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31화 (3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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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열어?

[지현수 (20)]

[용모 : B (S-)]

[노래 : C (A+)]

[춤 : D+ (B+)]

[매력 : B (S)]

“오오···.”

춤과 노래는 아직 미숙하나, 노력한다면 꽤나 대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용모와 매력의 잠재 등급을 보니 잘못하면 훅 갈 수도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군자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그 아래의 저주, 그리고 축복이었다.

[저주 : 완벽주의자 (완벽한 곡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한다.)]

완벽주의라. 창작자에겐 어쩌면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성정 아닌가.

군자 역시 그런 집착을 가진 도공(陶工)을 알고 있었다. 완벽한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 수천 개의 초벌구이 도자기를 부순 그는, 마침내 왕의 대전(大殿)에 자신의 백자를 놓을 수 있었다지.

···물론 그렇게 제 몸을 깎아 먹다가 문원 유씨 가문 남자들보다 더 빨리 사망하고 말았지만···.

군자는 지현수의 얼굴을 흘끔 보았다. 딱히 혈색이 나쁘진 않다. 눈 밑 검은 기운이 심한 걸 보니, 살짝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저, 혹시 지병은 없으신지···.”

“예? 아 그럼요, 완전 건강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지현수는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호리호리 가느다란 팔뚝에 조막 만한 근육이 볼록 올라오는 모양새에, 하마터면 풉 하고 웃을 뻔한 군자였다.

지현수의 상태창은 저주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축복 : 음악 백중원 (대중의 공통적인 취향을 적절히 파악할 줄 안다.)]

아이돌 음악도 결국 대중을 위한 예술이다.

본인의 색채가 강한 것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기 위해선 대중의 공통적인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 ‘음악 백중원’ 역시 작곡가에겐 꽤나 어울리는 축복이다.

···백중원이 뭐 하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저주와 축복만으로도 지현수를 선택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저는 지현수 참가자를 선택하겠습니다.”

“—!!”

군자의 첫 번째 선택에 지현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감사합니다, 진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현수는 ‘최선’이란 단어에 힘을 잔뜩 주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번뜩였다.

흐음, 조금은 힘을 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벌써부터 지현수의 완벽주의가 두려워지는 군자였다.

군자의 선택에 이어, 이번엔 2위 주하성이 선택권을 가져갔다. 모두가 예측한 대로, 그의 선택은 12위를 차지한 노엘. 주하성의 대열로 합류하며, 노엘은 군자에게 조소 어린 시선을 보냈다.

“후회해 봤자 소용 없습니다아-.”

그러나 그 뱀 같은 미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도화살을 보니 군자는 더욱 큰 확신이 들었다.

저 자는 앞으로도 무조건 멀리 해야겠다. 이번 임무에서 탈락시킬 수 있다면 더 좋고.

이어서 3위부터 8위까지, 팀장들의 선택이 이어졌다. 지난 <월광> 무대를 함께한 ‘달맞이패’ 멤버들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군자와 팀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

그러나, 다른 팀장들이 가만히 두기엔 그들의 순위가 너무도 높았다.

“기유찬 참가자를 선택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호명된 ‘달맞이패’ 멤버는 유찬이었다. 놀랍게도, 그를 선택한 것은 프리스타일 랩 경연에서 4위를 차지한 양정무였다. 그가 유찬을 선택하자 마자, 태웅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저 자식 저거, 우리 갈라 놓으려고 일부러···.”

“혀엉, 캄 다운 해요. 응?”

현재의 능숙한 만류가 없었다면 아마 카메라에 그 분노가 고스란히 찍혔을 것이다.

군자 역시 유찬이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젠 함께할 수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다른 팀이 되어 버리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고.

그러나 유찬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꽤나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양정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군자였다. 하긴, 처음부터 어른스러운 녀석이었으니 어딜 가도 제 몫은 다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 뒤로도 멤버 선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달맞이패’ 멤버들 역시 한 명씩 다른 팀으로 편입되어 갔다.

“다음, 장선재 참가자.”

“저는 권태웅 참가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어? 나?”

방금 전까지 양정무의 선택에 분노하던 태웅은, 막상 본인이 빠르게 선택되자 기쁨 반, 섭섭함 반의 복잡한 표정으로 장선재에게 뛰어갔다.

다른 팀으로 가자마자 고장이라도 난 듯 어눌해지는 걸 보니, 오히려 유찬보다 태웅 쪽이 더 걱정인 군자였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번 군자에게 기회가 왔다.

군자의 두 번째 선택은 하현재. 다시 한 바퀴를 돈 다음엔 차인혁을 뽑았다.

“차인혁 참가자는 유군자 참가자의 팀으로 합류합니다.”

“예.”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인혁을 보며 군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브론즈 등급으로 과소평가받고 있지만, 차인혁은 확실한 잠재력을 가진 참가자다.

[저주 : 수많은 잔걱정]

[지금은 15위를 했음에도 늦게 뽑힌 것에 좌절 중]

저 저주도 함께 고쳐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달맞이패’ 멤버들을 포함하여, 상위권에 포진한 모든 참가자들이 모두 소속 팀을 찾았다. 군자의 다음 선택은 실버 등급의 윤정훈, 그리고 브론즈의 장민기.

순번대로 돌아가며 조를 꾸리는 방식이었기에, 100% 만족스런 팀을 구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뢰인 노엘을 피하며, 작곡 능력자가 포함된 팀을 만드는 데엔 성공했다.

현 상황에선 최선의 결과라고 해도 무방했다.

팀 결성이 끝나자 MC 정해진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서며 남은 룰에 대해 설명했다.

“자, 이제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팀을 찾았습니다. 이번 미션은 지난 미션과 마찬가지로 코인으로 아이템을 사고, 그것으로 경연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투자한 코인 역시 세 배로 돌려드립니다.”

“···.”

“하지만, 이번 미션엔 룰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

“이번 미션은 코인 쟁탈전으로 진행합니다. 팀 대 팀으로 경연을 펼쳐, 이긴 팀은 진 팀의 코인을 모조리 빼앗아 오게 됩니다!”

“!”

“승리 팀에서 종합평가 3위 안에 들어간 참가자는 탈락 면제권을 받습니다. 그러나 패배 팀은 모든 멤버가 탈락 후보가 됩니다.”

새롭게 추가된 악랄한 룰에, 모든 참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지면 바로 거지 된다 이거네.”

“탈락 후보에서 살아남아도 0코인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잖아···.”

“그래도 지난 미션보단 낫지 않아? 그 땐 지면 바로 탈락이었는데.”

“근데 0코인이면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아 몰라 몰라, 왜 질 생각부터 하는데.”

태웅의 마지막 말이 걱정을 일축했다.

군자 역시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패배 이후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승리의 방법을 궁리할 때다.

곧 대진 추첨이 이어졌다. ‘팀 유군자’의 상대는 주하성이 이끄는 팀으로 결정됐다. 모두가 탄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주하성은 꽤나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와, 유군자 대 주하성이네···.”

“이건 주하성 쪽이 유리한 거 아님?”

“그치, 노엘이 있잖아.”

“중위권 멤버들도 탄탄하네.”

“이번엔 주하성 네가 무조건 1등 할 것 같은데.”

참가자들의 예상은 모두 주하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허허, 무조건 1등이라니.”

그러나 팀장 유군자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어리석은 자들의 예측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지요.”

“···!”

“우리, 1등 조 한번 잡아 보십시다.”

* * *

본격적으로 ‘창작곡 미션’이 시작된 지 하루 째.

참가자들이 미션을 준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 기존 곡을 편곡하거나 매쉬업하여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는 방법.

이미 완성된 곡을 변형하는 방식이기에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러나 창작 점수에서 큰 감점을 당할 위험이 있으며, 잘못 편곡했다간 ‘원곡을 망쳤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이미 만들어진 ‘타입 비트’를 코인으로 구매하여 편곡하는 방법.

기존에 존재하는 곡이 아니기에 원곡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나, 마찬가지로 창작 점수에서 감점을 당할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참가자들이 창작해 내는 방법.

창작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크며, 괴작을 만들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모든 면에서 가장 큰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현재, 여덟 개 팀 중 세 번째 방법을 채택한 팀은 두 팀이 유일했다.

유군자, 그리고 주하성의 팀.

이미 상업 작곡가로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노엘은 빠르게 곡 스케치를 잡아 나갔다.

의견 또한 빠르게 모였다. 1위 주하성이 속한 팀인 만큼, 모든 결정이 그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으니까.

반면, 군자의 팀은 다소 난항을 겪고 있었다.

창작의 중심이 되어야 할 지현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업 시간은 여덟 팀 중 가장 많았다.

저러다가 쓰러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 한 순간도 랩탑을 내려놓지 않으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지현수였다.

그러나 곡 스케치를 뽑아 낸 다음엔, 여지 없이 삭제해 버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야···.”

“현수 형, 왜요? 난 방금 그것도 좋았는데.”

“···아름답지가 않아···.”

“에?”

하현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지현수의 입장은 분명했다.

“60점, 70점 짜리 곡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70점도 괜찮은 거 아니에여?“

“그건 안 돼, 너도 연습 대충 하는 거 싫어하잖아.”

“어,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 없긴 한데.”

“게다가···.”

그렇게 말하며 지현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군자를 바라보았다.

“···겨우 군자 님과 한 팀이 됐는데, 어떻게 70점 짜리 곡을···.”

“헙-.”

퀭한 눈두덩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저 눈동자.

괜히 모골이 송연해지는 군자였다.

이 자에게선 영은채 트레이너 님과 같은 냄새가 난다.

게다가 저 창작물에 집착적인 모습. 마치 그 요절한 도공 같지 않은가!

완벽주의자라, 괜히 저주인 것이 아니었구나.

군자는 식은땀을 훔치며 애써 웃었다. 조금 무서운 자이긴 하나, 완벽주의를 가졌다는 건 그만큼 훌륭한 완성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 도공도 완벽주의를 가졌기에 자신의 작품을 근정전까지 보낸 것 아닌가. 물론 그러다 요절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조를 이끄는 자라면 이럴 때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작곡할 땐 어떻게 하시··· 는지.”

“군자 님, 말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거, 그 쪽에서 그렇게 불편하게 하시는데 내가 어찌···.”

“그, 그럼 말 놔도 될까요?”

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현수의 눈빛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그래, 그럼 편하게 할게!”

“그, 그러자.”

반말 모드에 잠시 감격하던 지현수는, 이내 군자의 질문이 생각났다는 듯 재빨리 답변했다.

“보통 영감이 떠오르면 프로그램으로 슥슥 밑그림부터 그려. 그 다음엔 악기 하나 들고 천천히 작곡해 나가지.”

“지금은 영감이 안 떠오르는 상태인 건가?”

“아니, 군자 네가 내 영감 그 자체인데···.”

“그, 그, 그렇구나. 하하.”

“프리스타일 랩 하는 거 보고 완전 꽂혔거든. 그런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지, 지금은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지가 않아.”

“그래?”

“뭘 생각하든 자꾸 예의, 예의, 예의가 없구나, 이 훅만 떠오른다고···.”

지현수의 말에 다른 팀원들이 원망스런 눈빛으로 군자를 바라보았다.

“으이그, 선비 형아가 잘못했네.”

“그러게 왜 그런 마약 같은 노래를···.”

어, 내가 잘못한 건가···.

머리를 긁적이며, 군자가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 일단 악기라도 먼저 만져 보는 건 어떨까.”

“흐음··· 그렇게라도 해 볼까.”

순서는 조금 달랐지만, 일단 악기부터 만져 보기로 한 ‘팀 유군자’였다.

합숙소의 악기실엔 전자 피아노, 기타부터 시작하여 각종 타악기, 관악기, 심지어 국악기까지 다양한 악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자 피아노, 기타 등 보편적인 악기는 이미 대부분 다른 팀에서 가져가 버린 뒤였기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악기는 몇 개 남지 않았다.

“아···.”

“악기도 몇 개 없네.”

다른 모든 팀원들이 좌절하고 있던 중, 군자의 시선은 커다란 가죽 케이스들에 꽂혀 있었다.

“저건 무엇인데 저렇게 커다랗지?”

“아, 저거? 아마 거문고랑 가야금일 것 같은데.”

“!”

거문고, 가야금이라는 말에 군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진짜 별 게 다 있네여.”

“근데 뭐··· 지금은 쓸모가 없지.”

“현수, 타악기로는 안 돼?”

“멜로디가 있는 악기가 좋은데···.”

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군자는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커다란 가죽 케이스를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어?”

“군자 형, 지금 뭐 하시는···.”

마침내 거문고와 가야금을 담은 가죽 케이스 앞에 선 군자는.

“···.”

많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가죽 케이스를 쓸어 내리다가, 아련하게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이거 어떻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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