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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33화 (133/150)

#133. 3장 선제(2)

보름간 빙궁에 머물며 치료와 휴식을 취한 소룡단은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조사단으로서 북해로 파견된 지 이미 두 달이 넘어가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파파팡!

이날, 나는 마지막으로 봉우와 비무를 벌였다. 지도 대련 따위가 아닌 실전 비무. 따라서 가차 없이 전력을 내보였고.

슁!

사방을 뒤덮는 한기를 일검에 베어 낸 섬광이 그대로 봉우의 가슴께에 작렬했다.

“커억-!”

발출된 검강에 그대로 얻어맞은 봉우는 핏물을 토해내며 비무대 뒤로 날아가 벽 한구석에 처박혔다.

쿠구궁!

벽 일부가 무너져 돌무더기가 내려앉고 흙먼지가 피어올랐으나 나는 그 안에 파묻혀 있는 봉우를 명확히 응시했다.

“일어나.”

내 말에 돌무더기를 파헤치며 일어난 봉우가 숨을 헐떡였다.

“…마지막이라고 너무 봐주는 게 없는 거 아닙니까?”

몰골이 엉망임에도 미소를 머금는 그에게 나 역시 따라 웃어주었다.

“제대로 상대해달라고 요청한 건 너였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럼 응석 부릴 시간이 없을 텐데.”

쐐엑!

말이 끝나는 동시에 지면을 박찬 나는 봉우의 곁으로 쇄도해 들어가 검을 뻗었다.

봉우는 일자의 궤적을 그리는 공격을 피해낸 뒤 반격하려다가 내 검이 어느새 자기 하체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황급히 공중제비를 돌았다.

두 바퀴.

몸이 회전하는 와중에 그에게서 장력이 쏟아져 내렸다.

회피와 공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묘수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고작 두 달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봉우의 재능은 확실히 뛰어났다.

…내 가르침이 뛰어난 것도 한몫했을 테고.

전생엔 검신 영감. 현생엔 원로원의 노고수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기만 했지, 반대로 누군가를 정식으로 가르쳐 본 적이 없던 내게는 썩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짧게나마 왕삼이나 백의문도들의 무공을 살펴봐 준 적은 있었지만.

중원으로 돌아가 언제고 여유가 된다면 녀석들도 제대로 한번 가르쳐보고자 하는 의욕이 치솟았다.

봉우에 비할 바는 아니나 왕삼이나 언사룡, 그 외에도 백의문의 제자 몇몇은 재능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쾅! 콰콰쾅!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장력들을 하나하나 가볍게 쳐낸 뒤 공중제비를 돌았다가 바닥으로 내려앉는 봉우의 코앞까지 짓쳐들어갔다.

촤악!

“윽.”

정확히 목을 베기 직전에 멈춰선 검날을 내려다보던 봉우가 작은 한숨과 함께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졌습니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비무였음에도 옷가지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나를 올려다보던 그는 패배감보다는 경외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 공자께선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겁니까?”

“나?”

“예. 사실 나이로 따지면 저보다도 어리잖아요.”

전생을 합치면 나이로 따져도 너보다 수십은 많은데.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수련에 매진하면 돼.”

“말은 쉽죠.”

“쉬울 리가. 말 그대로 수련에 목숨을 걸라는 거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천 길 낭떠러지에서 몸을 내던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가지는 게 쉽진 않지.”

“…진짜 천 길 낭떠러지에서 몸을 내던져 보셨습니까?”

“그게 일상이었다.”

전생에 기연을 얻은 이후엔 매일매일을 죽을 각오로 단련했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정도는 일과의 시작에 불과했다.

내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린 봉우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결의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 가르침 역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일장로에게 명한다. 유 공자를 따라 중원으로 향하여 정천맹주에게 내 뜻을 전하라.’

정천맹으로 복귀하고자 북해빙궁을 떠나기 전, 봉우는 일장로 염흥방을 일행으로 붙여주었다.

나와 소룡단에게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이제는 북해빙궁 역시 월영련과 마교를 주적으로 삼고자 한다는 의지를 표방하기 위함이었다.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처지이니 별다른 이견 없이 동맹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컸다.

“저희가 생각보다 엄청난 공을 세운 것 같은데요, 형님.”

말이 있어야 할 마차의 선두에 자리를 잡은 채 내달리고 있는 장진악은 구슬땀을 흘리며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에선 남지학과 소룡단원 두 명이 함께 마차를 이끄는 상황이었다.

나머지는 궁주인 봉우가 직접 하사한 답례품들과 짐들을 어깨에 짊어진 채였다.

반대로 나는 마차의 지붕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염흥방은 마차 안에서 안락함을 누렸다.

그리고.

“이, 이건 더 이상 마차라고 부를 수도 없겠는걸요.”

마차 안에서 염흥방이 아닌 또 다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젊은 여인이었는데,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다리의 힘만으로 내달리고 있는 소룡단원들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염흥방의 손녀이자 그녀 역시 사절단으로서 정천맹을 방문하기 위해 일행으로 합류했다.

놀라운 건 그녀의 무공 실력이 제법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일장로의 혈연이니 당연하다 싶다가도, 음기 가득한 북해의 무공이 사내보다는 여인에게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염혜주(廉惠周).

그녀는 이내 마차의 창문을 통해 빠져나와 내가 있는 천장에 올라탔다. 힐끔 쳐다보니 묻고 싶은 게 있다는 얼굴이었다.

“물어보시죠.”

염혜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중원의 무인들은 다들 이런 수련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건가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해야만 하는 수련이니까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그렇군요.”

그 말을 되뇌며 소룡단원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섰다.

“그럼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

“……?”

순간 우리 주변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염혜주는 북해빙궁 일장로의 손녀임과 동시에 뛰어난 무공 실력과 지모로 일찍이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는 존재였다.

훗날엔 염흥방의 뒤를 이어 일장로의 자리를 물려받을 거라 예상될 정도로.

게다가 북해빙궁의 사절단으로서 합류한 상황이었다.

그런 손님이 개처럼 구르고 있는 자신들과 함께하고자 한다니 소룡단원들의 표정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염흥방 역시 화들짝 놀라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혜주야!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요. 강해지고자 수련을 하겠다는 건데요.”

“네, 네가 왜 이따위 허무맹랑한 수련을…….”

말을 하던 염흥방은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어 자라처럼 마차 안으로 다시금 얼굴을 구겨 넣었다.

“유 소협.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네.”

이제는 목소리만 들려오는 염흥방에게 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보기엔 터무니없이 황당하실 수도 있겠죠.”

“아, 아니. 무인에게 있어서 자고로 육체단련은 빼놓을 수 없는 일환임을 내 잘 알지. 암. 알고말고.”

염흥방이 황급히 말을 주워 담는 사이 염혜주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저도 함께 수련해도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 그건…….”

염흥방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염혜주는 마차 위에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소룡단원들에게 묵직한 짐을 나눠 받은 그녀는 이내 그들 사이로 스며들어 함께 내달리기 시작했다.

***

“소룡단주 남지학 외 열아홉 전원이 복귀를 알리고자 총군사님을 뵙습니다.”

남지학을 필두로 일렬로 늘어선 소룡단이 총군사 묵가후를 마주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남지학의 옆에 서서 묵가후를 바라봤다.

복귀하기 전에 미리 보내두었던 서찰을 통해 보고를 받아서였는지 묵가후의 표정은 크게 밝았다.

“다들 고생 많았네. 단순히 조사를 위한 파견이었는데 이런 믿기지 않는 활약을 세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 소룡단이 세운 공로는 맹주님께서도 따로 치하하시기로 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네.”

“예-!”

북해빙궁에서 봉우에게 이미 만년빙정이라는 대가를 받은 소룡단원들이었다.

그걸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맹주가 직접 치하할 거라는 말에 입이 함박만 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데 다들 몸상태가 말이 아니로군. 그만큼 힘겨운 여정이었다는 거겠지?”

묵가후의 말대로 나를 제외한 소룡단원들은 땀과 먼지, 그리고 피로까지 누적되어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좋게 표현해서 이 정도지, 사실 그냥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예.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묵가후의 물음에 남지학과 일행들은 나직한 대답과 함께 힐끗 나를 쳐다봤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눈초리였다.

***

대략 한 시진 정도.

소룡단원들에게 일일이 상세한 보고를 전해 들은 묵가후는 마지막으로 나만을 남겨두었다. 둘만 남게 되자 묵가후의 표정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소룡단의 활약 덕에 기쁜 한편 내가 모르는 무언가로 인해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무슨 상황입니까?”

내가 묻자 묵가후는 잠시 고심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검마의 움직임이 포착됐네.”

“…….”

검마라는 말에 나는 움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살아 있었던가.

“월영련주에게 붙은 겁니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추측하고 있네. 더불어 이제는 그들을 월영련이 아니라 마교라고 단정 지어야 할 듯싶네. 더욱이 놈들은 알게 모르게 점점 힘을 키워가고 있는 실정이야. 검마뿐만 아니라 전 마교의 생존자들로 추정되는 고수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가 적잖은 세력들이 어느 한 곳으로 규합되고 있어.”

정마대전이 정천맹의 승리로 종전되었다고는 하나 마교라는 이름이 강호에 심어준 존재감과 공포가 아직 씻겨 내려가기 전이었다.

그런 마당에 마교가 부활했다는 말이 퍼져나가게 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아직 공식적인 발표를 미루어두고 있다는 말에 나와 묵가후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나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세력들이 규합되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결국 저희가 파악한 걸로는 검마와 몽마. 그 외에 십장로였던 인물 몇몇이 모두 단룡위에게 복종했다는 거군요.”

“드러난 것만 그 정도고,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더 있을 수도 있어. 해서 비선당의 모든 전력을 그쪽으로 쏟아붓고 있네.”

“그럼 제가 할 일은…….”

“일단은 좀 쉬어두게. 북해에서 오늘 돌아오지 않았나?”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마교라는 이름으로 뒤덮인 상황이었다.

육마라 불렸던 전대 고수들이 벌써 둘이나 포섭되었다니.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백에 달하는 몽령시를 부리게 된 몽마와 검으로는 검신 백도천 바로 밑이었던 검마.

두 사람이 포섭되었다는 건 그들이 단룡위를 진정한 천마로 인정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의 위치는요?”

“조사 중이네.”

마교의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 전처럼 십만대산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곳에 본단을 세웠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놈들에 대해 어디까지 조사가 진행된 건지 되물으려다가 찻잔을 들이미는 묵가후의 손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천 대주의 유지를 이어서인가? 자네를 볼 때면 항상 그가 떠올라. 마교라는 이름을 향한 증오심 역시 그에 못지않고. 해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

“어떤…….”

“그가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게.”

진중한 얼굴로 진심을 전해오는 묵가후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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