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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매력이 곧 실력
투욱-.
군자가 단체복 자켓을 벗자, 그 안에 있던 새하얀 오버사이즈 셔츠가 드러났다.
“오오-.”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사실 대단한 노출은 아니었다.
참가자 중엔 간간이 복근까지 노출해 가며 과감한 어필을 펼친 이들도 있었으니.
그러나 군자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의상 변화를 통한 분위기 반전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안무의 선이 달라졌다.
절도 있게 움직이던 손끝과 발끝이 버드나무처럼 유연해졌다. 어설프게 따라하는 무용 동작이 아니었다. 한 동작 한 동작, 놀랍도록 우아하며 아름답다.
그렇게 변한 춤선과 브릿지의 피아노 선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펄럭이는 오버사이즈 셔츠의 소매는, 마치 처용무를 추는 무용가의 손에 끼워진 한삼(汗衫)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잠시 정신을 빼앗긴 사이.
지루한 세계를 떠나
이젠 네 안의 너를 봐-.
마침내 군자의 입에서 브릿지의 가사가 흘러 나왔고.
그걸 지켜보던 모두의 입이 자연스레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그 어떤 수업에서도 보여준 적 없었던 동양적인 분위기의 창법.
소리 내는 방식을 바꾸자 마자, 보컬의 수준이 달라졌다.
기본기 언저리에서 걸음마를 하던 군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연습생 치고 잘 부르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이건 평가가 아니라 공연 아닌가. 하현재를 포함한 몇몇 연습생들의 팔 위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뭐야 이거···.”
“···미친 거 아냐?”
낭창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쩌렁쩌렁 울렸다. 처연한 감성이 뚝뚝 묻어 있었지만, 음색은 아직 마모되지 않은 군자의 것 그대로였다.
그 묘한 언밸런스가, 서정적인 분위기의 브릿지에 꽤나 잘 묻었다.
‘유군자, 이 미친 놈이 진짜!’
군자의 무대를 지켜보던 장민혁은 도저히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퍼포먼스를 마무리하려는 줄 알았는데, 브릿지에 이런 반전을 숨겨 뒀을 줄은 몰랐다.
사실 오리엔탈 풍의 분위기 반전도 클리셰 중 하나다. 그러나 그걸 완벽하게 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연습생은 물론이고, 연차가 꽤 되는 기성 아이돌들도 자칫하면 무대를 망칠 수 있는 선택이다.
창법을 바꾸기에 앞서 치밀하게 복선을 깔며 음악에 설득력을 더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명창의 노래라 해도, 그 전환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면 결국 노래 차력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는 그걸 해냈다.
완벽하다고 볼 순 없었으나, 적어도 튀지는 않게 연착륙시켰다. 2절 후렴부터 절묘하게 호흡을 바꾸며 복선을 깔아 둔 결과다.
“···흐흐, 흐흐흐···.”
영은채 트레이너는 뿌듯하다는 듯 군자를 바라보며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세밀한 디테일은 아마 영은채 트레이너의 작품이겠지. 그러나, 조언이 있었다고 해도 그걸 실제로 무대 위에서 해 내는 건 결국 군자의 몫이다.
이건 이미 놀라움을 넘어 이해 불가의 단계다. 아니, 연습생 생활도 안 해 본 애가 이런 반전 무대를 만들 수가 있다고?
장민혁이 감탄하는 와중에도 군자의 무대는 계속됐다.
브릿지의 마지막 마디는 시원한 고음을 뽑아 내야 하는 파트.
다시 태어난 네 모습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본인의 방식대로 소리를 다루니 고음 역시 한결 편안해 보였다. 천장에 닿을 듯 시원하게 뻗는 고음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하이라이트인 고음을 지나 이젠 다시 후렴구의 반복.
처연한 감성을 담아 움직이던 군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절도 있게 움직이며 안무의 중심을 잡아 나갔다.
Oh! 이젠 네가 내 Player.
어디든 내 손을 잡아-.
반복되는 두 번의 후렴구까지, 방심하지 않으며 깔끔한 마무리.
마무리 동작을 취하는 군자의 머리칼과 코끝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고르며, 군자가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
“유군자, 미쳤어어—!!”
관객석에서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후우, 후우···.”
솔직히, 미흡했다.
연습했던 동작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진 못했다.
영은채 트레이너님이 말씀해 주신 ‘복선’ 부분도 조금은 아쉬웠다. 훈련을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고음 부분도 조금 더 시원하게 뽑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은 무대였으나.
“유군자! 유군자!”
“군자 혀어엉-!”
“선비남, 진짜 300만 가나요-!?”
“너무 좋잖아—!!”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가 가슴에서 울컥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저잣거리에서도 환호성을 받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이들의 환호는 처음이다.
이건··· 이건 정말 묘한 기분이구나.
대체 이 묘하게 간지러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침 그 때, 상태창이 군자의 눈앞에 떠올랐다.
[특별 임무 ‘인정은 뿌듯해!’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1포인트]
“창이야,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그제야 군자는 깨달았다. 울렁이던 감정의 정체는 뿌듯함이었다.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뿌듯함.
온 몸이 간지러워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자제하려 해도 자꾸 광대가 승천했다. 어떻게든 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았다.
체통을 지키지 못할 바에야, 선비의 방법대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어떨지···.
에라, 모르겠다!
“참으로 고맙소오!”
결국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동서남북 사방 팔방에 큰절을 올리고 만 군자였다.
“푸하핫!”
“끝까지 컨셉 지독하네!”
참가자들의 눈엔 끝까지 기믹으로 보였으나 그들은 군자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근데 컨셉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기믹질도 실력이 되는 사람만 하라는 거지.”
“브릿지는 진짜 미쳤더라.”
“어떻게 소리를 그렇게 내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보였으니까.
군자가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두 손을 모으고 있던 하현재는, 이제 아예 군자의 팬이 돼 버린 것 같았다.
“선비 형아! 너무 멋져—!!”
처음 군자에게 보였던 약간의 경계심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이돌 콘서트라도 온 듯 주접을 떨고 있는 하현재 옆엔 똥 씹은 표정의 양정무도 보였다.
“저건 아이돌 안무가 아니라 그냥 한국무용 공연 아니야?”
작게 투덜거렸으나 양정무 역시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진 못했다.
솔직히, 누가 봐도 유군자가 무대를 씹어 먹은 게 맞다.
이런 무대를 보고 나서 부정적 리액션을 친다는 건, 비호감으로 편집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정무가 카메라 앞에서 몸을 사리는 동안, 유찬과 태웅은 파워숄더 의상이라도 입은 듯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가 있었다.
“역시 우리 군자.”
“헤, 우리 형.”
“나의 어벤져스.”
“나랑 팀 한다구 그랬는데, 헤헤.”
“이거 유튜브로 300번 돌려 봐야지.”
“전 400번 볼 거예요.”
“그럼 난 500번 본다.”
“난 형보다 무조건 1번 더 봄.”
이렇게 참가자들이 군자의 무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트레이너들은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유군자 참가자의 무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트레이너마다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었다.
가장 먼저, 보컬 담당 트레이너 장민혁이 입을 열었다.
“전 무조건 플래티넘이에요. 앞 벌스들은 평이했지만, 브릿지 전환되는 부분은 모든 참가자 중에서도 가장 매끄러웠어요. 물론 임팩트도 있었고.”
댄스 트레이너 구성준도 바로 손을 들며 의견에 힘을 보탰고.
“저도 군자는 플래 줘야 된다고 봅니다. 안무도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고, 브릿지 넘어가는 부분 선이 너무 예쁘던데요?”
그러나 랩 담당 트레이너 레이첼은 의견이 조금 달랐다.
“일단 이 노래엔 랩이 없긴 한데요, 저도 한 마디 보태도 될까요.”
“예, 하셔도 됩니다.”
“물론 임팩트 있는 무대긴 했어요. 그런데 이건 ‘아이돌 멤버’로서 티어를 정하는 거잖아요. 그냥 매력 있고 좋은 무대 보여준 참가자 뽑는 게 아니라.”
“···.”
“결국 인상이 남은 건 브릿지 안무와 노래를 변주한 부분인데, 이건 말 그대로 ‘변주’고요. 그 외의 부분에서 플래티넘 등급을 받을 만한 실력을 보여줬나요?”
“그건···.”
“전 춤이랑 노래는 잘 몰라서. 근데 제가 보기엔 그 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잠시 싸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이번엔 소예진 트레이너가 입을 열었다.
“저도 레이첼 선생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 소 쌤?”
장민혁이 의외라는 듯 소예진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가 동양풍의 무대에 얼마나 환장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군자의 무대를 보면서 소예진이 보리차를 줄줄 흘리는 것도 보았기에 더욱 의외였다.
‘턱에 물 자국이나 닦고 말하지···.’
그러나 소예진은 꽤나 단호해 보였다.
“지금 티어를 나누면 당분간은 이 티어대로 수업을 받게 될 거예요. 지금 플래티넘을 받은 하현재, 양정무, 노엘, 주하성···. 이 친구들의 수준에 맞춰서 수업이 진행될 텐데, 저는 군자가 이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좀 걱정이네요.”
“그, 그거야 뭐 어떻게든-.”
“어떻게든 될 거야, 라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낭비하게 할 순 없죠. 이 일주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잘 알고 계시잖아요.”
“···.”
‘플래티넘 찬성파’였던 장민혁과 구성준도 그 의견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연습생 경력이 전무한 군자와 달리, 플래티넘 그룹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2년 이상의 연습생 경력이 있었다.
어떤 수업을 진행하든, 군자가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실버나 골드로 시작하는 게···.”
“에이, 말도 안 돼. 어떻게 기립 나온 무대를 실버로 보내요.”
“그러면 연습생 경력도 없는 애를 플래티넘으로 보내는 건 말이 되고요?”
“아오, 머리 아파.”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사이.
그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던 영은채 트레이너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여러분···.”
“어, 영 쌤. 말씀하세요.”
“···아이돌은요···.”
“에?”
“···아이돌은··· 매력이에요···.”
“그게 무슨-.”
“···아이돌은··· 매력이··· 곧 실력···.”
아이돌은 매력이 곧 실력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군자의 플래티넘 행을 반대한 레이첼과 소예진도, 오늘 가장 큰 매력을 보인 참가자가 군자라는 사실엔 동의했다.
“···솔직히··· 군자 님··· 매력 있어요 없어요···.”
“아니 매력이야 당연히 있는데.”
“···그럼··· 실력도··· 있는 거죠···.”
“그 기준으로 따지면 영 쌤 말이 맞죠.”
“···그런 군자 님을··· 골드··· 실버··· 하하···.”
“흐음.”
“···시청자들이··· 납득할까요··· 화를 낼까요···.”
“그, 그거야 뭐.”
“···여러분··· 방송··· 하셔야죠···.”
“허, 생각보다 방송쟁이셨네요?”
본질적인 지적에 트레이너들의 말문이 콱 막혔다.
‘영 쌤,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봤어!’
장민혁이 감탄하는 사이, 영은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죄송합니다··· 제가 훼방을···.”
“아니에요, 은채 쌤도 트레이너 자격으로 여기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대안을··· 제시해도··· 괜찮을지···.”
“대안이요?”
“···잠시 여기로···.”
“꼬, 꼭 이렇게 작당모의하듯이 모여서 얘기해야 돼요?”
“···느낌 살려 주세요···.”
옹기종기 모여 영은채의 대안을 들은 트레이너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어떠신지···.”
“어, 전 좋은 것 같은데요.”
“그런 방법이 있었네?”
“근데 일단 PD님 허락이 떨어져야 될 것 같은데.”
“···쇠뿔도··· 단김에···.”
영은채는 바로 뚜벅뚜벅 다가가 김석훈 PD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걸 들은 김석훈 PD는, 무릎을 탁 치며 즐거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잠시 간의 회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군자의 트레이너 채점 등급이 발표됐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유군자 참가자.”
“네.”
“이제 등급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