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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단속반 출두
군자일기(君子日記)
競演五日前 (경연오일전)
(경연을 닷새 앞둔 날.)
歌詞紙完成 (가사지완성)
(드디어 모두의 가사가 완성됐다.)
暗記難豫想 (암기난예상)
(외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戰意大爆發 (전의대폭발)
(모두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다.)
競演四日前 (경연사일전)
(경연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구나.)
廢人池懸垂 (폐인지현수)
(동료 현수는 밤낮없이 작업만 한다.)
完璧主意者 (완벽주의자)
(완벽주의라는 저주가 그를 괴롭히는 듯 하다.)
促骨液寄附 (촉골액기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초콜렛을 건네주는 것 뿐···.)
競演三日前 (경연삼일전)
(어느덧 경연이 삼일 남았다.)
公演大完成 (공연대완성)
(드디어 모든 공연 무대가 완성됐다.)
齒牙極摩耗 (치아극마모)
(모두가 이를 박박 갈며 만든 무대···.)
心腸以拿大 (심장이나대)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게 되는구나.)
競演二日前 (경연이일전)
(경연을 이틀 앞둔 날 밤.)
周河星登場 (주하성등장)
(갑자기 상대 조장 주하성이 말을 걸어 왔다.)
* * *
주하성은 중간점검을 믿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주하성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는 중간점검이었다.
지현수는 노엘을 이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거문고와 가야금 세션을 불러 온 것은 아마도 유군자였겠지. 그 덕분에 6화 방송에선 비호감으로 편집되어 버렸고.
대중은 이미 주하성의 편이었다. 애초에 전체 1등이라는 인지도, 거기에 중간점검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했다는 호감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이번 라운드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 같았다.
그러나 주하성은 여전히 중간점검을 믿을 수 없었다.
1차 팀 경연, 중간점검에서 방심한 양정무가 어떻게 처참하게 패배했는지 똑똑히 보았으니까.
저 선비 같은 미소 속에 무슨 속내를 숨기고 있을지.
유군자를 떠 보기 위해 주하성이 먼저 움직였다.
카메라도 없으며 마이크도 꺼진 늦은 밤, 붓펜으로 붓글씨를 쓰던 군자를 주하성이 불러냈다.
“군자, 안녕.”
“···반갑습니다.”
“너 시우랑은 벌써 꽤 친해졌던데.”
“아, 붓펜을 선물 받아서.”
“나랑도 친해지자. 어차피 같이 데뷔할 사이잖아.”
“···그건 아직 모르는 것 아닙니까.”
“에이, 모르긴 뭘 몰라.”
군자의 말에, 주하성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어차피 이제 대충 각 나왔어.”
“···.”
“너, 나, 시우, 현재, 노엘, 선재 형, 강열이 형··· 뭐 그 정도 아닐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그래? 아닐 걸?”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급이 다르잖아.”
급이 다르다는 말에 군자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러나 주하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이제 데뷔조 애들이랑 좀 놀아.”
“···.”
“앞으로 계속 볼 사람들이랑 가깝게 지내야지.”
“···.”
“그러니까 나랑도 친하게 지내자, 응?”
주하성은 시종일관 미소지었으나, 군자의 얼굴은 갈수록 딱딱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화난 표정.
두 눈썹은 도깨비처럼 뻗쳤고 아래턱 근육은 연신 움찔거렸다.
주하성을 뚫어질 듯 똑바로 바라보며, 군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음?”
“정말, 정말, 정말로 궁합이 맞지 않는구려.”
“구, 궁합?”
“가 보겠습니다.”
분노를 가라앉히며 돌아서는 군자였지만, 주하성이 다시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잠깐만.”
“···.”
“그럼 뭐 하나만 묻자.”
“뭡니까.”
“너희 거문고랑 가야금 세션 말이야.”
“···.”
“그거, 사실 네가 녹음한 거 아냐?”
그것이 주하성이 진짜 묻고 싶었던 내용이었다.
모두가 전문 세션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그게 유군자가 연주한 파트라면?
‘100% 창작’이라는 전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본 경연 때도 거문고와 가야금 녹음본을 그대로 사용하겠지.
“정말 네가 한 거라면··· 경연 때도 녹음본 그대로 쓰겠네?”
“···.”
“이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잖아.”
“···.”
그러나 군자는 아무런 말 없이 한참 주하성을 들여다 보았다. 어느새 그의 표정엔 분노 대신 연민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 형.”
“응?”
“지는 것이 무섭습니까?”
군자의 말에, 이번엔 주하성의 이마에 파란 정맥이 불거졌다.
“···뭐라고?”
“참, 별 걸 다 궁금해 하는군요.”
“유군자, 너···.”
“녹음본, 안 씁니다.”
“!”
“거문고와 가야금 녹음본은 안 쓸 예정이니, 걱정 마시길.”
“그래?”
“그래도 주 형, 연기 연습은 좀 더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내 말에 안도하는 것이 너무 티 나잖습니까, 허허.”
“!?”
주하성이 잡은 옷자락을 홱 뿌리치며, 군자는 숙소를 향해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저 새끼가···.”
작은 욕설을 내뱉는 주하성이었지만, 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주하성은 정말로 안도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만큼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유군자가 싸가지 없는 놈이긴 했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주하성은 완전히 안도한 상태로 본 경연 촬영장에 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Manners Maketh Man! 우리는 ‘예의단속반’입니다!”
“푸훗-.”
황당한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유군자의 팀을 보면서도, 일말의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대가 완전히 암전된 뒤.
핀 조명이 떨어진 곳엔, 트렌디하게 리폼한 짙푸른 한복을 입고 양반탈을 쓴 거문고 주자가 앉아 있었다.
“아하?”
그 모습을 보며 주하성은 웃었다.
결국 거문고, 가야금 세션을 버리지 못한 거구나.
아니, 못 버린 걸 넘어서 아예 세션을 무대에 세우는 미친 무리수를 둔다고?
저래서 녹음을 안 쓴다고 한 거구만.
하긴, 연주자가 직접 라이브를 한다면 굳이 녹음본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다만, 창작 점수는 더 크게 감점되겠지.
반대편엔 경매장에 앉은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육시의 트레이너들부터 시작하여 현직 프로듀서, 제작자, 심지어 현역 아이돌까지.
방청객은 속여도 이들은 속일 수 없다. 창작 점수에서 엄청난 감점을 받게 될 거다.
두웅, 당, 다앙-.
그러나 연주자가 현을 뜯기 시작한 순간.
주하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수밖에 없었다.
두웅, 두웅-.
두꺼운 거문고 현이 만들어 내는 견고하고 강직한 소리. 우퍼 스피커로 증폭된 거문고 소리는, 락 음악의 베이스 기타와는 또 다른 묵직한 매력이 있었다.
“···세션 하나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데려오긴 했네.”
세션의 퀄리티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 심사위원들조차 첫 음을 듣는 순간 움찔할 만큼, 연주자의 라이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둥, 두웅, 따악, 당, 다앙-.
곡조는 전개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휘모리 장단까지. 거문고 주자는 길게 늘어진 산조를 한껏 압축하여 마치 관객들의 귀에 때려 박듯이 멜로디를 늘어놓았다. 청산 계곡이 단숨에 물보라치는 폭포로 변했다.
그 폭포수 같은 음표의 향연이 끝나는 순간.
핀 조명이 하나 더 떨어지며, 또 하나의 양반탈이 등장했다. 그의 앞엔 기계 장치가 놓여 있었다.
“루프 스테이션!”
심사위원석의 누군가가 작게 외쳤다.
거문고에 루프 스테이션의 합세.
방금 녹음된 휘모리 장단의 힙한 거문고 가락이 루프 스테이션을 통해 반복되기 시작했다.
거문고 산조가 힙합 비트의 베이스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와···.”
“뭐야 이거?”
“몰라, 이런 거 처음 보는데···.”
“이게 아이돌 서바이벌 경연 무대가 맞아?”
관객도, 심사위원들도, 다른 참가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무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까지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주하성조차, 그 압도적인 무대엔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래 봐야 세션 빨이다. 거문고가 없으면 빌드업조차 될 수 없는 소음의 집합일 뿐이다. 심사위원들이 그걸 모를 리 없지. 그러나 어느새 주하성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거문고 가락 위에 가상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며 빌드업될 때마다, 양반탈은 하나씩 늘어나며 거문고 주자의 옆을 채웠다.
이쯤 되면 본 공연을 위한 멤버들이 등장하고 세션은 슬슬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거문고 주자는 끝까지 무대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지?”
“설마 같이 공연하나?”
“에이, 그게 말이 돼?”
“그럼 왜···.”
참가자들조차 의아해 하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거문고 주자는 여전히 여섯 양반탈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느새 루프스테이션으로 만든 거문고 힙합 비트가 완전히 음소거 되었고.
무대에 남은 여섯 양반탈은,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처럼 같은 방향으로 느린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스윽, 스윽-.
천천히, 그러나 완벽히 일치하는 동작으로.
···쿵, 쿠웅, 쿠웅-.
그러다가, 다시 멀리서부터 들려 오는 808 드럼 사운드.
모두의 집중력이 극한에 달한 그 순간.
카라라라라라랑—!!
거문고 주자가 별안간 현 여섯 개를 동시에 내리 뜯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시에 다시금 울려 퍼지는 쩌렁쩌렁한 거문고 루프.
순간, 중앙에 있던 거문고 주자가 양반탈을 벗어넘겨 버렸다.
탈 안에 숨기고 있기엔 너무도 수려한 이목구비의 참가자.
유군자의 얼굴이 무대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유, 유, 유···!”
“군자잖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단숨에 찢어질 듯한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마이크를 댄 군자의 소리는 그 환호성조차 쪼개 버리며 관객들의 고막을 때렸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확연히 다른, 걸쭉하고 강렬한 탁성.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희석 따위 없이 100% 한국풍으로 던지는 강렬한 첫 훅에, 심사위원들마저 온 몸에 전율이 흐름을 느꼈다.
“그, 그러니까 쟤가 지금 거문고도 라이브로 치고··· 그걸 루프스테이션으로 돌려서 비트를 만든 다음에 훅까지 치고 있는 거죠?”
“···그런 것 같은데요···.”
“뭐야 쟤?”
모든 심사위원들이 관심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영은채를 비롯한 몇몇 트레이너는, 평가할 생각도 없다는 듯 이미 반쯤은 맛이 가 있었다.
“···세상, 세상··· 군자··· 군자님···.”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언제나처럼 장난기와 익살 넘치는 가사였으나, 새로운 창법과 함께하니 그것은 꽤 멋들어진 판소리의 한 구절처럼 들렸다.
오랜만에 본인이 알던 방식으로 곡조를 뽑아 내며, 군자 역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 소리를 뽑아 낼 땐 가슴이 후련해지는구나!
처음엔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아이돌에겐 아이돌의 방식이 있다고 배웠기에, 이번에도 창법을 희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러나 지현수는 단호했다.
힙합은 자유라고 했지.
더불어, 그 어떤 종류의 음악과도 쉽게 섞일 수 있는 음악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믿고 제 소리를 낸 군자였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이 벌떡 일어나 무대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이 무대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기를 받아 가겠다는 듯.
그 모습에, 여섯 광대들 역시 흥이 한껏 올랐다.
오른손엔 마이크, 왼손엔 부채.
쩌렁쩌렁한 군자의 훅이 울려 퍼지는 동안, 다섯 양반탈은 가락에 맞춰 자유롭게 덩실거리며 무대 위에서 자리를 잡았다.
군자 다음으로 가면을 벗은 건 이 곡의 공동 작곡가이자 편곡자인 지현수.
언제나 피곤에 절어 있던 지현수였지만, 오늘만큼은 쭉쭉 뻗는 단단한 발성으로 무대 위를 펄펄 누볐다.
예의! 단속반 출두,
언더아머 대신 Korean Goods.
태도는 발랄, But 얌전한 둔부.
지킬 것은 지키라는 팬들의 분부.
단속반 할일도 많네, 이런!
오늘도 만났어 지하철 빌런.
고함이 이곳의 종묘제례악,
곤장이 필요해 사회의 해악.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예의단속반’의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딱 여섯 명, 바로 다음에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주하성의 팀만 빼면.
“···.”
이미 할 말을 잃은 듯, 완전히 흙빛이 된 주하성이었지만.
“아 쎄 예-! 유 쎄 의-!”
“예!”
“의!”
“예!”
“의!”
“아 쎄 충! 유 쎄 효!”
“충!”
“효!”
“충!”
“효!”
‘예의단속반’의 무대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