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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86화 (86/150)

#86. 3장 신위(3)

화악!

검강을 머금은 도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피할 때마다 뒤따라 터져 나오는 열기와 화염이 성가시긴 했지만 큰 위협은 아니었다.

“타앗!”

화염도도 그걸 깨달았는지 더욱 악착같이 몰아붙여 왔다.

터터텅!

검강과 도강이 맞부딪치며 연신 굉음이 터져 나왔고 나는 화염도의 공격을 튕겨내는 동시에 덤덤히 그를 객잔 밖으로 유인했다.

도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가 객잔을 불태울 기세였으니까.

싸움이 객잔 밖으로 이어지자 구경꾼들이 더욱 몰려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객잔 밖에는 연합회 소속으로 보이는 무인들 서른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쾅!

그래서였을까. 한차례 큰 공격과 함께 거리를 벌린 화룡도가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연합회의 정예 고수들이다. 이쯤에서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의 제안에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눈앞에는 인극 고수인 화룡도가. 내 주위로는 절정에 달하는 무인들 서른여 명이 단단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 뒤로는 저잣거리의 인파들이 거리를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화룡도를 응시했다.

“많이도 끌고 왔네.”

“회주께선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시는 분이신지라. 네놈 하나를 잡기엔 너무 과한 숫자이긴 하지.”

“완벽?”

완벽이란 말에 조소가 새어 나왔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뭐라?”

“내가 누군지 모르냐고.”

“네놈이 백의문주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래. 백의문주. 그런데 왜 내가 혼자일 거라 여기는 거야?”

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화룡도의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

인극 고수인 화룡도의 무위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한다. 거기에 절정 고수 서른 명이 더해진다면 웬만한 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원로원에서의 수련 이후 지극의 경지에 도달한 나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나 혼자서도 그 정도인데.

탁.

순간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허공을 격하고 날아와 내 옆으로 내려앉았다.

“백의문의 일장로 홍야가 문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홍야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점잖고 공손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이야, 홍 영감.”

“예.”

나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주변 인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닌가? 왜인지 홍야의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진심으로 나를 백의문의 문주이자 자신이 모셔야 하는 인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백의문에 머무는 이유는 언젠가 나를 꺾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를 옛 천영검대주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나를 꺾고 옛 천영검대주에게도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백의문에 남아 있는 게 바로 홍야였다.

한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그 체념한 듯한 표정은.”

내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홍야가 픽, 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극의 경지 앞에선 복수심도 눈 녹듯 사라지는 법이지.”

결국 내 경지를 따라잡기란 요원하다는 걸 깨닫고 복수를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그걸로 만족해?”

“나이를 좀 덜 먹었다면 고집이라도 부렸을 텐데.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네. 뭐, 백의문의 이인자인 삶이 썩 나쁘지도 않고.”

“하하.”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웃었다. 강제적이 아닌, 홍야 스스로가 내 수하임을 자처했으니까. 그가 사파 세력의 고수였다는 과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백의문은 사파인이었던 과거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문파가 아니던가.

탁.

“백의검대주 이자청이 문주님을 뵙습니다.”

타타탁.

“백의검대원 전원이 문주님을 뵙습니다.”

홍야의 뒤를 이어 내 곁으로 날아든 녀석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게 느껴져서였다. 일견하기에도 녀석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나 이자청은 어느새 절정의 초입을 벗어나 그 다음 단계까지 나아간 듯 보였다.

이 역시 홍야의 도움이 컸을 게 분명했다.

내가 강해지는 만큼 백의문 또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손량을 제외한 백의문 전원이 내 뒤로 집결하자 화염도와 연합회 소속 무인들이 크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

“저들이 모두 백의문인가 보군!”

“허. 다들 하나같이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여.”

“백의문주뿐만 아니라 백의문 자체가 저 정도로 강한 문파였다니.”

화염도를 위시한 연합회 소속의 무인들.

그 맞은편에 서 있는 나와 백의문도들.

그런 우리를 지켜보는 인파들 사이로 점차 웅성거림이 번져나갔다.

물론 그 대부분은 백의문주인 나를 비롯한 백의문을 향한 감탄이 전부였다.

섬서에서 커다란 위세를 떨치고 있는 화룡도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내 무위와 그런 내가 이끄는 백의문도들의 기세가 연합회 소속의 정예고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분위기가 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화룡도와 그의 수하들이 잔뜩 긴장하며 나와 백의문도들의 기세에 압도된 상황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이지 않는 선에서, 모두 처리해.”

내가 나직이 명령하자.

“예-!”

이자청을 앞세운 백의검대원들이 일시에 검을 뽑아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반대로 나는 제자리에 선 채로 쥐고 있던 검을 집어넣었다.

백의검대원들이 연합회의 정예고수 서른 명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문주께서 나설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좀 쉬고 계시게.”

홍야가 그 말과 함께 기세를 피워 올리며 화룡도에게 짓쳐들어갔기 때문이다.

같은 인극 고수이긴 하지만 화룡도는 홍야보다 실력이 두 수 정도 떨어졌다. 그 차이마저도 놈이 익힌 극양의 무공 덕분에 그 정도였다.

“큭! 네놈은 또 누구냐!”

화룡도는 이를 악물며 홍야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홍야가 초반부터 공격 일변도로 몰아붙이는 와중에 백의검대원들까지 하나둘 상대방을 쓰러트려 갔다.

서른 명이었던 적의 숫자가 이십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고 그렇게 되자 전황이 급속도로 기울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싸움이어서 몰려든 인파들 사이로 경외 어린 탄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다시금 백의문이라는 이름이 섬서 땅에 깊숙이 각인될 게 분명했다.

섬서 무림 연합회 또한 이제는 섣불리 선우약가를 공격해 오지 못할 테지.

연합회주가 완벽을 추구한다니, 백의문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칼을 뽑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계속 전투를 관망했다.

그 짧은 사이에 또다시 적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화룡도 또한 홍야의 변칙적인 초식 앞에 점차 몸 곳곳이 갈라지며 피를 뿜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뒈져라-!”

화룡도가 발악하듯 도를 치켜세운 채 홍야에게 달려들었다.

수비를 배제한 동귀어진의 수. 게다가 도신을 감싼 화염이 그의 전신마저 휘감기 시작했다.

숨겨둔 비장의 한 수라도 있는 건가 싶어 내가 나서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로운 홍야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런 홍야의 검이 순간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다시 넷으로, 쉬지 않고 분열을 이어갔다. 종국엔 그 숫자가 눈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나 주변을 뒤덮었다.

백의검대원뿐만 아니라 홍야 역시 나름의 성취가 있었던 건가.

만변(萬變)을 담은 그의 검은 나와 싸웠던 과거의 그때보다 더욱 날카롭고 다채로워 보였다.

검림(劍林).

그렇게 표현해도 무방한 홍야의 초식이 사방을 불태울 기세였던 화염을 에워쌌다.

이내.

촤악! 촤자자자작!

화염마저 잠재운 검림은 화룡도의 전신 위에 거미줄 같은 상처를 새겨 넣은 뒤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화룡도가 바닥으로 허물어지면서 장내가 기나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

“회주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연합회주인 막능제로서는 이맛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허락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힌 예의 없는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백의문주를 처리하겠다고 인극 고수인 화룡도가 절정 고수 수십과 함께 나섰다고 보고를 받은 게 엊그제였다.

지금쯤 결판이 났을 거라 여겨 기다리고 있던 참인데 분위기를 보니 또다시 변수가 발생한 듯싶었다.

“설마 화룡도가 당했다는 게냐?”

“그렇습니다.”

“그놈이 화룡도마저 감당할 고수였다고?”

“그게…….”

수하가 잠시 머뭇거리자 막능제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망설이지 말고 대답하거라.”

“…화룡도 대협은 백의문주가 아닌 백의문의 장로에게 쓰러졌다고 합니다. 함께 갔던 정예고수들도 백의문의 무인들을 당해내지 못했고 오히려 백의문주는 그 싸움에 일절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쾅!

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능제가 탁자를 단번에 박살 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백의문이 그 정도로 강한 문파였다고?”

“전부 사실입니다. 경양현 저잣거리에 있던 모두가 그 싸움을 지켜봤기에 소문 또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소문의 진위 따위는 가려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많은 인파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을 테니 소문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막능제가 눈을 치켜뜨는 사이 수하는 보고를 이어갔다.

경양현 저잣거리에서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소문은 백의문의 신위를 찬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서에서 백의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까지 부연하고 있었다.

“산서 무림은 백의문을 정도의 길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문파라고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문파가 세워진 시기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백의문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산서의 사파 세력들이 크게 줄어들었고 그 모든 게 백의문 덕분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의문이 선우약가를 돕겠다고 나선 부분에 대해 혹시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나 의아해하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산서에서 명성과 신뢰가 높은 문파.

그런 문파가 섬서에까지 직접 나타나 공적으로 지목된 선우약가를 도우려 한다.

섬서의 강호인들로서는 충분히 위화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론이 고작 며칠 사이에 생겨났다?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지 않는 이상 시기가 너무 빨랐다. 마치 자신이 매양문을 앞세워 여론을 조작한 것처럼…….

순간 막능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백의문.

길가에 놓인 단순한 걸림돌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게 어쩌면 커다란 장애물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놈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거라.”

***

화룡도와 연합회의 고수들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덕에 나와 백의문원들을 바라보는 저잣거리의 민심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문주가 직접 나서지 않고도 화룡도를 물리친 백의문의 신위를 경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문주님.”

뒤늦게 나타난 공손량과 반가움의 회포를 푼 나는 씩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역시 공 총관이야.”

“하하.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일밖에 없지 않습니까?”

백의문주로서 선우약가를 도와줘야 하니 섬서로 집결하라는 말을 전했을 때.

공손량은 섬서 무림의 분위기를 살펴본 뒤 여론을 어느 정도 뒤집을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 은밀히 작업을 쳐두었다고 했다.

백의문의 명성과 평판을 앞세운 소문을 퍼뜨려 선우약가의 오명을 조금이나마 흐리게 만들고자 하는.

그 소문이 백의문의 신위를 찬양하는 말과 더해져 나름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연합회 쪽의 발목을 확실하게 붙잡아 둘 수 있을 터.

“모두 모였으니 가보자고. 선우약가로.”

나는 백의문 전원을 이끌고 곧장 선우약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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