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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21화 (121/150)

#121. 7장 사사(2)

“컥!”

복부에 검집째로 휘두른 검을 얻어맞은 봉우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헛구역질하면서도 두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는 그에게 호위무사들이 다가섰다.

아니, 그러려다가 움찔 멈춰 선다.

봉우가 독기 서린 눈빛으로 저지한 것이다.

“아직 대련 중이다.”

“죄송합니다.”

대답과 함께 멀찍이 물러나는 호위무사들을 뒤로한 채 봉우는 그 맞은편에 서 있는 나를 응시했다.

“계속 가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봉우는 쌍장에 기운을 담은 채 빛살처럼 쇄도해 들어왔다.

오늘로써 열흘째.

봉우에게 한야심법(寒夜心法)을 전수한 이후 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는 운기조식을, 나머지 시간에는 쉴 새 없이 비무와 육체단련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열흘 만에, 봉우의 실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다른 북해의 무인들처럼 타고난 음기가 없다시피 해서 재능 부족이라고 여겨지고 있었지만, 그건 북해의 기준일 뿐이었다.

내가 직접 겪어본 바로 봉우의 무재는 매우 뛰어났다.

만약 봉우가 중원에서 태어났다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의 재능이라며 치켜세워질 정도로.

그런 그가 한야심법을 통해 하단전에 내공을 쌓는 법을 익혔다. 한야심법 역시 음기를 다루는 심법. 내가 알고 있는 심법 중엔 북해의 무공과 가장 어울리는 심법이었다.

더욱이, 그가 품속에 지니고 있던 설삼이 천고의 영약이란 걸 깨달았을 땐 나조차도 깜짝 놀랐었다.

중원의 무인에게는 천고의 영약인 그 설삼이 북해에서는 단순히 뛰어난 약효를 지닌 약재로 취급받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봉우는 설삼을 복용해 현재 일갑자에 가까운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앙!

순간 봉우의 오른손에서 장력이 터져 나왔다. 그 장력은 허공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북해빙궁주의 독문무공인 영해빙광심결.

북해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의 근원이자 뿌리라 할 수 있는 그 절기가 봉우의 손에서 펼쳐졌다.

쩡!

짓쳐들어오는 장력을 검으로 쳐내자, 무력하게 흩어지는 줄 알았던 기운이 내 검을 타고 전신을 침범해왔다.

그 차가운 기운은 단숨에 내 몸을 옥죄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움직임을 구속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몸이 둔해진 걸 확인한 봉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파파파팡!

검과 손이 충돌하면서 사방으로 굉음과 얼음 파편들이 터져 나왔다.

북해의 무공은 특유의 음기를 이용한 권각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봉우 역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육체의 모든 부위를 이용해 나와 부딪쳐갔다.

“구, 궁주님…….”

그런 우리의 비무를 지켜보는 봉우의 호위무사들이 감격하는 표정을 지었다. 듣자 하니 봉우를 어릴 적부터 지켜온 자들이라고 했다.

빙궁의 후계자인 주제에 재능과 역량이 부족해 주변의 눈총과 견제를 받던 세월을 함께 감내해온 그들이었다.

그랬던 봉우가 불과 열흘 만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다만, 내 눈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후웅!

내공을 끌어올려 내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던 한기를 모조리 날려 보낸 뒤, 내 가슴께로 찔러지는 봉우의 주먹을 올려 쳤다.

이어 그대로 몸을 한 바퀴 휘돌려 자세가 무너진 봉우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고생했다.”

내가 비무의 끝을 알리자 봉우는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나는 그런 봉우를 덤덤히 내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봉우가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했었기에 나는 편히 하대하며 그를 가르치는 상황이었다.

“다음은 다시 소룡단 녀석들과 차례대로 비무를 벌이도록.”

“…농담하시는 거죠?”

“열흘간 내가 농담이란 걸 했던 적이 있던가?”

“없죠.”

옅은 미소와 함께 봉우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스무 명이 넘는 숫자가 이리 감쪽같이 모습을 감출 수 있는가?’

궁주를 추격해 확실히 목숨을 끊고자 빙궁을 나선 삼장로 안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벌써 열흘째였다.

마지막 종적이었던 그 숲속을 시작으로 자신은 물론 영화대의 무인 수십 명이 북해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처음 하루는 어느 정도 흔적이 남아 있어서 추격하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흔적이 뚝 끊겼다.

그때 영화대의 무인 하나가 물었다.

“정천맹의 조사단이라는 놈들과 중원으로 피신한 게 아닐까요?”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으나 안현은 고개를 저었다.

“대대로 북해빙궁을 이끌어온 봉씨 가문의 사람이 북해를 벗어날 리가.”

“하지만 도무지 작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땅으로 꺼진다?”

순간 안현의 머리로 번뜩하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한번, 북해빙궁의 궁주만이 사용하는 은신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유사시에 몸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니만큼 위치 역시 은밀할 게 틀림없었다.

‘나를 포함한 장로들도 모르는 은신처라면, 이쪽에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을 것 같구나.’

일전에 영화대주가 궁주를 숲속으로 몰아넣었던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던가.

정천맹의 조사단 놈들이 아니었다면 영화대주는 분명 그때 궁주의 목을 취할 수 있었을 터였다.

‘아니. 이대로 놈이 궁주의 지위를 포기할 리가 없다. 미련이 없었다면 순순히 대장로에게 궁주 자리를 넘겼겠지.’

은신처에 숨어 훗날을 도모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

북해림.

놈이 염두에 두고 있을 건 북해림밖에 없었다. 은신처의 위치는 모르나, 북해림의 위치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궁주가 아니면 북해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향하는 길목 쪽에 대기하고 있으면 머지않아 궁주를 마주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섰다.

“추격은 중단한다.”

“다른 방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우리가 찾을 수 없으니, 놈이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

다시 열흘이 흘렀을 때, 봉우는 어느새 소룡단원들과 일대일로 겨뤄도 크게 밀리지 않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애초에 그는 이론적으로는 북해의 무공을 높은 수준까지 익혀둔 상태였다. 다만 타고난 음기가 모자라 몸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지금은 한야심법과 설삼을 복용해 얻은 일 갑자의 내공이 뒷받침해 주고 있기에 그의 실력이 만개하고 있었다.

또한, 하단전이 생성되자 날 때부터 개방되어 있던 중단전 역시 영향을 받았는지 마치 인극 고수처럼 오감과 육체가 크게 발전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봉우가 인극 고수라는 건 아니지만, 훗날 절정의 벽을 뛰어넘을 시기가 앞당겨진 건 사실이었다.

“혹시 저 말고 다른 북해의 무인들도 저처럼 중원의 심법을 익히면 이 정도로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봉우는 스스로의 성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구심을 품었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야심법이 북해의 무공과 상성이 좋기 때문이고, 영약으로 육십 년을 부지런히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일 갑자의 내공을 얻은 덕분이다. 그리고…….”

괜한 자만심이 생길까 봐 그동안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무공에 대한 네 재능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라서지.”

“예? 제가 재능이 있다고요?”

봉우가 그럴 리 없다는 듯 두 눈을 치떴다. 어릴 적부터 궁주가 될 자질이 없다는 소릴 듣고 자랐을 테니.

그때 장진악이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형님 말대롭니다. 궁주님께서는… 그냥 천재 같은데요.”

장진악도 중원에서는 권룡이라 불리며 천고의 기재라 떠받드는 후기지수였다. 하지만 봉우의 재능은 그런 장진악마저도 뛰어넘었다.

“그렇군요. 제게도 무공에 대한 재능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 봉우의 얼굴에 역시 처음으로 자부심이란 감정을 실어주었다.

“그 표정이야.”

“예?”

“이제야 좀 궁주다운 얼굴이라고.”

내가 피식 웃자, 봉우 역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다음 날에 봉우가 결단을 내렸다.

“이곳에서 유 공자께 좀 더 가르침을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은신처에 숨어든 지 이십여 일이 지난 지금 빙궁의 대장로는 봉우가 없는 틈을 타 빙궁의 전력을 대부분 장악했을 가능성이 컸다.

동시에 궁주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단추가 채워지길 기다리며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을 처단하기 시작할 터였다.

그중에서도 봉우가 가장 걱정하는 인물은 일장로와 오장로.

대장로를 필두로 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봉우를 궁 밖으로 탈출시킨 장본인들이었다.

“당장은 대장로가 두 분을 죽이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봉우는 대장로의 반란을 진압하게 되더라도 두 사람이 살아 있지 않다면 진압이 실패한 거나 다름없는 거라며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목적지는 북해림.

북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력으로서 암중에서 북해빙궁을 비호하며 살아가는 세력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대대로 북해빙궁주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오로지 궁주라는 지위를 향한 충성심일 뿐 궁주가 봉씨세가의 인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에 봉우는 이십 일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자신을 북해빙궁주로서 인정해 줄지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 공자님과 소룡단 여러분들 덕에 제게도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는 봉우와 함께 우리는 곧장 은신처를 벗어나 북해림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길에 봉우는 북해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와 소룡단이 봉우를 도와 반란을 진압하기로 한 지금, 같은 편이 될 세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거였다.

“사실 북해림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빙궁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북해림의 이름을 빼놓을 순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빙궁이 위기에 처했을 땐 그 뒤편에 항상 북해림이 버티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북해빙궁의 수호자… 역할인 건가?”

정천맹에서는 전생에 내가 이끌었던 천영검대가 그 비슷한 역할을 겸했었다.

정마대전을 치르며 천영검대의 존재가 강호에 노출되긴 했지만. 결국 현 천영검대는 더 이상 기밀 검대가 아닌 맹주의 친위대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빙궁처럼 그 규모가 크진 않지만, 북해림 사람들의 무위는 한 명, 한 명이 빙궁의 대주급 고수에 버금간다고 합니다.”

대주급이라면 일전에 나와 내력 대결을 펼쳤던 중년인이 그 정도의 실력자였다.

북해림 전원이 정말로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봉우에겐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터.

“확실히 대안이라 할 만하네.”

이후 봉우와 조금 더 북해림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남지학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은신처로 숨어들었던 첫날, 남지학은 소룡단주로서 총군사 묵가후에게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올렸었고 그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뭐라 하셨는데?”

내가 묻자 남지학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곤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나직이 중얼거렸다.

“…전적으로 네 판단에 맡기겠다는데.”

“그게 끝이야?”

“그래. 북해빙궁주를 도와 반란을 진압하고 그 이후에 빙궁의 협조와 함께 마교 잔당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든, 이대로 임무를 중단하고 복귀하든 네가 알아서 판단하라셨다. 대신 맹에서는 북해로 충원을 보낼 여유가 없는 부분을 고려해 달라고 하셨어.”

충원은 딱히 기대하지 않았기에 상관없었지만, 나보고 알아서 판단하라니.

총군사치고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니던가.

‘…그만큼 믿고 의지한다는 거겠지. 예전처럼.’

천영검대주였던 시절에도 묵가후는 작전을 맡길 때면 세부적인 판단은 전부 내게 위임했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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