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108화 (108/150)

#108. 3장 회생(2)

“련주님께서 곧 눈을 뜨실 것이네.”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명확해졌다.

요동의 천산에서 검신을 상대하다 죽은 월영련주는 실제론 죽은 게 아니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본좌의 죽음이 진정한 죽음이라 여긴다면… 잠시나마 그렇게 안도하며 지내고 있거라.]

놈이 지껄인 말은 문자 그대로 삶의 유지를 뜻하는 거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일각 정도면 깨어나실 거라고 하니 슬슬 지하로 내려갑시다. 련주님의 회생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지요.”

천장 위에서 총관이라는 중년인을 비롯한 일월성 간부들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좀 더 기감을 끌어올렸다.

‘지하’의 존재를 인지한 채 살펴본 결과 확실히 이 성채 밑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이질적이고도 음산한 기운이 먼저였고 그 기운은 다시 등줄기가 섬찟할 정도의 기세를 내뿜는 인물을 에워싼 형태였다.

‘월영련주.’

이 느낌은 분명 놈의 기세다.

일전에 한 번 마주쳤던 그때처럼 절대자의 면모를 내뿜는 기세가 익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익숙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낯설기 그지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건가.

번뜩하고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이 옳다면, 놈은 내가 겪은 환생처럼 새로운 몸으로 새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요동의 천산에서 죽은 원래의 시체는 이미 재가되어 사라졌을 테니.

‘일각이라고 했으니 아직 깨어나진 않은 건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의 대화를 통해 월영련주를 되살리기 위해선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약도 있어서 무한정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고.

그럼 깨어나기 전에 숨통을 끊을 수만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놈은 제대로 된 죽음을 맛보게 되겠지.

“갑시다.”

“그러지. 이번이 네 번째 삶이라고 했던가? 드디어 련주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에 부합하는 신체를 얻었으니, 깨어나면 크게 기뻐하시겠군.”

마치 평생을 바쳐 추앙 하던 신을 맞이하는 신자들처럼 기뻐하는 인원들을 나는 조심스럽게 뒤쫓았다.

놈들이 말하는 지하의 입구는 성채 내부에서도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가는 데만 해도 여러 진법과 기관 장치들의 보호를 지나쳐야만 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놈들을 쫓아갔다.

그리고 꽤 오래 이동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마침내 평범한 돌바닥인 줄 알았던 곳이 이내 맹수의 아가리처럼 벌어졌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 입구가 열리자 좀 전에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들이 물살처럼 밀려들었다.

“드디어 염원하던 순간이…….”

안광을 번뜩이며 탄성을 내지른 중년인을 선두로 모두가 입구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한발 늦게 발걸음을 옮겼고 나 역시 지하의 입구가 닫히는 동시에 어둠 속으로 걸어 내려갈 수 있었다.

***

어둠을 따라 기다란 통로가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 박힌 야광주로 인해 시야가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기척이 걸리지 않을 거리에서 놈들을 뒤쫓고 있었다. 계속 나아갈수록 이질적인 기운 역시 좀 더 명확해졌다.

‘…한기? 게다가 마기까지.’

지하의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한기 속에 마기가 뒤섞여 사방을 뒤덮고 있는 상태. 그 기운을 헤치며 쫓아가기를 한참, 마침내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공동 중앙 바닥에 그려진 진법이었다. 기괴한 문양으로 범벅된 원형의 진법 위에는 거대한 얼음덩이 하나가 놓여있었다.

빙산이라기엔 조금 모자란, 집채만 한 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공동 전체를 휘감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잠을 자듯 눈을 감은 채 자리한 사내 하나가 놓여있었다.

사내의 용모를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천마의 자식 중 한 명으로서 소교주 후보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알려진 오(五)공자 단룡위(段龍位).

마교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이후부턴 행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정마대전이 끝나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일찍이 내부에서 살해되었다고 판단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던 단룡위가 여태껏 살아있었다니.

마교라는 이름이 강호에서 지워질 때도 그는 어딘가에서 은신한 채 지내왔던 건가 싶었다.

그런 단룡위를, 정확히는 단룡위의 육체를 노린 일월성이 이곳 십만대산에 자리 잡은 게 그 은신처를 찾고자 하기 위함이었다면.

‘천마의 자식이니만큼 무재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아직 젊지.’

원래의 중년인이었던 몸을 버리고 단룡위의 육체로 새 삶을 얻으려는 게 월영련주의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이왕 버리기로 한 몸은 검신 영감의 목숨과 맞바꾸면서.

‘미친놈.’

얼음덩어리 안에 잠들어있는 단룡위의 육체를 바라보던 나는 그 외에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 됐든 놈의 계획을 알아차린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향해 손을 뻗어갔다.

총관이라던 중년인과 그와 비슷한 경지의 고수가 여럿.

다시 얼음덩어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인들은 스물을 넘어갔고 그 외에도 공동 전체를 아울러 경계를 서는 무인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가 거의 백 명에 가까웠다.

놈들의 전력을 파악한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당장 단룡위와 함께 얼음덩어리를 베어 버린다면 곧바로 공동 안에 있는 모든 적에게 내 존재가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서 몸을 빼낸다고 해도 그다음은 지상에 있는 적들까지 뿌리쳐 내야 한다.

잠시 속으로 그 가능성을 점쳐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주르륵!

연신 한기를 뿜어내던 얼음덩어리가 순간적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부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열기를 버티지 못하는 거처럼 곳곳에 물기가 맺히면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인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얼음덩어리에서는 더 이상 한기가 아니라, 절대자의 위용을 한껏 품고 있는 기세가 새어 나왔다.

그게 신호가 되어 무인 중 하나가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려, 련주님을 뵙습니다!“

그 무인을 뒤따라 나머지도 황급히 부복하고 나섰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백에 달하는 무인들의 고함이 하나가 되어 공동 전체를 울렸다. 그들의 경외심과 존경심이 전해졌는지 얼음덩어리는 더욱 빠르게 녹아내려 갔다.

그리고 나는, 숨죽이고 있던 자리에서 황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제사초식 진광결인.

쉬이이이잉!

검 위로 피어오른 무형의 강기에 더욱 내력을 담아 그대로 쏘아냈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 적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내 기세를 감지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눈에는 내가 쏘아낸 강기가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게 진광결인의 초식을 사용한 이유였다.

“침입자다!”

“련주님을 보호해라!”

“놈이 가까이 다가서게 하지 마라!”

적들은 역시나 오로지 나를 향해 이목을 집중시켰고 빠르게 살기를 피워 올리며 쇄도해 들어왔다.

그 때문에 무형의 강기가 얼음덩어리를 가르고 지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쩌저저적!

쏘아진 강기의 궤적대로 잘려나간 얼음덩어리는 순식간에 반으로 쪼개져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나를 향해 짓쳐들어오는 적들이 움찔 멈춰 섰다.

“려, 련주님-!”

“안돼!”

그들은 절망감에 휩싸여 울부짖었고 나는 찰나의 시선으로 얼음덩어리가 무너져 내린 걸 확인한 뒤 빠르게 괘월선보를 밟았다.

일단은 이곳 지하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몸을 쏘는 순간.

쐐에엑!

내가 물러서려고 하는 길목을 가로막은 누군가가 검을 찔러왔다.

텅-!

공격을 쳐낸 내 검을 타고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네놈이 어떻게 이곳까지…….”

날 공격했던 건 일월성의 총관이라던 중년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악귀의 그것처럼 분노에 휩싸여 잔뜩 일그러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를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도망치던 놈들을 뒤쫓다 보니. 그런데 좀 놀랐어. 이딴 빌어먹을 짓을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에.”

“닥치거라!”

“그러지. 나도 더 할 말은 없으니까. 바쁘기도 하고.”

조소와 함께 나는 검을 그었다.

카앙!

이어 내 검을 튕겨낸 중년인이 주르륵 밀려나는 게 보였고 나는 그 틈을 타 다시금 몸을 날렸다.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가 지상으로 올라서는 게 우선이었다.

지하에 계속 머물다간 이곳의 혼란을 깨달은 지상의 무인들이 물밀듯이 밀려 내려올 터였다. 그들까지 감당하면서 몸을 빼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파바바박!

연신 지면을 박차며 내달리자 순식간에 출구가 보였다. 지나쳐왔던 통로를 되짚어가며 단숨에 지상으로 향하는 문 앞까지 도달했고 굳게 닫혀있는 문을 향해 왼손으로 장력을 쏘아냈다.

쾅, 소리와 함께 터져나간 문 너머로 나는 단숨에 솟구쳤다.

지상에 발을 디디고 나니 순간적으로 고민이 됐다. 월영련주는 처리했으나 아직 일월성주의 숨이 붙어있었다.

아까 봐두었던 일월성주의 거처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놈까지 처리하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침입자를 쫓아라-!”

“상대는 단 한 명이다!”

탈출했던 지하에서는 물론이고 지상 곳곳에서도 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총관은 물론 그에 못지않은 인극 고수들까지 수하들을 지휘하며 나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일월성주는 포기하는 걸로.

대신 내 앞을 가로막은 놈들 정도는 숫자를 줄여놓고 가도 될 것 같았다.

쐐에엑!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화살처럼 퉁겨냈다. 일직선으로 허공을 가로지른 검은 내 정면의 적들 여럿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런 다음 곧장 내공을 끌어올려 검령백분의 초식을 발휘했다.

이기어검의 경지를 내포한 그 초식은 순식간에 내 주변을 에워싸던 적들의 병장기를 가로챘다.

“어엇!”

“이, 이기어검이다!”

“검을 빼앗기지 마라!”

적들은 자신의 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놈들의 실력으로는 내 통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쉬쉬쉬쉭!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내공은 단숨에 수십 자루의 검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앞서 화살처럼 쏘아낸 검도 어느새 내 머리 위로 되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되자 적들은 일순 주춤하며 얼어붙었다. 내 기세에, 이기어검이란 경지에 압도되어 덤벼들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놈들을 지휘하던 총관이 일갈을 토해냈다.

“물러서지 마라! 침착하게 검을 부수며 대응하면 된다! 놈은 고작 한 명이다! 지칠 때까지 숫자로 몰아붙여!”

“예-!”

그의 지휘에 힘입은 적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포위망을 좁히며 하나둘씩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촤아악!

“컥!”

푸욱!

“끄윽!”

하지만 놈들은 허공을 수놓는 검들의 궤적에 걸려 목이 잘리고 몸이 갈라지며 팔다리가 찢겨나갔다.

이기어검으로 제어하고 있는 검은 이미 내가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것과 같은 신위를 보였다.

검 하나하나에 내 무위가 그대로 실려있는 상태니까.

놈들로서는 그런 검이 쏘아내는 검기와 검강을 당해낼 수 없었다.

“크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주변은 한 폭의 지옥도로 변모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핏물은 강이 되어 흘러내렸다.

나는 수십 자루의 검과 함께 그 산과 강을 건너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지나갔다.

반대로 놈들은 어떻게든 나를 놓치지 않으려 희생을 무릅쓰고 몸을 던졌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혈전이 지속되는 와중.

꽈-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물론이고 나를 상대하던 적들의 이목까지 집중시키는 굉음이었다.

지하에서부터 뚫고 나온 충격으로 인해 흙먼지와 돌무더기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룡위가, 아니 월영련주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