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3화 (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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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용모가 S급이라니

오디션이라, 대체 그게 무엇인고?

새로운 단어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군자는 이내 여유롭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조연수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셨다. 모르는 단어는 이 요술 두루마리로 검색하여 뜻을 찾을 수 있다고. 요술 두루마리 사용법도 조금은 배워 두었지.

“오··· 디··· 끄응, 시옷이 어디 있는지···.”

아직 스마트폰 조작이 서툰 군자였으나,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1분 20초 만에 ‘오디션’이라는 단어를 완성해 냈으니.

덕분에 오디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가수나 배우를 뽑기 위한 실기 시험. 그것이 오디션의 사전적 의미였다.

“역시, 과거 제도가 갖추어져 있구나!”

그러면 그렇지. 군자는 무릎을 탁 치며 웃었다. 문과나 무과 뿐만 아니라 예과(藝科) 역시 마련되어 있다니! 역시 옳게 된 세상이렷다.

그러나 군자의 궁금증은 아직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겨우 ‘오디션’을 검색했는데, 이번엔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무려 열 글자다.

“끄으응···.”

그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천천히 써 나가면 안 될 것도 없지 않느냐.

“아··· 이··· 돌··· 육··· 회? 성게··· 아니, 아니다! 아이돌 육회 성게알 비빔밥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화면 위에는 엉뚱한 문장이 떠올랐다. 겨우 키보드를 다루는 방법만 알았지, 자동완성 기능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덕분에 뜻밖의 음식 사진만 잔뜩 구경했다. 그 와중에 음식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이 더 속이 상했다.

“열 글자는 무리구나. 이건 누가 온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야.”

아무래도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을 검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건 다른 이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군.

이제 마지막 의문만 남았다.

[보상 : 1포인트]

보상이라,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궁금증이 떠오른 순간, 상태창이 다시 형태를 바꾸며 새로운 문자열을 출력했다.

[사용자 : 유군자]

[용모 : B]

[노래 : D]

[춤 : C]

[매력 : A]

“으음?”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문자일까. 처음 보는 상형문자에 당황하고 있던 사이,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왔다. 군자가 암살자로 착각했던 간호사. 그래, 어쩌면 저 분은 답을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주사 맞으실게요.”

“암살··· 아니, 간호사 님.”

“네에, 말씀하세요.”

“오늘은 용감하게 주사를 맞겠습니다.”

“어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대신 뭐 하나만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뭘요?”

군자는 대답 대신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알파벳 모양을 그려 보였다.

“혹시 이것이 무슨 문자인지 아십니까?”

“예?”

“역시, 암살자 님께도 어려운···.”

“알파벳인데요?”

“알파벳?”

“영어 문자요.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

간호사의 유창한 알파벳 나열에, 군자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제가··· 제가 대 현자를 몰라뵈었습니다.”

“아니, 알파벳 좀 아는 게 무슨···.”

간호사는 부끄러워 하며 겸손을 떨었지만 군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지의 영토인 서방, 그곳의 문자 체계를 알고 있다니! 대 현자가 틀림없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럼 혹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아, 그럼요. 당연히 알죠.”

“!”

거 봐라, 역시 대 현자가 맞구나!

군자는 신이 났다. 이런 병원에서 이토록 학식이 뛰어난 분을 만난 것도 인연이로다.

현자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주기까지 했다.

말씀에 따르면,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이란 ‘방송국’이라는 곳에서 치르는 오디션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 오디션에서 합격한 자는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아이돌로서 활동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은 아이돌로 향하는 최상의 등용문인 셈이다.

“그러니까 성균관 유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말씀이지요?”

“어어, 그런가? 그럴 걸요?”

그렇다면 정말 너무도 훌륭한 기회가 아닌가.

이제야 상태창의 임무가 이해된다. 역시, 창이는 단 한 번도 헛된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현자께서는 친절하게 알파벳의 종류까지 가르쳐 주셨다. 알파벳이란 총 스물여섯 자로 이루어진 서양의 문자다. 이미 수천 개의 한자를 외운 군자에게, 스물 여섯 자 정도 더 외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호오, 호오오.”

알파벳까지 깨우치니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상태창에 떠오른 저 문자들은, 내 노래와 춤 등을 평가하는 등급이로구나.

노래, 춤 모두 자신 있었지만 특히 노래에 더 자신 있는 군자였다. 그가 민요를 부르거나 창을 할 때는 모두가 기립하여 박수를 치곤 했으니까.

그런 노래가 D등급이라는 건, 분명 알파벳이 뒤로 갈수록 더 좋은 등급이라는 뜻이겠지.

“현자님, 하나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현자는 아닌··· 에휴, 됐다. 뭔데요?”

“알파벳으로 등급을 평가할 때, 가장 좋은 등급이 무엇입니까?”

“음, 보통 A죠?”

“!?”

간호사의 대답에, 군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더냐. 가장 자신있었던 노래가 최하 등급이라니?

기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상태창의 평가는 뭇 대중의 시선보다 더 가혹한 것 아닐까?

이 또한 현자님께 여쭤 보면 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외모 정도는 현자님께서도 충분히 평가하실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을 먹은 군자는 간호사에게 바짝 다가갔다.

“엄머.”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어, 그, 그래요.”

“알파벳으로 등급을 매겼을 때, 제 외모는 어느 정도일지···.”

“외모요?”

군자의 얼굴이 간호사의 코앞에 놓였다.

“어, 얼평은 좀···.”

“부탁드립니다, 현자님.”

오랜 시간 방구석 폐인 생활을 했기에 딱히 꾸며지지 않은 외모. 그러나 수려하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깔끔한 피부, 모난 데 없는 얼굴형은 누가 봐도 잠재력이 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그냥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잘생겼다.

침을 꿀꺽 삼킨 간호사는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S요, 무조건 S!”

“!?!?”

아니, S라고? 군자는 당황해 마지않았다.

A, B, C, D··· 헤아리기도 힘들구나. S까지 가려면 대체 몇 계단이나 떨어져야 하는 것인가.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창이는 B등급이라고 해 주었는데,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창이의 평가가 후한 것이었구나.

“알겠습니다···.”

“예, 그, 그럼 가 볼게요.”

홀로 남겨진 병실, 군자는 우울한 표정으로 상태창에게 말을 걸었다.

“창이야, 그래도 너 밖에 없다···.”

···우웅···.

대답하듯 공명하는 상태창. 그러나 마냥 우울해 할 것 없다. 임무를 완수하면 가무(歌舞)의 기량이 올라간다. 이미 300년 전의 조선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포인트라는 걸 쌓으면 노래와 춤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것이겠지?”

···우우웅···.

“좋다, 외모는 부족하더라도 실력으로 감동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

···우우우웅···.

“···그래도 조금 울적하구나···.”

병실에서의 마지막 날, 실력파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군자였다.

* * *

퇴원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원의 모든 의사가 군자의 회복세를 ‘기적’이라 평했다. 더 이상 치료할 곳이 없으니, 병원에서 머물 이유도 없었다.

퇴원일에는 모든 간호사들이 병원 입구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했다. 모두 군자의 퇴원을 진심으로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유군자 씨, 잘 가요!”

“건강해야 해요!”

“얼굴 S급이라고 한 거 정정할게요, 지금 보니까 SSS급이네!”

···S가 하나인 것도 좌절스러웠는데, SSS라?

끝까지 외모로 사람을 놀리다니, 참으로 짓궃은 대현자구나.

“자, 이제 집으로 가자.”

병원을 나온 후, 희한하게 생긴 탈것을 타고 유상헌과 조연수 내외의 집으로 향했다. 병원에도 신기한 것이 많았지만 길거리는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놀라웠다. 눈에 스치는 모든 것이 다 신세계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두 사람의 거주지에 다다랐다. 단지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군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이건 또 무엇이냐!

“이, 이렇게 큰 열녀문은 처음 봅니다!”

“열녀문? 푸하핫.”

“군자야, 이건 열녀문이 아니라 아파트 정문이야.”

“예?”

“이제 열녀문 같은 건 없어졌으니 안심하라구.”

조연수의 말에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군자였다. 300년 전을 살아가면서도 열녀문 제도가 꽤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열녀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 아래를 지나가면서도 마음이 후련했다. 이것 참, 볼수록 옳게 된 세상 아닌가.

그렇게 마차에서 내린 뒤, 귀가 멍멍해지는 상자에서 내리자 드디어 집이 나왔다. 군자에겐 생소한 장소였지만, 노란 조명과 따스한 분위기는 마치 그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유상헌과 조연수는 식사부터 준비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을까?”

유상헌의 제안에, 군자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식사를 하다니.

생각해 보니, 숙부에게 입양된 뒤로는 어른과 함께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숙부가 식사를 끝낸 뒤, 남은 잔반이 그의 차지였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다 보니 이젠 그 잔반 식사가 당연한 것이 됐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불안했다. 웃어른과 함께하는 식사예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창이야, 도와 다오!

군자가 패닉에 빠진 사이, 어느새 식탁은 음식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자, 먹자!”

“군자야, 많이 먹어.”

유상헌과 조연수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지, 진지 잡수십시요.”

일단 꾸벅 인사는 했지만 팔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다간 젓가락질 하는 방법까지 까먹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군자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유상헌과 조연수가 동시에 시큰해진 코로 눈가를 비비고 있었다. 누가 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저, 괜찮으신지···.”

“으응, 괜찮아.”

이 분들은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걸까. 내 식사 예절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걱정되는 마음에 질문을 건네 보았다.

“혹여 제 식사 예절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라면···.”

“뭐? 아니, 절대 아니야!”

“식사 예절이 뭐가 중요하겠니.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 잘 먹니?”

“이-히!”

“···?”

군자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울다가, 젓가락질 무용론을 주장하다가, 이히? 저 괴상한 추임새는 또 무엇인가.

“그냥, 너랑 같이 밥 먹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

“예?”

“넌 기억 못 하겠지만, 이렇게 같이 식탁에 앉아 본 게 얼마 만인지···.”

“···.”

“군자야, 너무너무 고맙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같이 밥 먹자?”

충격이었다.

함께 밥 먹는 것이 즐거워서 흘린 눈물이라니. 마치 커다란 징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만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숙부와 함께 살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 그런데 이 사람들은 고작 일주일 만에 그 오래된 감각을 떠오르게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가 더 고맙지.”

“어서 먹어. 다 식겠다.”

조연수의 말에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입에 넣어 보았다.

“!”

맛있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이나 맛있었다.

세상에 이런 산해진미가 다 있나. 두 분 다 수라간 출신임이 분명하다. 군자는 자신도 모르게 두 사람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맛있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

군자의 웃음에, 유상헌과 조연수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문득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음을 느낀 군자였다.

아마도 저 미소는 내가 아닌, 이 몸의 원래 주인을 향한 미소겠지. 그가 원한 빙의는 아니었으나, 괜한 부채감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가문의 사람으로 살아 보는 건 어떨까.

이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저어···.”

“음?”

“제가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얘는, 당연하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고아였던 군자에게 새로운 부모님이 생긴 순간이었다.

* * *

유상헌과 조연수는 준비된 부모였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들을 위해, 두 사람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딱 하나, 오토바이 사 주는 것만 빼고.

다행히, 군자는 오토바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당돌하게 용돈을 요구했다.

“어머니, 아버지.”

“응, 군자야.”

“소자, 용돈이 조금 필요합니다.”

돈이라, 그래. 오토바이 살 정도의 돈만 아니면 얼마든 줄 수 있지.

“그래, 얼마나 필요하니?”

“으음, 구천 오백···.”

“구, 구천 오백만 원?”

“아닙니다.”

“음?”

“구천 오백 원만 있으면 됩니다.”

“그, 그러니?”

대체 그 돈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건네자, 군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두 사람에게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고작 구천 오백 원에 그랜절이라니.

갑자기 아들의 가성비가 너무 좋아진 것이 당황스러운 두 사람이었다.

“그 돈으로 뭘 하려고 그럴까요?”

“글쎄요, PC방이라도 가려는 건가.”

“기다려 보면 알 수 있겠죠.”

“예, 우리 이번엔 정말 차분하게 기다립시다.”

“그럼요. 그래야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두 사람은 군자가 9500원으로 무엇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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