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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12화 (112/150)

#112. 4장 잠룡(3)

가문으로 향하기에 앞서 나는 며칠 더 백의문에 머무르기로 했다.

정식으로 백룡각의 제자가 된 은소화와 청풍, 청운 형제. 그들에게 무공 몇 가지를 전수하기 위함이었다.

비선당에선 경공과 잠행술을 위주로 각자 무기에 맞는 일류 수준의 무공을 수련했다고 들었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은 경지가 딱 일류에 머물러 있었다. 경공과 잠행술이 그나마 일류보다 조금 더 뛰어난 정도.

비선당에선 그걸로도 충분했겠지만 백의문의 제자가 된 이상 최소 절정은 되어야지.

해서 이튿날 새벽녘부터 세 사람을 연무장으로 불렀다.

이자청을 비롯한 백의검대원들을 처음 단련시킬 때와 달리 세 사람은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다들 의욕이 충만한 눈빛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세 사람을 향해 짧게 명령했다.

“덤벼.”

“…네?”

“문주님?”

명령과 함께 검을 뽑자 은소화와 풍운 형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기에 나는 재차 말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겸 최선을 다해서 덤벼라.”

“진검으로… 요?”

“당연하지. 실전 비무다.”

단호한 명령에 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비선당의 무인들이었던 만큼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천하제일의 후기지수인 잠룡이라 불리고 있지만 그건 내 나이가 갓 약관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실력만큼은 이미 후기지수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걸 인지하고 있겠지.

그래서인지 내가 적당히 기세를 끌어올리자 그들은 잔뜩 긴장했다.

“긴장하지 마. 나는 딱 한 종류의 검법과 보법이 내포된 경신공만 사용할 거야.”

“무공에 제한을 두신다는 거죠?”

“제한을 두는 것도 맞고. 지금부터 내가 사용할 검법과 경신공은 너희들의 무공이 될 거다. 나아가 백룡각 제자들의 무공이 되겠지.”

“백룡각 제자들을 위한 무공…….”

“그러니 직접 겪어봐. 장담컨대 절정 수준 이상이니까.”

무인이라면 항상 새로운, 그리고 더 높은 경지의 무공을 갈망한다.

아무리 정보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지극 고수인 내가 절정 수준 이상이라고 장담했기에 세 사람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결의를 굳게 다졌다.

이어 은소화와 풍운 형제는 서로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청해 지부에서 함께 생활했던 만큼 눈짓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같았다.

그들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한 비무이니만큼 나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쉬쉬쉭!

은소화가 내 정면에 자리를 잡았고 청풍과 청운이 각자 내 좌우를 점했다.

채채챙!

이어 각자 단검과 검을 꺼내 쥔 그들은 망설임 없이 쇄도해 들어왔다.

단검은 일직선으로 내 미간을. 좌우에선 검날이 각기 내 상단과 하단을 노렸다.

정석적이고도 완벽한 합격술이었다.

하지만 완벽의 범위가 일류 한정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슬쩍 한 걸음 물러나면서 손에 쥔 검을 호쾌하게 뻗었다.

캉! 카강!

그 단순한 동작에 세 사람의 검이 전부 튕겨 나갔다.

공격이 막히긴 했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다는 듯 두 자루의 검과 한 쌍의 단검은 계속해서 내 전신을 두들겼다.

따다다다당!

이번에도 단순히 검을 뻗자 궤적에 걸린 공격이 모조리 막혔다.

그 과정이 반복되길 수십 차례. 어느새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세 사람은 경악에 물든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알아차렸나?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니 어느 정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저 단순히 검을 뻗는 걸로는 세 명의 합공을 막아낼 수 없었다.

“어, 엄청난 쾌검…….”

청풍이 그 해답을 찾아냈다.

그의 말대로 현재 내 검은 그저 단순하게 검을 내뻗는 걸로 보일 정도의 쾌를 추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쾌검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과 의식을 속일 만한 극쾌.

막고, 반격하고, 공격하며, 죽인다.

그 목적을 위해 모든 걸 배제한 채 오로지 쾌만 담았다.

쉬-잉! 탁.

순간 한차례 시원한 바람이 연무장을 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맞춰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은소화와 풍운 형제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이대로 비무가 끝나는 건가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허억!”

“억!”

“꺄악!”

세 사람은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샌가 세 사람의 무복 곳곳에 수십 개의 검상이 새겨져 있는 상태였다.

“옷 겉에만 벤 거야.”

내가 말하자 세 사람은 흠칫하는 눈빛으로 제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무복이 갈기갈기 찢겨 넝마가 되었지만 상처나 핏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어.”

“바람이라고 느꼈던 게 설마…….”

풍운 형제는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무공입니까? 이 정도 수준의 쾌검은 난생처음입니다.”

당연히 난생처음이겠지.

“이름은 아직 안 정했는데.”

어젯밤에 내가 직접 창안해낸 무공이었으니까.

***

백룡풍린검(白龍風躪劍).

백룡각 제자들만이 익히게 될 검법이자 내가 하룻밤을 지새워 창안한 검법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정보 세력으로서 활동하게 될 백룡각의 특징을 고려해 처음엔 쾌를 바탕에 두고 이것저것 섞어보다가 종국엔 모든 걸 배제한 체 오직 쾌만을 남겼다.

대신 그 한 가지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 백룡풍린검은 하나의 바람이 되어 적들을 유린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걸 받쳐주는 게 백룡풍린보(白龍風躪步).

두 가지 무공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전날에 내가 은소화와 풍운 형제를 상대로 보여준 무위를 실현할 수 있었다.

“하아아압!”

“으아아압!”

그리고 세 사람은 직접 체감한 그 무위에 도달하기 위해 당장 오늘부터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총 일곱 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진 백룡풍린검의 구결과 백룡풍린보의 행로를 모두 전수해 주었고 한 달 안에 오성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과제도 내주었으니.

‘오늘까지만 지켜보다 갈까.’

수련 첫날인 만큼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지도해 줄 생각으로 그늘 밑에 앉아 세 사람을 지켜보는 와중이었다.

내 곁으로 일장로 홍야가 느긋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직접 무공을 창안하기까지 하는 경지에 도달했는가.”

그는 내 시선을 따라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은소화와 풍운 형제를 바라봤다. 나직이 감탄까지 하는 걸 보니 난생처음으로 창안해 봤던 무공의 수준이 썩 나쁘진 않았던 듯싶었다.

“영감도 익혀보게?”

“봐줄 만한 검법이긴 하지만, 필요 없네. 새로운 무공을 익힐 여유도 없고.”

그 말에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홍야는 내게 진정한 충성을 다짐하고 나서부터는 자신의 실력보다 백의검대원들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늙어가는 자신보다 젊은 세대의 백의검대원들이 강해지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라나.

덕분에 이자청을 비롯한 녀석들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중이었다.

그때 홍야가 뜬금없이 호승심을 내비쳤다.

“백룡각이라지?”

“맞아.”

“백의검대의 실력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걸리겠구나.”

“백룡각은 무력 부대가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집단이야.”

“어쨌든 백룡각의 제자들 역시 강호인이 아닌가?”

“…재밌네.”

내게 충성하기 전까지 홍야는 나를 쓰러트리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다만 불가능을 깨닫고 체념했을 뿐.

한데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걸 백의검대원들을 통해 이루려고 하다니. 그것도 며칠 전에 백룡각의 제자가 된 은소화와 풍운 형제를 견제하면서.

“조만간이야. 백룡각은 머지않아 백의검대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게 될 테니까.”

“내기라도 할 텐가?”

“하하.”

성장을 위해서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기에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 또한 백의문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게 분명했다.

***

다시 다음 날에 나는 백의문을 떠나 곧장 유씨세가로 향했다. 입맹을 결심한 후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문에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다름 아닌 왕삼이었다.

“도련님-!”

녀석은 예전과 변함없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슬쩍 몸을 비틀자 안기는 자세로 허공을 갈랐던 왕삼이 내 뒤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랜만에 뵙는 도련님은… 정말 많이 변하셨군요.”

녀석은 짐짓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겨봤고 그런 녀석에게 피식 웃어주었다.

“네 생각이 많이 나더구나.”

그 한마디에 왕삼은 금세 표정이 밝아져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진천문과 함께 월영련의 습격을 격퇴하셨다면서요. 그 중심에 도련님이 계셨고요.”

“보다시피.”

“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듯 왕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길 잠시. 녀석은 이내 눈을 빛냈다.

“그래도 그런 엄청난 활약 덕분에 이곳 산서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도련님이 무려 오룡일화의 한 자리에 이름을 올리시다니. 잠룡… 이었죠?”

왕삼은 마치 자기 일인 양 기뻐하며 나를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순식간에 다른 이에게로 번져갔다.

“진휘야.”

“아들.”

왕삼의 뒤를 이어 나를 반기는 두 사람에게로.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

돌아와서 보니 유씨세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룡대의 기세와 전력이 크게 성장했다는 거였다. 실력도 실력이고, 무인들의 숫자가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백의문처럼 유씨세가도 종승재가 이끄는 성화상회와 여러 사업을 진행하며 재력이 보충된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금룡대를 넘어 내가 환생했을 적엔 해체되고 사라졌던 은룡대까지 재편성된 상황이었다.

그들까지 합치면 유씨세가를 따르는 무인들의 숫자는 이백에 가까웠다.

질과 양.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는 유씨세가의 전력은 어느새 산서 무림 위로 우뚝 솟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소가주인 내가 잠룡이란 별호와 함께 천하제일의 후기지수라 평가받고 있었으니.

“고생 많았다, 진휘야. 네가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가주전에서 마주하게 된 아버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가문의 골칫덩어리였던 제 아들이 마음을 다잡고 이토록 성장했다는 것에 크게 감격한 모양새였다.

‘평범하게 살 겁니다. 떳떳하게. 무가의 자식으로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유진휘의 몸으로 환생했던 당시 나는 부모님께 달라지겠다고 약조했었다. 강호를 등지고 피폐함 속에 몸을 내던진 유진휘의 삶을 빛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그 약조와 다짐이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살겠다는 건 제외하고.

지금의 나는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존재이니까.

물론 그 또한 유진휘의 삶과 그에게, 그리고 지금의 내게도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월영련이라는 세력에게 맞서 싸웠다고.”

“예, 아버지.”

처음에는 나뿐만이 파악하고 있었던 암중 세력이 이제는 정파 무림의 모두가 경계하는 세력이 되었다.

더군다나 진천문을 향한 일월성의 습격으로 정천맹과 정파 무림은 정마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다시금 전란에 휩싸이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내가 그 정도로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정천맹의 무인이자 일월성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워 잠룡이란 별호를 얻은 인물이었다.

처음 내가 돌아왔을 땐 기쁨과 뿌듯함이 앞섰다면 이제는 그 사이에 근심이란 감정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힘든 점은 없느냐? 무리하고 있진 않고?”

아버지는 그런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늘 그래왔던 대로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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