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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00화 (100/150)

#100. 7장 양방(2)

‘너희들의 역할은 단 하나다. 목숨을 바쳐 길을 뚫어라. 진법 따위론 월영련의 무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거라.’

무인의 머릿속엔 그 몇 마디 문장만이 반복되어 울려 퍼졌다.

푹! 푸푹!

사방에서 암기와 화살이 날아와 몸 깊숙이 틀어박혔음에도 무인의 눈동자엔 안광이 번들거렸다.

“목숨을 바쳐… 진법을 부순다.”

반대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엔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고통도, 의지도 없이 무인은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진법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계속 걸음을 옮기다가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아 제자리에 못이 박힐 때쯤.

무인은 품속에서 벽력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어 화섭자를 이용해 심지에 불을 붙인 뒤 벽력탄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치이익.

이대로는 폭발에 휘말릴 게 분명한데도 사내는 웃는 얼굴로 마지막을 기다렸다.

“길을… 뚫어라.”

오직 그 말만을 되뇌며 벽력탄의 심지를 응시하던 무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슁-!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태껏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던 화살이나 암기의 기세와는 또 다른 섬뜩한 소리였으나 무인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제 곧…….

벽력탄의 폭발을 기다리던 무인은 위화감을 느끼고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런 그의 시야 앞으로 잘려 나간 심지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검을 쥔 채 서 있는 사내 하나의 모습도 보였다.

***

“바, 방해하지 마라-!”

벽력탄을 쥐고 있던 무인이 커다란 분노와 함께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그런 무인의 모습을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은 분명 세뇌를 당한 게 틀림없었다.

일전에 섭혼술로 동악감선마저 장악하려 했던 걸 보면 이런 수준의 무인들쯤 역시 손쉽게 의지를 제압할 수 있었을 터.

기세로 보아 일류 수준의 고수였다.

놈들에게 있어서 일류고수 정도는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던지, 벽력탄을 쥐고 있던 무인은 수비를 등한시하는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검을 쥐고 짓쳐들어왔다.

조금이나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터-엉! 서걱!

찔러오는 검을 쳐내고, 놈의 목을 벤 뒤 허공으로 떠오른 벽력탄을 손에 넣는 것까지. 그 일련의 과정이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졌다.

일단 벽력탄을 적당한 곳에 묻어둔 뒤 나는 다시금 몸을 날렸다.

진법 내부인지라 사방에서 암기와 화살이 날아들고 사방을 뒤덮는 안개가 시야를 가렸지만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오감을 끌어올려 길을 찾았고 화살과 암기 사이를 유유히 지나쳐 출구에 도달했다.

출구라곤 했지만, 그 앞은 다시 또 다른 진법의 입구.

수십 가지 종류의 진법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대라황산진이기에 나는 그다음 진법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자마자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전신을 뒤덮었다. 눈앞은 온통 얼어붙은 거목과 수풀이 늘어져 있었고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이 모든 게 진법의 환상이란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피부가 아릴 정도의 한기가 계속해서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내공을 끌어올려 그 한기를 밀어내면서 계속 중앙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몸이 통째로 얼어붙은 채 절명한 적들의 시체가 보였다.

다시 더 안쪽엔 역시나 끈질기게 목숨 줄을 부여잡으면서 벽력탄을 꺼내 들고 있는 무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촤악!

놈은 몸이 얼어붙어서인지 내 검이 목을 가르고 지나갔음에도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다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툭.

이어 잘려 나간 머리와 벽력탄 하나가 바닥 위를 굴렀다.

나는 벽력탄만 회수한 뒤 이것 역시 적당한 위치에 파묻은 다음 계속해서 대라황산진 전역을 누볐다.

전력을 다한 만큼 어느 정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회수한 벽력탄의 숫자만 해도 이십여 개.

그조차 한발 늦어 회수하지 못하고 터져나간 벽력탄의 숫자를 제한 거였다.

하지만 일단 대라황산진을 어느 정도 지켜낸 만큼 불안감을 덜어도 될 터.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가 바닥을 박차 허공으로 솟구쳐, 진법 속에서 빠져나왔다.

***

“이상하군.”

일월성 최고의 무력 집단이라 할 수 있는 흑웅대(黑熊隊). 그 흑웅대를 이끄는 흑웅대주 구경필(具勁筆)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황아산을 둘러싼 진법. 그중 서쪽 지역에 펼쳐져 있는 진법을 파괴해 길을 뚫고자 벽력탄을 쥔 선발대를 내보냈다.

성주가 직접 섭혼술을 펼쳐 세뇌한 놈들인 만큼 제 몸을 불살라 임무를 끝마칠 게 분명했다.

한데 초반의 몇몇 폭발음을 끝으로 더 이상 벽력탄은 터지지 않았고 대라황산진 역시 일부만 무너졌을 뿐 나머지는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나름 고르고 골라 선별한 일류고수들인지라 고작 진법에 당해 벽력탄을 터트리기도 전에 죽지는 않았을 텐데.

구경필은 황아산 위, 진법이 펼쳐져 있는 구역을 유심히 주시하다가 눈을 빛냈다.

“방해꾼이 있었나?”

순간적으로 느껴진 기세조차 범상치 않은 정도의 인물.

구경필은 놈이 필시 방해꾼일 거라 여기며 나직이 감탄했다.

벽력탄의 존재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진법 속으로 직접 몸을 날려 일일이 선발대의 무인들을 제거한 것인가.

아직 자신들에겐 벽력탄과 세뇌된 무인들이 좀 더 남아 있었다. 진법을 부수고 길을 만들 정도의 숫자는 충분했다.

‘하지만 저놈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나직한 감탄은 이내 차가운 분노가 되어 구경필이 살기를 피워 올리게 했다.

“내가 나서야겠다.”

구경필의 말에 흑웅대 부대주가 깜짝 놀랐다.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았습니다.”

“저놈이 있는 이상 길은 뚫리지 않아.”

구경필이 말한 ‘저놈’의 존재감을 부대주 역시 느끼고 있었는지 표정을 굳혔다.

“그럼 제가 함께…….”

“아니. 넌 나머지를 지휘해야지. 몇 놈만 데려가겠다.”

구경필이 슬쩍 눈짓하자, 흑웅대의 정예 다섯 명이 앞으로 나섰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예.”

대답과 함께 구경필을 선두로 한 무리가 대라황산진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

쉭!

거목 위에서 거목 위로, 진법의 영향권 밖에서 계속 이동해 아군 진영으로 몸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품은 존재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더불어 존재감은 하나가 아니라 여섯.

잠깐이나마 일월성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나는 거목의 꼭대기 위에 잠시 멈춰 섰다.

그러자마자 놈들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여섯 명의 무인 모두 흑곰 가죽을 덧댄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장대한 기골과 더해져 존재감이 더욱 커 보였다.

나는 놈들을 한차례 둘러보다가 덤덤히 물었다.

“산적?”

놈들의 용모를 깎아내리는 작은 도발이었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아쉬움에 혀를 차는 사이, 수장으로 보이는 듯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나이가 꽤 어리구나.”

“그런 소릴 종종 듣지.”

“그 나이에 그런 기세를 뽐내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겠지. 정체가 뭐냐? 진천문의 인물인가?”

“아니. 단순한 조력자다.”

“…제법 겸손하기까지. 가만.”

중년인은 순간 나를 유심히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보다 보니 낯이 익는다 싶었는데. 유진휘라는 그놈이구나.”

“나를 알아?”

“본련의 계획을 매번 방해하는 놈이라며 최우선으로 척살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화월각주님께서 강조하곤 했지.”

화월각주를 윗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에 나는 중년인의 지위가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월성주를 따르는 놈일 텐데, 기세를 보아 일월성의 이인자쯤 되나?”

“흑웅대주 구경필이라고 한다.”

“흑웅대주?”

“그래. 누구에게 죽는지는 알아야 할 테니.”

그 말을 끝으로 놈의 살기가 더욱 진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일월성주는 동쪽인가 보군?”

“성주님과 마주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내 손에 죽으면 최소한 고통 없이 곱게 죽을 수 있을 테니.”

“노력해봐. 어차피 너는 내 관심 밖이니까.”

이곳에서 동쪽 지역까지는 꽤 먼 거리지만 확신을 두고 기감을 쫓으니 확실히 일월성주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도제 오종락의 기세도.

만일 저쪽도 벽력탄을 지닌 무인들이 선발대로 나섰다면, 그리고 오종락이 나와 비슷하게 대처하려 했다면 머지않아 두 존재가 맞붙게 될 게 틀림없었다.

단순히 기세로 미루어 볼 때, 객관적인 평가로 도제 오종락은 일월성주를 당해내지 못할 듯싶었다.

일월성주가 한 수에서 두 수 정도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짧은 상념에 잠겼던 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흑웅대주라고 하니 이곳 서쪽 지역의 진격을 지휘하는 게 구경필일 터.

놈을 뒤따라온 무인들 역시 정예라 치부할 만한 실력을 지녔으니 이 여섯 놈만 정리하면 나머지는 남아있는 아군의 인원들로 충분히 감당할 만해 보였다.

그런 내 심중을 알아차렸는지, 흑웅대주가 고함을 터뜨렸다.

“같잖은 생각은 버려라! 감히 내가 누구라고……!”

“흑웅대주라며? 누군지는 기억해둘 테니 빠르게 끝내자.”

조소와 함께 검을 뽑자, 구경필과 다섯 명의 무인들이 각자 서 있던 거목을 박차고 내게 짓쳐들어왔다.

놈들은 초반부터 검강을 덧씌운 검을 뽐내며 내 급소를 노렸다.

파파파파팡!

제자리에 선 채로, 내 검이 한 바퀴 호선을 그리자 놈들의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는 곧장 제사초식 진광결인을 펼쳤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강이 전방으로 쏘아지자 그 경로에 있던 무인 하나가 목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움켜잡는 걸로는 잘려 나간 머리를 붙들 수 없었다.

푸확!

머리가 있던 자리 위로 선혈이 터져 나왔고 놈의 시체가 거목 저 아래로 추락했다.

“무형의 강기다! 감각에 의존해라! 보이지 않을 뿐, 막거나 피하지 못할 위력이 아니야!”

단 한 번 초식을 펼쳐 보였을 뿐인데 흑웅대주는 곧바로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의 말대로 진광결인은 보이지 않는 강기의 기운을 발출시키는 초식.

같은 강기를 사용할 수 있고 무형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만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내 검은 다시 제육초식 천신참망을 그려갔다.

촤라라라락!

검 끝에서 끝없이 피어난 소용돌이가 서로 뒤엉키면서 이내 검강의 태풍으로 변모했다.

“이, 이건!”

다시금 무형의 강기가 쏘아질 줄 알았던 건지 놈들은 기겁하면서 각자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몸을 날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 우리가 싸우는 곳은 거목들을 발판 삼은 허공 위.

놈들로서는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전력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놈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천신참망은 위력을 강기의 태풍 속에 집중시킨 초식이라 대항하기보다는 그 중심에서 멀어지는 게 그나마 나은 대응책이었다.

물론 피하려고 해도 결국은 태풍의 흡인력에 휘말려 중심으로 빨려들 수밖엔 없겠지만.

파라라락!

“마, 막아라!”

“크아악!”

“끄륵!”

전방의 하늘을 뒤덮은 태풍 속에서 연신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놈들의 반격조차 태풍 속에서 사그라지며 집어삼켜졌고, 이내 태풍이 가라앉으면서 전신이 갈가리 찢겨나간 시체들이 거목 아래로 추락했다.

그때.

쉬-잉!

한줄기 섬광이 내 미간을 노리고 쇄도해 들어왔다.

쩡!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자 내 눈앞엔 전신이 피로 물든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흑웅대주가 마주 서 있었다.

“네, 네놈은 대체…….”

놈의 흔들리는 동공을 마주 바라보던 나는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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