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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38화 (138/150)

#138. 4장 작전(3)

늦은 오후.

객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왕삼을 데리고 정천맹 본단을 빠져나와 인근 한적한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녀석과 마주 앉아 적당히 술과 안주를 주문해놓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왕삼의 방문은 예상 밖이어서 녀석과 반가움의 회포를 풀 새도 없이 이유를 물었다.

녀석이라면 아직 한창 백의문 백룡각주의 자리에 적응해 나갈 시기가 아니던가.

정보 세력의 필요성을 느껴 구축한 게 백룡각이었다. 아직 백룡각이 제 역할을 해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라 예상하는 상태였다.

한데 왕삼의 이야길 들어보니 녀석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은 소저의 도움을 받아 백룡각의 인원을 오십 명까지 늘려둔 상태입니다. 평균적인 무공 수위는 이류에서 일류. 대신 정보 수집이나 세작 활동 등에 관해선 은 소저와 풍운 형제의 지도하에 충분히 실전에 뛰어들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벌써 오십 명이라고?”

“네. 은 소저 말로는 이 정도면 그녀가 몸담고 있던 비선당 청해지부와 비교해 크게 꿇리지 않을 만큼의 정보 세력으로 거듭났다고 봐도 무방할 거라는데…….”

비선당 청해지부에서 영입해 온 은소화가 확신할 정도면 틀림없겠지.

“기대 이상이군.”

“그렇습니까? 도련님께서 만족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나, 은 소저. 그리고 풍운 형제까지. 다들 정말 노력했거든요.”

노력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결과로 증명한 왕삼에게 나는 술잔을 들이밀었다.

“고생했다.”

“고생은요. 도련님이 믿어주신 덕분에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해낼 수 있었습니다. 공 총관님께서도 정말 기뻐하셨어요.”

나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백의문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공손량이었다.

왕삼과 백룡각 인원들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봤을 테니 나보다 더 기뻐했을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백룡각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는 말에 목에 감기는 술맛이 유달리 달게 느껴졌다.

이후 왕삼과 몇 잔을 더 주거니 받거니 술을 기울일 때였다.

“제가 도련님을 뵙고자 하남까지 방문한 건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입니다. 백룡각주로서요.”

그 말에 나 또한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보고해.”

“예. 백룡각이 자리를 잡은 이후에 저희는 전력을 둘로 나눠, 하나는 도련님의 명령대로 도련님께 백색 가면을 판매한 괴노인의 정체를 추적해 왔습니다.”

내게 백색 가면을 판매한 괴노인.

기억대로라면 그 노인은 평범한 노점상에 불과했다. 우연한 만남이었고, 단순히 정체를 가릴 무언가가 필요하던 중에 검상이 새겨진 백색 가면이 눈에 들어와 구매하게 됐다.

당시 그 가면을 구매하고자 살펴보던 중에 노인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긴 했으나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겼었고.

‘그 가면이 지닌 사연을 알고 있는가?’

사연이 뭔가 하고 물으니 노인이 어물쩍 얼버무리기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면에 새겨져 있는 검상의 주인이 먼 과거의 월영련주라는 걸 깨닫고 난 뒤로는 마음 한편에 항상 의문이 피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가면의 주인은 누구고 사연이 무엇이며 이 가면이 내 손에 들어온 게 정말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하는.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니까.’

백의문의 시작이 되어주었던 가면이니만큼 나도 모르는 새에 점차 관심이 기울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노인은 찾았고?”

“아직 찾아내진 못했는데,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보고가 종종 올라오는 중입니다.”

“그렇군.”

“예. 사실 도련님을 찾아온 건 그 노인에 대한 정보가 아닌 다른 정보 때문입니다.”

“무슨 정보?”

노인의 정체는 아직이라는 말에 잠시 흥미를 잃었던 나는 이어지는 왕삼의 보고에 눈을 치뜰 수밖에 없었다.

“괴노인을 추적하는 전력 외에 나머지 백룡각 제자들은 대부분 공 총관님의 제안에 따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자 산서에 위협이 될 만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중 주요 감시 대상은 역시나 월영련이었고요.”

“그래서?”

“그러던 중에 최근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적지 않은 숫자의 세력이 은밀한 경로로 산서로 진격하고 있다는 정보에요. 공 총관님 말로는 어쩌면 월영련 놈들이 산서, 정확히는 산서의 유씨세가를 공격할 목적일지도 모른다면서…….”

말과 함께 왕삼이 내민 보고서를 살피던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삼아. 너는 이대로 백의문으로 복귀해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라. 성화상회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 유사시엔 백의문과 본가가 유기적으로 방비할 수 있도록…….”

“이미 공 총관님이 전부 지시해 두신 사안들입니다. 공 총관님께서는 너무 염려 마시라는 말과 함께 이 사실을 도련님을 통해 정천맹에도 알리는 게 좋겠다며 저를 이곳 하남으로 보내신 거고요.”

“알겠다. 짧은 시일 내에 나도 곧장 산서로 달려갈 테니 너희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도련님.”

유씨세가. 성화상회. 백의문.

그들이 있는 산서라면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월영련 놈들이 산서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깊은 분노가 치솟았다.

놈들의 목적이야 당연히 나이지 않겠는가.

산서를 미끼로 나를 처리하고자 이빨을 드러내려는 건가.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그 이빨을 송두리째 뽑아줄 생각이었다.

그 전에 이 사실을 묵가후에게도 전해주어야 하기에 나는 곧장 산서로 복귀하려는 왕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날렸다.

***

“대놓고 너를 노리는 수작이라고 판단되는구나.”

맹주전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

그곳에 나와 묵가후, 그리고 독고태문이 탁자에 둘러앉아 왕삼이 가져왔던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독고태문의 뒤를 이어 묵가후가 차가운 어조와 함께 입을 열었다.

“당연한 처사일 테지요. 야욕을 드러내기에 앞서 가장 먼저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치워버리고 싶었을 테니 말입니다.”

놈들로서는 태산파를 장악하려던 금월보를 시작으로 내게 적지 않은 계략과 음모가 저지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교주로 떠받들어지고 있을 단룡위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닌 존재가 검신을 제외하면 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우선하여 처리해 두는 게 놈들에게 있어서도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는 데 수월할 거라는 판단이 섰겠지.

“비선당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이런 정보를……. 백룡각이라고 했던가?”

보고서를 움켜쥔 채 놀란 눈으로 물어오는 묵가후에게 나는 덤덤히 대답해 주었다.

“기회가 닿아 작은 정보 세력을 구축해 뒀던 상황인데 운 좋게 놈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나 봅니다.”

“운이 좋아서였겠나? 산서의 위험을 대비하고자 했던 자네의 선견지명 덕분이겠지.”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런 정보 세력까지 마련해 두었단 말이냐?”

독고태문과 묵가후가 혀까지 내두르며 감탄하기에 나는 덤덤히 시선을 흘려 넘겼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좀 더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 저는 일단 산서로 떠날까 합니다.”

“그래야지. 맹의 입장에서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니… 총군사.”

“예.”

“맹의 이름으로 천군지사대와 복룡추호대, 그리고 백팔벽검대까지 산서로 지원 보낼 수 있게 준비시키도록.”

천군지사대면 맹주의 친위대인 최상위급 무력 부대였다. 거기에 복룡추호대와 백팔벽검대까지.

마교의 본거지를 수색하고자 천하 각지로 여러 무력 부대가 흩어져 있는 지금, 맹에 남아 있는 전력의 삼분지 일을 산서로 차출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무리한 결정이지 않냐는 눈빛을 보내자 독고태문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이제 정천맹뿐만 아니라 비단 강호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잠룡이란 별호가 정파 무림에게 있어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지금, 너와 네 가문이 있는 산서 역시 결코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되는 지역이기도 하지. 게다가 놈들의 이번 침공을 시작으로 새로운 정마대전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할 터. 첫 싸움의 기세를 움켜쥐어야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법 아니겠느냐.”

독고태문의 말에 묵가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딱히 반박할 여지 없는 사실이어서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이 정도의 전력과 함께 놈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했다는 이점을 살리면 싸움을 압도적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을 터였다.

이후 묵가후는 비선당을 통해 왕삼의 보고를 토대로 집요한 조사를 시작했고 머지않아 놈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파악하는 데 이르렀다.

그중에는.

“자네가 말했던 수라몽령시. 그 마물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네. 그 숫자만 자그마치 오백 이상.”

몽령시가 오백 구 이상일 거란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북해에 있던 몽마가 나와 비슷한 시점에 마교로 복귀했을 게 틀림없을 텐데.

“벌써 그 정도의 숫자를 움직일 정도의 저력을 갖추었다는 뜻이겠네요.”

“북해에서 자네가 마주쳤던 게 이백이라고 했으니…….”

수라몽령시뿐만 아니라 다시 그 숫자만큼의 일류 이상 무인들이 함께하고 있고 그 전력의 책임자로 보이는 듯한 인물이 전대 마교의 십장로 중 하나였던 인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나, 이 정도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 그렇지 않겠나?”

“예.”

기습적으로 공격당했다면 모르겠으나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이상 어림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산서에서 놈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저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마침내 내가 묵가후의 집무실을 벗어나 산서로 떠나려고 할 때였다.

“북해로 돌아갈 시기를 좀 늦춰야겠군. 우리도 함께 가겠네.”

뜻밖의 등장에 내가 문 앞에서 묵가후와 목소리의 주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분께서 선뜻 나서주시겠다고 하기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네.”

묵가후가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염흥방과 염혜주였다.

아직 북해로 돌아가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이번 소식을 듣고는 도움을 자처한 것이다.

북해빙궁이 정천맹과 동맹을 체결한 지금 두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교와의 싸움은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태도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묻자 염흥방이 히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네가 본궁의 은인임을 잊은 것인가? 은인이 싸움을 앞두고 있다는데 못 본 채 귀향할 수는 없는 일. 그렇지 않으냐?”

“맞아요, 할아버지. 마교 놈들에게 대 북해빙궁을 가지고 논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려줄 기회이기도 하고요.”

염혜주가 결의 가득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옅은 미소로 그들의 의지에 화답한 뒤 두 사람과 함께 곧장 산서로 출발했다.

산서를 지키는 건 물론, 정마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싸움을 확실한 승리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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