승부를 보겠다는 판단이었다.

‘팔방검진.’

하지만 놈들의 검진은 인술진 중에서도 고작 중위에 해당하는 수준. 최상위 수준의 검진까지 꿰차고 있는 나에겐 하등 쓸모없는 검진이었다.

더군다나 팔방검진 자체가 완숙한 경지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매양문 무인들의 무위가 팔방검진을 펼치기엔 역량이 다소 부족했다.

덕분에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포위망 곳곳에 허점이 드러났고.

팍!

나는 여지없이 그 허점을 파고들었다.

순간 놈들이 코웃음을 치는 게 보였다. 내가 검진 속으로 몸을 날리는 모양새가 마치 불 속으로 달려드는 부나방 같다고 여기고 있는 걸 테지.

하지만 놈들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뻐억!

“컥!”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며 쓰러지는 무인을 시작으로 내가 사방을 넘나들며 검진을 찢어발기고 있었으니까.

“비, 빈자리를 메꿔라! 침착하게 대응… 컥!”

더군다나 내가 우선하여 노리는 건 검진의 핵심을 도맡은 실력 높은 무인들. 위가 무너지자 아래 또한 저절로 허물어졌다.

“검진이 깨집니다!”

누군가가 위기감을 느끼며 경고하고 나섰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놈이 외치기도 전에 이미 검진은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 이런!”

나는 어느새 한발 뒤로 빠져 있던 길벽산의 코앞까지 쇄도해 와 있는 상태였다.

챙!

길벽산이 발작하듯 검을 뽑아 내 미간을 노렸다.

콱.

나는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검의 검날을 맨손으로 붙잡은 다음 경악하는 길벽산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쥐새끼는 더 이상 필요 없겠다. 매양문 자체가 쥐새끼 소굴일 테니까.”

내가 웃자, 길벽산은 검이 붙들린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물어왔다.

“그, 그대는 대체 누구요?”

***

탁.

탁자 위로 찻잔이 조심스레 올려졌다.

나는 찻잔을 집어 한 모금 마신 뒤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길벽산을 바라봤다.

그는 얼굴과 몸 곳곳에 피멍이 든 상태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처음부터 대화로 풀었다면 좋았잖아?”

내가 말하자 길벽산은 움찔 놀랐다가 억지로 미소를 머금었다.

“보, 본인이 어리석었소.”

“깨달았으면 됐고. 알고 있는 거나 전부 털어놔 봐.”

“정확히 어떤 걸 궁금해하시고 있는 건지…….”

“말했듯이 전부. 섬서의 정세. 섬서 무림 연합회. 연합회주와 공동파. 혹은 그 뒤에 있는 또 다른 배후세력에 대해.”

떠보듯 마지막 말을 강조했지만, 길벽산에게서 위화감은 느끼지 못했다.

역시나 길벽산과 매양문은 연합회 소속의 그저 그런 문파와 문주 중 하나였을 뿐인가.

그런 그에게서 월영련을 제외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이미 내가 파악하고 있는 것들뿐이었다. 총군사인 묵가후에게서 들은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다만 연합회주인 공동파의 장문인이 예상보다 더 적극적으로 선우약가를 몰아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할 수 있었다.

“회주께서는 선우약가의 둘째인 선우영민과 그가 익힌 마공의 비급을 내놓으라고 먼저 제안했었소. 선우약가가 떳떳하다면 제안에 응하라고 말이오.”

“굳이 그런 제안을?”

“연합회가 직접 나서서 선우약가의 둘째를 조사한 뒤 밝혀낸 사실들과 비급을 가지고 정천맹에 보고하겠다는 뜻이었소.”

“연합회가 주도하여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건가?”

“섬서에서 벌어진 일이고 공동파 또한 천하오주에 준하는 정파 세력의 문파이니, 명분은 충분했소. 하지만 선우약가는 둘째를 내놓지 않았소. 비급의 행방도 알 수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 우리로선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고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선우약가를 진압해야겠다고 판단한 거요.”

그를 위해 여론을 조금 더 자신들 쪽으로 돌려놓고자 의도적으로 소문을 흘렸다는 게 길벽산의 해명이었다.

물론 연합회주의 명령이 있었기에 행동에 나섰을 테고.

겉으로만 보면 딱히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연합회는 그저 마교의 무공에 손을 댄 선우약가를 몰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월영련의 계략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와 독고태문, 그리고 묵가후 입장에서는 연합회를 저지하는 동시에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후룩!

나는 찻물을 한꺼번에 들이켠 뒤 눈을 빛냈다.

“상황은 대충 이해했으니까, 매양문은 일단 오늘부로 봉문하도록 해.”

“보, 봉문이라니. 그게 무슨?”

“연합회에서. 아니, 이번 일에서 빠지라고.”

“우리가 왜……….”

길벽산은 반박하려다가, 내가 검집을 툭 치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양문이 봉문하게 된 경과에 대해선 연합회 쪽에 상세히 보고를 올려도 돼. 소문도 좀 퍼트리고.”

“백의문이 선우약가를 도우려 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밝혀도 좋다는 뜻이오? 그랬다간 백의문 또한 연합회의 표적이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텐데.”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내가?”

“…”

순간 길벽산은 입을 다물었다.

직접 겪어봤으니 내 말이 단순한 허언인지 아닌지 깨달았겠지.

“시키는 대로 해. 날 적으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겠소.”

대답하는 길벽산을 뒤로하고 나는 매양문에서 벗어났다. 일단 매양문을 통해 백의문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두면 연합회로서는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는 사이에 나는 선우약가에 방문해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선우약가가 무사하도록 시간을 끄는 게 내 역할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월영련에 대한 조사를 묵가후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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