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124화 (124/150)

#124. 8장 진압(2)

나는 일단 굴복한 삼장로 안현과 그 무리의 혈도를 짚어 제압했다. 이어 안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적당한 곳에 던져두었다.

전부 살려 둘 마음은 없었는데, 싸울 의지를 잃은 오십 명의 목을 선뜻 베어 넘기기도 거북했고 안현이 어떻게든 수하들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 연이어 부탁해 왔기 때문이다.

반란을 일으킨 죄인이기에 앞서 빙궁의 큰 전력이라며 저들의 처단은 궁주인 봉우에게 맡겨달라고.

나는 그런 안현만 대동한 채 봉우와 소룡단 녀석들을 뒤따라 북해림으로 다시금 출발했다.

남지학에게 건넸던 추종향을 뒤쫓기만 하면 되었기에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도중에, 나는 안현에게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먼저 물어본 건 봉우가 크게 걱정하던 일장로와 오장로의 안위. 그 외에 이장로와 사장로는 대장로, 그리고 봉우 사이에서 누굴 따르기로 했는지였다.

“일장로와 오장로는 현재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대장로로서도 그들을 함부로 죽일 순 없었지.”

대장로 심윤술은 훗날 반란에 성공해 궁주의 자리에 앉게 되면 그들을 회유하여 제 사람으로 만들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장로들은?”

“이장로는 우리 쪽… 아니, 대장로 쪽으로 넘어갔다. 사장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기반을 잃은 현 궁주보다는 대장로를 따르려 하는 눈치고.”

“…결국은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 외에는 전부 대장로 쪽으로 다 넘어갔다는 거네.”

“빙궁의 분위기도 이미 대장로를 새로운 궁주로서 추대하려는 향방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하긴. 봉우가 빙궁을 빠져나와 몸을 숨긴 지도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들로서는 슬슬 궁주인 봉우가 살아는 있는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 나와 소룡단이 없었다면 봉우에게 전력이라고는 호위무사 네 명이 전부였기에 훗날을 도모하기도 힘들 거라 여겼을 터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원래 싸움에선 기세가 중요한 법이었다. 놈들에게 넘어간 분위기를 되돌려놓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빙궁은 어느 방향이지?”

멈춰선 내가 묻자, 안현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머금었다.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거지?”

“뭘 무슨 의도야. 빙궁으로 가려고 물어보는 거지.”

“혼자서 빙궁으로 쳐들어가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살행위다.”

“좀 전까지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안현은 헛기침과 함께 잠시 텅 비어 있는 자기 왼팔을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중원 무림의 정세를 내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월영련에 대해 유독 관심을 보였다.

“그럼 현재는 정천맹과 월영련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본격적으로 전면전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전쟁은 전쟁이지. 내가 북해에 온 것도 그와 관련된 일이고.”

“그렇군. 정천맹의 조사단이라 그랬으니. 그럼 마교 역시 월영련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겠어.”

“…뭔가 알고 있는 눈친데, 뜸 들이지 말고 그냥 털어놓지?”

얘기가 조금 길어질 조짐이 보여 나는 적당한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안현을 쳐다봤다.

***

“…마교의 인물이라고?”

안현에게 몰랐던 사정을 전해 들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애초의 소룡단과 내가 북해에 온건 마교의 잔당을 수색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안현을 통해 그 전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전대 궁주님의 사거 직후부터 대장로는 반란을 꿈꿔왔던 것 같네. 아니, 더 이전부터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궁주의 자리가 탐이 났지만, 실상은 봉씨 가문을 따르는 파벌에 비하면 전력이 부족해 헛된 희망으로 치부됐지. 그때 나타난 게 대장로가 ‘그분’이라 칭하는 마교의 인물이라더군.”

“월영련이 접촉을 해왔던 건가?”

“그렇다고 알고 있네. 나도 그런 사실을 인지만 하고 있었을 뿐 ‘그분’이란 자를 만나본 적은 없네.”

“그자가 대장로를 돕는 이유는?”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빙궁의 만년빙정을 요구했네. 어디다 쓰려는 용도인진 모르겠으나 그자에게 넘어간 빙정의 양이 꽤 많아.”

만년빙정이라.

나는 일전에 청해에서 월영련주 단룡위의 부활을 목도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물었다.

“만년빙정을 시체 보관용으로도 쓸 수 있나?”

“시체를 보관하는 용도? 질문이 괴상하군.”

“가부나 얘기해줘.”

“…가능이야 하겠지. 시체가 썩지 않도록 하는 정도라면.”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단룡위의 육체가 잠들어 있던 그 얼음이 만년빙정, 혹은 만녕빙정이 재료로 들어간 무언가라는 걸 깨달았다.

한데 이미 월영련주가 단룡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마당에 만녕빙정이 더 필요한 데가 있는 건가 의문이 피어올랐다.

‘또 무슨 계략을 꾸미려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북해에 진짜 있었구나. 마교의 생존자가.’

북해의 대장로마저 윗사람으로 모시는 정도라면 마교의 십장로나 육마. 분명 그들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잠시 그러한 상념에 잠겼을 때였다.

“그자의 정체는 모르지만, 만만치 않은 존재임은 틀림없네. 그자를 따르는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 그 수하들이 지금은 대장로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네. 반란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전력을 빌려준 게지.”

“월영련과 마교 따위와 손을 잡았으니 궁주를 돕는 걸 떠나서 애초에 살려둬선 안 되는 놈이었네.”

대장로 심윤술.

놈에 대한 살기를 피워 올리자 안현은 움찔거리다가 이어 말했다.

“나야 이제는 상황이 어찌 흘러가던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아무튼 궁 내부엔 빙궁의 전력 외에도 그자들이 함께 있으니 혼자 쳐들어갔다간 아무리 네놈이라도 죽기 십상이다.”

“알아. 그래도 빙궁으로 간다.”

아무리 나라도 놈들을 혼자서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교의 인물까지 함께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저 흐름을 뒤바꿀 한 수였다.

“일장로와 오장로의 이름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는 두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자 안현은 눈을 치떴다.

***

일장로 염흥방(廉興邦).

오장로 노목(魯穆),

안현에게서 두 사람에 대한 특징과 정보 등을 전해 들은 나는 현재 북해빙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빙산 위에 서 있었다.

안현은 근처 숲속의 거목 아래에 묶어 포박시켜둔 상태였다.

‘도망치거나 하진 않을 테니 굳이 이렇게까지…….’

‘들을 정보는 다 들은 것 같은데. 그냥 죽여?’

‘다리 쪽이 좀 헐거워 보이는군. 좀 더 꽉 묶어라.’

안현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고 또 그의 처벌은 봉우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일장로와 오장로를 궁에서 빼낸 이후에 함께 북해림으로 데려갈 심산이었다.

‘규모가 상상 이상인데.’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북해빙궁을 향한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일견하기에도 정천맹의 본단보다 거대한 규모였다. 놀라운 건 성벽이고 건물이고 간에 모조리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척의 침공을 막아낼 만큼 단단해야 하니 단순한 얼음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러한 성벽과 망루 위에는 역시나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날이 저물 때까지 한동안 잠입해 들어갈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려두었고, 하늘이 어둠에 물들기 시작할 때쯤 그대로 빙산을 박차 허공을 갈랐다.

빠른 속도로, 그러나 은밀하게 성벽 가까이 다가갈수록 적들의 숫자와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됐다.

쉭!

경계를 서는 무인들에게 들키지 않고 성벽 가까이 달라붙은 나는 곧장 성벽을 타고 올랐다.

적잖은 내공을 실어 괘월선보를 펼쳤음에도 성벽을 두어 번은 더 박차고 올라야 꼭대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좌우에 두 놈씩.’

내가 올라탄 성벽 주변엔 빙궁의 무인이 둘씩 조를 이루어 경계를 서는 상태였다.

나는 그런 놈들의 빈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좌우 양쪽의 사각지대. 그 위에서 나는 양팔을 각자 좌우로 펼쳤다.

파파파팍!

한음지의 수법으로 지풍을 쏘아내자 머리가 꿰뚫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사이에 나는 바닥으로 허물어지려던 놈들을 전부 낚아채 성벽 밑으로 내던졌다.

네 명 모두를 처리하고 나자 당장 이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이 위치를 기억해두며 탈출할 때를 대비한 퇴로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하 감옥의 입구가 남쪽 성문 근처랬나.’

궁 내부의 구조는 안현에게 들은 대로여서 나아가는 데 거침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 물든 채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최대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달리는 도중에도 주변 곳곳에 예사롭지 않은 기세가 느껴져서였다.

조금 더 멀리, 빙궁의 깊숙한 곳에서는 삼장로 안현과 견줄 정도의 고수가 여럿 있었다. 최대한 놈들의 기감에서 벗어나 남쪽 성문 부근에 도착하자 유독 경계가 심한 곳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섯 명의 무인이 사방을 아우르며 경계를 서는 모양새가 저곳이 지하감옥임을 암시했다.

낌새를 보아 저들을 처리하지 않고는 감옥 안으로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도 내공을 끌어올려 한음지를 펼쳤다.

내 무공은 숨기고, 빙궁의 무공을 사용함으로써 적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퍼퍼퍽퍽!

지풍에 얻어맞아 고꾸라진 놈이 넷.

나머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내 기습을 피해냈고.

“치, 침입……!”

“커억!”

나는 놈들이 소리치기 전에 곧장 달라붙었다. 먼저 한 놈의 목을 양팔로 휘어감아 비틀어 꺾은 뒤, 옆에서 찔러오는 나머지 한 놈의 장력을 내 품에 안겨 있는 시체로 막아냈다.

퍼억!

장력에 얻어맞아 터져나가는 시체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몸을 날렸다.

빠득!

놈의 안면을 부여잡아 바닥에 내리꽂자 놈은 몇 차례 펄떡이다가 이내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에 죽인 두 놈은 사신무를 펼쳐 처리한 거지만, 남이 보기엔 단순한 권각술에 당한 거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적당히 숨겨둔 다음 그대로 지하 감옥으로 걸어 내려갔다.

***

지하 감옥 내부.

“오장로. 거기 계시오?”

사지가 속박된 채 벽에 못이 박힌 듯 구속된 일장로 염흥방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어둠 너머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무사하오.”

보이진 않지만, 오장로 노목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로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염흥방이었다.

“이제 어찌할 셈이오?”

“무엇을?”

“대장로 그 작자가 며칠 내로 결정하라고 하지 않소.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 아니면 새로운 궁주가 되려고 하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할지.”

“흥! 그따위 놈을 따를 바에야 내가 먼저 혀를 깨물지.”

“허허, 마음을 굳혔나 보오.”

“일장로도 같은 생각인 듯하네만?”

노목의 말에 염흥방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궁주님을 배신할 순 없는 일이니까. 다만, 궁주님이 살아는 계시는지 소식이 궁금할 뿐이외다.”

“궁주님은 무사하실 거외다. 비록… 재능이 조금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궁주님 역시 봉씨 가문의 인물 아니오.”

“그렇지. 어쩌면 지금쯤 무사히 북해림에 도착했을지도 모르고.”

“북해림이라.”

북해림이란 말에 두 사람은 소리 없는 침음을 흘렸다.

궁주인 봉우에게 남아 있는 유일안 대안이건만, 과연 북해림이 봉우를 궁주로서 인정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북해림이 따르는 건 봉씨세가의 인물이 아니라 궁주라는 지위 그 자체니까.

“힘들겠지만, 궁주님께선 해내실 거요. 궁주의 자리도 되찾을 테고.”

“그러시겠지만, 시간이 꽤 걸릴게요.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

두 사람에게 있어서 봉우는 궁주이자 또 하나의 자식이었다.

전대 궁주의 하나뿐인 후계자이기에 어릴 적부터 성심을 다해 키워냈으니까.

그런 봉우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대장로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재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자신들이 뒤를 받쳐주면 되는 일 아니던가.

‘궁주의 자리가 그리 탐이 났더냐.’

염흥방은 당장에라도 이곳을 박차고 나가 대장로의 목을 쳐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자신을 가두어두고 있는 철창이 저절로 부서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쾅!

순간 감옥 내부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염흥방은, 조금 전까지 노려보고 있던 철창이 종이짝 찢기듯 찢겨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웬 사내 하나를 발견했다.

“누,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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