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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도 뒤집어 놓으셨다
유상헌과 조연수는 보기보다 강한 부모였다.
지난 20년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사업체를 운영하며 수많은 고비를 넘어 왔다.
경기 불황도, 코로나 쇼크도, 심지어 동업자의 배신도 그들을 무릎꿇게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뜻밖의 공격에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소중한 아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얍! 얍!”
길다란 팔다리를 뚝딱거리며, 밑도 끝도 없이 개성 넘치는 동작으로.
어떡하지?
웃음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춤이 시작된 지 5초 만에 카메라를 든 조연수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유상헌은 이미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춤이다.
그냥 못 추는 춤이라면 이만큼 웃기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뭔가가 기괴했다.
뚝! 딱! 스르륵-.
팔다리와 몸통의 움직임은 엉망진창인데, 손끝은 예쁘게 살아 있다.
사라락, 스윽, 슥-.
또 스텝을 밟는 발의 움직임은 사뿐하기 그지없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럴 수 있지?
그럼에도 두 사람은 웃음을 참았다. 이를 악물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유는 단 하나, 군자가 웃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부모가 웃어 버렸다간, 아무리 씩씩한 군자라도 풀이 죽고 말 거다.
저렇게 진지하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들인데, 그걸 비웃는 나쁜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
“Hyo!”
“푸웁-!”
그러나 난데 없이 효를 찾는 추임새에 결국 유상헌이 먼저 터져 버리고 말았다.
‘여보! 웃으면 어떡해요!’
순간 아내 조연수의 도끼눈이 그를 향했지만.
“···치-칵-치! 풉-치-칵-치!”
빵 터진 소리를 비트박스로 전환하는 놀라운 임기응변에 조연수는 감탄하고 말았다.
‘자연스러웠어요, 역시 내 남편!’
‘그럼요! 참아 내야죠 여보!’
남편이 비트박스를 하자 아내가 그 위에 스크래치를 얹는다. 대학 동아리 시절부터 레크리에이션 듀오로 활동해 왔던 호흡이 빛을 발했다.
“푸치카치- 팝- 치-!”
“휘끼휘끼! 휘끼!”
부모님의 가세에 더 흥이 난 것인지, 군자의 팔다리 움직임이 더욱 흥겨워졌다.
두 사람에겐 악재였다. 군자의 몸부림이 현란해질수록, 웃음 참기 챌린지의 난이도는 급상승했으니까.
‘미친!’
‘여기서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고?’
그러나 유상헌과 조연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았다. 반드시 클리어해 내야만 한다. 아들의 꿈을 비웃는 나쁜 부모는 절대로 되기 싫다.
견뎌 내라, 슬픈 생각만 해라, 차라리 울어라!
초인적인 의지로 두 사람은 끝내 웃음 참기 챌린지에 성공했다. 손떨림 방지 기능 덕분에 군자를 찍은 직캠 영상도 지켜 낼 수 있었다.
“푸하-.”
“군자, 수고했어!”
챌린지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 받았다.
‘해냈어요, 여보.’
‘방심하지 말아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
촬영이 종료된 뒤, 군자는 상기된 얼굴로 두 사람 앞에 앉았다. 뭐라고 말은 안 했지만,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평가를 바라는 거겠지. 부모에게 또 하나의 과제가 떨어졌다.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무조건 칭찬을 해 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칭찬보다 냉정한 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곧 <아육시> 합숙이 시작할 텐데,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그 땐 더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될 수도 있으니까.
결심했다는 듯, 유상헌이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너무 잘 봤고.”
“감사합니다.”
“음, 아빠가 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지금은 아직 동작이 많이 어색한 것 같아.”
“···예.”
“아무래도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손끝이나 발 움직임은 좋았어! 그쵸, 여보?”
조연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칭찬을 받진 못했지만, 군자는 특별히 풀이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오늘 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긴! 우리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지.”
“언제든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 직캠 영상은 바로 보내 줄게.”
“예, 그럼 소자 물러가 보겠습니다.”
군자가 방을 나간 다음에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여보, 비트박스 아직 살아 있던데요?”
“당신 스크래치는 또 어떻고요.”
“그나저나 우리 군자는··· 하하.”
“뭐, 그럴 수 있죠. 언제 춤을 춰 봤어야지.”
“하긴, 그렇죠?”
부부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오히려 한층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이런 말 좀 그렇긴 한데··· 오디션은 어떻게 붙은 걸까요?”
“당연히 비쥬얼 픽 아니겠어요?”
“하긴, 우리 군자가 잘생기긴 했지.”
“악마의 편집만 안 당했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까요.”
“다음에도 기회는 많으니까.”
아무래도 이번 <아육시>는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었다.
* * *
커다란 모니터로 영상을 보며, 군자는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었다.
“이, 이게 나란 말인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화면 속 저 허여멀건한 멀대는 누구인가. 마치 갓 태어난 아기 고라니가 인간의 몸에 빙의한 것 같구나.
“허어···.”
절로 탄식이 나온다.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군자 본인이 춤 추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아이돌 춤 영상을 보며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노력했을 뿐. 이것이 그 폐단이다.
새로운 춤을 익히기 위해선 반드시 훌륭한 스승님, 그리고 내 몸을 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직캠 영상을 통해 그것을 톡톡히 깨달은 군자였다.
“앞으로는 무조건 내가 춤추는 모습을 직접 보아야겠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께 다시 직캠을 부탁드릴 수는 없었다. 그 몹쓸 아기 고라니 춤은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불효다.
고민에 빠져 있는 군자에게, 부모님이 해답을 제안해 주셨다.
“군자야, 연습실을 이용해 보는 게 어떠니?”
부모님이 직접 연습실을 예약해 주셨다. 합숙까지는 이제 고작 2주 남았다. 댄스 아카데미를 등록하기엔 짧았지만, 연습실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연습실을 접한 군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공간이 다 있구나.
연습실은 한 면이 거울로 덮여 있어, 자신의 동작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노래 연습을 위한 방음 부스와 간단한 녹음 장치도 갖춰져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날부터 군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팔다리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때까지 기본동작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춤과 노래를 익혀야 한다. 그걸 위해선 기본기부터 탄탄히 다져야 할 것이야.
“우욱-.”
가끔은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지만, 이아롱 선생과의 고된 훈련 덕분인지 체력도 꽤나 올라왔다. 폐활량이 상승하고 복압이 좋아진 덕분에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자의 몸동작과 목소리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사용자 : 유군자]
[용모 : B+]
[노래 : D+]
[춤 : C+]
[매력 : A]
“오오!”
상태창의 노래와 춤 등급이 각각 한 계단씩 올랐다.
뿌듯했다. 포인트를 사용하여 등급을 올렸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뜻밖의 선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소 나흘 전, 이번엔 부모님이 군자를 불러들였다.
“군자야, 내일도 연습하러 가니?”
“예, 그럴 생각입니다.”
“내일은 하루 쉬는 게 어떠니? 옷도 사고, 머리도 꾸며야지.”
부모님의 말에, 군자가 가볍게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복은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그래? 어떤 옷인데?”
“바로 이 도포입니다. 지난 오디션에도 이걸 입었지요.”
그렇게 말하며 군자가 청백색 도포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부모님의 동공이 커졌다.
훗, 부모님도 이 단아함에 놀란 모양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별칭에 참으로 어울리는 의복 아닌가.
“조금 더 화려한 의복도 생각해 보았으나, 지나치게 돋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러니까, 안 튀려고 이 옷을 골랐다고?”
“예. 은은하니 좋지 않습니까.”
이만큼 차분하고 소박한 옷도 없지.
군자는 만족스러웠지만 부모님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저기, 군자야.”
“예 어머니.”
“이 옷은 좀··· 그래, 너무 평범하지 않겠니?”
“그렇습니까?”
흐음, 듣고 보니 어머니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래도 아이돌 오디션인데, 조금은 돋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난 번에도 도포 입은 친구들은 없지 않았니?”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거 봐. 그 옷이 너무 특··· 아니, 평범해서 그런 거라니까.”
결국 군자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새로운 의복을 구입하기로 한 뒤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은 꼭 별천지 같았다. 사방이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했으며, 이곳저곳엔 밀랍으로 된 인형이 서 있었다. 현대인들은 잘도 이런 황홀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구나! 군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든 다 사도 되니까, 천천히 둘러봐.”
“예, 감사합니다!”
“우선 네가 마음에 드는 물건부터 골라 보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군자의 눈에 뭔가가 쏙 들어왔다. 군자에게도 꽤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아니, 이것은?”
이 시대에도 상투가 존재했구나!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머리를 틀어올리는 풍습은 없어진 것 같지만, 상투는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이다.
“주인장, 이 상투 한번 틀어 보겠습니다.”
“예? 상투요?”
당장 머리를 위로 당겨 모은 뒤 상투로 고정시켰다. 아, 이 두피 당겨지는 느낌. 눈꼬리 올라가는 느낌. 참으로 오랜만 아닌가.
“손님? 지금 뭐 하시는-.”
“결정했습니다. 이 상투는 얼마입니까?”
그 때, 부모님도 군자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마침 잘 됐다. 성인이 되어 머리 틀어올린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것도 큰 효도인즉.
“어머니, 아버지!”
“응?”
“이 가게에선 상투도 취급하더군요!”
“이 녀석아, 이건 상투가 아니라 머리망이잖아.”
“?”
“어우, 얘 눈꼬리 올라간 것 좀 봐.”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은 실망스러운 군자였다.
그러나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됐다. 저것은 상투가 아니라 머리망이라는 물건이다. 보통은 여성들이 긴 머리카락을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하고.
군자와 부모님은 그 뒤에도 다양한 점포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상투 외엔 딱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었다.
저고리나 도포처럼 생긴 물건이 보여서 그걸 고르면 죄다 여성용 의복이라고 하니, 군자에겐 답답한 노릇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편견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남성용, 여성용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군자야, 그래도 원피스는 좀 아니지 않니?”
참으로 꽉 막힌 세상이로다. 원피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어도, 도포처럼 하늘하늘한 것이 군자의 마음엔 꼭 들었기에 못내 아쉬웠다.
“안 되겠다, 군자야. 직원 분께 추천 좀 해 달라고 하자.”
결국 부모님은 직원의 도움을 받는 길을 선택했다. 요청을 받은 점포 직원은 군자를 보자마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옷을 잔뜩 가지고 왔다.
“여기, 이거랑 이거, 또 이것도 다 입어 보시겠어요?”
“이걸 전부 말입니까?”
“예!”
한숨이 나왔지만 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터벅터벅 피팅 룸으로 향했다.
빙의 이후부터는 항상 맨투맨, 후드 티 같은 편안한 옷만 입던 군자였기에, 단추가 잔뜩 달린 셔츠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이 해괴한 저고리는 대체 어떻게 입는 것인가···.”
생소한 옷을 가지고 한참을 씨름하던 군자가 마침내 옷을 갖춰 입고 피팅 룸 바깥으로 나왔다. 난생 처음 입어 보는 불편한 옷이었다.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