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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진짜 춤이지!
참가자도 카메라도 없는 후미진 장소에서, 군자는 자신이 본 춤을 재현하고 있었다.
“여기서 발을 이렇게.”
“···.”
“분명 손동작은 이런 식이었지.”
“···.”
“그 다음은 어깨와 팔을 동시에 던지는 식으로···.”
그런 군자를 보는 내내, 유찬과 태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찬아, 이거 뭐냐.”
“···저도 모르겠어요.”
군자의 동작은 분명 영상 속 구성준 트레이너의 동작과 일치했다.
아직 기술이 능숙하지 못하여 동작의 퀄리티는 확실히 좋지 못했으나.
“선 진짜 잘 살리는데요.”
“스텝은 또 왜 이렇게 정확한데?”
묘하게 선이 예쁘다. 또 발을 쓰는 방식만큼은 누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수준이었다.
숙련자라 하기엔 기본기가 부족했다. 하지만 초보자라 하기엔 말도 안 되는 암기력과 디테일. 유찬과 태웅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저도요.”
“이걸 어떻게 다 외운 거지?”
“그러니까요.”
두 사람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번엔 군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왜? 외우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 절대 아니지. 완전 잘했어!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태웅이 군자에게 거칠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역시 우리는 어벤져스가 맞나 보다, 흐흐.”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어뱅저수가 뭐지?”
“어벤져스를 몰라? 군자 너 영화 안 좋아하냐?”
“영화라··· 부귀영화보단 안분지족을 추구한다만.”
“무, 뭐? 안분··· 그게 뭔데?”
“에효.”
“너 이 씨, 나 무식하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앗,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군자가 입을 가렸다. 또 속마음을 들켜 버린 게로구나. 어떻게든 위로를 해 줘야지 싶었다.
“무식은 죄가 아니야. 본인의 무식을 인정하는 넌 용감한 남자다.”
“아니, 이건 칭찬이야 욕이야?”
스무 살 동갑내기들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유찬은 머릿속에서 동작을 다시 정리했다.
“으음, 끄으으···.”
데이터 사용량 초과로 귀에서 연기가 날 정도였으나, 유찬은 머리를 굴렸다. 모처럼 군자가 외워 온 안무를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구성준 트레이너의 안무, 그리고 군자가 보여 준 안무. 교차 검증 과정을 거치며 완성본을 만들어 냈다. 흐릿했던 기억이 차츰 또렷해졌다. 이제 디테일만 조금 잡으면 바로 반복연습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군자 형, 한 번 더 보여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군자는 망설일 것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무를 재현했다. 두 번째로 보는 광경이었으나, 유찬과 태웅의 리액션엔 변함이 없었다.
“또 봐도 또 신기하네.”
“그러게요.”
종종 한 번 본 안무를 복사기처럼 복제해 내는 재능러들이 있긴 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는 초보자가 이런 신기를 부리는 것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자, 여기까지.”
“형, 진짜 짱.”
군자의 안무를 본 유찬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거, 디테일만 좀 잡고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요.”
“좋아. 다른 팀 애들보다 이틀은 더 연습할 수 있겠는데?”
“그러니까요. 음, 동작이 완벽히 일치하진 않을 수 있어도···.”
“아니.”
동작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유찬의 말에 군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동작은 확실해. 걱정 안 해도 된다.”
“오 뭐야! 왜 이렇게 믿음직스러운데에!”
“혀엉-.”
아까부터 연신 호들갑스럽게 안겨 오는 동료들을 향해, 군자는 그저 인자하게 웃어 줄 뿐이었다.
동작 암기하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군자에게 암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작에 세부 조정을 가하며 맛을 살리는 유찬과 태웅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럼 이제 동작 하나하나씩 디테일 좀 잡아 볼까요?”
“오케이. 1절 오프닝부터 시작할까?”
“넵.”
군자가 동작을 재현하면, 유찬이 그걸 따라하며 디테일을 잡았다.
“형, 여기선 이렇게 가슴을 더 열고.”
“이렇게?”
“예, 근데 골반이 안 떨어지게 해야 돼요.”
“아하, 이런 식으로?”
“지금도 좋은데,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이러면 이 가사가 조금 더 잘 표현되는 것 같지 않아요?”
“옳거니!”
“하하, 그 추임새는 좀···.”
군자에겐 감탄사를 참지 못할 만큼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저 형태를 따라했을 뿐인 군자의 동작에, 유찬의 조정이 더해지니 완전히 새로운 춤이 되었다. 마치 밑그림 뿐인 그림에 아름다운 채색이 더해진 느낌이랄까.
그래, 이런 게 진짜 춤이지!
“유찬이 너 정말 대단하구나.”
“아니에요, 형이 더 대단하죠.”
“내가 뭘 했다고. 그냥 동작이나 외운 게 전부인데.”
“그게 진짜 대단한 건데···.”
유찬이 안무 디테일을 잡은 다음은 태웅의 차례였다. 유찬이 섬세한 감정선과 가사 표현에 강점이 있다면, 태웅은 힘을 줘야 할 곳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주특기였다.
“1절은 지금 괜찮은데, 2절은 조금 더 힘있게 하자.”
“두 번째 반복구부터?”
“응. 그 부분부턴 타악기가 더 들어가니까, 더 타격감을 줘야지. 팝! 팝! 이렇게.”
“오오.”
마치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팡팡 튀는 움직임에 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단한데?”
“흐흐, 그러냐.”
“꼭 튀긴 메뚜기 다리가 석쇠 위로 튀어오르는 것 같아.”
“뭐? 아니, 아까부터 칭찬이야 욕이야?”
“당연히 칭찬이지.”
“그래? 뭔가 이상한데?”
“찬사를 굳이 꼬아 듣는 건 소인배의 태도다.”
“아오, 얘랑 얘기하면 왜 이렇게 말리는 것 같지?”
“형들 엄청 빨리 친해졌네요?”
티격태격 하면서도 세 사람은 연습을 이어 나갔다.
모두가 포인트 동작 정도만 겨우 연습하던 시기에, 안무 전체를 제대로 숙지하여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세븐, 에잇, 끝!”
“휴, 수고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잠깐 물 좀 마시자.”
“자, 여기.”
군자가 태웅에게 내민 물엔 나뭇잎이 한 장 떠 있었다.
“고맙··· 야 유군자, 왜 물에다가 나뭇잎을 띄워 놨어?”
이번에도 군자는 인자하게 웃었다. 이 녀석은 이성계의 버들잎 설화도 모르는구나. 허나 무식은 죄가 아니지. 설명해 주면 그만이다.
“빨리 마시다가 체하면 안되잖아.”
“그렇다고 뭔 나뭇잎을, 아오 진짜.”
나뭇잎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태웅을 보며 군자가 해맑게 웃었다.
“뭘 봐 임마. 나뭇잎은 또 어디서 나서···.”
즐겁구나,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
애초에 친구라는 걸 가져 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있었던 친구들과는 주로 글을 읽거나 활을 쏘았지.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 만나 가무를 연습한다는 것이, 군자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창이야, 나를 이 세상으로 보내 주어 정말 고맙구나.’
마음 속으로 상태창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순간이었다.
···우우웅···.
“!”
난데없이 상태창이 공명하며, 그의 얼굴 앞에 새로운 문장을 출력했다.
[특별 업적 달성.]
[‘춤마고우’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 *
다음 날은 예정대로 보컬 수업이 진행됐다. 보컬 수업은 99명의 참가자를 열한 명씩 9개 조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안무와는 달리, 노래 쪽은 한 번만 듣고도 기억해 내기가 수월했다. 특히 후렴 부분은 반복되는 가사와 캐치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업 시작 전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후렴을 흥얼거렸다.
“지금부터 Play Play···.”
“아 이거 브릿지 어떻게 부르냐?”
“브릿지가 진짜 고음 지옥이더라.”
“아, 랩퍼가 왜 노래를 불러야 되는 건데에.”
“민혁쌤, 수업 땐 디게 무섭다며?”
보컬 수업을 앞둔 학생들의 표정은 꽤나 굳어 있었다. 군자 옆에 나란히 선 유찬과 태웅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아, 진짜 난 언젠가 노래 때문에 발목 잡힐겨···.”
“지금부터 Play··· 아, 이 멜로디가 아니었는데···.”
“유찬아, 조용히 좀 해라. 정신 사납다.”
“···긴장된단 말이에요···.”
“너 지금 꼭 쉬 마려운 똥개 같아.”
군자는 애써 웃음을 삼켰다. 쉬 마려운 똥개라, 꽤나 적절한 비유라 생각했다.
동료들이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애초에 태웅은 노래 등급이 C+로 낮은 편이었고, 유찬은 그보단 높았으나 ‘압박감’이라는 저주가 있었으니.
물론 연습실 안의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넌 이거 완곡 되지?”
“헤헷.”
“여유가 넘치네 아주.”
“아직 엠알에 안 해봐서 몰라여.”
“모르긴, 너 절대음감이잖아.”
[하현재 (19)]
[용모 : B (A+)]
[노래 : A- (S+)]
[춤 : C (B+)]
[매력 : B+ (S)]
[축복 : 무대 체질 (관객 앞에서 더 높은 능력치를 발휘함)]
잠재력이 아닌 ‘현 등급’이 A에 달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게다가 이번엔 저주가 아닌 ‘축복’. 관객 앞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니, 아이돌에겐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축복 아닌가. 저주인 압박감 때문에 매번 무대를 망치는 유찬과는 정반대의 속성이다.
마침 하현재와 군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두 손으로 갓을 만들어 쓰는 시늉을 해 보이며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선비 형아!”
또 선비야? 이젠 뭐 놀랍지도 않은 군자였다. 그래, 내가 아육시 선비남이니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도포를 입고 올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밝게 인사를 건넨 하현재는, 발랄하게 다가와 군자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꼭 보고 싶었다나 뭐라나, 참으로 밝고 명랑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매가 아주 살짝 세모꼴인 것이, 관상에 약간의 질투심이 보이는 것 같아 경계되긴 했지만.
그거야 뭐 매 순간 웃는 상이기에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선비 형, 저녁에 우리 방 놀러 와요.”
“너희 방에?”
“과자랑 초콜릿 조금 있어요! 제가 몰래 가져옴.”
흐음, 초콜릿이라.
···어쩌면 좋은 녀석일지도?
“초콜릿은 아주 훌륭한 기력 보충제지.”
“형아가 뭘 좀 아네.”
군자와 현재가 씨익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사이, 문이 드륵 열리며 장민혁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안녕, 친구들!”
“안녕하세요-!”
“아우, 귀 아파! 야, 목 아껴.”
“네엡-!”
“푸하하, 말 더럽게 안 듣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군자는 가슴이 벅차 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건 참으로 오랜만 아닌가.
대놓고 티는 안 냈지만, 장민혁은 군자를 발견하자 가볍게 윙크를 하며 그에게 아는 척을 했다. 황송하여 하마터면 큰절을 올릴 뻔 한 군자였다.
“너희들, 개별 평가 직캠에서 노래도 불러야 되는 거 알지?”
“넵.”
“춤만 하다가 라이브 망치면 좋은 평가 못 받아. 어떤 평가든, 항상 춤이랑 노래의 밸런스가 중요한 거야.”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수업은 간단한 곡 분석, 이어지는 개별 트레이닝으로 진행됐다. 한 명씩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장민혁 트레이너는 날카로운 지적으로 노래에 대한 피드백을 진행했다.
“다음은 현재, 한번 해 볼까?”
“넵.”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는 듯, 하현재는 당당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노래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Play your Fantasy···.”
“우와-.”
첫 소절부터 모두가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흡이 일정하며 공명감이 잘 잡힌 안정적인 보컬. 박자 감각이나 음정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게 A-의 노래로군.’
확실히 다른 참가자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듯, 뻔뻔하게 표정연기까지 곁들인다.
현재가 노래를 마치자 모두가 작은 박수를 보냈다. 군자와 유찬, 태웅 역시 마찬가지였다.
“쟤 잘한다.”
“목소리 엄청 좋네요.”
장민혁 트레이너 역시 하현재의 노래엔 딱히 코멘트할 것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재, 노래 잘하는데?”
“감사함다!”
“지금 너무 좋은데, 쓰읍.”
장민혁 트레이너가 숨을 살짝 들이마시자 하현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장민혁 트레이너가 숨을 들이마실 땐 항상 개선점이 나왔다.
“댐핑이 살짝 아쉽네.”
“아, 넵!”
“그것만 잡으면 될 것 같은데. 앞 벌스에 댐핑 신경 써서 한 번 더 불러볼래?”
“넵, 해 보겠습니다!”
자신감 있게 2회차를 시작했으나, 하현재의 노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운율감이 더 생긴 정도일까.
“음, 잘 했어.”
“넵.”
“하긴 댐핑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게 아니지. 선생님도 그 감 찾는 데 몇년 걸렸어.”
“넵, 노력하겠습니다!”
당차게 대답은 했지만, 찰나의 순간 하현재의 살짝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군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칭찬을 받고도 아쉬워 하다니, 보기보다 향상심이 엄청난 친구구나.
“그래, 들어가고. 다음은 기유찬.”
“네, 네, 넵-!”
우리 유찬이 화이팅, 잘 해라.
같은 팀 형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을 보냈으나.
“지, 지금 부터어···.”
“아이고오, 유찬아···.”
또 저주가 발동된 것인지, 기유찬은 첫 트레이닝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대열로 돌아오는 막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깨를 토닥여 줘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더 짠했다. 군자는 어떻게든 그 똥강아지 같은 놈을 위로하고 싶었다.
“기유찬.”
“네 형.”
“저기를 봐라.”
군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대형 삑사리를 연속으로 내는 권태웅의 모습이 있었다.
“으악-! 쌤, 다시 하겠습니다-!”
“아니야, 들어가도 될 것 같아!”
“기회를 주십쇼!”
“태웅쓰, 내 귀한테도 쉴 기회를 좀 주겠니!”
장민혁 트레이너의 완강한 거절에, 권태웅은 별 수 없다는 듯 터벅터벅 발걸음을 돌렸다.
“노래를 못한다는 건, 바로 저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런가요···.”
하지만 별 위로는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음, 유군자.”
“네.”
그렇게 권태웅이 들어온 뒤, 드디어 군자의 차례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