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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환생했다-148화 (148/150)

#148. 8장 멸마(1)

정석. 무결. 표본. 검마의 검은 마치 흠잡을 데 없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슁-

허공을 가르며 짓쳐오는 검의 궤적마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다’라는 감정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솔직히 검마라는 별호보다 검선이란 별호가 더 어울리는 검이었다.

태산파의 장문인인 동악검선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만일 검마가 정파의 인물이었다면 검선이란 칭호는 그에게 내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카강!

나는 그런 검마를 상대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초반부터 천일백야검법의 초식들을 흩뿌리며 전력을 다했다.

상대가 검마이기도 하고, 탐색전이나 수싸움을 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갇혀 지낸 지 보름이 지났으니까…….’

보름이면 이미 정천맹의 모든 전력이 남해로 향해 진격해 들어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대규모의 인원이 다 함께 움직이고 있을 테니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된다고 가정해 봐도 하남과 남해의 절반 정도는 지나왔을 거란 판단이 섰다.

문제는 교주인 단룡위 역시 검마를 제외한 마교의 모든 전력들을 이끌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을 떠났다는 데 있었다.

일전에 내가 팔천협에서 혈야검의 습격을 막아냈던 것처럼, 마교 놈들이 역으로 지형적인 이점을 차지한 채 먹잇감을 기다리듯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계획이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월영련부터가 간계에 능한 놈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계승한 현 마교 역시 온갖 잔꾀나 함정을 파놓는 데 능통할 게 분명했다.

거기다 정천맹 측에는 교주인 단룡위를 당해낼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거들먹거린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놈은 나밖에 감당할 수 없다. 검신 영감이 여전히 병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철룡문주의 모습으로 그놈을 만나려고 했던 거였는데.’

철룡문주로서 놈과 마주한 뒤 기습이든 뭐든 감행하여 팔 한 짝 정도는 잘라낼 심산이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든 도망치고 살아남으면서 시간을 끌다가 정천맹의 전력과 합류하여 마교 놈들을 궤멸시키는 게 이상적인 상황이라…….

“노부를 눈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겐가?”

파밧!

“큭!”

왼쪽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고통에 나는 황급히 상념에서 깨어났다.

검마의 검은 그걸로도 모자라 연신 내 전신을 두드리기에 바빴다.

우웅!

순간 내 검 끝에서 한줄기 검강이 분출되어 검마의 가슴께를 노렸다.

“흡!”

위험을 감지한 검마가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여 황급히 공격을 막아내는 게 보였고.

콰-앙!

굉음과 함께 주르륵 밀려난 검마가 입가에 맴도는 핏물을 퉤, 뱉어내더니 나를 노려봤다.

“유진휘라는 놈이 전대 천영검대주의 유지를 이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했지만?”

“네놈의 얼굴만 가려놓으면 그자가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내심 뜨끔한 나는 도리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그래. 칭찬이다. 네놈이 그자와 동일 인물일 리는 없지. 현 교주님처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물이 아니고서야.”

…그러고 보면 나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긴 했네. 한번 죽었다 살아났으니 말이야.

검마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의 통찰력에 스스로 감탄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굳이 그 사실을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사실만은 전해주었다.

“솔직히 말해줄게. 지금의 나는 전대 천영검대주를 뛰어넘었다.”

“…….”

“안 믿겨?”

쉭!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화살처럼 퉁겨냈다.

푸푸푹!

일직선으로 허공을 가로지른 검은 검마와 나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적들 몇몇을 꿰뚫고 지나갔다.

순간 주변에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사이에, 나는 곧장 내공을 끌어올려 검령백분의 초식을 발휘했다.

이기어검의 경지를 내포한 그 초식은 순식간에 주변 적들의 병장기를 가로챘다.

촤라라락!

허공으로 떠오른 수십 자루의 검이 일제히 검마를 가리키자, 그제야 검마의 얼굴에 낯빛이 드리웠다.

“…이기어검?”

***

“검마 하나로 충분한 겁니까?”

목마의 물음에 교주 단룡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룡문주가 실은 정천맹의 끄나풀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지 오래였고 그런 철룡문주의 정체마저도 얼추 추측하고 있는 상태.

“유진휘. 제 목숨까지 내걸고 이런 짓거리를 벌일 놈이 그놈 말고 누가 더 있겠느냐.”

“그놈의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유진휘 하나 때문에 산서로 진격해 들어갔던 혈야검이 사망했고 성동격서의 첫 번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모르긴 몰라도 유진휘의 손에 혈야검은 물론이고 당시 파견을 보낸 천 명의 마인과 수라몽령시 중 반 이상이 몰살당했을 거라 장담할 정도였다.

그런 사내를 검마가 감당해낼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검마 말고도 수라마대의 마인 일부가 함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때 단룡위가 목마를 슬쩍 돌아봤다.

“검마의 무위가 어느 정도라 생각하지?”

“인극을 넘어 지극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지 않겠습니까? 저를 포함한 다른 사대신마들과 마찬가지로.”

“그럼 본좌는?”

“교주님께선…….”

목마가 단룡위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숙였다.

느껴지는 심정은 단 한 가지였다.

모른다.

교주인 단룡위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지극의 초입에 올라 있는 자신조차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설마.

“처, 천극. 설마 교주님께서 천극의 경지에 오르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실상 천극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를 만나본 적이 있어야지. 하지만 단순히 지극의 경지는 벗어났다. 이런 기준에서라면 천극이라 부를 수도 있는 거고.”

목마로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단룡위의 무위가 아득한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단룡위가 부연했다.

“그리고 검마, 그놈은 그런 내 일검을 막아냈다. 그조차도 실력을 전부 내보인 게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사대신마라도 서열을 매긴다면 검마야말로 가장 최상위에 서 있을 놈이란 뜻이지.”

단룡위의 설명에 목마가 한차례 몸을 떨었다. 같은 사대신마이기에 검마와 자신의 실력이 엇비슷할 줄 알았다.

그저 전대 마교에서부터 마교의 이인자 소리를 듣던 그였기에 자연스럽게 이인자 지위를 계승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한데 무늬만 이인자가 아니라 실제 실력마저도 그 정도였음인가.

“그리고 본좌는 유진휘 그놈과도 실제로 몇 번 마주한 적이 있다. 그놈의 실력은 검마와 엇비슷해. 그런 검마 곁에 수라마대의 삼백 마인이 함께하고 있으니…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다.”

“예. 교주님의 혜안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단룡위의 확신에 목마는 근심을 덜어놓으며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저 멀리 마교 본단의 성채가 보였다.

지금쯤 한창 검마와 유진휘가 승부를 겨루고 있을 그곳이었다. 머지않아 유진휘의 무덤이 될 장소이기도 했다.

다시 전방을 주시한 목마의 시야에 이번엔 하남이 있는 북쪽 대지를 쭉 둘러싸고 있는 청루산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천맹의 전력이 남해로 진격해 오려면 저 청루산맥을 지나쳐 와야 한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남하해올 테니 하릴없는 선택일 터였다.

그런 정천맹의 전력을 집어삼키기 위해 단룡위를 위시한 마교의 모든 전력이 청루산맥 일대를 장악하고 있을 계획이었다.

기습을 가할 수 있다는 이점은 물론이고, 고지대를 미리 점령해 놓음에 따라 여러 계략과 함정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단룡위는 그러한 목마의 작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정천맹의 전력과 정면으로 정정당당히 부딪치길 원했으나 기나긴 설득 끝에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단룡위의 무위가 천하제일에 가깝긴 하지만, 중원 평정을 위해선 전력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역시 중요했으니까.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는 강호를 집어삼킬 수 없다.

하지만 단룡위 같은 고수를 자신이 보좌하고, 마교의 전력이 그를 뒷받침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대 마교마저 실패했던 마도천하.’

진격해 오는 정천맹의 전력을 짓밟고, 남아 있는 정파 세력을 중원에서 몰아낸 뒤, 사파 무림을 마교의 이름 아래 흡수하게 된다면, 그때 중원은 마교의 세상이자 단룡위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한 미래를 꿈꾸는 목마의 눈빛에서 묵빛 안광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를 이어받은 마교 전력들 역시 단룡위를 위시한 채 진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캉! 카가가강!

수십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얽히고설켰다. 이기어검으로 조종되는 검들이었다.

나는 내력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정면에 서 있는 검마를 응시했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잔뜩 내공을 끌어올린 채 이기어검의 경지를 풀어내고 있었다.

“네놈만 이기어검의 경지를 깨우쳤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검마의 조소에 나도 따라 웃었다.

“그 부분은 사과하지. 영감을 과소평가했어. 명색이 마교의 이인자인데 말이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조종하는 검들을 움직이며 혈전을 벌였다.

촤악! 촤자자작!

“크악!”

“으아악!”

그 여파로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마인들을 뒤덮을 정도였다.

“괜한 방해만 되니 더욱 거리를 벌리거라!”

검마의 일갈에 삼백 명쯤 되어 보이는 마인들이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여전히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유지하는 건 기본이었다.

나는 그 모든 적을 한차례 둘러봤다.

현재 내 단전에 남아 있는 내공의 양.

예상보다 무위가 높았던 검마의 실력.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삼백 명의 마인.

그 모든 환경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때렸다. 마치 미래를 엿보듯 자연스럽게 이다음 벌어질 광경들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 속에 몸을 담았다.

후웅!

천일백야검법의 후반부 초식 중 두 번째 초식인 무령지유(無靈之有).

순간 내 주변으로 검의 형상을 띤 검강 덩어리가 하나둘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 무형검!”

그러자 나와 검마의 싸움을 지켜보던 적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기어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가 바로 무형검이었으니까.

그리고 무령지유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수히 피어오른 무형검마저 이기어검의 경지로 조종하는 초식이었다.

형체가 있는 검. 형체가 없는 검.

그 모든 검들이 순식간에 검마를 에워쌌다.

팟! 파바바밧!

“큭! 네놈-!”

검림(劍林) 속에 집어삼켜진 검마는 전신이 난도질당하는 와중에도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주시했다.

게다가 허공을 휘젓고 있는 무형검 하나를 제 손으로 낚아채기까지.

실상 무형검의 경지를 깨달은 자가 아니면 무형검 자체를 다룰 수가 없는 만큼,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한데 검마는 기어코 무형검을 손에 쥐었다.

내가 빚어낸 무형검 중 하나가 검마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순간이었다.

“네놈을 죽이는 게 노부가 맡은 임무다.”

씹어뱉듯 말하는 목소리에서 체념과 결의의 감정이 동시에 묻어 나왔다.

동귀어진을 각오한 태도였고 그런 검마가 수백 개의 상처와 핏물을 뒤집어쓴 채 내게 일직선으로 짓쳐들어왔다.

싸움 초반엔 검선처럼 유려한 모습이었다면 지금 내게 달려드는 검마는 별호에 어울릴 정도로 악귀 같은 형상을 한 채였다.

그러곤.

슁!

한줄기 빛살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간 검마가 우뚝 멈추어 섰다.

“…노부의 반응마저 앞서 내다본 것이냐?”

“맞아.”

“설마 네놈도 지극의 경지를 이미 벗어났…….”

쿨럭!

검마가 말을 잇지 못하고 핏물을 토해내며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이어 그의 목 위로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푸확, 핏물이 솟구치면서 그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내렸다.

나는 덤덤히 검마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대답했다.

“그래. 지극의 경지는 이미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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