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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31화 (131/150)

#131. 2장 육마(3)

쉭! 콰득!

눈앞에서 짐승처럼 덮쳐오는 마인의 목을 낚아채 손아귀에 힘을 주자, 놈의 목뼈가 으스러졌다.

바닥으로 허물어진 놈은 머리가 기괴한 각도로 꺾였을 뿐 바닥을 기면서까지 내게 달라붙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런 놈의 정수리에 강기를 머금은 검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콰직!

머리가 관통당하고 나서야 힘을 잃고 축 늘어지는 놈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평범한 마교의 마인이 아니라 몽령시다.”

“몽령시… 요?”

내 근처에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봉우와 그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빙궁의 무인들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터.

하지만 정마대전에 참여한 전적이 있는 소룡단원들은 입을 하나로 모아 경악하고 나섰다.

“몽령시라니! 그럼 저들이 전부 생강시라는 겁니까?”

소룡단원들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엔 이백여 구의 몽령시가 삼천에 달하는 빙궁의 무인들을 상대로 끈덕진 혈전을 벌여가는 와중이었다.

“대장로와 손을 잡았다는 마교의 인물이 바로 그 몽마였으니까.”

“모, 몽마!”

몽마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소룡단원들이 재차 눈을 치떴다.

녀석들로서도 죽은 줄 알았던 육마의 일인이 빙궁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 그럼 형님께서 대장로뿐만 아니라 몽마도 처리하신 겁니까? 혼자서요?”

장진악의 물음에 나는 아쉬운 심정으로 혀를 찼다.

“아니. 놓쳤어. 놈은 대장로를 통해 혹시나 정보가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해 대장로의 확실한 죽음을 확인한 뒤에 이백 구의 몽령시를 방패 삼아 달아났다. 나로서도 놈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곳으로 달려오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

짧게나마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자 인원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놀람. 당황. 분노. 여러 감정이 뒤엉킨 얼굴들이었다.

그것도 잠시.

봉우와 북해림주 구대림. 염승방과 노목까지 한꺼번에 내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유 공자 덕분에 무사히 반란을 진압하는 건 물론, 자칫 큰 위협이 될 뻔한 마교의 인물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들의 정체가 몽령시라는 점. 그 몽령시를 상대하는 방법까지 친히 알려주셨으니 이 뒤는 저희에게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봉우의 제의에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슬쩍 내려다봤다.

아직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충분히 남아있음을 표출한 건데, 봉우는 물론이고 구대림까지 나를 저지했다.

“자네와 자네의 일행들에겐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았네. 그러니 조금 숨을 돌리고 있게나. 몽령시라는 저 버러지 같은 존재들은 내게 맡기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대림은 경지만 놓고 보면 나와 버금가는 지극 고수였다.

그를 필두로 빙궁의 무인들이 하나로 모인다면 이백 구의 몽령시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

결국 나와 소룡단은 후방으로 한 발 물러서서 몽령시를 향해 쇄도해 들어가는 봉우의 뒷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몽령시를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법을 일러준 덕에 빙궁의 무인들은 큰 피해 없이 놈들을 궤멸시킬 수 있었다.

물론 큰 피해가 없다는 건 봉우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거였지, 삼천에 달했던 빙궁의 무인들은 그 숫자가 이천 쯤으로 줄어든 상황.

그리고 그 숫자가 지금은 봉우의 정면에 늘어선 채 전부 무릎을 꿇었다.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들은 대장로의 명령에 따라 궁주인 봉우를 몰아내고자 맞섰던 자들이다.

대장로가 죽은 지금은 봉우의 결정에 따라 생사가 정해질 테니 하나같이 쥐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희는.”

이윽고 봉우가 좌중을 아우르는 시선과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내가 궁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 생각하나?”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빙궁 전체에 뻗어나가자 곳곳에서 침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제는 깨달은 것이다.

반란을 피해 궁을 탈출하여 도망치던 봉우와 현재 눈앞에 서 있는 봉우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내 기준에서 너희는 엄연히 반역을 일으킨 죄인들이다. 반역의 죄는 죽음으로 다스릴 뿐.”

그런 봉우에게서 전에는 볼 수 없던 패자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에 이천이라는 숫자가 압도되어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봉우의 뒤로 북해림주 구대림과 북해림의 무인들. 염흥방과 노목에 북해 제일의 고수라 알려진 안현까지.

그 인원들이 봉우의 기세를 뒤받치자 나 역시 감탄할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봉우의 실력이 어떤지를 떠나, 그는 확실히 한 세력의 주인이 될 만한 자질을 타고났음을 재차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와. 이제는 정말로 어엿한 북해빙궁의 궁주 같습니다.”

내 옆에서 봉우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던 장진악도 새삼스럽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나머지 소룡단원들도 마찬가지.

그중 남지학은 기대와 염려가 뒤섞인 눈초리로 나와 봉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런 궁주님께서 네 제자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중원의 무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별일도 아닌데 반응은 무슨.”

내가 피식 웃자 남지학은 그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며 반문하려다가 이어지는 봉우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너희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이제야 궁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나가려는 내게 힘이 되어줄 이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러니…….”

북해의 한기와도 같이 차가웠던 봉우의 표정은, 어느샌가 새벽녘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일출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너희의 죄는 대장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하겠다. 앞으로는 다시금 북해빙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 내가 제대로 된 궁주로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다오.”

***

쿵!

탁자 위에 철로 된 상자 하나가 올라왔다. 봉우는 그 상자를 천천히 개봉하면서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약속드렸던 만년빙정입니다.”

봉우의 말에 남지학과 장진악을 비롯한 소룡단 녀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 오오……!”

그들은 상자가 열리면서 새어 나오는 차가운 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들이밀며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이게 같은 무게의 금과 거래가 된다는 만년빙정…….”

“크, 크기가 생각보다 큰데.”

“이게 다 얼마냐.”

“한 사람당 하나씩이라고 쳐도… 우와.”

녀석들 말대로 만년빙정의 크기는 평범한 사내의 주먹보다 조금 더 컸다. 그 크기로 대략적인 무게를 추측하고 있는 건지 잠시나마 침묵이 감돌았고.

“이, 이거 진짜 받아도 되는 겁니까?”

대략적인 값어치가 환산되자 누군가가 헛숨을 들이키며 소리쳤다.

“저와 빙궁을 구해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인데 당연하죠. 고작 이 정도로 충분한 보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충분합니다. 차고 넘쳐요.”

“예. 이거면 저희가 받는 월봉에 수십 배…….”

정천맹을 떠나 북해로 온 지 어언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적잖은 고초까지 겪었다.

반란을 진압하고자 북해빙궁으로 쳐들어가 삼천에 달하는 빙궁의 무인들과 맞선다고 몇몇 녀석들은 큰 부상까지 입은 상황.

하지만 눈앞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 만년빙정을 보고 있자니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는 건지 녀석들은 하나같이 입꼬리가 귀밑까지 닿아있는 상태였다.

행여나 녹기라도 할까 봐 만져보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훔쳐보는 모양새까지.

썩 우스꽝스러운 꼴이라 나는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남지학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만년빙정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주신 데에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내전이 끝난 지 이틀 정도가 흐른 지금 나와 소룡단은 빙궁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귀빈급으로 대우받으며 치료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남지학은 그 부분까지 거론하며 고개를 숙여보인 뒤 소룡단원들을 이끌고 조심스레 물러났다.

봉우가 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를 일찍이 전해왔었기 때문이다.

궁주전에 둘만 남게 되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내가 먼저 그 정적을 깨뜨리려고 하는 순간.

봉우는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절을 올렸다. 진중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삼배지례를 나는 묵묵히 지켜만 봤고 봉우는 마지막에 공손한 자세로 일어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 공자… 아니, 스승님께는 꼭 따로 인사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됐다. 정식적인 사제지간도 아닌데.”

내게 가르침을 받긴 했어도 봉우는 엄연히 북해빙궁의 궁주였다. 내가 얼마나 강하다고 한들, 주변의 시선과 인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지위.

“제가 궁주만 아니었더라도 유 공자님을 따라 중원으로 향했을 겁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그래.”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봉우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지나쳐 앞장섰다.

“그런 제 진심을 말로만 표현할 수는 없죠. 잠시 함께 가시겠습니까?”

***

봉우의 안내를 받아 내가 도착한 곳은 북해빙궁에서도 유달리 경계가 삼엄한 장소였다.

일전에 겪어봤던 지하감옥의 그 경계보다도 훨씬 엄중하고 빈틈이 없는.

그런 곳의 입구를 지키는 무인 역시 내가 본 빙궁의 무인 중에서도 최정예의 실력자였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그중 우리를 발견한 무인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자 봉우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짧게 명령했다.

“보고를 개방해라.”

“예.”

보고라는 말에 나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북해빙궁의 모든 재산이 잠들어있을 보고에 외부인을 들이다니.

끼리릭. 쿵!

이내 만년한철로 짐작되는 재질의 철문이 열리면서 어둠이 내리깔린 기다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시죠.”

말과 함께 봉우가 앞서서 정문을 지나쳤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통로에 진입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천장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어둠을 밀어냈다.

주변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보아 특수한 기관 장치가 발동된 것 같았다.

동시에, 통로를 따라 좌우로 줄지어 늘어선 수십 개의 창고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창고의 입구는 모조리 굳게 닫혀있었으나, 보고의 벽 전체가 반투명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

슬쩍 들여다보니 각 창고에는 오만가지의 재화가 보관된 상태였다.

금은보화를 시작으로 수십 종류의 보석과 광석 등.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공 비급으로 보이는 서적들. 다시 갖가지의 영약과 약재가 진열되어 있었다.

일전에 봉우가 내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보고를 털어도 모자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 다시 주워 담았던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 기억이 떠올라 옅게 웃자 봉우가 따라 웃었다.

“그때는 유 공자께서 보고를 털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말해놓고도 심장이 떨어질 뻔했어요.”

“그럴 만도 하네.”

“하지만 유 공자께서는 딱히 재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시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관심이야 없진 않지.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다만 재물에 대한 욕구는 적은 편이었다.

당장 백의문부터가 중소문파치고는 적지 않은 재산과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었고, 내 가문 역시 지금은 산서에서도 부유한 편에 속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무얼 드리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차라리 유 공자께서 직접 선택하시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이곳까지 모셨습니다.”

긴 통로와 수십 개의 창고를 지나쳐 봉우와 내가 도착한 곳은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또 하나의 철문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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