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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벤져스 만들었네!
‘테마곡 개인 직캠 평가’를 위한 3인의 팀 구성은 대부분 ‘1강 2약’으로 짜여져 있었다.
대부분의 중상위권 참가자가 조회수를 깔아줄 수 있는 하위권 참가자들과 조를 이룬 결과였다. 물론, 목적은 코인이었다.
하위권 참가자는 기꺼이 ‘병풍’이 되기를 자처하는 대신, 상위권 참가자들과 함께 연습하며 안무를 익힐 기회를 가졌다.
안무는 딱 한 번, 그것도 영상으로만 공개된 것이 전부.
대부분의 하위권 참가자들은 이를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그들과 조를 이룬 상위권 참가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적어도 오프닝 동작, 후렴구의 포인트 안무 정도는 기억해 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상위권 참가자는 코인을 획득할 기회를 얻고.
하위권 참가자는 부족한 안무 습득 능력을 보강받는다.
[한 사람의 영상 조회수가 나머지 두 사람의 조회수를 합친 것보다 높은 경우, 그 한 사람에게 100코인을 지급한다.]
언뜻 잔인해 보이는 룰이었으나, ‘1강 2약’으로 편성된 팀들은 의외로 상부상조하며 순조롭게 연습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허나 모든 조가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소예진 트레이너의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분란이 일어난 조도 보였다.
양정무의 조가 대표적이었다.
“양정무, 너 뭐냐?”
“왜요?”
“어제 연습할때까진 이 부분은 모른다면서?”
“아, 오늘 갑자기 기억났어요.”
“뭐?”
가장 먼저 팀을 이뤘던 양정무 조에서 트러블이 발생했다. 수업 당일, 오직 양정무만 새로운 안무를 연습 중이었다.
카메라가 밀착해 있었으나, 팀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야, 장난해?”
“장난이라뇨.”
“그게 갑자기 기억났다는 게 말이 되냐고.”
“왜 말이 안 돼요?”
그러나 형들의 살벌한 표정에도, 양정무는 전혀 물러설 생각 없다는 듯, 또랑또랑한 눈으로 반박했다.
“갑자기 기억날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내가 형들 선생님이에요? 우리 그냥 같은 팀원이잖아요.”
“뭐라고?”
“같이 잘해 보고 싶어서 안무도 가르쳐 주고 연습도 한 건데, 이렇게 몰아붙인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형들이 더 너무한 거 아니에요?”
“!”
“난 진짜 같이 잘 해 보고 싶어서 어제 잠도 안 자고 안무 정리했는데···.”
당차게 반박하던 양정무가 제 감정을 못 이기고 눈시울을 붉히자 카메라가 일제히 그를 향해 돌았다.
그 때까지 따지고 들던 팀원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슬슬 꼬리를 내렸다.
“아니, 그니까 좀 알려주면 좋았다 그거지.”
“지금 기억났다고요 지금.”
“알았어, 울지 마.”
“안 울어요. 누가 운다고.”
한 번만 더 건드리면 눈물을 왈칵 쏟을 듯한 분위기에, 양정무의 팀원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카메라 앞에서의 갈등은 좋지 않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양정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자 양정무는 코를 슥슥 비비며 안무 연습을 계속했다.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은 어느새 쏙 들어가 있었다.
‘멍청한 놈들.’
사실 양정무는 자신의 팀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좋다고 병풍으로 들어온 것부터가 이해 불가였다.
아이돌 하고 싶다면서.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어서 온 거 아냐? 근데 시작부터 병풍이라고? 웃음밖에 안 나왔다.
반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센터를 해 먹을 작정이었다. 오늘 안무 수업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틈틈이 모든 팀을 체크했지만, 양정무보다 안무를 많이 외워 놓은 팀은 없었다.
분명 오늘도 트레이너 선생님의 눈에 들 수 있겠지?
때마침 소예진 트레이너가 연습실 문을 열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연습생들의 인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지만, 장민혁 트레이너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너희들, 아직 안무 다 모르지?”
“···.”
“하, 나 왜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
“아니, 애들한테 기본적인 건 가르쳐 준 다음에 수업을 하든 말든··· 에휴.”
소예진 트레이너는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댔다. 카메라가 그녀를 찍고 있었으나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군자가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대쪽 같은 여인이로다.’
자고로 선비란 주군 앞에서도 할 말은 해야 하는 법. 일반인 오디션 때도 그 똑 부러지는 성정을 느꼈던 바.
참 선비의 자질을 갖춘 여인이 아닌가.
군자는 소예진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멋지시오··· 십니다.”
“뭐?”
뜬금없는 아부에 다소 당황한 듯 했으나, 소예진은 이내 참가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아는 부분까지만 한번 보자.”
곧 테마곡이 흘러 나오고,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도입부, 프리코러스 부분을 뭉개고 있었으며, 후렴의 포인트 동작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 모습을 본 소예진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하긴, 딱 한 번 보여주고 제대로 추라는 게 말이 안 되지.”
이번엔 한 팀씩 개별적으로 안무를 점검하는 시간. 아직 숙련도가 낮은 팀은 소예진이 직접 안무 디테일을 짚어 주며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그렇게 순서가 돌아 양정무 팀의 차례가 왔다.
도입부, 후렴, 브릿지 안무까지. 양정무 팀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팀 중 가장 높은 안무 완성도를 자랑했다. 50% 이상 재현된 안무에, 소예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한 번 본 것 치고는 많이 완성됐네.”
“넵, 열심히 했습니다!”
“안무는 누가 땄니?”
소예진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정무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땄습니다!”
그러나 소예진은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예?”
“정무, 네 안무 완성도가 제일 높더라.”
“감사합니다!”
“어, 이거 칭찬 아닌데.”
“예?”
“왜 팀원 간의 안무 차이가 날까?”
칭찬을 기대한 양정무였지만, 소예진의 표정은 다소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1절 프리코러스 부분 안무, 정무만 했지?”
“아, 넵.”
“팀끼리 연습하는 게 원칙 아니었나? 팀원들한테는 안 알려준 거야?”
“그게, 저도 수업 직전에 생각이 나서···.”
“그래?”
소예진은 양정무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진한 척 초롱초롱한 눈이었지만 그녀에겐 양정무의 속내가 보였다.
‘일부러 그랬구만?’
프리코러스 안무 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양정무와 나머지 두 팀원 간의 동작 디테일엔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실력 차이도 있겠지만, 동작이 명백히 다른 부분도 보였다.
양정무가 팀원들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거다.
물론 납득이 가지 않는 선택은 아니다. 서바이벌 오디션 특성상, 살아남기 위해선 개인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니까.
자칫 너무 열심히 도와 줬다가, 동료들이 지나치게 성장해 버리는 바람에 조회수까지 떡상해 버린다면 코인은 날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양정무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소예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정무, 네가 17살이지?”
“넵!”
“춤 잘 추네.”
“감사합니다!”
열일곱 살인데도 참 잘 한다. 열일곱 살인데도 참 영악하다.
이런 꼬맹이가 정치질부터 배우는 것이 불편했다. 꼭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김석훈, 아이돌 업계의 필요악 같으니.
물론 합산 조회수 300만을 넘으면 아름다운 승리를 할 수 있다지만, 누가 그런 미친 조건에 도전을···.
“안녕하십니까, 트레이너님!”
“아이, 깜짝아.”
“권태웅입니다!”
“유군자라 하옵··· 합니다.”
“기, 기유찬입니다···.”
···아, 얘네가 있었지?
새로 나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팀 결성 때가 퍼뜩 떠오른 소예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네들, 그 때부터 300만이 어쩌고 하던 애들이잖아.
방금 전까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소예진이 피식 웃었다. 연습생은 연습생다운 매력이 있어야지. 아무리 허황된 꿈이라고 해도, 차라리 패기 좋게 300만을 외치는 것이 소예진의 취향이었다.
“그래, 연습은 많이 했고?”
“넵!”
“한번 볼까?”
별 기대 없이 테마곡의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으음?”
뭐지? 도입부부터 깔끔하다.
물론 구성준 트레이너의 퀄리티엔 미치지 못하지만, 일단 동작은 완벽하다.
시그니쳐 포즈로 시작하는 도입부, 이어지는 벌스 안무까지.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재현이다.
뭐지 이건?
놀란 건 소예진 트레이너 뿐만이 아니었다. B파트, 프리코러스 파트에도 안무는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어지는 후렴구의 파워풀한 동작까지. 양정무의 완성도를 완벽하게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와, 뭐야 이거-!?”
더 놀라운 건, 세 사람의 동작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
물론 지적할 만한 부분은 있었다.
기유찬은 긴장감 때문인지 박자가 계속 빨라졌으며, 권태웅은 힘을 더 빼야 한다. 유군자는 스텝과 끝 동작은 기가 막혔지만, 다른 동작은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부족했고.
그럼에도 안무의 완성도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딱 한 번 본 춤을 이렇게 완벽하게 재현해 낸 거지?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다. 동작마다 나름의 해석도 담았다. 단순히 따라 추는 것이 아닌, 가사를 표현해 내기 위한 고민도 보였다.
힘을 싣고 빼는 부분도 명확했다. 안무의 기승전결을 고려했다는 흔적이다. 이쯤 되니, 내내 신경질적이던 소예진도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얘네 뭐야?’
물어볼 것이 산더미였다.
동작마다 가미된 섬세한 디테일은 다 누가 잡은 것이며.
강력하게 잡아 주어야 할 포인트를 알려 준 것은 또 누구일까.
하지만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아니, 대체 어떤 미친놈이 한 번 본 안무를 통째로 외워 버린 거야?
유군자 팀의 안무는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대충 몇 군데를 깔끔하게 재현해 낸 수준이 아니었다. 구성준 트레이너가 선보인 안무를 깔끔하게 카피한 것도 모자라, 동작 디테일과 호흡까지 잡았다.
물론 춤 실력 자체가 엄청나게 뛰어난 수준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아아아—!!”
“너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권태웅, 진짜 어벤져스 만들었네!”
소예진은 참가자들의 소란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 아이들은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매년 아이돌 오디션 섭외가 올 때마다 탐탁치 않은 기분이었다. 연습생들의 꿈에 등수를 매기고, 잔인한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 불쾌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이런 순간을 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박수 소리가 천천히 멎은 뒤, 이번엔 소예진 트레이너가 말을 꺼냈다.
“잘했어.”
“!”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칭찬.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떤 팀도 바로 ‘잘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양정무의 팀도 마찬가지였다.
“구성준 선생님이 보여준 안무를 거의 그대로 재현했네.”
“넵.”
“거기에 약간의 재해석도 들어간 것 같아 보이고.”
“맞습니다.”
이거 뭐부터 물어봐야 하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잠시 고민하던 소예진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