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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와 절개의 상징을 그대에게
세 명의 소녀는 홍당무 같은 얼굴로 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일까,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용건이 있어 보이는데 말을 안 꺼낸다. 대신 서로 팔뚝을 때리다가, 숨이 넘어갈듯 웃다가, 아주 난리가 났다.
웃는 걸 봐선 어디가 아픈 것 같진 않은데.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결국 군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뉘신지.”
“꺄하항!”
“헙-.”
별안간 뻥 터져 나온 웃음소리. 하마터면 군자도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감정 변화가 참으로 급격한 자들이로구나.
그 사이, 떠밀려 나온 소녀 한 명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맞죠?”
“무엇 말씀이신지.”
“꺄하하핫-!”
“아니, 아까부터 왜 자꾸···.”
“말투 너무 웃겨요!”
이 시대에 온 뒤로, 사람들은 종종 군자의 말씨에 웃곤 했다. 그러나 고쳐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평생을 사용해 온 말씨인데 어찌 쉽게 바꾼단 말인가.
“용건이 없으면 그만 가 보겠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그럼 왜···.”
“그 아육시, 말 타신 분 맞죠?”
“!”
소녀의 말에 군자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이 소녀가 그것을 어찌 알았단 말이냐.
“그 날 저를 보셨습니까?”
“아뇨, SNS에서 봤어요!”
“애수애내수? 그것은 또 무엇인지.”
“푸하하, 이 오빠 컨셉 미쳤나 봐.”
“야, 그냥 알려 드려!”
소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SNS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솔직히 전부 알아듣진 못했으나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했다. SNS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터 같은 곳이구나. 소녀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엔 정말로 말을 탄 군자의 모습이 있었다.
“이거 오빠 맞잖아요, 그쵸?”
군자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일로 화제에 오르다니,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군자가 얼굴을 붉히자, 소녀들이 또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참 웃음도 많은 자들이로고.
“잘생겼어요!”
“실물이 더 나아요!”
“오빠 아육시 나와요?”
“또 말 타요?”
말문이 트인 소녀들이 질문 폭격을 시작했다. 이거 원,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그러나 어지러운 와중에도 군자는 질문 하나하나 성의 있게 대답해 주었다. SNS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친절한 소녀들 아닌가. 내겐 스승과 다름없다.
질문 공격이 끝나자 소녀들이 군자에게 스마트폰을 불쑥 내밀었다.
“오빠, 사진 찍어 주세요!”
소녀들의 부탁에 군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SNS는 몰랐지만 사진 찍는 방법은 어머니께 미리 배워 두었지.
“나, 사진 찍는 방법 압니다.”
“꺄하핫, 뭐래 진짜!”
“빨리 찍어 줘요.”
이런, 별로 놀라지 않는구나. 꽤나 어렵게 배운 기술이거늘.
군자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무엇을 찍으면 좋을까. 마침 먼 발치에 작은 대나무 숲이 보였다.
찰칵-.
“오빠?”
“지금 뭐 하시는···.”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지요.”
“예?”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한 번씩 보면 참으로 좋답니다.”
“꺄하핫, 아니 오빠! 우리랑 같이 찍어 줘야죠!”
“아아-.”
소녀들의 요청을 들은 군자가 이마를 짚었다. 이런, 내가 또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게로구나.
그들을 대나무숲 앞으로 인도한 뒤, 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자, 찍습니다.”
“저기, 오빠?”
“하나, 둘, 셋.”
“저기요?”
찰칵-.
이번엔 제대로 대나무 숲 앞에 소녀들을 세워 놓고 촬영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기를.”
“?????”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니, 참으로 선비다운 마음가짐이로고.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돌아서는 마음이 뿌듯한 군자였다.
* * *
그 날 저녁, 대형 커뮤니티에 인증샷을 포함한 글 하나가 올라왔다.
[오늘 아육시 말탄 선비남 만남ㅋㅋㅋㅋㅋㅋ(인증有)]
[ㅋㅋㅋㅋㅋ선비남 ㅈㄴ웃김ㅋㅋㅋㅋㅋㅋ]
[얼굴은 개존잘인데 말투 개 돌아잌ㅋㅋㅋㅋㅋ]
[넘 존잘이어서 말도 못걸고 쳐다보고 있눈데]
[뉘신지?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컨셉 돌았음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 [사진]
[이게 선비남이 찍어준 사진임]
[첨엔 대나무만 찍어주길래 같이 찍어달랬더니]
[ㅅㅂ대나무 앞에 우리 세워놓고 우리만 찍어줌ㅋㅋㅋㅋㅋㅋ]
[대나무도 ㅈㄴ우리엄마처럼 찍엌ㅋㅋㅋㅋㅋㅋㅋ아]
최근 화제가 됐던 ‘아육시 선비남’을 목격했다는 시민들의 목격담. 사진 두 장이 첨부된 짧은 글이었지만, 벌써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에이;; 뻥치지맠ㅋㅋㅋㅋ]
[이렇게 해놓고 인증샷이라고 하면 누가 믿음ㅋㅋㅋㅋ]
[인증샷이면 같이 찍었어야지]
[몰라ㅅㅂㅋㅋㅋㅋ이렇게 찍고 튄걸 우리보고 어쩌란말임]
[근데 실화면 개웃기긴하닼ㅋㅋㅋㅋㅋㅋ]
[대나무 찍었댘ㅋㅋㅋㅋㅋㅋ컨셉진짜 미침ㅋㅋㅋㅋ]
[진짜 조선시대에서 온거 아님?ㅋㅋㅋㅋ]
[아육시 오디션장도 말타고 갔다며;;]
[그거 영상 봤음? 기마자세 ㄹㅇ예쁨ㅋㅋㅋ]
[오 나 못봤는데 올려주라]
최초로 올라온 목격담 게시물은, 다른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지며 신빙성이 더해졌다.
[나도 오늘 여기 지나갔는데 이거 본듯ㅋㅋㅋ]
[ㅋㅋㅋㅋㅋㅋ진짜?ㅋㅋㅋㅋㅋ]
[ㅇㅇ 지하도 가는데 어떤 존잘남이 대나무숲 앞에 여자들 세워놓고 사진 찍고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머하는건가 했는뎈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사람왜그랰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그러는이유가있을거아냨ㅋㅋㅋㅋ]
[그와중에 자기 얼굴은 지킨거봨ㅋㅋㅋㅋㅋㅋ]
[아육시 나오는거임? 나 ㅈㄴ관심갈라그럼]
[오디션장 말타고 왓자낰ㅋㅋㅋㅋ서쿠니가 무적권뽑앗지]
[서쿠니 돌아이 콜렉터인거 몰름?ㅋㅋㅋ]
[아 아육시 본방 너무 오래남앗긔ㅠㅠ]
[아니근뎈ㅋㅋㅋ 리얼 개잘생김]
[일반인 오디션 참여한거 보니까 개인연생으로 나오나봥]
[아 나 말탄거 보고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쳣엌ㅋㅋㅋㅋ]
[ㅋㅋㅋ따그닥딱드가다따그가따그닥따그닥ㄷㅋㅋㅋㅋㅋㅋㅋ]
‘아육시 선비남’이 또 화두에 오르자, 오디션 당일 영상도 다시 공유됐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쓴 군자가 하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영상.
40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었음에도, <아육시> 팬들은 스쳐 지나간 옆선을 캡쳐하며 군자의 얼굴을 유추했다.
[옆선은 개사기다ㅠㅠㅁㅊ장두형임]
[콧날 돌았음진짴ㅋㅋㅋ비주얼 갓벽]
[아근데또몰름ㅋㅋㅋ제대로 얼빡샷 봐야 알지]
[인스타 사진으로 사기치는 애들 생각해버셈]
[아 나랑 파주 과속카메라 뜯으러갈사람? 선비남 얼굴좀 제대로 보게;;]
[ㄴㅋㅋㅋㅋㅋㅋㅋㅋ도랏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총괄 김석훈 PD는, 이 모든 바이럴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좋고.”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화제성이다. 심지어 시청률보다도 중요하다.
화제성이 높아야 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파생 프로그램이 함께 잘 되고, 궁극적으로 데뷔할 그룹의 스타성이 올라간다.
초반 화제성은 보통 데뷔 경험이 있는 참가자, 혹은 배우 출신 참가자가 담당한다. 그러나 일반인 참가자가, 이렇게 뜬금없는 방법으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끌어올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방영은커녕 출연자 합숙도 하기 전에!
“유군자, 이 사랑스러운 놈.”
당장 일반인 오디션 당시 촬영한 군자의 노래 영상을 편집하여 업로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간 특혜 이야기가 나올 것이 뻔했다.
다행히, 별다른 추가 떡밥 제공 없이도 군자에 대한 궁금증은 순조롭게 증폭되어 갔다. 이 정도라면 일반인 오디션은 완전히 남는 장사다. 이렇게 훌륭한 초반 카드를 뽑게 될 줄이야.
물론, 군자가 끝까지 살아남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트레이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양풍의 창, 민요를 멋지게 구사했지만 아이돌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춤 역시 전혀 검증이 되지 않았고. 아이돌 연습생 경험도 전무하다. 게다가 그렇게 괴상한 기믹을 잡은 놈이, 다른 연습생들과 잘 어울릴 것 같지도 않다.
본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결국 탈락할 수밖에 없는 참가자.
그러니 초반에 최대한 단물을 빨아야 한다.
타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힙통령’으로 엄청난 초반 화제성을 담당했던 참가자 정문복처럼.
“크크, 그럼 군자는 ‘창통령’ 되는 건가아~?”
폐급 아재개그를 내뱉으며 김석훈이 씨익 웃었다.
총괄 PD는 프로그램 편집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그의 결정에 따라, 어떤 출연자는 더 많은 분량을 갖고 또 어떤 출연자는 아예 사장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 강력한 권력을 지닌 총괄 PD의 눈에, 군자가 쏙 들어왔다.
“우리 군자, 탈락 전까지 잘 지내 보자. 알았지?”
* * *
김석훈 PD가 저급 아재개그를 구사하며 혼자 낄낄대고 있던 사이.
군자는 소녀들이 알려준 SNS라는 것을 구경 중이었다.
마침 SNS ‘트위티’엔 군자가 찍어 준 대나무 사진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오오, 대나무 사진을 게시하였구나!”
사진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보는 곳에 걸어 두다니. 참으로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저렇게 해 놓으면 본인들의 사진첩은 텅텅 비어 버릴 것인데.
“참으로 베풀 줄 아는 소녀들이다.”
아직 디지털 사진의 복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군자였다.
그렇게 한참 SNS를 구경하다 보니, 그 소녀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발견했다.
[아육시 선비남 목격담 최종정리본]
[암툰 오늘 넘나 신기햇움]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어도 됨ㅋㅋㅋ]
[선비옵 컨셉이 좀 신박하긴 했는데 일단 존잘이고]
[비율 미쳤고 ㅈㄴ친절하곸ㅋㅋㅋㅋㅋ]
[솔까 첨엔 그냥 선비남 본체 발견해서 신기해서 들이대 본 건데]
[말하다 보니까 ㅁㅊ매력터짐ㅋㅋㅋㅋㅋ]
[대나무사진 인화해서 집에 걸어놓을거]
[아육시 방영하면 더 갓며들듯ㅋㅋㅋㅋ]
“흐음,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이것이 조선 말인가, 아니면 외계어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 투성이였지만, 마지막 문장 몇 개 만큼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완전 선비남 팬 됨]
[선비옵한테 SNS 가르쳐 줬는데ㅋㅋㅋ]
[혹시 이거 보고 있음 전해주고 싶음]
[오빠 사랑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팬···.”
팬이라. 군자도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지지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 아이돌에겐 팬 만큼 힘이 되고 든든한 존재도 없다고 들었다.
언젠가 아이돌이 된다면 그도 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팬이 생길 줄이야.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간질간질했다. 트레이너들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팬··· 팬이라.”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구나.
그 땐 대나무 뿐만 아니라 매란국죽 사군자를 모두 찍어 주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특별 업적 달성.]
“음?”
[‘첫 번째 팬’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 상태창이 퍼뜩 떠오르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