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114화 (114/150)

#114. 5장 복귀(2)

정천맹으로 복귀하고 나니 확실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마대전 이후 평화를 되찾았다는 게 한낱 꿈은 아니었을까 여겨질 정도였다.

정문을 지키는 자호단원부터 이미 바짝 날이 서 있었다.

“복룡추호대 일조 대원 유진휘입니다.”

내 정체와 복귀를 알리자 그들은 평소와 달리 유심히 나를 위아래로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입하시오.”

원래라면 반갑게 한마디 인사라도 던져올 만한데, 그들은 지나쳐가는 나를 향해 시선도 건네지 않고 있었다.

맹 내부로 들어가자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게다가 내부 곳곳에 처음 보는 무인들이 대거 돌아다니고 있었다.

월영련과의 전쟁을 대비해 천하 각지의 문파와 무가들이 고수들을 파견했다고 하더니.

그 광경은 분명 전생의 내가 본 그대로였다.

정마대전 당시에도 이 정도 규모의 무인들이 맹 내부에 상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인파를 헤치며 먼저 복룡각이 있는 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무인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가 이번에 오룡일화의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맞아. 잠룡.”

“유씨세가의 소가주라지?”

“그게 어디에 있는 가문인데?”

의식하지 않아도 극도로 발달한 내 오감 덕분에 그 내용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왔다.

긴장되고 예민한 분위기 때문인지 긍정적인 시선보단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았다.

나는 덤덤히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는 인물인가 싶어 고개를 꺾어 용모를 살폈지만, 난생처음 보는 사내였다.

“…용건이라도?”

나직이 물어보자 사내는 한차례 헛기침과 함께 제 소개를 시작했다.

“소인은 하남 제일 검문인 운종문(雲從門)의 제자이자 맹주님께 소룡단의 단주 직을 위임받은 남지학(南志學)이라고 합니다.”

“아. 운종문…….”

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나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과거에도 운종문은 검법이 뛰어난 걸로 유명했으니까.

한데 운종문이 하남 제일의 검문이었던가?

거기까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는 그러려니 시선을 주고받았다.

“운종문의 남 소협이시군요. 유씨세가의 유진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건은?”

내가 재차 묻자 남지학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뭔가 기대하던 반응과 다른 답을 내놓아서인가.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가 남지학이 계속 말했다.

“유 소협께서는 최근에 오룡일화의 자리에 오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분한 평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

말본새가 왠지 시비라도 걸어올 투인데.

“제가 조금 알아보니 유 소협께서는 정마대전 당시에 소룡단에서 활약한 적이 있더군요.”

“네.”

“그때의 소룡단은 선우약가를 지키고자 전멸이라는 숭고한 희생을 맞이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던 남지학이 표정을 굳히며 한 발짝 다가섰다.

“유 소협께서는 모두가 전멸하는 와중에도 홀로 살아남으셨습니다. 소문 따위야 믿을 게 못 된다고는 해도… 유 소협께선 정녕 당시의 동료들을 뒤로하고 도망을 치셨던 겁니까?”

소문.

확실히 내가 환생하기 전의 유진휘에 대해서 그런 소문들이 은근히 퍼지긴 했었다.

아무래도 유일한 생존자이기에 관심은 물론 여러 가지 근거도 없는 추측이 나돌았다.

다만 남지학의 말대로 비약된 소문일 뿐이다. 과거에 유진휘는 동료들과 함께 선우약가를 지키고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전생의 천영검대와 내가 조금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더 많은 이들이 살 수 있었을 테고.

“헛된 소문일 뿐입니다.”

“아니란 말입니까? 정말 아니라면, 제게 증명해 주십시오.”

증명?

뭔 증명까지 해줘야 하나 혀를 차고 있는데 남지학은 손에 쥔 검집으로 저 한쪽의 연무장을 가리켰다.

***

느닷없는 비무 요청이었지만 나는 순순히 남지학을 따라 연무장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남지산((南志厁). 제 사형이자, 정마대전 당시 소룡단에서 활약하셨던 분의 이름입니다.’

운종문 제일의 기재라고도 불렸다던 남지산은 과거 그날에 소룡단원들과 함께 희생되었다.

남지학으로서는 스승 다음으로 믿고 따랐던 남지산의 죽음과 그와 달리 살아 있는 내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분노여서 나는 덤덤히 검을 뽑았다.

이 비무가 유진휘로서는 증명이며 전 천영검대주인 천우혁으로서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챙!

남지학은 나를 따라 마주 검을 뽑으며 진중히 경고했다.

“그럴 생각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자세를 잡자 순간 연무장 위로 돌풍이 피어올랐다. 서로의 기세가 맞붙은 여파였다.

그 한차례 소란에 원래 많았던 구경꾼들이 더욱더 연무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잠룡이라는 별호를 얻은 나는 물론 새롭게 재편성된 소룡단의 단주 직을 맡게 된 남지학을 향한 관심이 무척 크다는 방증이었다.

누가 이길 거라느니, 과연 어떤 무공을 펼쳐 보일지 기대된다느니 하는 웅성거림이 점차 잦아들 때쯤.

“합!”

남지학이 지면을 박차고 정면에서 쇄도해 들어왔다.

몸을 비틀자 번쩍, 하는 섬광이 내가 있던 자리를 가르고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니, 애꿎은 바닥을 때릴 줄 알았던 남지학의 검이 순간 급격히 각을 비틀어 내 가슴을 노렸다.

검을 내리친 반동 따위는 개의치 않는 자연스러운 변초였다.

촤악!

나는 허리를 뒤로 구부려 올려 치는 검을 피했고 그러자 이번에도 남지학의 검이 허공에서 방향을 선회했다.

집요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그 움직임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계속해서 짓쳐들어왔다.

쩡!

피하기보다는 검으로 수비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란 생각에 남지학이 그리는 검의 궤적을 중간에서 끊어놓았다.

한데 검과 검이 서로 부딪치자마자 그의 검은 내 검날을 그대로 타고 올라와 손목을 베어냈다.

쉭-

앞서 피하지 않았다면 검을 놓쳤을 테고 그게 곧장 승부처가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남 제일 검문이라 자부할 만하네.’

남지학의 검초는 피하기도 막아내기도 힘든 선즉제인(先則制人)의 묘리를 바탕으로 쾌와 변이 뒤섞인, 감탄이 나올 정도의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내가 왕삼에게 전수해 주었던 연활팔식과는 정반대의 성질인 검법.

카가가강!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중한 검법답게 남지학은 쉬지 않고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역시 운종문의 검법은 대단하다니까.”

“한번 뽑히면 상대를 벨 때까진 초식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비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음?

무심코 관중들을 살폈던 내 시야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 역시도 이번에 맹에 파견…….

“제 검이 한눈을 팔 정도로 부족한가 봅니다.”

카강!

내가 잠시나마 다른 생각을 했던 게 남지학의 기세를 더욱 불태운 것 같았다. 그의 공격이 전보다 매섭고 날카로워졌다.

나는 다시 이십여 초 정도 그의 공격을 받아내다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대로 계속 밀리면 저로서도 낭패를 면치 못할 것 같으니, 이만 끝내야겠습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유씨세가의 가전무공인 운류검법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전생의 무공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운류검법도 계속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내가 환생한 이후 처음 운류검법을 익혔을 때와 비교하면 그 수준이 꽤 차이가 날 정도로.

그중에서 나는 운우분분(雲雨紛紛)의 초식을 펼쳐 보였다.

우웅!

순간 내 검이 한차례 떨림과 함께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허공을 수놓는 호선을 따라 피어오른 새하얀 기운은 어느새 내 주변을 모조리 에워쌌다.

지켜보는 처지에선 마치 하늘 위의 구름이 내 주변으로 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새일 것이다.

그 새하얀 운무는 이내 남지학의 검을 부드럽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엇!”

순간 남지학의 입에서 침음이 새어 나왔다.

적을 벨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름을 유지하는 게 그가 사용하는 검법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남지학이 펼쳐내는 검의 흐름은 운우분분의 초식이 그려내는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더 큰 흐름 속에 빠져들자 남지학의 검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그의 공격은 더 이상 내 근처로조차 스쳐 지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운우분분은 수비적인 초식임과 동시에, 흐름에 빠져 길을 잃은 상대를 향해 단숨에 반격하는 후수가 담겨 있었다.

쉬잉!

내 주변을 에워쌌던 검의 궤적이 유유하게 남지학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이어.

촤자자작!

“컥!”

궤적을 따라 남지학의 몸 곳곳에 검상이 새겨지면서 결국 그는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나, 남 소협의 패배다!”

“저게 잠룡이 사용하는 유씨세가의 검법이란 말인가?”

결과에 환호하는 관중들의 탄성과 함께 나는 덤덤히 검을 집어넣었다.

***

“형님!”

비무가 끝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룡 장진악. 태산파로 향하는 길에 마주했던 인연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천하오주의 하나인 하남장가의 후계자로서 전쟁에 대비하고자 입맹한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게 시비를 걸었다가 된통 두들겨 맞아 나를 형님으로 모시게 됐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기세가 전혀 달라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장진악을 뒤따라.

“유 공자!”

선우유란도 반가워하는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중 속에서 발견했던 익숙한 얼굴의 정체가 바로 두 사람이었다.

“오랜만이다.”

나는 씩 미소를 지으며 장진악을 응시했고 녀석도 나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형님께서 복룡추호대에 입대하셨다는 소식은 일찍이 전해 들었습니다. 하남에 있으면서도 미리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너도 바빴을 거 아니야?”

일전에 태산파에서 금룡보 놈들을 상대하던 당시에 나는 장진악을 미리 하남장가로 돌려보냈었다.

월영련 놈들이 하남장가에도 암중의 손길을 뻗칠 걸 염려해서였다.

다행히 정천맹의 본단이 있는 하남에서는 놈들도 멋대로 손을 쓰지 못한 것 같았다.

대신 장진악은 훗날을 대비해 지금껏 수련에 힘썼다고 했다. 녀석의 아버지인 천하십대고수 권왕의 지도하에.

“수련은 무사히 끝났나 보다?”

걸걸한 성격으로 유명한 권왕은 수련 방식도 단순 무식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실전 위주로 몸을 죽기 직전까지 혹사하는, 단순 무식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수련법.

내 수련 방식과도 결이 비슷해 전생에 권왕과 나는 나름 서로를 존중하던 사이였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형님과 비무를 벌였다 패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선 하루하루가 벼랑 끝에 몰려있는 기분이었어요.”

“하하.”

울상을 짓는 장진악 옆에선 선우유란이 다소곳이 말을 건네왔다.

“진천문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 공자.”

“아닙니다. 고생은 딱히. 그보다 선우 소저가 맹을 방문한 건 역시…….”

예상되는 바가 있어 물었는데 역시나.

“네.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도 함께 오셨습니다. 전대 맹주님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서요.”

섬서에서 선우약가가 무림 공적으로 몰렸던 사건은 말끔히 일단락됐나 보다 싶었다. 덕분에 선우약가주인 천의가 직접 맹으로 나설 수 있었을 터.

천의와 선우유란. 두 사람이라면 분명 검신 영감의 병세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진심 어린 어조로 고개를 숙이자 선유유란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신 영감과 나 사이에 연결점이라도 있는 건가 싶은 눈초리였다.

그녀의 의문에는 침묵으로 화답한 뒤 나는 다시 장진악을 쳐다봤다.

선우유란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장진악이 비무에서 패배했던 남지학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안면이 있는 듯 보였고 더군다나 장진악의 입에서 단주라는 말이 튀어나온 걸 보아.

“너도 소룡단에 소속된 거냐?”

내 질문에 장진악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따라 내 앞으로 다가오는 남지학은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