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인 환생했다-136화 (136/150)

#136. 4장 작전(1)

말했듯이 운대산 수유봉은 하남의 유명한 명소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소란에 이미 적잖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어? 저, 저분은 하남장가의 권왕 대협…….”

“진짜네!”

“권왕 대협이 왜 수유봉에서 싸움을 벌이는 거지? 상대가 누구길래.”

“맞은편의 소협은 오룡일화의 하나인 잠룡이 아닌가.”

“대체 무슨 상황이야?”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자 하남장가의 무인들과 소룡단은 재빠르게 나서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별일 아니니 이곳에 계신 분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예. 두 분께서는 잠시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권왕을 향해 주변을 둘러보라며 눈짓을 보냈다.

“너무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은데.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호에서 그리고 이 하남에서 천하십대고수의 하나인 권왕의 명성은 정천맹주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드높았다.

그런 권왕이 한낱 후기지수를 상대로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괜한 입방아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권왕을 상대하려면 나름 본 실력을 내보여야 할 텐데, 이 많은 인원이 보는 앞에서 실력을 발휘했다간 온갖 소문이 나돌게 분명했다.

한데 권왕의 얼굴에 깃든 호승심은 누그러지긴커녕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승부도 보지 않고 도망치는 건가?”

그런 권왕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 한번 벌어진 싸움이니 끝을 봐야지.”

…젊을 적부터 주먹과 싸움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라더니.

“정 끝을 보셔야겠다면 차라리 조용한 곳에서…….”

“싫다.”

뭔 빌어먹을 고집이야?

슬슬 짜증이 밀려와 표정을 굳히자 권왕이 씩 웃어 보였다.

“이제야 조금 사내다운 얼굴이로군. 그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내게 시선을 거둔 권왕은 순간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인파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본인은 하남장가의 가주 권왕 장무군(章撫軍)이오.”

내공이 실린 목소리였는지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이목을 집중했다.

“또한 과분하게도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라 불리고 있지. 한데 여기 있는 젊은 소협께서 그런 본인에게 도전해오는 게 아니겠소? 듣자 하니 오룡일화의 하나인 잠룡이라 불린다던데. 오늘 이곳에서 나를 꺾고 천하제일 후기지수가 아닌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겠답니다.”

권왕의 말에 인파들 사이에서 재차 웅성거림이 터져나왔다.

“잠룡이 권왕 대협께 도전을?”

“아무리 그래도 천하십대고수에겐 무리이지 않을까?”

“젊은 소협의 객기 아니겠나? 그래도 잠룡이라면 권왕 대협의 말씀대로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는 최고라고 여겨지니 말일세.”

잠룡이라는 내 별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떤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걸 떠나서.

“무슨 꿍꿍입니까?”

내가 물었지만 권왕에게선 별다른 대답이나 변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되지도 않는 거짓말까지 늘어놓으며 나와 그렇게 승부를 보고 싶다는 건가.

덕분에 하남장가의 무인들과 소룡단. 그리고 염흥방과 염혜주까지 이제는 하릴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주위를 둘러싼 인파 역시 상기된 표정으로 나와 권왕의 승부가 시작되기를 고대하는 눈치.

“자리가 마련됐으니 슬슬 시작하지.”

권왕의 말에 나는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

“지금쯤 승부가 났으려나 모르겠군.”

정천맹주 독고태문의 말에 묵가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자네가 먼저 제안한 계획이지 않나?”

“그야 그렇지만… 권왕께서 그리 흔쾌히 수락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역시 진휘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더군. 하남장가의 후계자인 권룡이 진심으로 따르는 아이가 어떤 녀석일지 기대가 된다면서 말일세.”

“권왕도 권왕이지만, 진휘 그 아이가 이 계획을 어찌 받아들일지도 의문입니다. 미리 언질이라도 해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일세. 괜한 염려 말게.”

“예.”

독고태문과 묵가후는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시선을 교환하며 말을 이었다.

“총군사는 어찌 예상하나?”

“어떤 부분을 얘기하시는 겁니까?”

“권왕과 잠룡. 두 사람의 승부 말일세. 권왕이 비록 이 작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곤 하지만, 일부러 져줄 인물은 아니란 말이지.”

“그야… 당연히 잠룡의 승리를 예상하고 계획한 작전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쉽지 않은 승부겠지요.”

“쉽지 않은 승부라…….”

독고태문은 탁자 위의 찻잔을 내려다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볼 때 승부는 간단히 끝날 것 같네만.”

“예?”

“진휘의 실력이 자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말일세. 아마 나 역시 그 아이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

“그럴 수가…….”

독고태문이 누구던가.

독고세가의 가주이자 정천맹의 맹주. 또한 독고세가는 검의 명가로서 오랜 세월 강호에 군림해온 가문이었다.

그런 그가 겨뤄보지도 않고 패배를 인정할 정도였다니.

“그러니 굳이 자네의 작전이 아니었어도 진휘는 오래지 않아 명성을 떨쳤을 걸세. 이번 작전은 그저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것일 뿐. 아, 작전의 이름이 뭐였던가?”

“천룡(天龍)작전입니다.”

“잠룡이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로군.”

독고태문은 작전의 이름을 되뇌며 창가 너머로 운대산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

쾅!

검을 비스듬히 세워 주먹을 흘려보냈음에도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권왕의 주먹에 담긴 내력이 범상치 않다는 방증이었다.

‘진짜로 해보자는 건가? 이 늙은이가…….’

콰직!

주먹을 쳐낸 반동으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자 권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언제까지 막고만 있을 거냐?”

그의 표정은 마치 슬슬 실력을 보여보라고 도발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저러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진 않는다만.

“어르신께서 원하시니 저도 이제는 참지 않겠습니다.”

“크하하! 그래, 어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해보거라.”

권왕은 대소를 터뜨리면서 두 주먹에 강렬한 기운을 머금었다.

눈부실 정도의 권강이 피어오르자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인파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등이 오싹해지는구먼.”

“저렇게 뚜렷하고도 완연한 권강을 이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저게 바로 천하십대고수…….”

그 말처럼 권왕의 기세는 세간의 명성이 오히려 부족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역시 지극의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인 만큼 나 역시 어느 정도 긴장한 상태였다.

‘…아닌가?’

검을 쥔 채 자세를 잡아가던 나는 묘한 느낌에 눈을 빛냈다. 분명 속으로는 긴장해야겠다 싶었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한없이 여유롭고 가벼웠다.

‘권왕을 눈앞에 두고도?’

뭐지 싶어 손에 쥔 검을 바라보다가 검날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깨달았다.

머리는 몰랐지만 몸은 알고 있던 사실을.

‘그만큼 더 강해진 건가.’

전생의 경지를 회복한 이후 보다 조금 더 나아갔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한데 그 나아간 거리가 내 생각보다 더 앞선 곳이었나보다 싶었다.

물론 지극을 넘어 천극의 경지를 넘보겠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조금씩 지극의 경지를 벗어나고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강한 건지.

“이번엔 왜 또 얼어붙어 있는 게야?”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멈춰 서 있자 권왕에게서 재차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런 권왕에게 검을 겨눈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작하시죠.”

“그 자세는 뭐냐? 설마 선공을 양보하겠다, 뭐 그런 말을 지껄이려는 건 아니겠지?”

“굳이 말 안 해도 아실 줄 알았습니다.”

“큭. 아까는 그렇게 싸우기 싫어하더니, 이 시건방진 태도 좀 보게. 오냐. 정 원한다면…….”

쿠구궁!

권왕의 두 주먹이 한차례 교차하는가 싶더니 양손에 맺혀있던 권강은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그 과정에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뒤흔들렸고 권왕이 서 있는 자리 주변으로는 바닥에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가공할 기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아, 아버지!”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장진악이 경악에 물든 채 소리를 지르는 게 보였다.

하남장가의 후계자인 녀석이니 지금 권왕이 펼쳐 보이려 하는 초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권왕이 펼치는 절초라.

나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싸움을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일권에 모든 기운을 담은 권왕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와 내게 주먹을 뻗어왔다. 뻗어오는 건 주먹이었으나 기세는 마치 거대한 해일이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피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는 그런 공격.

상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기세에 압도되어 꼼짝없이 해일에 집어삼켜졌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해일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어지는 가벼운 일검.

번쩍!

한줄기 섬광이 해일의 중앙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팟!

이어 권왕과 나는 서로를 스쳐 지나가 서 있던 위치를 맞바꿨다.

잠시 이어진 침묵 끝에 권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방금 그건… 뭐였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베었을 뿐.”

“아무런 초식도 아닌, 그저 단순한 일검이었다?”

“예.”

“베고자 하여 베었다. 검에 초식이 아닌 의지를 담은 건가.”

그래도 권왕이라고 단숨에 알아차리네.

그의 말대로 조금 전 내가 선보인 일검은 검의합일의 극치라 할만한 한 수였다. 전생을 포함해 나로서도 처음 펼쳐본 한 수이기도 했다.

이 한 수로 현재 내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확신을 가지는 사이.

스륵!

권왕의 무복이 사선으로 갈라지면서 그 밑으로 다시 한줄기 검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권왕은 풀썩 무릎을 꿇은 채 좌중을 둘러봤다.

“졌다.”

이어지는 그 한마디에 곳곳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싸움을 지켜보던 인원들로서는 믿기 힘든 결과일 터였다.

후기지수에 불과한 잠룡이 권왕을 꺾었다. 이 소문 역시 삽시간에 퍼져나갈 게 분명했다.

해서 나는 권왕과 시선을 맞추고는 나직이 물었다.

“굳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 목적이 뭐였습니까?”

“…천룡작전.”

천룡작전?

그게 뭐냐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자 권왕은 나와 같은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을 부연했다.

“마교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고 판단한 총군사님께서 고안한 작전이지.”

묵가후가 관여되었다는 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작전 내용이 뭡니까?”

“강호에 혼란이 야기될 게 뻔하다면 그 혼란마저 버틸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존재를 앞세우고자 하셨다. 난세엔 영웅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게 무슨?”

“후기지수에 불과한 나이이나 무공만큼은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인물 정도면 영웅이 되기엔 충분할 테지.”

권왕은 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그 시선을 쫓자 곳곳에서 내 이름과 별호를 입에 담은 채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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