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98화 (98/150)

#98. 6장 전조(3)

두두두두.

복룡추호대 전원이 말을 타고 초원을 가로질렀다. 하남에서 진천문이 있는 청해까지는 먼 거리.

체력적인 안배를 위해서라도 경신공으로 내달리기보단 준마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각지에 자리 잡은 지부를 지나칠 때마다 새로운 말로 갈아타며 밤낮없이 내달리길 한참.

마침내 눈앞에 고원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청해다.”

청해 땅은 삼분지 이가 고지대라 할 만큼 해발이 높아 정마대전 당시 마교의 진격을 늦추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지역이었다.

진천문 역시 그런 지형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위치에 문파를 세워 이후 오랜 세월 청해제일문으로 굳건히 버텨왔다.

물론 진천문의 무공이 그만큼 천하를 논하는 수준이니 가능했겠지만.

‘도제(刀帝)라.’

도제 오종락(吳悰樂).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자 진천문주이며 도법만큼은 천하제일이라 여겨지는 인물.

한때는 검신 영감과 검과 도, 둘 중 어떤 무기가 더 뛰어난지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만큼 도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만큼 실력 있는 고수였다.

정마대전 당시 최전방에서 진천문을 이끌며 활약한 일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자부심만큼이나 자존심 역시 높은 인물이었다.

‘천영검대? 검신. 그놈의 기밀 검대라 했던가. 진천문은 도움 따위 필요 없다.’

전생에 천영검대주로서 청해의 전선에 도착했을 때 도제 오종락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한 기억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청해에서 진천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청해에 존재하는 정파 세력의 문파와 무가가 진천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한데 뭉쳐 마교에 대항했다.

공식적으로 연합회를 구성한 게 아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현상이었다.

그만큼 청해 땅 안에서는 검신 영감보다도 도제 오종락을 향한 충성심이 더욱 컸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마교의 전력을 막아낼 수 없었기에 진천문과 오종락은 하릴없이 천영검대는 물론 정천맹의 조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리 진천문이라 하더라도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을 테니까.

그런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는 도제는 전보다 다소 유해져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총군사에게 분명 파견은 필요 없다고 전해두었음에도…….”

복룡추호대를 맞이하는 오종락의 표정엔 불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

“도제 어르신께서 못마땅해하시겠군.”

맹주 독고태문의 말에 묵가후는 옅은 미소와 함께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실 겁니다. 도움은 필요 없다고 단단히 못 박아 두셨으니까요.”

“그래도 진휘와 복룡추호대를 보내야만 했다?”

“예.”

탁자 위에 놓인 보고서들과 지도 한 장.

비선당을 통해 파악한 일월성의 움직임을 가리키고 있는 그 지도로 묵가후는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놈들의 경로를 역추적한 결과, 놈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십만대산(十萬大山) 주변이었습니다.”

“마교의 본거지였던 그곳에서?”

“예. 어쩌면 월영련 역시 그 십만대산에 자리를 잡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정확히 놈들의 본진이 그곳에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일월성은 분명 십만대산을 기점으로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십만대산은 확실히 천혜의 요새이긴 하니까.”

드넓고도 광활한 산맥. 험난한 산세와 척박한 환경.

정마대전의 승리 이후 사로잡은 마인들을 통해 마교의 본산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면 그 잔당들을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도 힘겨웠지만, 그 후처리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게 정마대전이었는데, 그 이유가 단지 마교의 본산이 십만대산에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욱이 마교 정도 되는 세력이 아니라면 그 십만대산에서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판단도 있었다.

“월영련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십만대산에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 든 첫 장소가 청해라는 걸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그런 만큼 진천문과 청해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예.”

십만대산이 있는 신강과 중원 사이에 있는 지역이 청해.

만약 묵가후의 예상대로 월영련이 십만대산에 자리를 잡았다면, 청해를 지키는 게 앞으로 있을 월영련과의 전쟁을 우위로 이끌어 갈 수 있을 터였다.

즉, 도제의 심기를 거스르든 말든 일단 청해는 확실하게 지키고 봐야 했다.

그걸 위해 검신이 있는 천산으로 가고자 했던 유진휘를 청해로 보낸 것이다.

“도제 어르신과 진휘라면, 청해는 안전할 걸세.”

맹주의 확신에 묵가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

진천문의 집무실.

“복룡추호대라고 했나? 총군사는 물론 맹주의 전언까지 있었으니, 돌려보내지는 않겠네.”

상석에 앉아 있는 도제 오종락의 말에 설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청해의 일은 본인과 진천문에게 맡기라는 말일세.”

“하지만 월영련 놈들의 전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만하지 않다?”

순간 오종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은 도제라 불리는 내가, 그런 내가 이끄는 진천문이 놈들을 막아내지 못할 거라 말하고 있는 건가?”

오종락의 반응에 설표는 아차 싶어 고개를 저었다.

설표가 황급히 말을 덧붙이려고 할 때였다.

“그만. 무슨 말을 하든 바뀌는 건 없을 걸세. 게다가 자네들의 숫자는 고작 사십. 물론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고수인 건 인정하나, 사십 명 정도가 함께한다고 해서 싸움의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게야.”

진천문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는 듯한 오종락의 확고한 태도에 설표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설표의 뒤편에 시립해 있는 손유수와 고주양, 소이겸 등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장내의 분위기를 주시하고만 있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하는 웃음을 흘렸다.

도제 오종락의 변함없는 모습 때문이었다. 자존심만이라면 검신 영감도 뛰어넘는 인물이니 그의 고집은 꺾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현 맹주인 독고태문보다 한 배분 위인 어른이라 독고태문의 이름을 들먹일 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

“싸움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아도 저희 복룡추호대가 가세한다면 그만큼 많은 숫자의 목숨을 아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덤덤히 내뱉은 말에 오종락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자네는 누군가?”

“복룡추호대원 유진휘라고 합니다.”

“유진휘라면.”

내 이름을 되뇌며 나를 응시하던 오종락이 눈을 빛냈다.

“그 아이로군. 현 맹주는 물론이고 동악검선과 원로원주님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던.”

나에 대해 따로 무언가를 전해 들었는지 오종락은 시선과 함께 한차례 기세를 쏘아 보냈다.

그 기세마저 덤덤하게 받아내자 오종락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너로구나.”

“예?”

“이번 파견의 핵심이 바로 너라는 뜻이다.”

당장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실력자가 나였다. 오종락도 그런 내 실력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는지 짐짓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오종락의 말에 나는 가감 없이 할 말을 뱉어냈다.

“괜한 자존심 세우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문주님의 손엔 진천문뿐만 아니라 청해의 여러 문파와 무가의 운명도 함께 달려 있으니까요. 청해 땅은 청해 사람이 지키겠다? 그 자존심 때문에 자칫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순간 장내가 얼어붙었다.

설표는 물론이고 손유수와 고주양, 그리고 소이겸까지. 그들은 식겁한 얼굴로 나와 오종락을 번갈아 쳐다봤다.

반대로 오종락 편에 서 있는 진천문의 장로들 역시 감히 도제의 면전에 대고 저런 말을 내뱉을 줄 몰랐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속으론 다들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분위기였다.

그 심정을 내가 대변해 주었기에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기도 할 테지.

나아가 이제는 행여나 도제가 분노하기라도 하면 그 분노를 누가 감당하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분노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전 천영검대주의 유지를 이었다더니. 주둥이마저 쏙 빼닮았구나.”

“그렇습니까?”

나로서는 전생에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은 것뿐이었으니 닮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했다.

물론 당시에는 이미 청해의 많은 세력이 큰 피해를 보고 난 뒤였다. 도제가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쭙잖은 자존심은 접어둘 게 분명했다.

이어진 잠깐의 침묵.

“크하하.”

그 침묵은 오종락의 대소로 깨져나갔다.

***

“본문을 돕고자 먼 길을 달려온 이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군. 사과하겠네.”

“헉.”

예상치도 못한 오종락의 태도에 장내의 모두가 헛숨을 들이켰다.

다들 오종락이 나를 향해 검을 뽑지는 않을까 초조해하고 있었나 싶었다. 게다가 도제라는 존재가 직접 사과를 입에 담았기에 여간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여태까지 조용히 관망만 하고 있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먼저 복룡추호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중년인은 자기를 진천문의 총관이라 소개하며 다시금 우리의 파견을 환영했다.

이후엔 전시 상황임을 강조하며 빠르게 현재 전황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정천맹 총군사님의 정보에 따라 놈들을 일월성으로 명명하겠습니다. 일월성은 현재 이미 청해 안으로 진입해온 상태이며 곧장 본문으로 향하는 게 아닌 경로에 있는 정파 문파와 무가들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놈들이 진천문뿐만 아니라 청해성 전체를 장악하려 한다는 뜻입니까?”

설명을 듣던 설표가 반문하자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게다가 놈들을 이끄는 일월성주가 엄청난 고수여서 그의 일검을 막아낸 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해서 일단 저희는 진천문의 이름으로 청해의 문파와 무가들을 한자리로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일월성주의 무력은 물론이고 놈들의 숫자가 수백을 넘어가는 마당에 무턱대고 대항했다간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본진을 버리더라도 놈들의 경로로 예상되는 위치에 있는 문파와 무가들의 인원을 전부 진천문 인근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했다.

“결국 전면전이라는 거군요.”

“놈들이 원하는 것 역시 전면전인 듯싶습니다. 정확히는 일월성주라는 고수를 앞세운 무력 과시겠지요. 정천맹의 성명 발표로 월영련이 그간 암암리에 음모나 세우는 파렴치한 세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놈들은 청해를 장악해 평가를 뒤집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총관의 말에 나는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놈들은 지금 일월성주를 앞세워 무력을 과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거기에 더해 월영련주가 만약 검신 영감을 처리하게 된다면 놈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게 분명했다.

물론 그 말은.

“만약 청해에서 일월성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게 된다면 놈들의 의지를 크게 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금월보주, 화월각주 그리고 수월림주까지. 간부급으로 추정되는 인물 셋을 처리한 마당에 일월성주마저 패하게 된다면 놈들은 시작부터 큰 피해를 보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월영련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테지.

‘슬슬 끝이 보이는 건가.’

산서를 시작으로 지금껏 놈들을 쫓고 있던 나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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