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6장 북해(1)
소룡단은 공식적으로 ‘북해빙궁의 조사’ 및 ‘마교 잔당 색출’의 임무에 착수하기 위해 맹을 떠났다.
나를 포함한 이십 명의 소룡단원들은 짐마차 한 대를 중심으로 이십 필의 말 위에 올라타 대지를 가로질렀다.
“북쪽으로 수천 리를 가야 하니까… 족히 한 달은 걸릴 거다.”
임무를 위한 여정에 걸리는 시간을 궁금해하던 인원들은 내 대답을 듣더니 흠칫 놀랐다.
북해빙궁까지 가는 데만 한 달. 즉, 왕복 두 달. 거기다 임무 수행에 필요한 시간까지 합하면 두 달 이상은 중원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오래 걸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얼마나 추우려나? 북해빙궁은 사방 천지가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다던데.”
“북해 사람들은 뭘 먹지? 사방이 얼음인데 짐승이 살까?”
말을 타고 달리면서 단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근심을 뱉어냈다. 빙궁이라는 세외 세력이 주는 생소함 때문이었다. 뭐든지 처음은 항상 긴장되는 법이니까.
맹을 떠나기 전에 서면으로나마 빙궁에 관한 여러 정보를 습득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불확실한 정보들뿐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현 북해빙궁주의 나이가 꽤 어리다는 것. 후계자가 궁주의 지위를 세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북해빙궁주는 정천맹주와 같은 배분이니만큼 궁주를 마주하게 될 시 예의를 잊지 말라는 충고를 소룡단원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그때, 나와 함께 일행들의 선두에 자리 잡은 남지학이 입을 열었다.
“한데 빙궁이 우리에게 우호적일까?”
“모르지.”
“총군사님께서 우리를 북해로 보내기에 앞서 북해빙궁 측에 여러 번 서찰을 보내봤으나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서찰?”
서찰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편과 전서구가 대표적이었다.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인편은 무리였을 테고.
“전서구를 이용할 수 있는 연락망이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전서구를 통해 서찰을 보내는 방식은 전서구의 귀소본능을 이용하는 거였다. 그만큼 연락을 주고받으려면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정천맹과 북해빙궁은 오래전에 한 번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때 이용했던 연락망을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었던 듯싶었다.
하지만 답변이 없다는 걸 보면.
“북해 쪽에선 그 연락망을 이미 끊었을 확률이 높지. 아니면 네 말대로 무시하는 거거나. 혹은 답변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을 테고.”
“뭐가 됐든 우리에게 좋은 상황은 한 가지도 없군.”
“북해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그들이 마교의 잔당들 혹은 월영련 놈들과 합심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 벌써부터 걱정하진 말자고.”
물론 우호적이지도 않으며 조사까지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충돌은 불가피할 수도 있었다.
그때는…….
나는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바람을 맞이하며 말의 속도를 높였다.
***
북해로 향하는 기간 동안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해가 뜨면 말에 올라타 대지를 가로질렀고 두 시진 간격으로 끼니를 때웠다. 계속 이동하다가 하늘이 어스름해질 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야영하며 그날의 피로를 녹였다.
그 사이사이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단원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여서 나는 그들과 썩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천하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후기지수들인 만큼 대화의 주 내용은 무공과 강호인에 관한 게 전부였지만.
그러던 와중에, 어쩌다 보니 요 며칠 동안 나는 소룡단원들의 무공을 지도해 주게 되었다.
처음은 장진악이 새로 익힌 권법의 수련을 봐달라고 하기에 몇몇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해 줬는데 그걸 보고 다른 단원들도 하나둘씩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녀석들에게 한 가지 공통적인 단점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왜 육체의 단련을 등한시하지?”
내 질문에 녀석들은 하나같이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기본적인 신체 단련은 매일 했었습니다.”
기본적인 신체 단련이 뭔가 하고 물으니, 적당한 뜀박질과 훈련이 전부라고 했다. 그나마 장진악은 그의 아버지인 권왕의 지도하에 외공과 내공의 균형을 맞추려는 구색 정도는 갖추었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만 끔뻑이고 있는 단원들을 둘러봤다.
남지학과 장진악까지 포함해서 총 열아홉 명.
그들 전부 경지로 따지자면 절정에 도달한 무인들이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절정 고수가 되었으니 역시 최상위권의 후기지수들답다고 여길 수 있겠으나 내 눈에는 여전히 햇병아리들이었다.
소룡단의 부단주로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처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너희들 모두 강해지고 싶어서 내게 지도를 부탁한 입장이지?”
“예!”
내가 묻자 녀석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이제는 내가 지극 고수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눈빛에 열의가 가득했다.
해서 나는 한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여기서부터 말은 버린다.”
“…예?”
내 명령에 순간 녀석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가장 앞서 있던 남지학은 안색까지 딱딱하게 굳혔다.
“말을 버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들은 그대로야. 여기서부터는 달려서 간다. 강해지고 싶으면 당장 체력부터 길러야 해. 내공만 믿고 육체의 단련을 등한시하면 결국 너희들은 절정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이대로는 재능 탓이라고 여기며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겠지.”
“아니.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내외공의 균형. 정말로 이해했어. 그러니 앞으로는 수련할 때 육체의 단련도 신경을 쓰겠다.”
남지학은 내가 내린 결정을 취하해주길 바라는 표정으로 계속 항변했다.
하지만 지도해달라고 한 이상, 나는 결정을 번복할 이유가 없었다.
“이해했는지는 내가 지켜보면서 판단하지.”
“…소룡단의 단주는 나야. 내가 책임자라고.”
“어쩌라고? 불만 있으면 덤벼. 날 이기면 결정을 번복해주겠다. 뭣하면 한꺼번에 덤벼라.”
내가 천천히 기세를 피워 올리자 남지학은 움찔 놀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는 이미 한차례 비무를 통해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했었으니까.
그 사이에, 장진악은 말의 고삐와 안장을 벗긴 뒤 자연으로 풀어주었다. 이어 단원들을 둘러보더니 피식하는 웃음을 흘렸다.
“형님께 덤빌 거면 너희끼리 해라. 난 살아서 북해빙궁에 도착하고 싶으니까.”
***
“헉헉!”
북해로 향하는 여정 속에, 어느새부턴가 단원들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대신 거친 숨소리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홀로 짐마차 지붕에 앉아 그런 녀석들을 내려다봤다.
“속도 높여. 북해에는 예정된 시간에 도착해야 하니까. 수련한다고 임무에 차질이 생기면 쓰나. 말했듯이 내공은 쓰지 말고.”
내가 경고하자 곳곳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말 대신 짐마차를 끌게 된 남지학과 요녕성의 패자라고 알려진 모용세가의 후계자 모용비(慕容比)의 시선이 유독 따가웠다.
“왜 날 쳐다봐? 탓하려면 너희 운을 탓해야지.”
날마다 제비뽑기로 짐마차를 끌 인원을 선발했고 오늘은 남지학과 모용비가 끝이 붉은 막대를 뽑았다.
마차는 왜 가져가나 싶겠지만 식량과 옷가지 등의 짐을 실은 마차여서 북해까지는 짊어지고 가야 했다.
“하아.”
“후우.”
“헉헉!”
그렇게 다시 몇 날 며칠을 젊은 사내들의 혈기 가득한 숨소리와 함께 내달렸다.
날이 깊어 야영할 때는 단련된 육체를 기반으로 그들의 초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 외에 부족한 부분까지 보완하는 이론적인 공부를 병행했다.
실전 같은 비무를 통해 직접 몸에 때려 박아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임무 도중인 만큼 무리할 순 없었다.
북해로 향하는 수천 리의 거리 중 반절을 내공의 사용도 없이 강행군으로 이동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닐 테고.
이후 보름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쩌저적!
단원 중 한 명이 수련의 성과가 있는 건지 의아하다며 평소처럼 초식을 시연하다가 집채만 한 바위 하나를 반으로 쪼갰다.
원래라면 여러 차례 두드려 부술 정도의 크기였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때부터 날마다 나를 째려보던 시선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시 그다음 날.
마침내 우리는 사방이 새하얀 평원 앞에 당도했다.
“부, 북해다!”
“드디어!”
평원 너머로 북해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소룡단원들은 한기 가득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의를 벗어젖히며 호수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건물 전체가 새하얀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방안. 그곳에서 중년인은 탁자 위에 흩뿌려져 있는 여러 장의 서찰들을 쏘아봤다.
정천맹의 총군사라는 인물이 북해빙궁으로 보내온 서찰이었다. 서찰의 수신인은 당연히 북해빙궁주.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북해빙궁주는 부재중인 상황이었다. 해서 북해빙궁의 대장로인 자신이 서찰을 뜯어보았다.
내용엔 정마대전에서 패배한 마교의 잔당이 북해에 은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어 조사단을 파견하니 협력을 부탁한다는 요구가 적혀 있었다.
“조사단이라.”
대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서찰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뒷목을 주무르다가 수하 하나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궁주를 찾았나?”
“아직 수색 중입니다.”
수하의 대답에 대장로의 얼굴이 건물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중원의 정천맹에서 조사단을 파견했다.”
“…정천맹에서요?”
“마교의 잔당들을 뒤쫓고 있다는군.”
“그들이 뭔가 눈치를 챈 겁니까?”
수하가 흠칫 놀라자 대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눈치를 챘다면 이런 서찰 따위를 보내지 않았겠지. 스무 명 규모의 조사단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대규모의 무력 부대를 보냈을 테고.”
“그렇다면…….”
“혹시 모르니 그분께도 언질은 드려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도망친 궁주를 찾아내는 거다. 정천맹의 조사단은 적당히 상대하다가 돌려보내면 그만이니까.”
“조사단은 돌려보내는 겁니까?”
“아직은 숨죽일 때야. 궁주를 없애고 빙궁의 전권을 움켜쥐는 게 먼저다. 그러기 위해 그분과 월영련에게 협력한 게 아니더냐? 그때까지는 정천맹과의 마찰은 피해야 한다.”
대장로의 말에 수하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궁주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 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조사단 쪽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예.”
대답과 함께 수하가 사라지고 난 뒤 대장로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봉씨 일가의 몰락도 머지않았구나.’
대대로 북해빙궁주의 지위는 봉씨 일가의 인물들에게 세습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대장로는 그 관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해빙궁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현 궁주인 봉우(奉佑)는 전대 궁주와 달리 무공과 재능이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궁주의 독문무공인 영해빙광심결(映海氷光心訣)조차 삼성에 머물러 있지 않던가.
나이가 다소 어린 걸 감안한다 치더라도.
‘그딴 놈을 궁주로 모시라고?’
전대 궁주가 사거 직전에 궁주의 지위를 이미 물려주었기에 반대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전대 궁주에겐 봉우 말고 다른 자식이 없었다.
그런 봉우 덕분에 빙궁 내부에 알게 모르게 불만의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대장로인 자신이 그 중심이었다.
하지만 반란을 도모하기엔 힘이 부족했다. 봉우의 역량이 어떻든 간에 봉씨 일가를 향한 빙궁의 충성심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니까.
그러던 차에 ‘그분’이 나타났다. 곧이어 월영련이라는 세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차렸다. 그들은 부족한 힘을 메워줄 테니 자신들에게 협조하길 바랐다.
그리고 북해빙궁의 대장로로서 그들에게 협조한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남은 건 단 몇 걸음.
아쉽게 궁주인 봉우가 도망치는 걸 놓치고 말았지만 금방 찾아낼 게 분명했다. 북해빙궁의 전권 대부분이 자신의 발아래에 놓여 있었으니까.
‘북해빙궁은 이제 봉씨 일가가 아니라 내 가문을 따라야 할 것이다.’
대장로는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가 머지않아 궁주의 옥좌로 뒤바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