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7장 특작(2)
검마가 돌아가자마자 여기저기서 억눌러두었던 한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소룡단원들이 검마의 기세를 눈앞에 두고 잔뜩 긴장했던 탓이었다.
“저게 마교의 이인자라는 거죠? 늙어빠진 노인네 주제에 기세가 무슨…….”
검마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이 분했는지 장진악은 얼굴을 붉혔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검마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뒤늦은 입방정이 쏟아져 내렸다.
“검에 담긴 기세가 날카롭긴 하지만, 못 당해낼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래. 우리 부단주님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어.”
“검마보단 잠룡이지.”
“부단주님이 전력을 내보이면 검마 정도야…….”
물론 내 그림자 뒤에 숨어 입을 놀려대는 게 전부였지만.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런 녀석들을 한차례 둘러봤다.
“헛소리들 그만하고 주변이나 정리해라. 잔치는 끝났다.”
“…네.”
내 말에 녀석들은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술병과 술판의 잔해를 정리해나갔다.
와중에 남지학과 장진악이 다소 굳은 얼굴로 물어왔다.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형님?”
“내 말이. 정말로 혼자서 마교의 교주를 만나러 가겠다고?”
남지학은 ‘혼자’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자신들도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나는 남지학을 향해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계속해서 철룡문을 운영해 나가도록 해. 거기까지가 너희의 임무다.”
“형님. 하지만…….”
“마교엔 나 혼자 간다.”
계획대로 검마를 통해 교주 단룡위와 마주 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단룡위가 있는 곳이 마교의 본거지일 터.
정체를 숨기긴 했으나 어쨌든 마교의 본거지는 적진의 한복판이었다. 소룡단 녀석들을 그곳까지 끌어들일 순 없었다.
자칫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경우, 나조차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일 테니까.
“그리고.”
나는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이건?”
남지학과 장진악은 곧장 반응했다. 북해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었던 추종향. 그 추종향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만리추종향이었다.
이 또한 정천맹의 보고에서 털어온 물건 중 하나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추종향을 몸에 흩뿌렸다. 무색무취라 단순히 물을 끼얹었다는 느낌이었다.
“이걸로 내 위치를 추적하면 마교의 본거지까지 닿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떠나고 나면 곧장 이 사실을 총군사님께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내가 스스로 지표가 되어 마교의 본거지로 향하는 길을 안내한다면 독고태문과 묵가후는 장담한 대로 정천맹의 전력을 이끌고 총공세를 가해올 것이다.
‘놈들과 접촉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이후 자네가 할 일은 무조건 살아남는 것뿐이네. 알겠나? 살아남게. 정천맹의 전력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정천맹을 떠나 광동으로 향하던 날. 묵가후는 살아남으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예. 그럴 겁니다.’
나는 그런 묵가후를 향해 그러겠다고 약조했었고. 그게 내게 남은 마지막 임무였다.
***
마교의 교주 단룡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손에는 보고서 하나가 쥐어져 있는 채였다. 검마가 있는 광동에서 지급으로 보내온 보고서였다.
“철룡문주?”
광동에 등장한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사파 고수. 검마가 직접 작성했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그 실력이 검마에 버금간다고 했다.
그 사실이 무척 흥미로운 단룡위였다.
“검마에 버금간다라. 그런 고수가 사파에도 있었던가.”
믿어지진 않지만 검마가 직접 나서서 검증했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런 철룡문주가 마교를 따르기에 앞서 자신을 만나보고자 한다는 말에 단룡위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시기가 묘하긴 하지만…….”
딱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직접 보고 판단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그때, 단룡위 옆에 시립하고 있던 목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실력이 진짜이고 그자가 정말로 충성을 맹세하고자 한다면 본교의 품으로 거두는 게 좋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렇겠지?”
“검마가 직접 나서서 데려오겠다고 하니 일단 만나보시죠.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정황이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검마. 몽마. 목마. 일마로 이루어진 사대신마. 이들은 분명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고수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천맹과 비교하자면 전력의 질은 앞서도 수에서 밀렸다.
그 수를 채우고자 수라몽령시의 숫자를 늘려가면서 광동을 필두로 여러 사파 세력들을 긁어모으고 있는 게 아니던가. 그런 와중에 검마에 필적한다는 고수가 등장했다.
마교 입장에서는 크게 반길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교주인 단룡위가 진정 충성을 맹세할 만한 인물인지 만나보고 결정하겠다는 건방진 태도가 썩 거슬리긴 했다.
“그만큼 제 실력의 자부심이 높다는 거겠지.”
“기를 꺾어둘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일단 데려오라고 해. 내 앞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궁금하군.”
“충.”
대답과 함께 목마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나흘 뒤.
나는 약속한 대로 검마를 찾았다.
마교 광동지부. 원래라면 독고세가의 현판이 걸려있었을 자리에 마교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대신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 현판을 쳐다보는 사이, 정문을 지키고 서 있던 무인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보곤 조심스레 다가왔다.
“철룡문주십니까?”
“맞아.”
“검마 장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인의 안내를 받아 장원 안으로 걸어 들어간 나는 슬쩍 주변을 살펴보았다.
갖가지 복장을 차려입은 무인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염랑대. 환영비마대. 수라마대. 전생에 질리도록 겪어봤던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에게서 풍겨오는 경계심과 마기가 썩 거북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외원을 지나쳐 내원에 당도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지 검마가 그곳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로군. 혼자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일문의 문주임에도 호위무사 하나 대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나 보다 싶었다.
“굳이 제자들까지 이끌고 올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군. 그럼 거두절미하고 곧장 출발하세. 그에 앞서서…….”
검마가 검은 천 하나를 내밀었다. 용도는 금방 알아차렸다. 내 시야를 가리기 위함일 테지.
“이걸로 눈을 가리거라. 또한 혈 몇 군데를 짚어두겠다. 동의하느냐?”
혹시나 내가 소란을 피울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덤덤히 천을 받아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직접 천으로 눈을 가리는 사이에 검마가 손을 뻗어 내 몸을 두드렸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나가면서 무기력함이 엄습해왔다.
내공 한 톨 사용할 수 없도록 단단히 제압하는 모양새였다.
“가자.”
이어지는 검마의 명령에 다시금 낯선 손길이 내 양팔을 붙들었다. 놈들의 인도에 따라 어딘가로 이동한 나는 금새 마차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정면엔 검마. 내 양옆엔 절정고수임이 분명한 무인 두 명. 그들과 함께 마차 안에 올라탄 채, 나는 마침내 마교로 출발했다.
***
“술 좀 가져와.”
내 말에 주변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마와 함께 마교로 출발할지도 벌써 보름이었다. 그동안 나는 철저히 철룡문주를 연기했다.
거칠고, 괴팍하며, 건방지기 짝이 없는.
시야가 가려지고 혈을 제압당해 내공마저 쓸 수 없는 상황임에도 나는 기죽지 않고 당당히 행동했다.
“내 말 안 들려? 술 좀 가져오라고.”
“…여깄습니다.”
검마는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막무가내인 행동을 저지하지도 않았고 그의 수하들이 내게 들들 볶여 고생하고 있음에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만큼 나를 대우해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한차례 술을 들이켠 나는 검마의 기세가 느껴지고 있는 방향을 향해 물었다.
“이봐, 영감.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조만간 도착할 게다.”
“마차에만 죽치고 앉아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버틸 수가 있어야지. 속도 좀 높이라고.”
“지금도 충분히 전속력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계속 시끄럽게 군다면 아혈까지 제압할 테니 술이나 계속 처마시거라.”
“…….”
나는 내심 꼬리를 만 척 입을 다물었다. 와중에 검마의 말을 빌려 현재 내가 있는 곳을 추측하고 나섰다.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동하는 경로가 거칠어 더는 속도를 낼 수 없다.
‘광동에서 남하하다가 며칠 전부턴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부턴 쭉 산길만 골라 탔고. 그리고 지금은…….’
저 멀리서부터 풍겨오는 날 선 바람과 그 바람에 뒤섞여 있는 잔잔한 내음.
‘남해. 남해였나?’
어디에 숨어 있나 했더니 세외에 자리를 잡았던 건가. 그것도 전대 마교가 있던 십만대산과는 거의 정반대의, 끝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마차는 분명 남해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지금쯤이면 정천맹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게 분명했다. 내 몸에 묻어있는 만리추종향이 지나온 경로를 따라 방향을 인도해주고 있을 테니.
‘슬슬…….’
도착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은 나는 마차 안에 앉아 신중히 몸을 관조했다.
당장은 혈이 제압당해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전생에 익혀두었던 무공 하나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점혈해혈지법(點穴解穴之法)중 하나로서 천영검대 모두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인질로 사로잡혀 혈이 제압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고안된 무공으로…….
툭.
몸 안에서 나밖에 들리지 않을 시원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압당했던 혈도 하나가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여기까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검마에게 들킬 가능성도 있어서 나는 유사시에 억지로나마 내공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를 만들어두었다.
이 정도면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능히 빠져나올 순 있을 터였다.
그때.
한창 이동하던 마차가 점차 속도를 줄여가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내리거라.”
도착을 알리는 검마의 음성이었다.
뒤따라 나를 잡아끄는 손길에 이끌려 마차 밖에 내려선 나는 한차례 심호흡을 토해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나 홀로 적진의 한복판까지 끌려온 꼴이었으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려나.
곧장 교주인 단룡위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조사를 거친 후에야 간신히 마주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나로서는 놈들이 어떤 요구를 하든 간에 순순히 따르는 척하며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을 심산이었다.
정천맹의 전력이 나를 뒤쫓아 남해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며 살아남아야 할 테니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겉으론 여전히 철룡문주를 연기했다.
“씨팔. 드디어 도착이야? 도착했으면 당장 교주라는 작자의 낯짝부터…….”
퍽!
아.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기습적인 검마의 일격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얼얼한 고통과 함께 점차 정신이 흐려졌고, 나는 그대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