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126화 (126/150)

#126. 1장 원조(1)

“궁주님-!”

“이, 일장로님과 오장로님?”

내가 염흥방, 그리고 노목과 함께 일행들에게 합류하게 된 건 이틀이 지난 늦은 오후였다. 북해림을 목전에 두고 그들을 따라잡은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봉우는 느닷없는 두 장로의 등장에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북해빙궁의 지하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자들이니까.

“여기 있는 소협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염흥방이 사정을 설명하자 봉우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단신으로 북해빙궁에 쳐들어갈 생각을 했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적들의 분위기를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싸움엔 기세가 중요한 거니까.”

“일장로님과 오장로님을 구출해 제 걱정을 덜어주시려던 게 아니고요?”

“겸사겸사.”

내가 피식 웃자 봉우가 따라 웃었다.

그런 그와 일행들에게 염흥방과 노목 말고 한 사람을 더 소개했다. 왼팔이 잘려 나간 채로 다소 수척해져 있는 안현이었다.

“사, 삼장로!”

봉우는 그를 보자마자 불같은 노성을 토해냈다. 대장로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 아니던가.

하지만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삼장로 안현이 비틀거리며 걸어가 봉우 앞에 무릎을 꿇고 부복했기 때문이다.

“삼장로가 아닌, 궁주님을 배신한 죄인으로서 안현이 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북해 제일의 고수라던 그에게선 더 이상 예전 같은 기세를 엿볼 수 없었다. 정확히는 배신자가 지닐 만한 적대감이 사라진 상태였다.

안현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채 말을 이었다.

“어떠한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목숨을 거두겠다면요?”

“예상하던 바입니다. 궁주님께서 친히 제 목을 거두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차하게 달고 온 목이니 거두어주신다면 죽어서도 속죄를 이어가겠습니다.”

어차피 내게 패배했을 때 한 번 죽은 목숨이었다. 궁주인 봉우에게 처벌을 맡기고자 삶을 연명하고 있었을 뿐. 안현에게는 작은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와 소룡단. 그리고 염흥방과 노목은 봉우의 뒤편에서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봉우가 나를 돌아봤다.

“삼장로의 왼팔만을 거두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네가 예상하는 대로다. 선택도 네가 할 몫이고.”

“예.”

다시금 안현에게 고개를 돌리는 봉우의 표정에 확신이 깃드는 게 보였다.

“삼장로 안현.”

“예.”

“궁주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명을 받듭니다.”

“살아라. 살아서 나를 도와 반란을 진압한 이후 빙궁의 전력을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라. 그대가 속죄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다. 죽음 따위는 용납하지 않겠다.”

“…….”

봉우가 뿜어내는 기세에 순간적이나마 압도당한 안현이 몸을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안현뿐만이 아니라 이곳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봉우에게선 한 세력을 이끄는 패자의 기운이 오롯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염흥방과 노목은 달라진 봉우의 모습에 놀람과 감격이 뒤범벅된 얼굴로 눈시울을 훔쳤다.

‘이젠 제법…….’

나 또한 적잖이 감탄하는 중이었다.

반란이 일어난 근본적인 계기는 봉우의 재능과 자질 부족이었다.

하지만 봉우는 다듬지 않은 원석에 불과했다. 북해의 무인들이 무공을 운용하는 잘못된 방식이 그 원석의 빛을 더욱더 바래게 했다.

그걸 바로잡아주자 봉우는 지금처럼 빛을 개화하고 있었다.

물론 내 눈에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애송이에 불과했지만.

***

“마교의 인물이라고요?”

안현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북해빙궁의 사정을 풀어 설명해주자 봉우와 소룡단원들이 눈을 치떴다.

봉우로서는 외부의 세력과 결탁한 대장로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에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오르는 듯 보였고 소룡단원들은 총군사 묵가후의 추측이 사실이었단 말에 놀라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 마교의 인물이 북해의 사정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고 하니, 봉우를 돕는 정당한 명분마저 생긴 상황이었다.

“예정된 일이었군요. 궁주님을 도와 빙궁의 반란과 맞서는 일이.”

남지학의 말에 봉우가 씩 웃어 보인다.

“여러분들께선 이 사실을 알기 전부터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진심과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그 미소에 소룡단원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화답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북해림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궁주님. 도착했습니다.”

선두에 서 있던 염흥방과 노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산 하나를 가리켰다.

북해림은 저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 산을 오를 수 있는 건 북해빙궁의 궁주인 봉우뿐이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봉우가 결의 가득한 얼굴로 산을 오를 채비를 하자 염흥방과 노목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북해림 놈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개차반이어서…….”

봉우가 궁주이기 전에, 그의 부친인 전대 궁주를 모시기도 했던 게 두 장로이니 북해림의 인물들과 나름대로 안면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말씀 드렸잖습니까? 좋은 스승을 만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봉우의 시선이 슬쩍 나를 향하자 염흥방과 노목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도 이제는 인지하고 있었다. 봉우의 변화가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빙궁의 궁주가 비슷한 나이대의 후기지수를 스승으로 둔다는 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후기지수가 북해 제일의 고수인 안현마저 당해낼 수 없는 이라면 말이 달라진다면서.

염흥방과 노목이 봉우의 시선을 따라 그런 나를 쳐다봤다가 말을 이었다.

“북해의 무공 방식이 잘못되었다… 까진 아직 인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방식이 궁주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북해의 무인들에게도 역사가 있고 거쳐 온 세월이 있으니 잘못되었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내가 틀린 걸지도 모르지.

염흥방은 그에 관해서 훗날 나와 깊이 있는 논검을 나누길 고대한다고 전해왔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봉우는 산의 초입을 넘어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궁주로서 북해림의 인정을 받아 그들의 조력을 얻을 수 있길 고대하면서.

봉우가 떠나고 나자 그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 인원들은 산 근처에서 야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산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산이라기엔 그 전체에 퍼져 있는 기세가 남달랐다.

새하얀 설산이건만 기세만큼은 북해의 한기마저 몰아낼 정도로 뜨거웠다.

왠지 흥미가 동한 나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몸을 날렸다.

“형님?”

“부단주님?”

뒤늦게 소룡단원들이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덤덤히 흘려넘기면서.

***

“삼장로마저 연락이 끊겼다?”

대장로 심윤술이 자신의 방 안에서 뜻밖의 보고를 전해 들었다. 궁주를 추격해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는 확실한 수가 안현이었기에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한데 누군가가 빙궁에 잠입해 일장로와 오장로를 빼내 간 시점에 맞춰 안현의 보고가 뚝 끊긴 것이다.

“예. 이틀 간격으로 한 번씩 소식이 전해졌었는데 최근 며칠 동안은 아무런 소식도…….”

평소 같았으면 단순히 소식을 전하지 못할 작은 변고라도 발생했나 보다 여겼을 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간과할 수 없는 사태였다.

“북해 제일이라는 삼장로마저 당해낼 자가 봉우, 그놈에게 있었던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감히 어느 누가 삼장로님을.”

“예전이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마교의 인물인 그분을 만나기 전이었더라면.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북해빙궁이 변방의 우물이었다는 걸 깨달은 터였다.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는 없는 꼴이었다.

‘그분을 통해 북해인들의 무공을 운용하는 방식이 근간부터 틀어졌음을 알게 됐다.’

무에 있어서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아직 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전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반란을 일으켜 궁주가 된 자신이 잘못된 무공 방식을 뜯어고쳐 특별한 존재로서 받들어지길 원했다.

그 업적은 반란이라는 과오를 씻어주기엔 충분할 정도일 테니.

미래를 위한 계획은 전부 세워둔 만큼 심윤술은 하루라도 빨리 현 궁주인 봉우의 죽음이 전해지길 갈망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궁 내부에 알게 모르게 현 궁주인 봉우를 지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새로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시발점이 일장로와 오장로의 탈출이었다.

‘그자인가?’

심윤술은 본능적으로 안현의 연락이 끊긴 부분 역시 빙궁에 잠입했던 존재가 관여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봉우에게 그만한 실력자가 붙어 있을 리가.

‘정천맹의 조사단. 혹은 북해림.’

의심되는 건 두 세력뿐. 하지만 북해림이 봉우 같은 놈을 궁주로 인정할 리 만무하니 남은 건 결국 정천맹에서 보내왔다던 조사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놈들 역시 북해의 영지에 발을 들였단 소식 이후로는 깜깜무소식 아니던가.

‘너무 가볍게 여겼나.’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의 단순한 조사단이라고 하기에 적당히 상대하다가 돌려보내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그게 뼈아픈 실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심윤술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궁주의 추격을 포기하는 대신 놈이 스스로 덤벼들 때까지 힘을 비축한 채 기다리기로.

기세를 보니 조만간 반란을 진압하겠다고 빙궁으로 쳐들어올 기세였다.

그때 정면으로 놈들을 깨부순다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궁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진정한 인물이 누구인지 가려질 터.’

그때를 위해 마지막으로 그분의 힘을 한 번 더 빌리는 게 좋을 거란 생각에 심윤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딱히 특별한 건 없네.’

잠행술을 펼쳐 은밀하게 봉우를 뒤쫓고 있던 나는 설산 곳곳을 둘러봤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아니면 오르지 못한다는 설산이라길래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건만 장애물이나 막아서는 인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내 시야엔 그저 도화지 같은 설산의 풍경과 전력을 다해 산을 오르고 있는 봉우만이 보였다.

그의 발걸음을 보니 꽤 서두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염흥방과 노목, 그리고 안현까지 돌아온 마당에 북해림의 원조를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반란을 진압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 같았다.

궁주인 봉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마음이 급하긴 할 테지.

나로서는 산에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흥미가 돋아 뒤쫓아온 것일 뿐이라서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봉우를 따라 한참을 내달리자 마침내 산의 정상이 보였다.

높이가 높이인 만큼 주변이 운무에 휘감겨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슬쩍 내공을 끌어올려 시야를 키우자 운무에 가려져 있는 장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봉우가 그 장원 앞에 도착해 무어라 입을 여는 것까지.

덜컹.

얼마 지나지 않아 장원의 정문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봉우가 그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

“설산의 공기가 차가우니 거기 계신 분도 안으로 드시지요?”

정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 은신을 알아차릴 정도의 실력자라는 방증이었다.

나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몸을 날려 정문 앞에 내려앉았다.

그런 내 시야엔 깜짝 놀라고 있는 봉우와 얇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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