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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07화 (107/150)

#107. 3장 회생(1)

일월성주를 추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추종향 덕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쫓아가기만 하면 됐고 그 거리는 충분히 놈들의 경계 범위 밖이었다.

상처를 입은 일월성주를 실은 마차 한 대와 대략 백여 명의 무인들. 숫자 역시 변수가 발생해도 대처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묵묵히 괘월선보를 밟으며 나아가기를 한참.

나와 은소화는 어느새 청해와 신강의 경계선을 벗어나 있었다.

추측대로 놈들이 향하는 방향은 십만대산이 있는 서북쪽이었다.

과거 마교의 본단이 있던 장소와 같은 방향이었다.

이때부터 은소화는 추적과 동시에 일정 간격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며 지도 위에 우리가 지나쳐온 길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달리는 속도는 물론이고 기척을 숨기기 위한 잠행술마저 수월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비선당 청해 지부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더니, 그녀는 확실히 제 몫을 해내는 중이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저 보고서를 내가 작성했어야 했겠지.

천영검대주 시절에도 보고와 관련된 업무는 전부 소이겸이나 다른 녀석들이 대신해주었었기에 귀찮음을 덜어낼 수 있었는데.

옛 생각에 슬쩍 미소를 짓자 은소화가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

청해를 벗어나고 나서부턴 달이 떠오른 야밤에는 추적을 중단했다.

일월성 놈들 역시 신강에 접어들면서부터 굳이 야행을 감행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까지 열흘 가까이 밤낮없이 내달려온 만큼 놈들도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했던 듯싶었다.

당장 멀리 내다보면 가시거리에 십만대산의 산맥이 들어왔기에 놈들은 다소 안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나와 은소화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운기행공으로 내공과 체력을 회복했다.

약 한 시진 정도의 운기를 끝내고 눈을 뜨자 은소화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를 서고 있는 게 보였다.

“눈 좀 붙이시죠.”

그저 추종향을 따라 추적해온 것뿐이지만 우리가 지나쳐 온 길은 험한 산길이나 수풀 속을 지나쳐온 게 대부분이었다.

그녀로서는 나름 강행군일지도 몰라 제안한 것인데 은소화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서요.”

하긴. 비선당의 무인에게는 익숙한 상황이겠지.

굳이 한 번 더 물을 필요는 없어 보여서 나는 적당한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때 은소화가 내게 양피지 한 장을 내밀었다. 뭔가하고 눈짓으로 묻자 그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맹의 본단이 있는 하남과 유씨세가가 있는 산서. 그 외에 눈에 띄는 정파 세력들의 움직임과 소식 등을 정리해 둔 겁니다. 청해에 오신 지 꽤 시간이 지난 만큼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청해에 온 지도 벌써 보름을 넘어섰다. 나를 제외한 복룡추호대는 이미 맹으로 복귀했을 터였다.

그 사이에 정천맹을 중심으로 정파 무림 역시 월영련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진천문을 습격했던 일월성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은 이미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나선 건 역시나 정천맹 본단이 있는 하남에 자리 잡은 하남장가였다.

천하오주의 하나이기도 한 하남장가가 권룡 장진악을 비롯한 백에 달하는 절정 이하의 고수들을 맹으로 파견한 것이다.

양피지에는 하남장가를 시작으로 천하 각지에서도 수많은 고수가 맹으로 집결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과거 정마대전이 벌어졌을 당시처럼 정천맹은 그들을 통해 월영련에 대항하기 위한 무력 부대를 창설할 터였다.

“어?”

그에 관한 대목을 읽어 내려가던 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나는 눈을 빛냈다.

소룡단과 소호단.

오로지 후기지수들로 이루어진, 정마대전 당시에 여러 활약을 펼쳤던 부대 또한 재결성될 거란 정보였다.

내가 환생하기 이전의 유진휘가 몸담았던 그 소룡단이었다.

물론 그때의 소룡단은 유진휘를 제외하곤 선우약가를 지키고자 전부 희생됐었기에 새로운 인원들로 채워지겠지만.

그런데도 소룡단이 재결성된다는 소식에 감회가 새로운 건 사실이었다.

그 외에도 양피지엔 내가 몰랐던 여러 정보가 적혀있어서 하나하나 머릿속에 주워 담았다.

내 가문인 유씨세가는 여전히 종승재가 이끄는 성화상회와 함께 산서에서 굳건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를 대신해 백의문의 관리를 일임하고 있는 공손량의 영향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혹시나 월영련 놈들이 산서 무림에 위협을 가한다고 해도 유씨세가와 성화상회 그리고 백의문이 버티고 있는 만큼 크게 염려하진 않아도 될 게 분명했다.

그게 내가 입맹을 결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다시 양피지 말미엔 검신 영감에 대한 소식이 적혀있었다.

천영검대와 천군지사대가 그를 맹으로 모셔 온 직후 의당주가 직접 치료에 전념을 기울였으나 여전히 위독한 상태라고 했다.

아직 강호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검신 백도천의 존재감과 상징성을 생각하면 자칫 정파 무림의 기세와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대 맹주님께선 금방 병상을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내가 양피지를 전부 읽어 내려갈 때쯤 은소화가 한마디를 건넸다.

“물론이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

다시 며칠이 지났을 때.

마침내 나와 은소화는 일월성 놈들의 본진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십만대산은 수천 리에 달하는 산맥 위로 다시 수십이 넘어가는 봉우리가 형성된 지역이었다.

일월성 놈들의 본진은 그중에서도 가장 산세가 험악한 봉우리 너머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교의 본단이 있던 곳과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이자 보다 더욱 은밀하고 깊숙한 장소였다.

“저런 곳에서 숨죽이고 있었나.”

마교의 본단도 천혜의 요새라 일컬어졌는데 보다 더한 장소이니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곳이 정확히 월영련의 본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나는 덤덤하게 결단을 내렸다.

“내부로 진입해서 좀 더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내 말에 은소화가 흠칫 놀라 고개를 꺾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희 임무는 저들을 뒤쫓아 본진의 위치를 찾아내는 겁니다. 임무는 충분히 달성했다고요.”

“저곳이 월영련의 본진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저곳이 단순히 일월성 놈들의 본거지 정도라면 내부에서 월영련에 대한 또 다른 정보라도 캐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은소화의 말대로 위험할 수도 있는 판단이긴 했다.

내부에 얼마나 많은 적, 혹은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이든 언제고 몸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내 결단은 은소화의 동의를 구할 필요 또한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싶으면 먼저 복귀하시죠.”

“제가 어떻게 그런… 앗! 유 공자님!”

나는 은소화의 만류를 뒤로 하고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거목 아래의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다.

***

그르르륵!

거대한 철문이 바닥을 긁으며 개방됐다.

일월성주를 실은 마차와 백에 달하는 일월성의 무인들은 철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철문이 닫히기 직전에 몸을 날렸다.

철문 주변으로 열이 넘어가는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으나 놈들은 내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월하게 내부로 진입한 나는 기척을 숨긴 채 계속해서 일월성주의 뒤를 밟았다.

외부에서 볼 때 이곳은 성채라고 할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 안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그 크기가 체감됐다.

성벽과 천장으로 외부의 기습을 방비하며 내부엔 곳곳에 세워진 건물 주변으로 철통같은 경계가 처져 있었다.

은신한 채로 오감을 끌어올려 내부를 살피자 적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됐다.

‘일월성주를 제하고도 인극에 달하는 고수가 넷. 절정 고수가 대략 이백. 일류 이하가 다시 삼백 이상…….’

엄청난 전력이긴 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이곳을 월영련의 본진이라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만약 월영련의 본진이었다면 일월성주 같은 지극 고수가 몇 명은 더 존재했을 테니까.

대신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일월성이라는 단 하나의 세력이라 여긴다면 그건 그것대로 놀라운 일이었다.

월영련 휘하의 단일세력 중 하나가 이런 규모라니.

태산파를 노렸던 금월보는 이곳 일월성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이만한 규모의 세력이 더 존재한다면 월영련의 전력은 정천맹으로서도 감히 무시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 가길 원했다. 그래야 정천맹과 정파 무림이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누비며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경계를 피하고 어둠 속에 물들면서 동시에 일월성주의 행적도 놓치지 않았다.

놈은 내게 입은 상처로 지금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했는지 수하들의 부축과 함께 마차 안에서 꺼내졌다.

그렇게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일월성주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이런…….”

인극 고수로 여겨지는 중년인 하나가 허겁지겁 안쪽에서 달려 나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중년인은 쓰러져 있는 일월성주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복귀한 무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상세히 고하거라.”

격노가 물든 목소리에 수하들은 잔뜩 움츠러들면서도 황아산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늘어놓았다.

그 보고의 중심은 다름 아닌 나였다.

“유씨세가의 소가주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놈으로 인해 벽력탄으로 황아산 일대에 펼쳐져 있는 진법을 깨부수는 작전이 실패했고 놈에게 흑웅대주님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성주님께서 놈과 단일로 혈전을 벌이셨다가 패배하여…….”

보고를 듣던 중년인은 분노를 추스르기 위해서였는지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번 일의 패착은 결국 그놈 때문이었구나. 화월각주와 수월림주가 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쓸모도 없는 것들…….”

중년인은 습격에 실패한 탓을 지금은 정천맹에 구속되어있을 화월각주와 수월림주에게 돌렸다.

“일단 성주님을 거처로 모시거라. 이번 일은 성주님과 내가 독단으로 벌인 일이긴 하지만 유진휘라는 그놈이 변수가 되어 실패한 것이니만큼 위에서도 별다른 문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총관님.”

총관이라 불린 중년인이 일월성주를 대신하는 이곳의 책임자인 건가.

나는 일월성주의 거처를 눈에 담아둔 뒤 이번에는 은밀히 멀어져가는 총관을 뒤쫓았다.

의식이 없는 일월성주 보다는 그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인극 고수인 만큼 나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 잠행술을 펼쳤다.

어느 정도 뒤쫓자 중년인이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그를 뒤따라 담을 넘어 건물의 벽을 타고 올랐다. 이어 천장 쪽을 통해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중년인 말고도 또 다른 인물이 몇 존재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중년인 만큼의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천장에 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일월성의 주된 계획은 진천문을 향한 습격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련주님께서 곧 눈을 뜨실 것이네.”

놈들의 입으로 혹시나 했던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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