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33화 (3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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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네?

군자를 스튜디오 안에 밀어넣는 데엔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으으, 놔라! 뒤주는 싫단 말이다!”

“아까부터 무슨 뒤주 타령이야. 사도세자세요?”

“날 가두는 곳이라면서!”

“···그렇지?”

“좁다면서!”

“···그런 편이지?”

“먹을 것도 안 준다면서!”

“···군만두라도 줄까?”

“안 풀어 줄 거라면서!”

“···음, 아마 내가 만족하기 전까진?”

“거 봐라, 뒤주가 맞지!”

“아이, 일단 들어가 봐아.”

“싫단다!”

겨우 성공했나 싶으면 신묘한 스텝으로 팀 동료들을 따돌리며 달아나 버리는 통에, 커다란 차인혁이 스튜디오 문을 통째로 가로막고 나서야 간신히 군자를 스튜디오 안에 넣을 수 있었다.

“휴우-.”

다른 멤버들은 겨우 숨을 돌렸지만 군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한껏 뿌루퉁한 표정으로 스튜디오 구석에 박혀 있는 것이, 마치 본의 아니게 구조된 길고양이 같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았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군자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뒤주보다는 훨씬 넓은 공간이다. 그러나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것이,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통 유리창 너머로 군자를 바라보고 있는 저 시선들.

군자는 분명 이 장소를 본 적이 있다. 그래, 부모님과 함께 봤던 TV 속에서 종종 등장했던 곳이다.

아주 무서운 장소다. 사람을 마구 윽박지르고, 종종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곳이지.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내가 정말 바보인 줄 아느냐.

“변호사를 불러 달라!”

“···쟤 뭐라는 거야?”

“설마 여기가 취조실인 줄 아는 건가?”

“크크, 설마여.”

녹음실의 콘솔 앞에 앉은 지현수는, 군자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군자야, 거문고부터 연주해 줄 수 있어?”

“···끄응···.”

내키진 않았지만 군자는 주섬주섬 거문고 앞에 앉았다.

가둔 것은 괘씸했어도, 어찌 됐든 지금은 이 조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임무만 아니었어도 아주 혼쭐을 내 주는 것인데···.

“뭘 연주하면 되지?”

“그냥 자유롭게, 아까처럼 네 느낌대로 하면 돼.”

“알았어···.”

“고마워. 그리고, 갑자기 가둔 건 미안.”

“···그런다고 내 기분이 풀릴 줄···.”

“아 맞다, 이따가 녹음 끝나면 합주도 해 볼래?”

“합주?”

“거문고랑 가야금 진짜 잘 치는 사람이 있거든.”

“그, 그런 분이 계시다고?”

“응. 너랑 합주 하면 엄청 아름다울 것 같은데?”

거문고와 가야금의 합주라!

상상도 못한 제안에 군자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그래, 뒤주에 갇혔는데 그 정도의 보상은 있어야지.

“그럼 어디 한번···.”

한껏 더 풀린 얼굴로, 군자가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두웅-.

첫 현을 뜯자 마자, 지현수와 영은채 트레이너의 표정이 동시에 사르르 녹았다.

“···흐아···.”

“···너무 아름다워···.”

“···어떻게··· 거문고도··· 잘 치시는···.”

“제 말이요. 진짜 선비가 환생한 것 같다니까요.”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지현수는 그 어떤 피드백도 주지 않았다. 단지 군자의 연주를 분절하여 사운드 소스로 모으는 데에만 집중했다.

거문고 연주가 끝난 다음은 가야금의 차례.

부드러운 가야금 소리가 스튜디오를 채우자, 영은채 트레이너의 눈에 다시 한번 하트가 뿅 하고 떠올랐다.

“···세상, 세상···.”

“영 쌤은 가야금이 더 좋으신가 봐요.”

“···이런 애절함··· 아련함··· 딱 내 취향···.”

사운드 수집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현수와 영은채 트레이너의 반응은 결코 호들갑이 아니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고 해도, 세션 녹음을 할 때엔 프로듀서의 디렉팅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도와 다른 소리가 나온다면 그걸 잡고 가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이니까.

그러나 군자는 오히려 자신의 연주로 프로듀서의 영감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연주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악 세션들과 작업을 진행해 본 바 있는 영은채 트레이너였지만, 이만큼 명료하고 선명한 음색을 뽑아 내는 연주자는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악기가 아닌, 촬영장에 비치되어 있던 보급형 악기로.

심지어 감성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풍부했다.

거문고를 연주할 때엔 대나무처럼 우직하고 청렴한 선비의 기상이 느껴졌으며, 가야금 소리엔 몽글몽글한 애절함과 애뜻함이 한껏 묻어 있었다.

이 나이대 소년의 연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깊이감.

그 연주가 영감을 자극한 것인지, 군자의 팀원들도 제각기 곡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도입부는 군자가 훅으로 확 잡고 들어가는 게 좋겠지?”

“가야금이 현재 목소리랑 어울릴 것 같아. 현재가 싱잉 랩(노래하듯 음가를 붙여 뱉는 랩) 벌스 할 거면, 가야금 소리에 하면 딱일 것 같은데.”

“어, 맞아여. 저 싱잉 생각 중인데.”

“인혁이 형은 타악기만 들어간 마디에 벌스 하는 게 어때요? 형 발성이 묵직하니까, 이 부분 잘 살리면 완전 킬링파트 될 것 같은데.”

“···좋아.”

“이 형 얼굴 빨개진 거 봐. 마음에 드나 봐여!”

그 사이, 녹음을 마친 군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녹음 부스에서 나왔다.

“군자, 수고했어!”

“그, 합주는···?”

“푸하핫, 지치지도 않나 보네.”

당연한 일이었다. 합주만 생각하며 긴 녹음을 버텼으니까.

지금까지 누군가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 적 없었기에, ‘합주’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군자를 설레게 했다.

“분명 가야금, 거문고를 잘 하는 분이 있다고-.”

“아, 그 분? 그거 네 얘기야.”

“음?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인가. 그게 내 이야기라고? 그럼 나는 나와 합주를 해야 하는 것인가?

정신 없이 질문을 던졌으나, 지현수는 대답 대신 루프스테이션을 세팅했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아-.”

루프스테이션 콘솔이 나오는 모습을 보자, 영은채 트레이너의 눈이 다시 한번 희번득거렸다.

“···루프··· 설마···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를···.”

“네, 곡만 잘 뽑히면 그렇게 해 보려고요.”

“···세상··· 세상···.”

“멋지겠죠?”

“···또··· 레전드··· 예약이군여···.”

영은채 트레이너는 넋이 나간 듯 했지만 군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전부터 이야기하던 루프스테이션이란 대체 무엇인가?

“군자, 내가 신호를 주면 바로 거문고 한 소절만 연주해 줄래?”

“···그래.”

그거야 뭐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연주 후에 일어났다.

둥, 둥, 당, 다앙-.

놀랍게도, 책상 위에 깔린 장치에서 방금 군자가 연주한 거문고 소절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군자가 놀란 표정으로 현수를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내 연주를 따라하고 있다!”

“푸하핫, 그러게.”

“이, 이게 어떻게 된···.”

“자, 이제 여기에 가야금도 얹어 봐.”

지현수의 제안에, 군자가 가야금을 무릎에 올렸다.

“그럼, 이렇게 연주하면···.”

다앙, 두웅, 당다앙-.

거문고로 만든 기본 선율에 가야금이 얹히니 소리는 훨씬 더 풍성해졌다.

“우와···.”

“가야금 거문고 합주도 엄청 좋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군자였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합주는 등골이 오싹할 만큼의 쾌락이었다.

물론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조그만 기계 장치이긴 했지만.

소리에 소리를 얹어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군자가 생각한 것 이상의 엄청난 쾌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어때? 루프 스테이션은 이런 느낌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야. 재미있어?”

“응, 굉장히!”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군자를 보며 지현수가 풉 하고 웃었다.

“좋아, 그럼 이번엔 나도 같이 들어가 볼게.”

두 번째 루프 스테이션 가동. 이번에도 거문고 소리로 출발하여 가야금 소리를 그 위에 얹었다.

그러나 이번엔 지현수도 합세했다.

패드에 미리 녹음해 놓은 전자 드럼, 신디사이저 등 가상 악기를 이용하여, 군자의 거문고 소리에 리듬감을 더하고 공간감을 채워 나갔다.

단순한 거문고 선율 하나에 악기 소스가 하나씩 쌓여 나가자, 어느새 루프 스테이션에선 꽤나 그럴싸한 힙합 비트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오오오!”

“어때? 재미있지?”

“흥겹구나!”

감금의 고통은 이미 다 잊었다는 듯, 군자의 어깨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1분 만에 탄생한 하이퀄리티의 비트에, 동료들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이걸 그냥 경연에 써도 되겠는데?”

“지현수, 너 진짜 천재 아니냐?”

“아냐, 루프스테이션은 많이들 쓰는 장난감인데 뭐.”

지현수는 겸손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퀭하지만 반짝반짝한 눈으로 군자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연주자가 있는데, 좋은 비트 못 뽑으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맞는··· 말씀···.”

지현수의 말에 영은채가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모로 꽤나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루프스테이션 놀이가 끝난 뒤, 지현수가 다시 한번 팀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난 무대에서도 이 루프스테이션을 써 보면 어떨까 싶어.”

“MR 틀어 놓고 퍼포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라이브 연주도 같이 하겠다는 거지?”

“응. 연주자가 없었다면 시도도 못 했겠지만, 우리한텐 군자가 있잖아.”

“크으, 이건 뭐··· 거의 핵무기 가진 기분이구만?”

“선비 형아, 진짜 왜 이렇게 최고인 거예여-.”

동료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으며, 군자는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 기계 장치가 어떻게 그의 연주를 따라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뭐, 괜찮다.

지금의 합주처럼 신나는 무대가 있다면, 승패와 상관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 *

다시 사흘이 흘러, 중간점검의 날이 다가왔다.

1차 팀 경연에 이어, 이번에도 군자의 팀 쪽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먼저 무대를 공개한 것은 주하성, 노엘이 속한 팀 쪽이었다.

띵, 띵, 띠링-.

전주가 흘러 나오자 마자, 프로듀싱을 담당한 참가자들의 눈이 번쩍 커졌다.

“···사쿠라네?”

“그러게, 여기서 이걸 쓴다고?”

‘사쿠라(Sakura)’, 미디 작곡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가상 악기 중 하나.

주로 힙합 음원에 사용되는 이 가상 악기는, 동양풍의 무드를 만드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잠깐만, 얘네가 오리엔탈로 갔다는 건···.”

“군자 네랑 그냥 정면승부 하겠다는 거 아냐?”

“심지어 비트 되게 좋은데?”

“그러게, 트렌디하게 잘 뽑았다.”

가상악기 ‘사쿠라’를 전면에 내세워 만든 트랩 스타일의 비트는, 명백히 동양풍을 지향하고 있었다.

비트 공개 및 중간점검이 끝난 뒤, 장민혁과 레이첼 프로듀서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헐, 이첼 쌤 박수···.”

“나 처음 봄.”

레이첼 트레이너가 이 정도의 리액션을 보이는 것은 꽤 드문 일이었기에, 몇몇 참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비트 미니멀하게 잘 뽑았다.”

“이건 엘이 작품이지?”

“넵, 열심히 만들었슴다.”

“사쿠라는 가지고 있던 거야?”

“아뇨, 코인으로 샀슴다!”

“하성이가 사 줬구나?”

“그래, 코인은 그렇게 써야지.”

“그나저나 상대가 군자인데, 동양풍 괜찮겠어?”

“넵, 이길 검다!”

“자신감 좋네.”

프로듀서 노엘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담긴 비트.

동시에, 자신을 외면한 유군자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어때? 우리 팀 왔으면 여기에 랩 할 수 있었을 텐데.’

노엘은 유군자를 보며 씨익 웃었지만.

“으으···.”

유군자는 그를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저 도화살···.”

“이, 이 자식이 진짜.”

“역시, 음란한 청년과는 궁합이 안 맞는구나···.”

그렇게 ‘팀 주하성’의 비트 공개 및 중간점검이 끝나고.

이제 ‘팀 유군자’의 중간점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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